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원에서 아침재를 넘어 웅석계곡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비 맞으며 걷는 둘레길의 또 다른 매력도 있을 터. 비옷과 배낭 커버를 챙기면서 시 한 편도 미리 골랐다. 비긋는 숲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길동무들과 함께 가질 수 있는 이상희 시인의 '비가 오면'이란 시다.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 '비가 오면'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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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걸음단.

비 오는 둘레길을 걸을 때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기 딱 좋다. 이번 초록걸음은 그 출발점이 산청 성심원이라 더더욱 그랬다. 한때는 육지 속의 고독한 섬이었던 한센인 마을 성심원, 이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세상과 교류를 하고 있고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 상설 기도단이 있는 그 성심원에서 비를 맞으며 걸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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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 상설 기도단이 있는 성심원. / 초록걸음단

성심원은 지리산 동쪽 끝자락 산청 웅석봉 아래 경호강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1959년 6월 프란치스코 수도회 작은 형제회 소속으로 꼬스탄죠 쥬뽀니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당시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한센인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보호와 치료에 헌신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고 복지 증진을 통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함이었다. 현재 성심원은 한센인들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 연계한 열린 시설로 만들기 위해 더 이상 육지 속의 고독한 섬이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곳으로 새롭게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성심원 안에 잇는 둘레길 게스트 하우스 '쉬는 발걸음'과 지리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여러 설치 미술 작품들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겨울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 풍현마을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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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림에도 밝은 아이들. / 초록걸음단

성심원 뒤쪽에 우뚝 솟은 웅석봉은 산청읍의 배경이 되어주는 해발 1099m의 높은 봉우리로 지리산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웅석봉의 북사면은 가파른 경사면을 이루고 있어 지리산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달뜨기 능선으로도 유명하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서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것이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달뜨기는 그 옛날 여순사건의 이현상 부대가 처음으로 들어섰던 지리산의 초입으로, 남부군은 기나진 여로를 마치고 종착지인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제2병단 이래 3년여의 그 멀고 험난했던 길이 이제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라고 묘사되어 있는 그 달뜨기 능선이 있는 웅석봉이다.

성심원을 지나 웅석봉 산허리를 걸으며 내려다보이는 경호강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생초에서 엄천강과 합류, 남쪽으로 흐르는데 길이는 약 42km 정도에 이른다. 강폭이 비교적 넓고 모래톱이 발달되었고 하상 구배가 커서 유속이 빠른 편이라 래프팅의 명소가 되었다. 신안면 원지에서 덕천강과 양천강을 만나 진양호로 유입되어 남강을 지나 낙동강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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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내내 내리는 비에 흠뻑 젖었지만 여름 숲을 만낄할 수 있었다. / 초록걸음단

아침재를 넘어 웅석계곡으로 향하는 길,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쉼 없이 이어지고 길섶에 핀 노란 원추리는 한자 이름 망우초(忘憂草)처럼 우리들의 걱정을 말끔히 잊게 해주었다. 아침재는 성심원에서 어천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아침 햇살이 떠올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를 오르는 길가에는 지리산 깃대종인 히어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른 봄 노란 꽃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웅석계곡은 잘 알려지지 않아 전혀 오염되지 않은 계곡으로 여름철 한적한 피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 웅석계곡 물은 어천계곡을 지나 경호강으로 흘러든다. 계속 쏟아지는 비 때문에 웅석계곡 옆에 터를 잡고 귀농하신 분 댁에 어렵사리 부탁을 드려 비를 피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맘씨 좋은 부부는 우리 길동무들에게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줬을 뿐 아니라 손수 맛난 파전을 요리해서 술까지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둘레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훈훈한 인심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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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을 기약하며 7월을 마무리하는 초록걸음. / 초록걸음단

주인장의 후한 대접으로 맛난 점심을 먹고는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골골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 들으며 종착지인 어천마을에 무사히 도착했다. 걷는 내내 내린 비에 흘린 땀과 함께 속옷까지 흠뻑 젖었지만 숲의 기운을 차분하게 느끼고 또 마음속 저 깊은 바닥까지 가라앉기에 딱 좋았던 한여름의 초록걸음이었다. 젖은 몸과 마음은 어천계곡 그 맑은 물에 말끔히 씻어내며 다음번에 걸을 '지리산 옛길(서산대사길)'에서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는 비와 함께 했던 7월의 초록걸음을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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