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 26.8㎞

◇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 26.8㎞

오늘은 잠을 좀 자서 몸이 제법 가볍습니다. 새벽 6시에 알베르게 문을 열어준다고 해서 시간 맞춰 짐을 꾸려 나왔습니다. 벌써 문 열기를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여럿 나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제 사놓았던 하몬 (Jamon,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말리는 방식으로 만든 생햄, 스페인 전통 음식)을 곁들인 빵으로 아침을 먹었는데 여태 먹던 하몬보다 훨씬 맛이 있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빵에 가장 많이 곁들여 먹은 게 하몬인데 여태까지는 슈퍼에 포장해서 1~2유로(우리 돈 1200~2500원 사이)에 파는 걸 사 먹었답니다. 그런데 어제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 입구에 하몬을 얇게 썰어서 파는 가게가 있었어요. 아주 맛있어 보여서 사놨었거든요. 직접 잘라서 파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맛이 확연히 달랐어요. 아니, 이제 하몬의 맛에 길들여 진 걸까요? 아무튼, 거기다 요거트까지 먹고 나니 힘이 불끈 납니다.

어제 같이 걷던 스페인 여성 차로와 함께 출발했어요. 유서 깊은 레온 시내를 빠져나오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레온을 벗어나니 길옆에 움막같이 생긴 것이 많이 보였어요. 물어보니 이것은 와인 저장고라 하네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이 보였는데 스페인사람들이 와인을 많이 먹긴 하나 봐요.

조금 더 걸어 첫 번째 나온 바르(Bar)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어제 함께 걷던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네요. 스페인 장다리 아저씨 하우메, 네덜란드에서 온 데레사, 스웨덴 사람 샤롯데도 있네요. 무척 반가웠어요. 이젠 하도 자주 만나니 왠지 가족 같기도 합니다. 바르에서 모두 같이 출발합니다. 한참을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어요. 차로와 하우메는 오른쪽을 택했고 데레사와 샤롯데는 왼쪽을 택해 걷기로 했어요. (안내서들은 대체로 왼쪽 길을 권한다./편집자 주) 저는 차로와 함께 걸으려고 오른쪽을 선택합니다. 데레사와 샤롯데와 헤어져서 길을 갔습니다. 걷다 보니 이 길은 찻길과 함께 가는 길이었어요. 내일 목적지인 아스트로가까지는 좀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찻길과 함께 가니 산만하기도 하고 해서 좀 후회도 되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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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들을 위해 자두와 사탕, 비스킷, 물을 내놓은 집. / 박미희

조그만 동네를 지나는데 집 앞에 순례자를 위해 자두와 사탕과 비스킷, 물을 내놓은 분이 있네요. 자두도 하나 먹고 잠시 쉬면서 주인아저씨와 사진도 찍었어요. 길은 계속 찻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로의 빠름과 순례길의 느림이 함께 하는 길이네요. 하지만, 빠름이 최선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빠름이 전혀 부럽지 않았어요. 어디서부터 흘러 왔는지 길옆의 수로에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어요. 잘 정비해 놓은 수로가 맘에 듭니다. 날씨가 더우니 물속에 쏙 들어가고 싶은 충동도 느꼈습니다.

차로와 같이 걸으면서 모처럼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자기는 남편과 이혼을 해서 딸과 살고 있다고 속 얘기까지 털어놓네요. 둘 다 영어를 잘 못하니 오히려 완전 영어권 사람들보다 이야기가 더 잘 통하는 게(?) 재밌었습니다. 스페인사람들도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하는데 서로 아는 단어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마을 입구입니다. 곧 알베르게에 도착했어요. 아까 잠깐 바르에서 만났던 한국 아가씨가 먼저 도착해 있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이름이 주선이라는 친구였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동안 먼저 가버렸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한국에서 혼자 왔는데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오늘이 첫날인 거죠. 씻고 함께 잠깐 걸으며 내가 아는 정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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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마르틴 델 카미노 마을을 알리는 안내판. / 박미희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왜 이리 한국 사람이 많은지 물어보는 외국인이 많아요. 산티아고와 관련된 많은 책이 나와 있다 보니 산티아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대중매체 등에서 소개를 많이 한 것도 있겠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여행 수준이 달라진 거라고 생각해요. 단체로 깃발 들고 다니는 여행에서 벗어나 이젠 스스로 체험하고 쉬기도 하고 생각도 많이 하는 여행을 추구하게 돼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한국인이 많이 보이면 오히려 자랑스럽더라고요. 물론 끼리끼리만 어울리고 주방을 다 차지하고 음식을 해서 (한국 음식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거로 보아 '동양인이라서 눈에 더 띠어서 그렇게 보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 보았어요.

