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정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세상에 단 한 벌밖에 없는 정장을 만들어 주는 곳. 우리는 그곳을 '맞춤정장 전문점' 또는 '테일러숍'이라고 부른다. 창원시 상남동에 위치한 맞춤정장 전문점에는 남자를 신사로 바꿔주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감희종(33) HK테일러 창원점 대표다. 고객과 디자인을 상담하고 치수를 측정하는 눈빛에서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창원시 상남동에 있는 매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포기할 수 없었던 맞춤정장

"학창시절에는 특별히 튀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옷만큼은 저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또래들과 다르게 입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 사이에선 독특한 친구라고 소문이 났었죠."

자신을 조용하고 조금은 특이했다고 소개하는 감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과 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미술학원을 계속 다녔어요. 패션디자인과로 대학을 진학하고 싶었거든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내디자인과로 입학하게 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전 제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 하는 성격이거든요. 결국 군대를 다녀온 후 패션디자인과로 전과했죠."

01.jpg
▲ 감희종 HK테일러 창원점 대표./박성훈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음식점부터 운동 강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맞춤정장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 업계로 뛰어든 건 아닙니다. 음식점, 운동 강사, 원단시장 심부름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다양한 일을 했죠. 좀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아요. 고객을 상대하는 법, 원단의 종류와 특징 등 많은 걸 배웠고 이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 씨는 어떻게 맞춤정장이란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을까? 우연한 말 한 마디가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한 친구가 저한테 '넌 교복이 참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교복과 정장은 '일맥상통'하거든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정장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생 때는 엄청 즐겨 입었죠. 하지만 기성복은 제 성에 차지 않았어요. '이런 부분을 조금만 바꾼다면 훨씬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저를 이 세계로 이끌었죠."

맞춤정장(Tailored Suit)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특정 사람의 인체에 맞춰 제작한 정장'이라고 한다. 감 씨는 자신을 고객과 디자인을 상담하고 완성된 옷을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테일러 디자이너(Tailored Designer)'라고 말했다.

"똑같이 만들어져 나오는 기성복이 아닌 나를 위한 단 한 벌의 정장을 만드는 것이죠. 예전에는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성복이 나오고 맞춤정장 업계도 점점 분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수요가 많이 줄었죠. 지금은 디자이너가 고객과 마주하여 디자인을 상담하고 치수를 측정합니다. 그리고 재단사가 정장을 제작하면 저희가 다시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분업화 체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 대표가 처음 테일러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과 친구들이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당연하시고 주위 친구들도 반대가 심했죠. 아무래도 이 분야는 오래되신 분들이 더 잘 되니까요. 또 젊은 친구가 정장을 만든다고 하면 어르신들 입장에선 신뢰가 안 되잖아요. 하지만 제가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접목시키면 분명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밀어붙였죠."

오랜 설득 끝에 감 씨는 창원점을 시작으로 2개 매장의 대표가 됐다. 그 과정이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02.jpg
▲ 감희종 HK테일러 창원점 대표./박성훈 기자

"제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했어도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죠. 무작정 서울로 갔습니다. 몇 년을 커피 타고 담배 심부름 하면서 노하우를 전수받았죠. 그렇게 창원에서 매장을 열었는데 손님이 정말 없었어요. 그러다 결혼을 앞둔 또래 고객들이 정장을 맞추러 왔습니다. 그분들과 친구처럼 지내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창원의 유명한 웨딩홀과도 연계가 되고, 그렇게 성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동료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지만 왜 어려움이 없을까. 가게를 운영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고객'이라고 했다.

"항상 어려운 점은 고객이죠. 금액이나 시간적인 부분을 기성복보다 더 투자를 해야 하니까 기대치가 훨씬 높죠. 예를 들면 고객이 원하는 느낌과 전문가가 생각하기에 어울리는 스타일은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체격이 큰 사람은 너무 딱 맞게 입으면 단점이 부각됩니다. 저희가 그런 점을 충분히 설명을 하고 다른 스타일로 추천을 합니다. 그래도 고객이 원하면 제작하는 데 반영하지만 스스로가 결과물에 만족을 못 하는 경우가 생겨요. 그럴 때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죠."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가게를 찾았을 때 결혼을 앞둔 가족이 정장을 맞추고 있었다. 결혼식은 신랑 신부할 것 없이 인

생에서 가장 빛나고 싶은 순간이지 않을까? 가족들의 입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감 대표도 맞춤정장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이 순간이라고 했다.

