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문화, 저급하게만 바라보지 마세요

최근 2030세대에게 인디문화가 소위 말하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인디란 '독립적'이란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 'Independent(인디펜던트)'의 줄임말이다. 인디문화란 자본에 종속된 기성 문화 시장을 거부하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는 문화생활이다. 전자 음악으로 표현되는 EDM(Electronic Dance Music), 턴테이블을 키는 DJ(Disk Jockey),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혁오와 같은 락밴드도 이 중 하나다.

창원에서 DJ로 활동 중인 박민주(29) 씨를 지난 11일 창원시 중앙동 음반작업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걸스힙합을 좋아했던 숙녀, DJ의 매력에 빠지다

박민주 씨는 학창시절 걸스힙합에 빠져있었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음악, 특히 걸스힙합에는 큰 관심이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늘 연습실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 바빴다. 춤을 추려면 편한 트레이닝복도 필요했고 여러 소비재가 필요했다. 그때마다 그는 거리로 나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거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류회사 캐릭터 탈을 쓰고 춤을 추기도 했다. 그렇게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어서 요긴하게 썼다.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민주 씨는 대학진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성인이 되면서 의류업 종사자로 나섰다. 똑같은 일정, 패턴 속에서 숨을 쉴 공간을 찾던 그가 찾은 곳은 부산시에 있는 한 클럽. 그곳에서 한 DJ의 모습에 흠뻑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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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주 씨./박일호 기자

"23살에 부산에 있는 클럽에서 마흔이 넘은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동작 하나하나에 매료됐어요. 음악도 다른 사람들이 틀어주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음악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모습에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걸 느꼈어요."

그 길로 곧장 그는 DJ가 되겠다는 첫 희망을 품었다. 낮에는 옷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부산으로 가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배워갔다. 학원도 수강하면서 DJ가 되겠다는 생각은 더 커졌다.

견습생으로 부산과 창원을 오가던 그는 8개월간 3~4시간만 잤지만 힘들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3년을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을 경험하면서 스승보다 더 좋은 DJ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당시 민주 씨를 가르치던 선배 DJ와 클럽 대표는 음악에 미친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민주 씨는 그 칭찬이 그를 더 잘 이끌어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오랜 견습생활 끝에 'DJ ROSY(디제이 로지)'라는 닉네임이 생겼다. 그 길로 곧장 옷가게에는 사표를 던졌다.

"하고 싶은 일을 이뤄냈다는 사실이 큰 기쁨으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DJ가 됐어도 배울 게 너무 많았죠. 턴테이블과 스피커를 켜기 위해선 전기배선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고, 화성학에 대해서도 알아두면 좀 더 좋은 DJ가 될 것이란 생각에 눈만 뜨면 DJ와 관련된 정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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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주 씨./박일호 기자

한 달 수입 32만 원, 4년간 찾지 못한 '아빠'

옷가게를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한 가지 고민이 곧 다가왔다. 너무 적은 수입이다. 민주 씨가 한 달에 벌었던 돈은 단돈 32만 원이다. 이 돈으로 화려한 치장도 해야 했고, 교통비, 식비 등을 다 써야 했다.

"적은 수입 때문에 고민 하다가 내린 결론은 휴대폰을 없애자는 거였어요. 기술도 뛰어나야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인 DJ가 무대에 오르려면 옷이나 화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거든요. 하지만 휴대폰은 없어도 내가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 큰 걱정이 없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예기치 못하게 4년간 연락을 끊게 됐지만…."

자그마치 4년간 그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 처음엔 수익이 적은 상황 때문에 휴대폰을 없앴고, 그 후엔 휴대폰을 사고도 다시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망설인 시간이 길었다.

민주 씨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엄하셨다. 민주 씨가 방황을 할 때도 크게 꾸짖었고, 어릴 때부터 그가 자립심이 뛰어나게 된 계기도 아버지 영향이었다. 명절 때 충분히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이해하지 않을까 걱정돼 연락도 한 통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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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주 씨./박일호 기자

"처음에는 나중에 하자고 생각했고, 이후엔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음악을 하는 건데 '딴따라', 아니 술집 여자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 같아서 연락을 하지 못했죠."