혼자 동네를 거닙니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는 아주 작은 마을이네요. 마당에 꽃도 예쁘게 가꾸었고 골목에 꽃을 심을 줄 아는 여유가 보기 좋았죠. 골목골목 다니며 둘러보고 동네 놀이터에 오니 젊은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와 놀고 있었어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이 참 부럽고 그들이 더욱 예뻐 보이네요.

벤치에 앉아 쉬다가 숙소로 오니 차로가 저녁을 함께해 먹자네요. 콜~! 주선이와 이탈리아 친구 안드레아, 스페인 친구들까지 7명이 스파게티를 해먹기로 했어요. 숙소에 작은 매점이 있어 같이 재료를 사고 함께 채소를 다듬고 조리하고, 남자들은 설거지를 하고 화기애애하게 저녁을 먹었어요. 차로와 비센테는 전에 자주 만나던 스페인 순례자 삼인방의 일부고, 하우메, 착한 청년 호세와 호르헤도 각자 혼자 왔는데 길을 걷다가 자주 만나서 친해진 이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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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마르틴 델 카미노 마을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장면. / 박미희

저녁을 먹고 마당에서 쉬면서 내일 어디까지 걸을지 고민을 하는데 계산이 잘 나오지를 않아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일정을 맞추려고 매일 하는 고민이에요. 결국, 내일 아스트로가까지만 걷기로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산 마르틴에서 아스트로가까지 20㎞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합니다. 주선이와 차로, 비센테, 하우메도 같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어제 걸을 때부터 간간이 발이 아파 천천히 걷던 차로가 영 잘 못 걷습니다. 발뒤꿈치가 아프다며 자꾸 먼저 가라고 하네요. 맘은 안 편하지만 같이 걷다가는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습니다. 처음엔 어제처럼 찻길을 따라 걷는 길이 계속되더니 날이 밝아지며 스페인의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동트는 풍경과 함께 펼쳐지는 나무들의 멋진 사열식! 걷는 사람만이 느긋하게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13세기에 만들어진, '명예의 통행로'라 불리는 오르비고 다리가 보이고 다리 건너편에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마일이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다리에서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다리 건너자마자 있는 바르에 들러 오르비고 다리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데, 넘치는 이 행복감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이곳도 다음에 걷게 되면 꼭 묵어가고 싶은 동네입니다. 자주 보는 이탈리아 순례자 3인방도 어디서 묵고 걸어왔는지 바르 앞에서 만나 반가움을 나누었습니다. 어제도 아침에도 바르에서는 만났었는데 이 친구들과 알베르게 인연은 별로 없나 봅니다.

주선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걸었습니다. 주선이는 어제 처음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아마 피곤할 거거든요. 차로는 잘 오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을 끝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을 선택해 갔더니 또 큰 찻길과 함께 가는 길이네요. 어제, 오늘 계속 찻길과 함께하네요. 피하고 싶은 최악의 길을 선택해서 걷게 되었지만 정보도 부족했고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거니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죠?

'산토 토리비오 돌십자가'가 있고 그 너머로 아스트로가(Astorga) 마을이 훤히 보이는 언덕에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아스트로가에 다 와 가는데 철길이 있어요. 건너는 철육교가 어찌나 복잡하고 긴지 무거운 배낭을 진 순례자들을 힘들게 하네요. 큰 순례자 상이 앞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오늘 거리가 짧아서 일찍 도착했어요.

숙소에 들어가니 한국인 한 명이 인사는 하지 않고 '아이고 한국 사람 진짜 많다'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휙 나가요. '헐~! 그럼 당신이 오지 말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전 한국 사람 보면 반갑던데 뜻밖에 한국인한테 한국인임을 알리지 않고 친절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냥 다른 나라 사람한테 대하듯 만 해도 될 텐데, 무슨 피해라도 많이 입은 건지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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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만들어진 오르비고 다리에서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한 박미희 씨. / 박미희

