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받아들이니 마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요"

게릴라성 호우를 뿌리던 장맛비가 주춤한 날을 택한 것이 과수농사에 바쁜 일손들을 붙잡은 셈이 됐다. 밀양시 산내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김철현(48) 씨 영지농원을 찾았다. 사진도 찍고 사과밭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비가 오지 않는 게 좋지만 농민들에게는 이 반짝 맑은 날이 더 바쁜 시간이었다. 저마다 농약 치는 기계를 몰고 철현 씨 집으로 모이는 이웃 주민들의 "약 안 칠 거냐?"라는 지청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부산서 보험업 하다 아버지 권유로 귀농

"이맘때면 외래해충인 선녀벌레가 창궐하는 시기입니다. 선녀벌레는 새로 나온 잎 뒷면이나 가지에서 수액을 빨아 먹어 고사시키는데 비가 안 올 때 방제를 하려는 것이죠. 워낙 이동력이 좋아 동시에 방제해야 효과가 있는데 오늘은 항공방제가 안 된다고 하더니 다시 가능하다네요. 그것 때문에 부랴부랴 주변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분들이 모이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철현 씨가 한마디 더 보탠다.

"당장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 같으니 괜찮습니다. 저 두 분은 전직과 현직 이장님이신데 수시로 우리 집에 모이곤 합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바쁜 와중에 모였으니 이야기라도 나누도록 놔두고 우리가 창고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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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산내면 영지농원 김철현 씨./김구연 기자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철현 씨는 귀농한 지 9년차라고 했다. 보험업을 했는데 그다지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17~18년 보험업을 하면서 남들 보기엔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귀농 직전엔 법인 대리점도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도시 생활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대리점 운영할 땐 직원이 10명 가까이 있었는데 직원 월급에 사무실 임대료 등등을 맞추려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람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회의도 생기고 비전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혼자 그런 갈등을 겪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농사를 물려받아 짓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연세가 많다 보니 농사짓기가 힘에 부치기도 하셨나 봅니다."

2008년 철현 씨는 그렇게 귀농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보험 대리점 일도 바로 정리할 수가 없어 1년 동안 부산과 밀양을 오가며 사과나무를 가꾸기 시작했고, 2009년 10월 부모님 집으로 완전히 옮겼다.

"당시 아버지께서 짓던 과수원이 3000평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전업농을 하기엔 부족한 규모였습니다. 옛날에는 '얼음골 사과' 명성으로 그만한 밭이면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워낙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재배한계선마저 북쪽으로 올라가 수익이 이전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근 사과밭을 사들여 지금은 6500평 정도로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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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산내면 영지농원 김철현 씨./김구연 기자

철현 씨는 재배면적이 늘어났다고 수익이 비례해서 늘어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사과농사는 일교차가 커야 당도가 좋은데 전반적으로 사과농사 짓는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이전엔 3000평만 지어도 1억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5000평은 지어야 1억 원의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6500평에 약 23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매출로 2억 원 정도 되고, 인건비에 수수료 등 기타 경비를 제하면 1억 2000만∼1억 3000만 원 정도 순수익을 올린다고 보면 됩니다."

사과농사가 별로 재미없다던 철현 씨의 이야기는 엄살이었다.

사과는 '잎 농사' 잎이 튼튼해야 열매 좋아

철현 씨는 일반적인 벼농사는 농번기라도 있지만 사과농사는 1년 내내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과수농사 대부분은 '잎 농사'입니다. 봄, 여름 잎 농사를 잘 지어야 10∼11월 열매농사가 좋습니다. 요즘은 과일 솎아주기 작업과 풀베기, 약 치기, 필요 없이 양분만 소비하는 가지를 잘라내는 게 일이죠. 돌아서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곤 합니다. 이렇게 잎 농사, 과일 농사를 잘 지어도 여전히 판매가 문제로 남습니다. 그냥 공판장 등에 내다 팔면 되겠지만 가격이 낮기 때문에 개인 주문판매에 매달려야 합니다. 이게 겨울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되죠. 최상의 조건에서 잘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1년 제대로 쉴 틈이 없는 게 과일 농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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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산내면 영지농원 김철현 씨./김구연 기자

그 말을 들으니 피상적으로 보던 과일 농사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도시생활에 비전을 느끼지 못하고 귀농했다는 철현 씨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편으로 참 좋은 조건을 갖춘 귀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진 자의 귀농'이었다고 얘기했더니 철현 씨는 절반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절반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사과농사 짓는 것을 보고 자랐으니 낯선 환경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과수원을 바탕으로 귀농생활을 시작했으니 나쁜 환경은 아닌 게 맞습니다. 하지만 좀 전에도 얘기했듯이 그때랑 지금이랑 재배 환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판로는 별로 걱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은 판로가 문제입니다. 처음엔 공판장 등지로 70~80%를 보냈는데 제값을 못받았죠. 애써 수확한 사과를 헐값에 넘기지 않으려면 개인 판매망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죠. 결국 이 문제도 남보다 얼마나 좋은 사과를 생산하느냐로 귀결됩니다. 우리 집 사과를 맛본 사람이 내년에 또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한결같은 상품을 생산해야 가능한 일이죠."

철현 씨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며 농사를 지어 지금은 판로 문제를 거의 해결했다고 한다. 귀농생활 7∼8년 만에 개인 택배물이 3000~4000상자가 된단다.

