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정겨운 이웃을 만나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이 적지 않다. 바로 블로그 이웃이다. 대부분은 글을 통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서 형님 동생 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다.

내 블로그에 모터사이클과 사진 이야기가 많다 보니 모터사이클 블로거 친구가 많다. 그중 '곰패밀리'라는 작은 모임이 있다. 모임 회원은 주로 서울, 경기, 충청권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분들이다. 연배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있고 더 젊은 분들도 있다. 직업도 다양하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에서 은퇴하고 공군사관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분도 있고, 기업 경영자이거나 임원인 분도 있고, 의사도 있고, 공직자도 있고,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도 있다. 블로그를 통해 서로 알게 되고 한두 번 실제로 만나서 같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도 다니고 하다 보니 작은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모임에 이름을 붙인 것이 '곰패밀리'다.

 

반가운 얼굴들

1년에 한두 번씩 곰패밀리와 만난다. 만나는 장소는 지리산이다. 지리산에서 만나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다. 다만 북쪽 라이더들이 혼자서는 지리산까지 올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남북(?) 연합투어 때 장소를 지리산으로 정하면 자연스럽게 지리산을 여행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북 팀이 만날 때는 지리산 쪽으로 자주 라이딩을 하는 내가 안내를 하게 된다.

매년 가을에 이런 모임을 해왔었는데 올해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휴가 기간에 작은 모임을 했었다. 이번 남북 연합투어에는 서울 경기 충청에서 다섯 분, 제주도에서도 한 분이 참여했다. 제주도에서 오신 분은 원래 서울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제주도로 이주한 분이다.

만나기로 한 약속한 장소는 지리산 정령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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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성삼휴게소 전망. / 조재영 기자

 

아침을 챙겨 먹고 10시쯤 지리산으로 출발하는데 아파트에서 도로로 나서자 벌써부터 열기가 후끈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자켓을 입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약속장소에 늦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달렸다. 산청에서 주유를 한 번 하느라 잠시 멈춰 섰을 뿐이다. 3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산청군 생초면에서 함양군 유림면 쪽으로 빠진다. 60번 국도로 갈아타고 유림면, 휴천면, 마천면을 지난다. 휴천면쯤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지리산의 품에 든다. 속도를 낮춘다. 도로가 왕복 2차로로 좁고 꼬불하기도 하지만 산과 강을 눈과 몸으로 즐기면서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놀기 좋은 계곡 주변은 쉴 곳을 찾아온 차들이 밀려있다. 하지만 그 구간만 지나면 길은 시원하게 열려있다. 달궁을 지나 꼬부랑길을 타고 정령치로 오른다. 정령치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전에 도착했다는 곰패밀리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헬멧과 장갑을 벗기 무섭게 악수를 하기도 하고 서로 주먹을 맞대보기도 한다. 1년만에 보는 얼굴도 있고 몇 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다. 참 반가운 얼굴들이다.

맛없는 식사

정령치 휴게소는 전망이 좋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쉴 만한 그늘이 거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서둘러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성삼재를 거쳐 전남 구례나 경남 하동쯤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회남재를 넘기로 했다. 맨 앞에서 내가 길잡이를 하기로 했다. 정령치를 출발한 일행은 금세 성삼재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의 계획은 성삼재 휴게소를 지나가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점심 식사를 할 식당을 미리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성삼재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성삼재 휴게소로 들어갔다.

산채비빔밥과 만두를 주문했다. 식당 밖 전망대는 산 아래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 때문에 시원했는데, 식당 안은 통유리로 막혀있는 데다 에어컨도 켜지 않아 후텁지근했다. 더운 탓에 입맛이 없었던 것인지 산채비빔밥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1만 원짜리 비빔밥이었다. 맛은 둘째 치고 그 더운 날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경 보호 등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이라도 내놓던지…. 계획대로 구례까지 가서 먹을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또 곰패밀리들에겐 좀 미안했지만 한 끼 맛없는 식사를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일행들에게 맛없는 식사 대신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성삼재에서 구례를 거쳐 하동 악양까지 천천히 달렸다. 앞에 차들이 밀려있어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악양면 19번 국도에서 최참판댁 쪽으로 빠지는 곳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뒤따라온 이들은 졸리는 것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모두 미리 싸온 얼음물로 정신을 차렸다. 회남재를 넘으려면 비포장 임도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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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먼길을 둘러온 일행이 청학동 삼성궁 주차장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 조재영 기자

