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그가 탈핵운동가로 변신한 까닭

9월 12일 저녁. 우리나라 지진 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두 차례 지진이 훑고 지나갔다. SNS에는 지진 소식과 함께 원자력발전소를 걱정하는 글이 넘쳐흘렀다. 특히 진앙이 경주 부근으로 알려지면서 부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고리, 경북 경주시에 있는 월성, 경북 울진에 있는 한울 등 동남권에 밀집한 원자력발전소 단지와 경주의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안위를 걱정하는 글이 많았다. 다행히 이번 지진이 최대 5.8에 그쳤지만, 만에 하나 고리원전 내진 설계인 6.5를 넘는 지진이었다면 정말 아찔할 상황이 벌어졌을 터였다.

그런데도 '역시'나 세월호 때처럼 컨트롤 타워는 없었다. 지진이 나고 8~9분 후에야 국민안전처 재난 문자가 가동했으며, 재난 방송도 한참 늦게야 시작됐다. 도대체가 뭘 믿고 언제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양산단층 근처에 원전을 집중시켰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국민은 분노했다.

세계적인 반핵 시민단체인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에서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를 맡고 있는 장다울(39) 씨를 만난 건 지진이 발생하기 거의 한 달 전이었다. 독특한 개인사와 한국 원전에 대한 얘기를 나눴지만, 기사를 쓰는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개인사보다는 원전 얘기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부친은 원자력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그는 탈핵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나고 두 달인가 석 달 만에 프랑스로 원자력 기술을 배우러 떠나셨어요. 전기·기계·토목·원자력 분야 과학자들이었는데, 개도국에서 선진국에 기술을 배우러 간 거죠. 지금도 한국을 모르는 지구인이 있겠지만, 당시에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2014년에 파리에서 전세계 그린피스 탈핵캠페이너들 회의가 열렸는데 내가 참석하게 됐어요.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참 마음이 미묘하더라고요."

그의 부친은 확고한 원자력발전 옹호자였다. 하루는 TV를 보던 부친이 욕을 했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굉장히 놀랐다고. 토론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여성이 나와서 원전을 비판하자 부친이 반응을 보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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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정성인 기자

"나중에 보니 그 여성분은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이었어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원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불리는 별명이 '악녀'였어요. 환경 운동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대중연설의 귀재'라고 불렸지만 말입니다."

그런 환경이 그가 지금 탈핵 운동을 하면서도 양측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토양이 됐을까?

"과거 영광 원전 주변에서 무뇌아가 매우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어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사실관계에서 불확실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이를 두고 원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환경 운동가들이 선동한 거라고 얘기하죠. 하지만 저는 당시 환경 운동 하시던 분들과 지역주민들을 이해해요. 당시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어려운 것인데 정부가 정보 공개를 전혀 하지 않았죠. 워낙 폐쇄적이었으니까요. 양쪽 진영 다 쌓인 게 많아요. 환경 운동하는 분들은 '원전 마피아'라고 욕하고, 원전 쪽에 일하는 분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동만 해댄다'고 하죠."

원전 쪽에도 '마피아'하고는 관련 없이 정말 양심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특히 공학을 연구하는 쪽에 그런 사람이 많은데 굉장히 순진한 측면이 있어 양측의 간극이 더 악화하기도 한다고 했다.

"사회운동하는 사람들하고 얘기 나누거나 한 게 기사화되고 이러면 그분들은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겁니다. 약간 호의적인 감정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아예 입을 닫아버립니다. 양측이 다 이해는 돼요. 수십 년간 서로 싸워왔기에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 그래서 어렵죠."

탈핵 운동 나선 계기는 지진

그는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국제평화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또 Masters course in Environmental Sciences, Policy and Management (MESPOM)에서 석사과정을 한 번 더 거쳤다. 헝가리의 중앙유럽대학,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 스웨덴의 룬드 대학, 그리스의 에게해 대학 이렇게 4개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석사프로그램이고 에라스무스 문더스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학위는 4곳에서 동시에 수여한다. 전공은 환경과학-정책-경영 프로그램인데 그는 환경 정책, 특히 에너지 정책 쪽으로 특화해서 공부하고 잠시 강원도청에 근무했던 경력도 있다.

