하늘이 빚은 정원 사람이 만든 정원

거제의 봄은 구조라 춘당매와 공곶이 수선화로부터 찾아들고 가을은 북병산 단풍으로 무르익는다. 지세포에서 누우래재를 오르면 여태 보던 바다가 아니다. 파도 소리 거칠고 창창망망(蒼蒼茫茫)하다. 거두어들이고 맞아들이는 '받다'가 이름이 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 그 바다다. 세상의 온갖 것이 흘러들어 썩어버린 바다가 아니라 삭혀서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된 바다다. 여태까지 구경했던 바다가 든바다였다면 여기서부터는 난바다이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구조라의 원래 이름은 조라다. 자라의 목처럼 생겼다하여 조라목, 조랏개, 조라포, 목섬, 목리, 항리로 불리었다. 거제는 국경의 섬이다. 보도연맹원이라며 끔찍하게 학살되어 지심도 앞바다에 수장된 시신들이 수없이 떠밀려와 해안을 덮었다는 일본의 대마도가 빤히 보이는 곳이다. 조선에서도 왜와 접경인 이 섬 옥포, 지세, 조라, 가배, 장목, 영등, 율포에 거제 7진을 설치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곳 조라진이다. 그런데 왜 '구(舊)조라'가 됐을까? 임진왜란 중 조라진이 방비에 허술하여 진을 빼앗겼다는 책임을 물어 옥포진 옆으로 옮겨 조라진, 신조라라 하고 여기는 구조라라 불렀다. 이후 효종 때 진이 다시 돌아왔으나 이름은 구조라진으로 사용했다. 진이 옮겨진 흔적은 옥포에도 그대로 남아있으니 옥포2동 연안 여객선 선착장 안쪽을 조라 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포구가 아늑한 수정 마을에서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골목길을 들어서니 '샛바람소리길'이란 팻말이 나온다. 자라목에서 머리인 수정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때마침 추석 연휴 기간이라 "윷이야! 모야!" 윷말 놓는 실랑이가 왁자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삽짝을 내달린다. 사시사철 이리 그득한 골목길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비너스.jpg
▲ 박섬의 비너스 정원. / 박보근 노동자

뒤돌아보며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골목길은 산길로 바뀌고 시누대 이파리들이 바람에 몸 부비는 소리가 시원하다. 샛바람소리에 귀를 씻고 언더바꿈 공원을 지나면 구조라성이 있다. 조선 초의 석성으로 남해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요충지다. 마을 쪽은 민가가 들어서고 경작지로 일구어져 그 자취만 남아있고 서쪽은 일부 복원되어 있다. 노자산과 북병산이 감싸고 고운 모래가 하얀 구조라 해수욕장 가운데 삿갓 모양을 한 윤돌섬이 보인다. 윤돌섬에는 비슷한 효자 전설이 몇 가지 전해 오는데 내 나름 묶어서 풀어 본다.

옛날 옛적 간날 갓적에 북병산 자락 양지 마을에 김 씨 성의 어떤 어부가 예쁜 해녀 아내와 고기 잡고 해삼 전복 따서 장에 내다 팔아 알콩달콩 살았더란다. 하루는 해녀 아내가 숨비소리 고르며 물질을 하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더니 아내를 바다속으로 삼켜 버렸단다. 슬픔에 빠진 어부가 낮에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종일 아내를 찾다 밤이면 바닷가에서 아내를 부르며 멍하니 달만 쳐다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김망월이라 불렀다. 이러구러 세월이 지나 망월도 늙어 노인이 되었는데 어느 해 마을 앞 작은 섬에 해녀 하나가 아들 삼 형제를 데리고 들어와 움막을 지어 살면서 물질로 밥 벌어 먹고살더란다. 어느 날 아내 생각에 배를 저어 바다로 나가던 망월 노인은 숨비소리를 내며 물속에서 올라온 이 해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십 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찾아든 사연을 듣던 망월 노인의 눈이 젖었다. 어느 바닷가에서 기억을 잃고 쓰러진 이 여인은 자기를 구해 준 윤 씨 성을 가진 어부와 결혼하여 아들 삼 형제를 두고 살다 바다에 남편을 잃고 뭔가 끌리듯 이 섬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옛사랑을 되찾은 두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나 몰래 하는 사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장성한 아들이 성씨가 다르고 과부 홀아비라 입질에 오르내릴까 하여 몰래 만나 노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회춘하는 어머니를 눈여겨보던 아들들은 발을 걷고 얕은 물길을 건너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개가시켜 드릴 수도 없던 시대이니 그저 모른 척하고 오히려 다가오는 겨울 어머니가 차가운 물에 발이 젖지 않고 정인을 찾을 수 있게 바다를 가로질러 돌로 징검다리를 놓아 드렸더란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윤 씨 삼 형제의 효성을 기리며 섬을 윤돌섬이라 하였다. 태풍에 쓸려가긴 했지만 지금도 썰물이면 건너갈 수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자라 머리 수정봉을 오른다. 공곶이 건너편으로 거북섬, 모자섬 이라고도 불리는 안섬 내도와 나란히 총각섬 또는 박섬, 바섬이라고 불리는 외도가 난바다의 거친 파도를 막고 섰다.