빨래 널고 들어와 주선이랑 동네구경 나가려는데 맞은편 침대에 한 번씩 마주쳤던 사람에게 '시내구경 가는데 같이 갈까'하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납니다. 폴란드에서 혼자 왔다는 니나! 니나와는 이렇게 인연이 되었어요. 가우디가 지었다는,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이 된 팔라시오 에피스코팔(Palacio Episcopal, 주교관)로 먼저 갔어요. 가우디가 지은 건물을 실물로 보기는 처음인데 세심한 설계와 아름다움에 놀랐답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등 감탄을 하며 둘러보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프랭크와 피터 부자예요. 반가움에 인사를 하고 먼저 나오는데 건축가인 프랭크가 보는 가우디의 건물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여기저기 성당도 둘러보고 오다가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초콜릿도 사 먹었지요. 니나는 허리에 매는 가방을 산다고 가게 문 열기를 기다린다고 해서 우리 먼저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주방도 있고 한국인도 있으니 당연히 밥을 해먹어야겠죠. 메뉴는 아시죠? 하하. 라면 수프 감자국, 달걀말이, 샐러드, 끝! 밥은 당연히 많이 했어요. 밥을 먹는데 아까 한국인 많이 왔다는 말을 한 사람이 왔어요. 함께 먹자고 했더니 사양 안 하고 맛있게 먹더라고요. '거봐~! 한국인 많으니 좋잖아~ 한국 음식도 먹고 한국인들 여행수준이 이 정도라고 세계사람들 한데 알리는 계기도 되고~' 이렇게 속으로만 생각하고 내색은 하지 않았어요. 식사하고 돌아오니 차로가 와 있었어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픈 발로 이곳까지 온 거예요. 발이 많이 아픈데 그래도 앞으로 계속 걸을 거라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저녁에 성당에 미사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미사는 아니고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식이었어요. 노란 화살표에 각 나라말로 '나는 길입니다' 라고 쓴 것을 봉사자들이 줍니다. 내가 길이라니요. 엄청나게 사명감이 느껴지는 글귀였어요. 어떻게 나의 길을 닦아야 할지 많이 묵상하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축복의 말을 적은 카드도 주었는데 그림이 아주 좋았어요. 걷는 두 사람 사이에 예수님이 함께하는 그림인데 내가 걷는 길에 누군가 함께 해주신다 생각하니 너무 든든했고 앞으로 더 두려움이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축복을 듬뿍 받고 나와 광장으로 갔어요. 아까 시내구경 할 때 보니 공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바삐 갔는데도 공연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요. 그래도 경쾌한 음악을 몇 곡 더 연주해 주어서 함께 춤도 추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이탈리아 삼인방을 만났어요. 오늘은 모처럼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는데 알베르게가 커서 못 봤던 거예요. 숙소 앞에서 사진 찍고 들어와 차로 발을 마사지해 주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간 먹는 약도 주었고요. 내일은 차로의 발이 안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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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주교관 건물.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으로 쓰인다. / 박미희

◇아스트로가에서 폰세바돈까지 27.2㎞

새벽에 출발할 때 오늘은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출발했어요. 이 구간에서 얼마 전 실종사건이 일어났었기 때문이에요. 저를 포함해 한국인 세 명, 스페인인 친구들 여섯 명, 스웨덴의 샤롯데, 카리나, 폴란드 니나까지 한 무리가 출발합니다. 빌바오에서 대학에 다닌다는 몰카와 알베르토가 있으니 더욱 든든하네요. 차로는 어제 마사지와 약으론 효과가 없었나 봐요. 병원에 갔다가 출발하기로 하고 우리는 하우메가 들려주는 카미노송, '사운드 오프 사이런스'를 함께 부르며 먼저 출발했어요.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까지만 걸으려고 하다가 다들 폰세바돈(Foncebadon)까지 간다고 해서 저도 그러려고요.

친구들이 많으니 또 다른 재미있더라고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웃으며 걸으니 힘든 것도 덜하네요. 하지만 걷다 보면 어느새 뿔뿔이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러면서 길을 갑니다. 그래도 니나와 주선이는 이탈하지 않고 계속 저와 함께 걸었지요. 찻길을 따라 걷는데 대형버스가 한 대 서는 거예요. 그러더니 거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서 걷기 시작하는 겁니다. 속으로 '아이구 큰일 났구나' 늦으면 오늘 숙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삐 걷기 시작했습니다. 에구~! 이들 때문에 카미노길이 복잡해지네요.

라바날 델 카미노를 지나자 계속 오르막입니다. 거기다 돌멩이가 너무 많아서 발은 아픈데 그래도 생각보다 걸을만하네요. 그리고 산으로 올라갈수록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고단함이 덜 한 것 같기도 해요. 주선이가 힘들어해서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먼저 걷기 시작했습니다. 폰세바돈은 1400고지에 있는 여태 묵은 마을 중 가장 작은 마을이에요. 누구는 손바닥만 하다고 하기도 하고 지리산의 노고단 같다고 표현도 하네요. 이곳은 찻길로도 올 수가 있는 모양인지 버스가 한 대 서 있다가 아까 내려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 사람들은 오늘 하루만 걸으러 왔던 사람들이었어요.