 

나와 다섯 명은 회남재를 넘어가기로 했고, 임도 보다는 일반 도로를 타고 가겠다는 한 분은 따로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합류지점으로 찾아오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청학동 삼성궁 주차장이었다. 회남재에 오르면 갈림길이 있는데 한쪽은 하동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한쪽은 삼성궁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최강 모터사이클

악양~회남재~삼성궁 구간은 10km가 넘는데 악양~회남재까지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회남재~삼성궁 주차장 구간 7km는 일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대부분 비포장 길이다. 도로 폭은 승용차나 1t 트럭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악양에서 회남재까지는 단숨에 올랐다. 통행 차량이 거의 없는 구간이기 때문에 와인딩을 하며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회남재 정상에는 회남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회남정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다들 한바탕 웃었다. 우편 집배용으로 많이 쓰이는 모델인 110cc 언더본 스타일의 소형 모터사이클이 떡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산 아랫마을 노인이 타고 온 모터사이클이었다. 우리가 타고 온 모터사이클은 모두 1000cc가 넘는데 그 작은 모터사이클이 그곳에 있는 걸 보고는 우리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다들 입을 모았다. 최강 모터사이클은 수천 만 원씩 하는 대형 모터사이클이 아니라 바로 저 작은 모터사이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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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남재 정상에 있는 회남정. 정자 앞에 산 아래 마을 주민이 타고 올라온 110cc 모터사이클. / 조재영 기자

 

나도 한때 그 모델 모터사이클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소유한 모터사이클이 두 대여서 자주 타지 못해 그 모델을 지인에게 팔았었다.

회남정에서 잠시 쉰 우리는 곧 출발했다. 지금부터는 비포장 길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길 밖으로 튕겨 나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긴장해야 하는 구간이다. 비포장 구간에 들어서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불규칙한 노면 때문에 모터사이클의 털털거렸고, 자갈과 모래 때문에 타이어가 미끄러졌다. 이럴 때는 엉덩이를 들고 부드럽게 달려야 한다. 나는 앞에서 조심스럽게 나아갔지만 뒤에 있는 분들은 신이 났다. 왜냐면 뒤에 분들이 타고 온 모터사이클은 비포장도로나 그보다 더 험한 길도 잘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된 기종들이기 때문이다.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만 달리다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그와는 다르게 주로 포장도로만을 달리도록 제작된 내 모터사이클은 비포장도로에서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뒤에 분들의 재미를 위해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타이어, 쇽업쇼버, ABS가 장착된 브레이크 덕분에 비포장 구간을 뚫고 일행들을 삼성궁 주차장까지 무사히 안내할 수 있었다.

타이어가 없다면?

여기서 타이어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만약 타이어가 없고 바퀴가 쇠나 나무로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모터사이클이든 자동차든 노면의 조그만 돌 조각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 충격은 차대를 거쳐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이런 충격은 운전자를 엄청나게 피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조향성을 잃게 만들어 운전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실제로 그런 시기가 있었다.

옛날 말이 끄는 마차나 소가 끄는 수레의 바퀴는 나무였거나 무쇠였다. 바퀴가 구르면 노면의 자갈 등 불규칙함이 그대로 전달됐다.

초기의 자전거와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바퀴였거나 쇠로 만든 바퀴였다. 그래서 노면의 충격이 흡수되지 않아 승차감이 아주 불편했다. 물론 속력을 낼 수도 없었다. 지극히 천천히 달리지 않으면 노면에서 전해지는 충격 때문에 너무 털털거려서 방향성을 잃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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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할 길은 멀고 해가 저문다. 수 백 킬로미터를 달리고 비포장 임도까지 달린 모터사이클의 외관은 거칠다. / 조재영 기자

 

그런 불편함과 위험을 없애준 것이 공기주입식 고무바퀴와 쇽업쇼버다.

