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절실합니다"

각 학교마다 운동부가 있다. 사실 운동부 학생들은 수업도 적게 하고 수업시간에도 잠을 자는 시간이 많다. 기자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골프부 학생은 근 반년 만에 학교에 출석하기도 했었다. 실정이 이렇기 때문에 운동부 학생에게 공부를 시키거나 책을 읽게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운동부 학생들을 데리고 어떻게라도 책을 읽게 하고 각종 독후 활동과 문학기행을 하는 교사가 있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바쁜 학생들을 붙잡고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지 의아했다.

"책 내음이 좋아 사서가 됐다"

진해 출신인 박창선(36) 창원용호고등학교 도서관 사서교사는 온라인에서는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는 중이었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일부 기사들이 뜨고 블로그 포스팅도 상당수 있었다. 주로 야구와 도서관에 대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평이 궁금해 '양산 원동중학교 야구부 신화'를 일군 최윤현 합천 야로중학교 교장에게 연락했다. 최 교장은 "박창선 선생님은 정말 열정적인 분입니다. 야구부 학생들에게 책도 읽히고 온갖 것을 살뜰하게 챙겨줍니다. 박 선생님이 계신 학교 뿐 아니라 타 학교 야구부도 꼼꼼하게 챙겨준다고 들었습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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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책자를 설명하고 있는 박창선 교사. / 임종금 기자

그가 일하고 있는 창원용호고등학교 도서관으로 들어서자 미리 인터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굉장히 보기 좋게 몇몇 책자와 자료들이 준비돼 있었다. 매우 세심한 사람 같았다.

Q.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으셨습니까?

"네. 도서관 문 열면 특유의 그 책 내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참 좋았습니다. 사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가족 모두 책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학부모 단체 활동을 하셨는데 다른 분은 행사 때 음료수나 빵을 돌리지 않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책을 돌리면서 같이 보라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게 사실 좀 부끄럽기도 했었습니다. 집 앞에 경화서점이라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자주 가서 책을 보고 사고 그랬습니다."

Q. 어렸을 때 감명 받은 책이 무엇이 있나요?

"감명 깊은 책이 많은데, 지금 딱 생각나는 책이 이혜인 수녀님이 쓴 <꽃삽>이라는 책입니다. 제가 사춘기 때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이 진해시립도서관입니다. 그때 차선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책 친구입니다. 서로 책을 돌려 읽고 편지도 쓰고 했습니다. 원래 소설 보다는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는 인문학 분야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설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이 참 좋습니다."

Q. 사서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크게 색다를 건 없었습니다. 대학원도 문헌정보학과 나왔고. 다만 저는 교생 실습을 해군사관학교 도서관(학술정보관)으로 갔습니다. 출근해서 싸 가지고 간 도시락으로 밥을 먹고 퇴근했습니다. 출퇴근을 하니 해군생도들이 '박 방위'라고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때 알게 된 생도 중 지금도 일부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야구에 '야'자도 모르던 사람

그는 2009년 김해내동중학교 사서교사로 발령받는다.

Q. 온라인에 검색해보니 김해내동중학교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던데 계기가 뭔가요?

"특별한 계기라고 할 건 없습니다만 딱 보면 눈에 띕니다. 야구부 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닙니다. 또 혼자 안 오고 한꺼번에 몰려서 도서관에 옵니다. 그럼 이 학생들을 위해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야구부 코너라고 야구 관련 도서를 모아놓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시중에 있는 야구 관련 도서는 내가 다 모아보겠다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야구부 박종호 감독님께서 참 고마워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박종호 감독님도 인성이나 학생지도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편이었습니다. 야구부 학생들이 도서관을 편하게 생각하자 당시 정병식 교장 선생님께서 야구부만 따로 성취도 평가시험 공부를 시켰습니다. 물론 성적이 잘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동찬이라는 친구는 영어 100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친해지다 보니 2012년 NC구단이 창단했을 때 단체 티켓을 구매해서 같이 보러 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비공식 매니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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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내동중 야구부 독서캠프. / 박창선

Q. 사실상 야구부 매니저가 되셨다고 하는데, 원래부터 야구를 좋아하셨나요?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2010년에 처음으로 야구장을 가봤고, 부끄럽지만 1루 베이스 이름을 몰라서 저 네모난 밟고 오는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야구부 학생들과 친해지면서 야구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호서대학교 야구학과에 입학해서 한 달간 다녀보기도 했습니다."

Q. 호서대학교라면 충청이나 호남에 있는 대학교 아닙니까?

"네, 충남 천안에 있고 우리나라 유일 야구학과가 있는 대학입니다. 주말이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빼서 수업을 들으려 했는데 제가 차도 없고 도저히 힘들어서 한 달 만에 포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살면서 야구에 이렇게 미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Q. 야구부 매니저로서 하신 일들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게 너무 많아서 막상 정리하려니 힘드네요. 앞서 말한 대로 학습지도도 하고 시합이 있을 때는 참석해서 사진도 찍고 챙겨줄 게 있으면 챙기고, 시합 자료나 사진 자료를 모아서 책자로 만들기도 하고. 또 다른 학교 선수들과도 교류하면서 사진 찍어주고 챙기고 했습니다. 독서활동으로 김해에 정호스님 초청 강연회가 열린다기에 야구부 학생들을 데리고 갔고, 통영으로 야구부 학생들과 학부모를 모아 문학기행을 갔습니다. 음악 수행평가를 김해문화의전당에 가서 뮤지컬을 보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카페도 만들고, 블로그도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어서 경기한 사진들 올리고 서로 토론하고 그랬습니다."

