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꿈꾸는 평화주의자

"6개월만 다니자"고 다짐했으나 12년이 흘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는 권재성(50) 대외협력실 차장은 독특한 계기로 KAI에 입사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무기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평화주의자랄까. 그는 "우리나라가 살 길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자주국방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며 "KAI는 그런 면에서 정말 애국적인 기업"이라고 말했다.

자학생운동가에서 무기개발 회사의 직원으로

Q. 서울사무소는 언제부터 근무하셨나요.

"2004년 11월 KAI에 입사할 때부터 서울에서 근무했어요. 그러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본사가 있는 사천에서 일했구요. 서울에서 다시 근무를 시작한 건 2015년부터입니다."

Q. 서울에 따로 연고가 있었던 건가요? KAI가 첫 직장은 아닌 것 같은데.

"산청군 생비량면 법평마을이 고향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진주로 이사왔죠. 그때부터 쭉 진주초·중·고등학교, 경상대학교(사범대학) 등 진주에서 학교를 다녔구요. 서울과 연고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오랫동안 했어요. 수배 생활도 오래 했고 감옥에도 2년 6개월가량 있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출소 후인 1998년경이었습니다. 수배당했을 때 숨기 좋은 곳이 건설 현장이었고, 그 인연으로 한 선배를 만나 건축업을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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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성 한국항공우주산업 대외협력실 차장. / 고동우 기자

Q. 갈수록 궁금해지네요. KAI에 어떻게 입사하게 됐는지….

"2002년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후보 경선팀에서 일했습니다. 물론 학생운동을 했던 게 계기가 됐죠. 그때 같이 했던 사람이 지난 총선 때 창원 성산구에 출마했던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씨 등이었습니다. 35살에 불과했던 제가 진주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으니 당시 얼마나 사람이 없었는지 알겠죠? 그 전 인연부터 설명하면 2000년·2004년 총선 때 통영·고성에 출마했던 정해주 전 진주산업대 총장을 도왔었어요. 그분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KAI 사장에 임명됐던 거구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자주국방 능력 갖춰야

Q. 이제 그림이 그려지네요. 대충 어떻게 KAI에 입사했는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12년이나 근무하게 된 건 뜻밖입니다. 아무래도 정치에 뜻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없지는 않죠. 청와대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진주에서 총선 출마 제안도 받았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해주 전 총장을 계속 도와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어요. 그 분이 KAI 사장 되고 나서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딱 6개월만 하자' 했지만 여기까지 왔네요. 2008년 5월까지 사장을 하셨으니 길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죠."

Q. 어떤 도움을 요청한 건가요. 당시 KAI에서 했던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생운동 경력과 관련이 있죠. 제가 입사할 당시 우리 회사 최대 과제가 다목적헬기사업을 수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 반대가 심했고, 새롭게 들어선 참여정부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습니다. 시민단체의 반대를 완화하고 오해를 푸는 것이 제 당면한 임무였습니다. 시민단체와 가교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다행히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오해를 풀었고, 참여정부에서도 기동형 헬기와 공격형 헬기를 분리해 개발하는 방안이 채택되어 지금의 '수리온'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수리온 개발에 대한 찬반양론이 국회로 번졌는데 당시 17대 국회는 방위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를 우호적인 여론으로 바꾸는 것이 또 제 일이었던 바, 자연스레 지금의 국회 관련 업무를 하게 된 것입니다."

Q. 그래서 국회에 그렇게 자주 오시는군요.

"정부 예산이 결정되는 하반기에 특히 바빠지죠. 하루에 국회의원 3~4명 이상은 만나는 거 같아요. 우리가 하는 사업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어요. 뛰는 만큼 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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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성 한국항공우주산업 대외협력실 차장. / 고동우 기자

Q. 지금 가장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한국형 전투기사업과 소형민수헬기·공격형헬기 개발사업, 미국 고등훈련기 수출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형 전투기사업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 동안 8조 7000억 원을 투입해 전투기를 개발하는 사업인데요, 기존의 F-5, F-4 전투기를 대체하는 국책 사업입니다. 굳이 2025년으로 못 박은 것은 그 해가 F-5 전투기가 40년째 운용되어 더 이상 수명 연장을 할 수 없는 데드라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개발이 성공한다면 항공기 개발 기술이 한 단계 성장한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가 전투기를 개발·생산하는 나라로 진입하는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Q. 학생운동 출신으로서 전투기 개발, 무기 개발에 앞장선다는 게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이력을 아는 사람들이 혼돈스러워하는 부분이죠. 평화주의자인 당신이 어떻게 무기를 만드는 전쟁 기업에 근무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회사에 들어와 근무하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애국적인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 무기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EU, 러시아 등 세계열강이 과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과점시장인 만큼, 특히 우리의 경우 한미동맹까지 염두에 둔다면, 부르는 것이 값인 시장입니다. 만들 능력이 있으면 가격은 뚝뚝 떨어질 텐데, 기술도 생산 능력도 없으면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고, 세계열강이 호시탐탐 노리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가 살길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자주국방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단순히 군인 숫자와 무기 체계뿐만이 아니라 방위산업체의 능력도 매우 중요해요. 군과 방위산업은 가장 중요한 협력자입니다."

Q. KAI는 경남에 소재한 기업인데, 지역 출신으로서 그 의미도 남다르게 보실 거 같아요.

"대학 다닐 때 진주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대동공업이 풍기로 이전했습니다. 이후 진주 제조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죠. 상평공단은 몰락했고, 10여 년 동안 경기 침체를 겪게 됩니다. 이를 대체한 것이 KAI였습니다. 대우·삼성·현대 항공 3사가 통합돼 사천에 자리를 잡은 게 1999년이었습니다."

Q. 개인적 의미도 남달랐군요.

"KAI에 입사하면서 별 거부감이 없었던 이유도 KAI가 잘 돼야 제가 사랑하는 고향이 잘 될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 도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제조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제조업과 행정, 대학이 잘 조화된 도시는 살아남고, 아닌 도시들은 점차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는 참 올바른 노선이라고 할 수 있지요.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통해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 중심도시가,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와 통합해서 함께 잘 사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진주, 사천, 산청 등은 통합하는 것이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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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성 한국항공우주산업 대외협력실 차장. / 고동우 기자

독기 없는 경남 사람

Q. 서울에선 가족과 함께 사시나요?

"혼자 생활해왔습니다. 아내가 진주에 직장이 있어서 서울로 옮길 처지가 못돼요. 그래도 매주 주말에 집에 갑니다. 물론 서울에서 업무상 일정이 있어 못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단 몇 시간이라도 가려고 합니다. 토요일 밤에 가서 일요일 밤에 서울 오면 정말 피곤하지만 안 가면 그게 더 피곤하더군요. 혼자 지내니 피폐해지는 게 있죠. 5평 남짓한 원룸에 거주하는 것도 있고 술도 많이 마시게 되고…."

Q. 서울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을 뿐 고향을 떠나본 적은 없는데 그렇다고 서울이 낯설지는 않아요. 서울이 저는 참 좋습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서울은 기회의 땅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서울 사람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촌사람이라고 부르지요. 세상에는 서울 사람과 촌사람만 있습니다. 서울 내에서는 강남 사람과 아닌 사람들로 나뉘지요. 주소지가 계급화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대학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을 뜻하죠."

Q. 경남 사람은 어떤 특성이 있는 거 같나요.

"무르지요. 단결력도 떨어집니다. 독기가 없어요. 그러니 만날 대구·경북이나 부산에 밀리죠. 호남에도 안되고요. 가장 강한 사람들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같아요. 그래서 이 두 축이 우리나라 정치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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