특히 부모님 그늘 아래서 벗어나 처음으로 선택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나쁜 인식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고 성공한 모습으로 찾고 싶었다. 지금은 어떨까?

"우리 아버지께 지금은 제가 큰 자랑거리 중 하나일 거예요. 물론 내색은 잘 안 하시지만."

창원, 인디문화에 가장 부정적인 느낌

DJ 로지. 박민주 씨는 DJ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에서 공연을 해왔다. 고향 창원으로 온 지는 약 2년 가량. 많은 지역을 다녔고 수많은 공연장을 누볐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턴테이블을 키고 화려하게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고향 창원은 이상하리만치 인디문화에 부정적이다. 공연을 하고 나서 뒷맛이 찜찜했던 적이 수차례다.

창원에도 힙합, 하우스음악, DJ를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관객들이 늘 철벽을 치고 음지로 이들을 내모는 느낌을 받는다. 또 이들이 공연할 공간도 마땅찮다.

"부산만 가도 인디음악은 젊은이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많은 공연장에 설 수 있어요. 40분만 차를 타고 가면 그런 환대를 받을 수 있는데 창원은 오로지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이에요. DJ를 하는 사람들은 저급한 문화예술인으로 취급받아요."

또 공연을 하고 나면 약속했던 대가가 지급되지 않기도 일쑤다. 사전에 계약했을 때보다 적은 돈이 지급되는가 하면 DJ가 있는 곳에는 술이 있어 추태를 부리는 관객들도 많다고.

창원대에서 공연 의뢰를 받아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당시 민주 씨는 화려한 백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턴테이블을 켜고 있었다. 공연이 끝날 때쯤 취객이 난입했다. 그는 공연장이 너무 시끄럽다며 턴테이블을 비롯한 공연 장비를 훼손했다. 민주 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알고 보니 취객은 변호사였다. DJ와 변호사라는 직업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화려한 겉모습 때문일까. 경찰서에서 그는 불편하게 조사를 받았다. 분명 피해자는 자신인데.

"굉장히 화가 났어요. 경찰에 신고한 것도 저였고 피해자도 전데 경찰들은 위아래로 저를 훑어보더니 가해자처럼 조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화를 내기도 했죠. 특히 변호사라는 가해자가 말 한마디도 안 하니 더 상황이 안 좋아지더군요."

사건은 합의를 통해 해결됐다. 물론 원만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민주 씨는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왜 화려하게 갖춰 입은 여성에 대한 잣대는 달라지지 않을까요?"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인디뮤지션들 위한 작은 무대 제공하겠다

최근 민주 씨는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DJ 활동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음악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그는 오는 9월께 펍(Pub)을 창원 중앙동에 오픈한다. 일반 펍과 비슷하게 운영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인디 뮤지션, 버스킹하는 이들에게 작은 공연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친구들을 보면 불쌍할 때가 많아요. 무대가 없으니 거리로 내몰리는데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일을 기성세대들은 그저 노는 것만 좋아하는 젊은이들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실력 여하를 떠나서 그들도 계속 공연장에서 노력해야 더 성장할 수도 있고요."

디제잉을 비롯한 힙합, 락밴드 공연으로 인디문화를 좀 더 정착시키겠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공연이 끝나면 뮤지션들이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게 기부함도 설치한다. 아직 창원 나아가 경남은 인디 뮤지션들이 마음껏 공연할 공간이 극도로 적다. 당연히 서울 홍대와 같은 핫플레이스도 없다. 그래서 공연과 적은 수익이라도 낼 수 있게 돕고자 함이다.

더불어 그는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미술품을 사거나 전시공간도 제공할 예정이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거예요. 큰 부분은 해결할 수 없어도 작은 움직임에 큰 파도가 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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