보험 일로 익힌 대인관계, 시골생활 적응에 도움

철현 씨는 비록 고향으로의 귀농이지만 아무런 갈등없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보험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겪은 일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보험 일을 하던 초창기엔 보험왕 대상은 받지 못했지만 장려 정도는 받을 만큼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업무 특성상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곤 했던 게 이곳에서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이죠."

철현 씨는 귀농하자마자 고향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단다. 마을 새마을지도자를 하면서 새마을협의회 사무국장 일도 했고, 밀양얼음골사과작목반 사무차장에다 올해까지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 사무국장도 맡는 등 여러모로 활동을 많이 해 대인관계가 좋아지고, 또 넓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대인관계는 좀 다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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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산내면 영지농원 김철현 씨./김구연 기자

"보험 일을 할 때 사람 만나는 일은 이해득실을 따져야 하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관계가 아니죠. 고향 사람이고, 친구 형님이기도 하지만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소통도 더 잘 된거죠. 마음을 터놓고 생활하니 도시의 인간관계와 비교할 게 아닙니다."

밀양시 귀농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철현 씨는 산내면에 특히 젊은 사람들의 귀농이 많다고 했다. '얼음골 사과' 인지도가 높다 보니 외지에 나갔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300명은 된다고 했다. 먼저 와서 농사짓는 친구들도 많단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부산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사과반에서 교육도 받고, 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 자체 교육도 많아 꾸준하게 받다 보니 소통 문제도 해결했단다.

생활 불편함 견디니 마음의 여유 찾아와

철현 씨는 귀농 후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이 편해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유란 것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는 도시와 다릅니다. 도시에서는 피우던 담배가 떨어지면 집 밖에 나가면 해결됩니다. 여긴 그게 불가능하죠. 담배 사려고 불 꺼진 동네 구멍가게 문을 두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밀양 시내까지 담배를 사러 나가겠습니까? 결국 참을 수밖에 없죠. 우스운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돈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하고, 불필요한 지출이 없으니 도시에서 살 때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생활의 불편함에 순응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도시 생활에서는 불편함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이곳에서는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조바심보다는 오히려 여유가 더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 철현 씨가 갑자기 한 2년 정도 더 일찍 귀농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때는 본격적인 귀농·귀촌 바람이 불기 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연히 땅값도 오르기 전이라 좀 더 편안하고 풍요롭게 농촌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란다. 하지만 내가 귀농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철현 씨 대답이 엉뚱하다.

"사실 그 2~3년이 저에겐 제일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게 법인 대리점을 운영했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대리점을 운영하지 않고 좀 더 일찍 귀농했더라면 마음고생 덜했을 것이란 얘깁니다. 하하"

그는 사과가 고소득을 올리는 농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예비 귀농귀촌인이 아무 준비 없이 사과농사를 짓고자 농촌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인근에 정년퇴직하고 들어와 1000평 규모로 사과농사 짓는 분이 가끔 우리 집에 들르곤 합니다. 그분 말씀이 나이 들어 많은 농사지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1000평 농사만 계획하고 들어왔는데 잘못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할 돈이 상당하거든요. 땅값은 일단 두고서라도 약 치는 기계, 컨테이너 상자, 과일 선별기 등 구입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요즘 귀농귀촌인들에게 지원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1억 원 정도가 더 듭니다. 그러다 보니 사과농사 1000평 지을려고 그런 돈을 또 들여야 할까 싶어 후회하신 거죠."

더구나 과수원을 장만하려면 땅값도 만만찮다고 했다.

"요즘에 얼음골 괜찮은 땅은 평당 30만 원 정도 합니다. 1000평만 해도 3억 원이 드는 데다 그 정도로는 규모가 적습니다. 최소한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고 해도 3000평은 돼야 하는데 그것뿐입니까? 집도 창고도 있어야죠. 쉽게 생각할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사과 재배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점도 고려해야 하고요."

'인생은 60부터' 맞춰 심은 사과나무

철현 씨는 미래 계획도 꼼꼼하게 세워 뒀다고 말한다.

"올해 새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새집엔 외국인 부부를 일꾼으로 들일 계획입니다. 수확철이나 열매솎기 작업 때를 제외하곤 혼자서 주로 일을 했는데 이젠 정기적으로 일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런 용도로 사용하려고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는 과일 농사를 마라톤에 비유했다. 한 해 농사 잘 지었다고 성공한 게 아니며, 그런 만큼 한 해 농사를 잘 못 지어도 주저앉는 것도 아니란다. 마라톤처럼 꾸준히 농사지으면 가격변동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귀농하면서 인생 계획을 60세에 맞췄습니다. 그때까지 온 정성을 쏟아 사과농사를 할 생각입니다. 60세 이후엔 편안하게 농사를 지어야죠. 한 1000평 정도. 그동안 누리지 못 했던 문화적인 생활도 누려보고…."철현 씨는 새로 마련한 1000평이 그런 의미라고 했다. 그곳엔 4년생 사과나무가 자란다.

"어린 사과나무일수록 사과의 아삭함이 강하고 수령이 오래되면 부드러운 맛이 납니다. 맛이 연해지죠. 보통 7~8년 차에서 수확이 가장 많은데 그보다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열리는 게 다릅니다. 20년 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많이 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도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면 젊어지듯 사과나무도 똑같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저도 사과나무도 젊음을 유지하며 이곳에서 건강하게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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