이곳은 민가는 없고 알베르게와 바르겸 작은 슈퍼만 있는 곳이에요. 작은 알베르게를 지나니 제가 가려는 알베르게가 나옵니다. 걷기 어려울 정도로 흙이 심하게 풀풀 날려요. 얼른 배낭을 내려놓고 주선이를 마중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왔는지 얼마 안 가니 오는 거예요. 역시 젊음이 좋긴 하네요. 그런데 알베르게 또한 묵었던 곳 중 가장 작은 곳이에요. 22명이 정원, 그래서 금방 차버리네요. 그래도 같이 걷던 스페인 멤버는 거의 이곳의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어요. 차로만 빼고요.

이곳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입니다. 저녁과 아침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이 알베르게에는 미겔이라는 유쾌한 호스피딸레로(자원봉사자)가 한 분 있었는데 이분이 음식도 해 주고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미겔이 우리를 데리고 문을 열고 보여준 곳에는 정말 작은 성당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성당도 있구나 싶어 신기했습니다. 마을도 작고 알베르게도 작고 성당도 작지만 감동은 큰 마을이에요.

폴란드 친구 니나의 발에 물집이 생겨 힘들어했습니다. 이 발로 내색 한 번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걷다니 내가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서툰 솜씨지만 니나의 발을 치료해 주고 나니 니나가 멜론을 사 와서 감사의 표시를 하네요. 알베르게 입구에 앉아 이야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있는데 프랭크가 지나갑니다. 프랭크도 이 동네에 묵었나 봐요. 그림을 그리려고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었나 봐요. 저런 재능을 가진 게 참 부러웠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네요.

미겔 아저씨가 파에야 등으로 스페인 집 밥을 차리셨는데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했는지 몇 개 아는 스페인어를 다 끄집어내고 모르는 것은 물어 가면서 계속 칭찬을 해 주었어요. 기분이 좋으셨나 봐요. 길쭉한 주둥이로 되어 있는 유리 주전자(포도주의 풍미를 더 해 준다는 디캔터와는 다르게 생김)에 와인을 담아 가지고 오더니 긴 주둥이로 와인 먹는 시범을 보이셨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해 보라고 합니다. 옆에서 스페인 친구들이 방법을 가르쳐 주며 해 보래요. 그래서 제가 서툰 솜씨지만 한번 해 보았더니 모두 박수를 쳐주며 즐거워합니다. 덕분에 한껏 고조된 분위기에서 행복한 저녁 식사를 했답니다. 물론 설거지는 우리가 했고요.

식사 후 밖에 나가 쉬고 있는데 스페인 친구들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저 밑 알베르게에 차로가 와 있다고 함께 가자더군요. 얼른 가보았더니 차로는 나를 보자마자 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아스토르가의 병원에서 더는 걸으면 절대 안 된다는 진단이 나와서 일부러 우리를 보고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타고 온 거였어요. 여태 어떻게 걸어왔는데 몸이 아파 못 걷게 되다니, 그 슬픔이 고스란히 제게 전해져서 너무 맘이 아파 함께 울었답니다. 차로는 여기서 자고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론센스 바에스부터 만나기 시작해 자주 만나며 한동안 의지하며 걸었는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해 마을의 유일한 바르겸 가게로 가보았어요. 마침 예쁜 팔찌를 팔기에 하나 사고 한국에서 온 지원이에게 부탁해 메모도 하나 써서 차로가 묵는 알베르게로 다시 찾아갔죠. 한국에서 준비해 온 태극기 배지와 함께 전해 주었어요. 차로는 감동과 슬픔이 겹쳐 또 울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아침에 함께 걷던 샤롯데가 산밑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어요.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 함께 앉아 있는데 누가 저를 부릅니다. 걸으며 자주 만났던 러시아에서 온 부자인데 이곳에 묵는가 봐요. 아주 반가워 인사를 하는데 아들 이반이 종이에 싼 것을 선물이라며 주었습니다. 메모도 들어 있더군요. 몇 번을 만났어도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저를 만나면 주려고 준비를 했대요. 감동이었어요. 아버지 안드레이는 결혼 전에 부산에도 와본 적이 있다며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진 듯 보였습니다. 이 멀리 타국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반가워해 주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눈물이 날 만큼 고맙고도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만감이 교차하는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차로는 나중에 다시 이곳에서부터 걸어 순례길을 완주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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