이후 유엔본부 경제사회이사국 지속가능발전과(DSD) 산하의 유엔지역개발센터(UNCRD)에서 환경 분야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아시아 지역의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교통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EST in Asia)를 위해서 일했다. 동남아시아 10개국, 남아시아 8개국, 동아시아 4개국(한·중·일·몽골)의 교통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장·차관이나 국장 등 고위급 공무원을 초청해 EST Forum in Asia를 매년 개최하고 아시아 개도국들의 국가 EST 전략을 수립해주는 일이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지진이 왔을 당시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UNCRD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요. 후쿠시마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정말 충격이 컸습니다. 20대 초반부터 단계적 탈핵의 입장이었지만, 원전 안전 관련해서는 최고라는 일본에서, 제가 살고 있던 국가에서, 체르노빌 급의 7등급 사고가 나리라고는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고 이후 한 사회가 원전 사고로 어떠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면서 원전을 지속하는 것은 인류를 향한 범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UNCRD를 그만두고 국내에 들어와 민간 싱크탱크에서 일하다가 2013년부터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캠페이너 생활을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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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정성인 기자

'착한 정부'로는 탈핵 안 돼

그를 만난 것은 지난 8월 18일 부산 YWCA에서 있었던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 관련한 기자간담회가 끝나고였다. 이날 주제는 국민소송단을 모집해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건설허가 취소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린피스에서는 고리 원전단지는 현재 전 세계 188개 원전단지 중 최대 규모이며 원자로 밀집도도 가장 높다. 원전 30㎞ 인근에 380만 명이 살고 있고 경제 핵심시설 다수 분포했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있다는 점이 고리원전단지가 처한 특수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원안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위험에 대해 높아진 국민의 우려를 반영하지 않았는데, 법에 규정된 중대사고 영향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위법한 결정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기자 간담회 이후 따로 만난 장 캠페이너에게 이른바 '착한 정부'론에 대해 물었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면 원자력 정책도 바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지를 물었는데 역시나 부정적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약간 온도 차는 있었지만, 원전 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원전 정책이 바뀌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를 더 들어봤다. 이익 카르텔을 들었다. 우리나라 기업 중 원자로를 제조할 수 있는 곳은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 원전 건설 기술은 SK건설,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여기에는 한국 재벌이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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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정성인 기자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원전 확대정책을 펼치는 것은 원전으로 이득을 보는 산업계의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신고리 5·6호기 짓는데 예산이 8조 6000만 원입니다. 이 중 2조 3000억 원을 두산중공업이 원자로 주기기(가압기 증기발생기 냉각기)와 터빈 납품하면서 가져가죠. 1년에 원전 2개 지으면 2조, 4개 지으면 4조입니다. 기업 매출을 이처럼 손쉽게 올릴 구조가 또 어딨을까요? 이렇게 이득이 크니까 정부든 언론이든 학계든 로비를 하고 하는 거죠. 그런데 '착한 정부'가 들어선다고 바뀔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원전 정책에 관한 한 굉장히 민주적으로 평가받는 캐나다 사례를 들었다.

"캐나다는 원전 공청회를 2달 전에 공고하도록 되어있지만 이보다 훨씬 일찍 공고합니다. 2달 전에는 대부분의 자료가 공개되고요. 참가 대상도 우리나라처럼 반경 몇㎞ 이내 주민 식으로 제한하지 않고 국민 누구에게나 개방합니다. 공청회 기간도 몇 시간이 아니라 짧게는 4~5일에서 길게는 2~3주 동안 열리고 공청회에서 제기된 모든 질문에 대해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공청회 후에 답변을 다 합니다. 심지어 질문하고자 하는 국민이 원하면 전문가를 붙여줘서 이해하고 질문할 수 있게 돕고 그 전문가 자문 비용을 정부가 부담합니다. 이게 캐나다 정부가 민주적이라서, 착한 정부라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동료들하고 얘기해보면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더군요. 그동안 시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끊임없이 더 높은 투명성과 더 많은 시민참여를 요구해왔기 때문에 나아진 결과입니다."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 관심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선 전후로 환경 여성 인권 등등 여러 분야에서 요구가 많이 쏟아질 겁니다. 그중에서 에너지 정책이 우선순위가 되려면 시민이 에너지 정책에 대해 중요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역대 정권을 보면 항상 우선순위는 안보나 경제 이슈였죠. 그나마 지난 지방선거에서 원전 문제가 부산과 삼척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중요 이슈로 부각됐지만, 내년 대선에서 그 같은 요구가 또 터져 나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죠."