그는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나면 책자로 만드는 엄청난 '버릇'이 있었다. 책자를 보면서 사진을 일일이 설명했다.

Q. 혹시 김해내동중학교 야구부 학생들 중에 특히 기억나는 친구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이번에 NC다이노스 신인 1차 지명을 받은 김태현 선수가 떠오르네요. 학교에 현수막이 붙었는데 그걸 보니 왈칵 눈물이 났었습니다. 사실 중학교 선수라도 저보다는 작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쪼그마한 선수들이 커서 듬직한 프로선수가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날 때도 있습니다. 김태현과 친하게 지낸 선수로 나종덕이가 있는데요. 사실 나종덕은 다른 학교 선수입니다. 이번에 청소년대표로 나종덕이가 뽑혀서 대만에서 열리는 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제가 바빠서 못 가는데도 나종덕이 '박창선 선생님은 꼭 가셔야 합니다'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만큼 서로 친했습니다. 또 기억나는 친구로는 야구부 주장이었던 임채화가 있습니다. 지금은 군대를 전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친구랑 친해서 서로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선물도 주고 받고."

Q. 야구부 학생들 중에서 몇 명이나 프로에 들어갑니까?

"정확한 숫자는 제가 세어 보지 않았지만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김해내동중학교에서 제가 초기에 맡았던 학생들 가운데 1명 빼고는 모두 야구를 그만뒀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야구부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 야구가 참 힘들다는 말이 많습니다. 사실 야구를 그만뒀을 때 인생설계를 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만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방황하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만의 새로운 꿈을 찾고 최소한 자기소개서 정도는 스스로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Q. 야구하면서 공부도 하는 학생이 아예 없습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굉장히 적습니다. 이정호라고 서울 덕수고등학교 야구 선수였는데 자력으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사례는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례입니다."

Q. 그럼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기소개서라도 쓸 수 있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건 정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단 NC다이노스 선수들을 대상으로 독서수업을 해 보는 것입니다. 프로선수들이 느끼고 움직여야 야구계 전반으로 확산이 되고 정책으로 정착됩니다."

"운동 선수 대상 독서지도 프로그램 만들 것"

그는 김해내동중학교에서 야구부 학생들과 활발한 활동을 하다 2014년 창원용호고등학교로 발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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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고등학교 도서부. / 임종금 기자

Q. 창원용호고등학교에서도 운동부가 있나요?

"네, 태권도부가 있습니다."

Q. 고등학교는 아무래도 중학교와 프로그램이 다를 것 같은데요.

"그래서 약간 다르게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운동부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겁니다. 멘토-멘티 수업 전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준비해 온 것을 모아 출력해서 세팅을 다 해 놓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1:1로 수업합니다. 저는 목표로 삼았던 게 제발 시험 시간에 찍고 자지 말자. 풀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겁니다. 사실 태권도부 같은 경우에는 꼭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말고도 길이 다양합니다. 군인도 있고 경찰행정도 있고 지도자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Q. 운동부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뭐가 있습니까?

"금메달 딴 진종오 선수가 인터뷰에서 혜민 스님 책 읽고 마음을 진정시켰다고 하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힘들 때 방황하지 말고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합니다. 예를 들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이나 김찬호 선생의 <모멸감> 같은 겁니다. 물론 학생들은 운동 선수가 주인공인 책들을 좋아합니다. 또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모음집 <나무>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Q. 사실 선생님이 계신 곳은 운동부 학생을 대상으로 이렇게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합니까?

"글쎄요. 저한테 도서관 운영에 대한 문의는 종종 들어옵니다. 다른 학교 국어 선생님인데 도서관 사서 업무를 맡은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서 답해 주곤 했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면 저라도 나서서 이런 것을 정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연수나 강의 같은 건 무료로 다 해드릴 자신 있습니다. 또 마산고등학교에 야구부나 농구부 등 운동부 학생이 많은데 이런 큰 학교에서 일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Q. 경남에 운동부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습니다. 경남엔 중·고등학교 11개교에 야구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야구 말고도 축구, 농구, 배구, 씨름, 태권도, 유도, 육상 등 종목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중·고등학생을 합치면 경남에만 천 명은 족히 넘을 겁니다. 이 많은 학생들이 그저 운동만 바라보고 살고 있는데,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새 진로를 계획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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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선 교사. / 임종금 기자

어찌 보면 원론적인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운동부에만 치우쳐 인터뷰가 진행됐지만, 사실 박창선 교사는 도서관 전반에 대한 운영능력 또한 뛰어나 올해 교육감 표창도 받았다. 일반교사가 책을 사 책 첫 페이지에 좋은 글귀를 적어서 학생에게 추첨해서 주는 행사, 일반교사가 책 대출반납 체험을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제동행'을 원칙으로 했다. 그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진행하는 열혈 교사였다. 아직 젊은 교사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지만, 앞으로도 그의 열정이 계속 불타오를 경우 몇 년 안에 그가 주창하던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경남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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