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일어나면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태풍, 폭염, 미세먼지, 지진까지 기상정보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기상과 관련해서는 누구를 인터뷰 한 기억이 없었다. 경남 도내 유일한 기상대인 창원기상대에 바로 전화를 돌렸다. 전화 속 창원기상대 직원과 허성일 기상대장은 상냥했다. 주민들 민원을 자주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섣부른 생각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무사히 치르게 한 태풍 예보

마침 인터뷰하는 날은 제1호 태풍 네파탁이 남기고 간 구름 영향으로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허성일(58) 창원기상대장(사무관)은 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였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허성일 창원기상대장은 김해시 장유 출신이었다. 대구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채 1기로 1983년 기상청에 들어왔다.

-지금도 기상청에 들어가려면 공채시험을 쳐야 하나요?

"네, 기상청엔 여러 형태의 공채가 있습니다. 9급 공채, 7급 공채가 있고 5급 기술고시로도 매년 1~2명을 뽑고 있습니다. 또한 공군 중에서 기상장교를 특채하거나 대학에 계신 교수님 중에 일부를 특채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전국에 기상 관련 학과가 많이 있나요?

"많이는 없습니다. 부경대, 부산대, 경북대, 충주대, 연세대, 고려대, 강릉대에서 기상학과나 대기과학과에서 학부생을 모집합니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공개채용으로 기상청에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이들 학부생 취업률은 꽤나 높은 편이라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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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일 창원기상대장./임종금 기자

-아무래도 기상청은 과학이니까 문과보다는 이과가 유리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도 수학과 물리에 관심이 많다 보니 기상청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기상청에 오시고 나서 어느 지역에 주로 계셨나요?

"기상청 직원은 국가직으로 전국을 돕니다. 제 초임지는 울릉도입니다. 이후 부산, 대구, 제주, 영종도 항공기상청, 울산공항관측소장, 김해공항관측소장을 하다 작년부터 창원기상대장으로 왔습니다. 저도 이제 정년이 한 2년밖에 안 남았습니다.(웃음)"

-부산기상청이 있고 창원기상대가 있는데, 기상청 직제가 어떻게 되나요?

"서울에 본청이 있고 경남·부산·울산 같은 광역단위에 거점기상청을 하나 둡니다. 그리고 거점기상청 산하에 광역시도에 하나씩 기상대를 둡니다. 따라서 경남엔 창원기상대가 유일한 기상대입니다. 그리고 창원기상대가 경남 곳곳에 있는 기상센터를 관리합니다. 또한 아까 말했듯이 공항 같은 곳에서는 별도의 기상관측소가 따로 있습니다."

-기상청과 기상대 인원은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기상청은 첨단장비가 많이 필요하니까 예산이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요.

"기상청 전체 인원은 1333명입니다. 청(차관급) 단위 국가기관 중에서는 상당히 적은 편입니다. 창원기상대에는 8명의 직원이 있고, 통영·거창·진주기상센터에는 직원 1명이 늘 상주합니다. 또한 예산도 다른 국가기관보다 적은 편입니다. 첨단장비를 신규로 설치하기보다는 지금 기상청에서 설치해 놓은 관측시설과 지자체에서 설치해 놓은 관측시설 중 중복된 곳이 많습니다. 기상관측표준화사업이라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이 끝나고 나면 아마 좀 더 좋은 품질의 기상정보가 제공될 듯합니다."

-기상예보가 안 맞다고 원성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특히 제 느낌에 겨울엔 그나마 거의 맞는 것 같은데, 여름엔 기류가 복잡해서 그런가 틀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듯합니다. 예보 정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단기 예보(3일 이내) 정확률이 창원기상대는 93%에 달합니다. 전국적으로는 92%입니다. 하지만 중장기 예보는 사실 정확하게 예보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또한 여름에는 국지적인 상황에 따라 어느 곳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바로 옆에서는 안 오는 등 상황이 돌변합니다. 그러다 보니 틀리는 일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더 정확하게 예보해 드리려고 노력해야겠죠."

-전국 여러 곳에서 근무하셨는데, 좀 인상 깊은 일은 없었나요?

"제주도는 정말 독특한 곳입니다. 관광객도 많이 오기 때문에 관광회사 모두 기상대가 보내주는 정보에 따라 스케쥴을 잡습니다. 제주 산간에서 200~300mm는 그냥 순식간에 쏟아지더라고요. 그런데도 섬이 워낙 물이 잘 빠지기 때문에 비가 200mm 오고 나서도 바로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대별로 기후가 다 다릅니다. 제주도에서 기후가 참으로 복잡하다는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몇 년 전 부산기상청에서 예보관으로 있을 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맞춰 태풍이 지나가는 겁니다. 주최 측에서는 한 시라도 일찍 시설물을 설치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끝까지 말렸습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태풍 지나가고 설치해라. 지금 설치해봐야 무용지물이다'고 만류했습니다. 밤을 새면서 진로를 관측한 결과 정확한 설치 타이밍을 알려 주었습니다. 물론 시설을 빠듯하게 설치했지만 그래도 개막식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참 보람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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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일 창원기상대장./임종금 기자

지진 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올해 태풍은 매우 늦게 발생했는데요. 올해 태풍 예상은 어떻게 하십니까?