'위험성' 강조만으로는 한계

산업계의 '이익 카르텔'을 깨지 않고는 원전 우선 정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민에게는 원전이 위험한가 안전한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 70%가 원전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원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60~70% 된단 말입니다. 결국, 위험은 하지만 감수하는 마인드가 있는 거죠. 경제적인 이유, 에너지 안보적인 측면, 그리고 40년 동안 정부·학계·언론이 한목소리로 안전하다고 강조해온 영향도 있겠지요. 그렇게 형성된 마인드는 매우 공고해서 위험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원전이 경제적인 발전이라는 주장은 이제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라고 반박한다. 단순 발전단가는 싸겠지만(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직간접적인 보조금과 폐기물 처리비용, 폐로 비용, 사고 비용 등을 고려하면 훨씬 비싼 에너지라는 것이다.

이런 경제성 말고도,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했던 에너지 외교 한 축에는 원전 수출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려운 한국 경제를 뒷받침할 효자 산업이라는 주장이다. 장 캠페이너는 이것도 부정했다.

"2011년 이후 전 세계 신규 원전 발주 물량의 많은 부분을 러시아가 가져갔습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이 나머지를 챙겼고요. 앞으로도 한국이 수주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더구나 유럽 쪽에는 신규 발주가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원전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러시아와 정치경제적으로 이권이 걸린 게 많으니 거기에 원전을 붙여서 팝니다. 우리나라가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곳도 기껏해야 중동지역 정도인데, 이도 매우 불확실합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대기업의 수출로 인한 낙수효과가 크지도 않죠. 어떻게 이걸 신성장동력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보다는 산업계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조선업계에 위기가 닥쳤을 때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은 풍력산업부터 가장 먼저 정리했다. 이게 아쉽다는 것.

"미래를 이끌 혁신적인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이 그것입니다. 특히 조선업이 망해가고 있는데 조선산업은 풍력발전산업에 필요한 기술과 많이 겹칩니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조선업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 재빨리 풍력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도했어야 했습니다."

사례로 스웨덴을 들었다. 우리에게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일처럼 스웨덴 타워크레인이 해체돼 한국으로 실려 올 때, 스웨덴 국민은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 대신 다른 산업으로의 변화를 미리부터 준비하고 산업구조 전환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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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정성인 기자

동북아 탈핵은 한·중·일이 함께해야

그린피스뿐만 아니라 국내 환경·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서 탈핵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한데 중국이 원전 확대정책을 펼치고 있다. 더구나 중국 원전은 황해안에 밀집돼 있다. 만약 이곳에서 사고가 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나라가 받게 돼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났지만 우리나라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 남동부에 밀집된 고리·한울·월성 등의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일본 서쪽 지역은 후쿠시마 사고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중국 원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장 캠페이너는 그러나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중국 원전은 충분히 우려할만한 상황이죠. 절대적인 숫자가 많으니까요. 지난 5년 동안 새로 가동된 원전은 60~70%가 중국에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우리나라죠. 그나마 다행인 건 중국이 원전도 많이 짓지만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한 발전도 엄청나게 짓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중국은 발전의 대부분을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탈 석탄이 우선 과제라는 것. 그린피스도 머잖아 중국에서 탈핵 이슈를 제기할 것으로 보고, 그는 이미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에는 상당한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국민과 중앙정부 사이에서 중간역할, 완충 역할을 해줄 시민사회단체나 지방정부가 약합니다. 그래서 국민이 강력하게 반대하면 중앙정부도 이를 무시하기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이미 중국은 원전 못지않게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에도 굉장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석탄 이슈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면 친환경 발전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도 쌓여있을 테고, 중국 국민의 탈핵 요구 수준도 향상돼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희망적이라고 보는 거죠."

한·중·일이 함께 탈핵으로 가야 완전한 탈핵이지 한 국가만의 탈핵은 불완전한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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