목.jpg
▲ 총각섬에서 보는 처녀섬. / 박보근 노동자

옛날 처녀섬 내도가 공곶이 앞바다에 나앉아 머리를 감고 있는데 대마도 근방에서 백수로 떠돌던 외도가 멀리서 건너다보니 바다에 풀어헤친 삼단 같은 머릿결이 햇빛에 파도처럼 일렁이거든. 이놈이 그 자태에 도취되어 내도를 어찌해볼 요량으로 허겁지겁 쫓아왔더란다. 원래 산천초목은 조물주가 사람에게 쓰임 되라 만들었기에 제 바람대로 하고자 하려면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 총각섬은 처녀섬 자태에 음심이 동해 하늘이 정한 법도를 무시하고 밤낮으로 내달렸더란다. 하지만 하늘이 그냥 내버려 둘 턱이 있나 이제 막 처녀섬을 덮치려는 찰나에 동네 아낙이 "섬 떠들어온다!" 고함을 질러 그만 처녀섬을 지척에 두고 발에 뿌리가 내려 주저앉고 말아 수 천 년 눈앞에 두고 그리며 바라만 보게 되었더란다.

외도가 사람만이 구경하기 위해 사람이 꾸민 정원이라면 내도는 원시림 우거진 자연 그대로가 누리기 위해 하늘이 빚은 천상의 정원이다. 내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동백나무는 사철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고 봄이면 시들지 않은 붉은 꽃 카펫이 섬을 뒤덮고 동박새 지저귐이 처연하다. 울릉도와 남해안에서 자라는 후박나무가 사이사이 군락을 이루고 육박나무와 구실잣밤나무 등을 경계로 죽죽 뻗은 대숲과 억새밭이 번갈아 나타나며 어우러진다. 곰솔의 기개 넘친 듯 우아한 자태는 가히 선경이다. 십수 년 전 이 섬에 며칠 묵었을 때는 비탈을 일군 비럭밭이나마 꽤 있었는데 모두 풀숲에 묻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시 상수도 공사에 투입되어 일하면서 돌멍게 껍질에 소주를 부어 성게알 안주를 장만해 주셨던 할머니를 찾아갔더니 집조차 무너져 풀숲에 묻혔다.

내외.jpg
▲ 내도 세심 전망대. / 박보근 노동자

외도를 관광하려면 갈도 혹은 갈곶도라는 바위섬을 꼭 들른다. 십자동굴과 사자바위, 천년송으로 잘 알려진 해금강이다. 남해 최고의 비경인 해금강은 바위가 칡뿌리처럼 얽혀 있다 해서 갈도, 약초가 많다 하여 일명 약초섬이라고도 한다. 이곳도 옛이야기 하나 거제 설화집에 실려 있다. 갈도에 천 년 묵은 동삼 더덕이 살았는데 영물이라 사람이나 짐승으로 둔갑할 수 있었단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사람으로 변하여 낚시를 하거나 저자 구경도 다닌다고 했다. 사람들은 동삼 더덕을 잡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하여 눈을 부라렸지만 어디 영물이 그냥 영물인가. 그러던 차에 동삼 더덕이 상주 차림을 하고 저잣거리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아 애꿎은 상주들이 된통 당하거나 정체를 밝힌다며 몰매를 맞기도 했단다. 참말 동삼 더덕이 있더라도 저 백 척 절벽을 기어오를 이들이 있겠나 싶다.

외도는 개인 소유의 섬이다. 이북 출신의 사업가 고 이창호 씨와 부인 최호숙 여사가 완전히 바꾸어 놓은 섬이다. 1968년 외도로 낚시를 왔던 이창호씨는 외도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아열대 상록수 숲과 해안 절경에 빠져 그의 인생 항로를 180도 돌렸다 한다. 수년간에 걸쳐 6가구의 원주민과 2명의 외지인 소유의 가산을 모두 사들인 이 씨는 76년 정부로부터 관광농원 조성 허가를 받아내고 24년에 걸쳐 섬을 바꾸어 놓았다. 한 개인이 도전하고 만든 정원으로 보면 참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리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관광 수익과 효과도 매우 크다. 그러나 이곳은 동박새나 갈매기, 염소나 멧토끼가 뛰노는 정원이 아니다.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정원이다. 사람을 위해 섬은 본래의 모습을 지워야 했고 사람을 위해 나무는 억지로 몸이 뒤틀리고 잘리어지고 다듬어졌다. 사람을 위해 짐승들은 이웃 안섬으로 쫓겨 갔다. 가꾼 화려함이 씁쓸하다.

구조라를 떠나며 넘는 고개 언덕에 집체만한 바위에 '황제의 길'이라 새겨져 있다. 고갯길이 아름다우니 황제의 길이라 할만도 하다 싶어 안내문을 보니 아니다. 68년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하던 중 거제도를 비공식으로 방문하여 이 고갯길을 내려가며 펼쳐지는 비경에 "Wonderful!"이라고 7번이나 외쳤단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황제가 비공식 일정을 따로 잡아 당시 오지였을 이곳까지 왔다면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어쨌든 그 시기에 셀라시에 황제가 한국을 국빈 방문한 것은 사실이다. 에티오피아 6·25참전 용사 희생자 기념관 비석 준공식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거제 갯길놀이 나선 내겐 황제가 지나간 길인지 아닌지는 별 관심 밖이나 길은 명품이다. 단풍이 짙어지면 다시 지나보겠다. "Wonderful!"이 7번 이상은 절로 터지겠다.

황제의-길.jpg
황제의 길. / 박보근 노동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