"제1호 태풍이 이렇게 늦게 발생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올해 태풍 중 1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했습니다만 제 생각엔 그것보다는 많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또 이번 1호 태풍도 우리는 중간 정도로 예상했는데, 북위 20도를 넘어서면서 따뜻한 바다에서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얼마 전에 울산 앞바다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요. 강도 5.0이라고 하던데 강도 6.0과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먼저 알아두셔야 할 게 육지에서 5.0 이상 지진만 나도 상당한 피해가 일어납니다. 다행히 이번엔 육지에서 50km 이상 떨어진 바다에서 일어나 피해가 적었던 것입니다. 육지에서 5.0이상 지진이 일어나면 무조건 인명피해는 발생한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도로가 뒤틀리고 도로 아래에 있는 도시가스나 상하수도관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겁니다. 만약 육지에서 6.0에 이르는 지진만 일어나도 건물 중 30%는 붕괴할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피해가 일어날 겁니다. 물론 최근에 지은 건물이나 지하철은 내진 설계가 돼 있기 때문에 5~6 정도 되는 지진에도 조금 더 버틸 수 있겠죠."

그러나 그는 강도 7.0 이상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상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동해안에 원자력 발전소가 즐비하지 않습니까? 최근 지진으로 안전 우려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동해안에 수십 년 동안 큰 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신라 시대 경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다고 사료에는 기록돼 있습니다. 제 생각엔 당분간 큰 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위기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큰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상 밑에 숨지 말고 무조건 건물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아파트라 건물 밖으로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네, 그러면 일단 현관문이라도 활짝 열어서 출입통로를 확보해놔야 합니다. 왜냐하면 큰 지진이 일어나면 곧이어 그와 맞먹는 여진이 일어납니다. 한국인들은 아직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집에 있다가 지진이 지나가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면 바로 집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일본 방송 같은 데 보면 아직 지진이 오지 않았는데도 방송자막에 지진 소식이 자동으로 뜨던데요.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까요?

"큰 지진 바로 직전에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5~10초 후에 큰 지진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10초 안에 지진 경보가 나가야 합니다. 10초 안에 사람이 행동하기 시작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일본은 20~30초 안에 국민들에게 정보가 다 전달됩니다. 우리나라도 지진 발생해서 전달하는 데까지 30~50초밖에 안 걸립니다. 하지만 일본만큼 되려면 아직 부족하죠. 2026년까지 기상청에서는 관측시설을 보강하고 전달체계를 보완해서 바로 국민들에게 지진정보를 알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미세먼지 관련해서 취재를 하다 보니 미세먼지 예보처가 기상청이 아니라 환경부 산하 에어코리아라는 곳이던데요. 미세먼지도 기상청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실 저희 기상청도 환경부 산하기관입니다. 데이터 생산자료 자체가 환경부 에어코리아에 있습니다. 상급기관인 환경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기상청이 데이터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예보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특보는 지자체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관할이 다르기 때문에 기상청 한 곳이 독점적으로 맡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같이 공유해야겠지요."

-경남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은 어디인가요?

"아무래도 남해안이 집중호우 발생확률이 높습니다. 남해, 통영, 거제, 지리산 일대입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강폭도 넓고 비상상황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 있습니다. 또 태풍이 올라오면 역시 남해안 지역에 가장 신경이 쓰이죠. 최근에 태풍 피해를 보시는 분을 보면 억지로 논에 물꼬를 트려고 하거나 파도가 심하게 치는데 선박을 무리하게 견인하려 하시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풍이 오면 안전한 곳에서 계셔야 하는데, 이런 소식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죠. 또 요즘엔 재난보험이 잘 돼 있고 보험료는 지자체와 개인이 반반씩 들어놓습니다. 그러니 보험에 드시고 재난이 발생할 때는 안전한 데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후 변화, 몸으로 느끼고 있다

-누리꾼들 가운데 일부는 지구온난화가 '말도 안 된다', '근거가 없다'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지구온난화는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네, 지구온난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 수치상으로 큰 변화를 언급할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33년 이 일을 하면서 몸으로 '아, 기후가 달라졌구나' 느낍니다. 예를 들면 옛날 제주도에서 봤던 용머리 해안가 바위들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을 때 해수면 상승을 느낍니다. 그리고 식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과거 남부지방에서만 재배 가능하던 복숭아가 지금은 경기도 북부 포천까지 재배 가능합니다. 사과도 강원도 영월까지 재배 가능합니다. 그만큼 기온이 따뜻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기후는 명백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구온난화의 결정적인 요인이 온실가스입니다. 그걸 아예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줄이고 기후변화 폭을 적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일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낮춰가다 보면 최소한 후손들도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국지성 집중호우 같은 것도 과거엔 없지 않았나요? 이런 것도 기후 변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난개발 같은 것이 우리나라 기후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국지성 집중호우는 과거에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명백하게 느끼는 기후 변화는 삼한사온이 사라진 것입니다. 또 도시화가 되면서 열섬효과가 일어나 도심지가 더 더워진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난개발이 문제지만 다른 나라에서 하는 대형 토목공사에 비해서는 (국토가 좁기 때문에) 적은 규모입니다.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개발 때문에 기후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올해 역대 최악의 폭염이 예상된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글쎄요. 지금까지 보면 평년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강우량도 뚜렷하게 기상이변이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그는 극단적이거나 과장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러 상황과 조건들이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미디어에서 뿌리는 '사상 최고', '사상 최악' 같은 단어에 익숙한 기자 입장으로서는 심심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신뢰가 들었다. 물론 기상이변은 있겠지만 대개 그가 33년 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지진이었다. 지진이 일어나면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거나 최소한 출입문이라도 열어 놔야 한다는 것을 뇌리에 박아두고 허성일 창원기상대장과의 '무난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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