"결혼을 앞둔 가족들이 올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한 어머님께서 사위분 정장을 맞추신다고 매장을 20번 정도를 방문하셨어요. 사실 당시에는 조금 버거웠죠.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화장도 안 지우시고 도시락을 사서 가게로 오셨어요. 너무 잘 만들어줘서 식을 잘 올렸다고 고마워하셨죠. 최근에도 매장을 지나실 때면 과일이나 먹을거리를 사서 주고 가세요. 그럴 때는 정말 더 힘이 나고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03.jpg
▲ HK테일러 창원점 모습./박성훈 기자

현재 양복점에는 감 대표와 총 3명의 인원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감 씨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지만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감 대표의 말에서 동료를 생각하는 진심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가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돈은 크게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런데 지금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3명입니다. 그중 제 직속 대학 후배도 있죠. 모두가 저 하나를 믿고 맞춤정장에 인생을 걸었어요. 이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성공하자'를 항상 외치고 있습니다."

맞춤정장의 기본은 실력과 완성도

앞서 말했듯이 기존 양복점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역할이 분리되면서 각 과정이 더욱 전문화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런 분업화 때문에 고객이 생각하는 느낌을 완전히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감 대표는 '급변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유행이나 취향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정장도 바지 밑단의 길이, 셔츠의 모양 등 수없이 많은 유행이 나오고 없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고객들이 저희보다 더 빨리 확인하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점을 빨리 확인하고 끊임없이 시도해야 기성복에 뒤쳐지지 않습니다."

현재 기성복의 등장과 우후죽순 생기는 양복점으로 맞춤정장 시장도 포화상태라고 한다.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감 대표만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05.jpg
▲ 감희종 HK테일러 창원점 대표./박성훈 기자

"맞춤정장 전문점도 너무 많이 생겼습니다. 지금 창업이 너무 쉽게 되어있거든요.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합니다. 실력이 부족하면 고객은 만족을 못 합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유행도 중요하지만 기본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늘 강조하죠. 또 하나는 완성도입니다. 금액적인 부분을 내려서 정장의 완성도를 낮추기보다는 정말 좋은 원단과 제품을 사용해서 만족도를 극대화하려고 하죠. 그런 부분을 알기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정장은 종류도 다양하고 입기가 여간 까다로운 옷이 아니다. 수많은 색상과 패턴도 선택해야 하고 셔츠와 넥타이, 구두같이 함께 착용해야 하는 것들도 무궁무진하다. 이런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감 대표에게 팁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한 부분만 고집하면 안 됩니다. 정장은 특히 전체적인 실루엣이 가장 중요한 옷인데요. 예를 들어 얼굴이 크다면 딱 맞게 입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입는 게 전체적으로 조화가 맞죠. 또 그 시기에 유행하는 스타일만 고집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입니다. 남색이나 회색 계통의 기본적인 정장을 구비한 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나가는 게 잘 입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06.jpg
▲ HK테일러 창원점 모습./감희종 제공

경남에도 정장 모임 만들고파

최근 맞춤정장이 유행하면서 테일러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선배로서 당부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봤다.

"너무 표면적인 것만 보고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정장이 좋다는 이유로 시작하면 빨리 지칠 가능성이 크죠. 본인이 어떤 분야가 적성이 맞는지를 인지하고 시작을 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최종 꿈은 무엇일까?

"결국엔 제 이름을 건 맞춤정장 전문점을 만드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제 자식들까지도 대를 이어서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제 앞에 놓인 숙제이자 목표입니다."

07.jpg
▲ HK테일러 창원점 모습./감희종 제공

감 씨는 인터뷰를 끝내는 순간까지 정장을 생각하며 작은 바람을 털어놨다.

"아직까지 경남은 정장을 즐겨 입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오로지 직장이나 경조사에만 입는 옷이라는 생각이 강하죠. 하지만 서울이나 기타 광역시만 가도 정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나 축제가 많이 있습니다. 경남에서도 관심이 늘어나 많은 사람들이 정장에 대해 토론하고 즐길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게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