그중에서도 공기주입식 고무바퀴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공기주입식 고무바퀴를 발명하고 이를 상품화한 사람이 바로 던롭이다. 1800년대 후반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던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이 어린 아들의 털털거리는 자전거 바퀴를 개선하고자 발명한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공기주입식 타이어였다. 던롭이 만든 타이어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다른 대륙에까지 퍼져나갔다.

던롭의 타이어를 구매하고 싶다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던롭은 전 재산을 털어 타이어 제조 회사를 설립해 자동차용 타이어까지 생산하게 된다. 1899년이었다. 던롭이 만든 타이어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할리데이비슨이 순정 타이어로 주로 사용하는 타이어가 바로 던롭 타이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였던 고종의 어차에도 던롭 타이어가 장착됐다고 한다.

던롭 보다 먼저 고무 타이어를 발명한 사람이 있었다. 미국에서 살고 있던 찰스 굿이어는 1839년 통 고무로 타이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통 고무는 나무나 무쇠보다는 부드러웠지만 충격흡수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각광받지는 못했다.

말이 나온 김에 모터사이클 바퀴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요즘 운행되는 자동차 바퀴 휠은 대부분 캐스팅 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속에 튜브를 넣지 않고 타이어만 장착하고 공기를 주입해 운행되는 형태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자전거처럼 지금도 타이어 속에 튜브를 넣고 튜브에 공기를 주입해야 제 기능을 하는 휠이 많다. 이런 휠을 스포크 휠이라고 한다. 스포크 휠은 가벼워서 온-오프로드 겸용 타이어에 적합하다. 캐스팅 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도 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펑크가 나면 바퀴를 통째로 빼고 튜브를 꺼내서 수리해야 하는 것은 단점이다. 이 작업은 보통사람이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반면 캐스팅 휠은 온로드용을 주로 쓰이고 배기량이 큰 대형모터사이클에 주로 장착된다. 물론 소형 모터사이클 중에도 캐스팅 휠을 쓰는 기종도 많다. 캐스팅 휠은 스포크 휠에 비해 무겁고 가격도 비싸다. 하지만 펑크가 났을 때 일명 '지렁이'로 불리는 소재와 간단한 도구로 쉽게 정비할 수도 있고, 못과 같은 이물질이 박혀도 튜브 타입처럼 금세 공기가 새지 않아 가까운 정비소까지 달려갈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비포장 임도를 털털거리면 달린 대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헤드라이트 두 개 중 하나가 켜지지 않았다. 아마도 진동 때문에 고장이 난 모양이다. 결국 BMW 모토라드창원에 입고해서 전구를 교체해야 했다.

맛있는 커피

우리가 삼성궁 주차장에 도착해 잠시 쉬고 있는 사이 홀로 먼 길을 둘러온 분이 도착했다. 그분은 "회남재 구간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일반도로로 둘러온 길도 지리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멋진 길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감이다. 하동군 횡천면에서 하동호를 지나 청학동에 이르는 20여 km 길은 평소 내가 지인들에게 빼어난 라이딩 코스로 추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시간이 많았다면 삼성궁과 청학동 일대를 둘러봤을 것인데 아직 가야 할 여정이 남았고, 곰패밀리들은 서울까지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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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군 악양면에서 출발해 회남재를 넘어 비포장 임도를 한참 따라가면 청학동 주차장이 나온다. /조재영 기자

 

청학동을 빠져나온 우리는 삼신봉터널을 지나 거림계곡 쪽으로 넘어갔다. 터널을 지나면 행정구역이 산청군으로 바뀐다. 우리는 곧장 천왕봉 아래 중산리로 달려갔다. 중산리 시외버스 종점 바로 위에 있는 카페 새 앞에서 일행을 멈춰 세웠다. 그날 내가 안내할 마지막 장소였다. 맛없는 식사 대신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장소였다.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곳인데, 지리산 라이딩 코스 중 중산리 쪽으로 갈 때마다 찾아가서 커피를 마시는 곳이다. 미리 전화를 해두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맛있는 커피와 시원한 팥빙수를 앞에 놓은 일곱 남자들의 수다는 끝날 줄 몰랐다.

그날 산청군 원지에서 나와 헤어진 곰패밀리는 거창 수승대와 무주 적상산까지 둘러보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자정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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