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검을 만나다"

책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진주에 있는 펄북스 출판사에서 낸 <맑은 차 한잔>이라는 책에서 '선풍류조선검 전인 박청학'이라는 부분을 읽고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20여 년 전 지리산 골짜기마다 은거한 도인들을 찾아다니며 정신세계 이야기를 나누곤 했더랬는데, 그중에는 검을 다루는 사람도 있었다. 근래 한번 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 인터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검을 다룬다는 이를 발견했으니 염치 불고하고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취했다.

박청학(53) 선풍류조선검 전인은 얼마 전 한의원에 갔다가 <피플파워> 6월호에 실린 지리산 청학동에 서점을 낸 박흥민 씨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한의원 갔다가 책을 봤어요. 그랬는데 연락이 와서 신기해요. 놀랍기도 하고. 저도 요즘 사람살이에 대한 그런 이야기가 눈길이 자꾸 갔어요. 다 나름대로 말하지 못 하고 이야기하지 못 하는 굽이를 넘어서는 그런 것이 있을 터인데 싶어서. 호기심이 아니라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거기서 서점 관련 얘기가 있어서 읽고는 '잘 돼야 할 텐데' 하면서 안 해도 될 걱정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만나 두 시간 가까이 검과 무예, 수련, 나아가 민족문화에 대해서까지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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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예수련원./정성인 기자

그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주남저수지 인근에 '고구려 무예수련원'이라는 수련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천문과 선풍류조선검을 수련한다고 했다.

모든 게 낯설었다. 기천문은 뭐고 선풍류조선검은 또 뭐란 말인가.

"여기에 오면 두 가지 수련을 기본으로 합니다. 우선 몸을 위한 기천문 수련을 하고 또 검을 수련합니다. 민족문화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대고(북 종류의 하나)와 바라(금속 타악기)도 하죠. 사실 춤이나 대고, 바라, 그밖에 다른 여러 문화 장르는 나타나는 형식만 다를 뿐 근본은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첩첩산중이라더니 더 알기 어려운 말만 한다. 쉽게 가기로 했다.

무예와 인연

-수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무예와 어떻게 인연이 시작됐습니까?

"1987년 통영에 있는 한 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89년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지요. 중학교는 수학에 대한 관심을 두게 하는 단계니까 전문적인 지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게 중요하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풍물을 하면 여럿이 같이 할 수 있으니 좋겠다 싶어서 먼저 풍물을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고요. 그러다가 검을 만나게 됐어요."

-검에는, 특히 조선검이라고 하는 한국검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고 압니다만.

"나이 서른 즈음에 '기천문(氣天門)'을 만났어요. 흔히 말하는 기(氣)를 수련하는 것인데, 여기서 검을 처음 접했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검법도 조금씩 접했지요. 어쨌거나 열과 성을 다해 수련했지만,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내가 한 번 던져볼 만한 데까지는 못 다가갔어요. 그렇게 수련하다가 3년쯤 쉬었어요. 나이 마흔둘 때였는데, 전북 김제에 검을 수련하는 단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찾아갔지요. 원래 검이라는 게 그런 건지 많이 찾아오나 보더라고요. 처음 가서 만나고 차 한잔하는데 '겨루러 왔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런 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른바 '도인'을 만난 거군요.

"선생님은 지리산에서 수련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산에서 공부한 것이 세상 속에서 어떠한 정도인지를 알아보고 싶어 전국을 다니며 겨루기를 하셨나 보더라고요. 그렇게 한 바퀴 돌고는 김제에 안착했는데, 이번에는 전국에 있는 고수들이 김제로 겨루러 오곤 하더라는 겁니다. 뭐 꼭 '겨뤄서 이기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내 수련이 어느 경지에까지 왔는지 알아보자는 거죠."

선풍류조선검

-그게 선풍류조선검이었는가요?

"김제 선생님도 지리산 쪽에서 인연이 닿아서 수련하시다가 이대로 놔두면 사장되겠다 해서 4분 사형 중 막내였던 선생님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산하신 건데요. 처음에는 '은류106검'이라고 이름 지었답니다. 총 106갈래 검법이 들었다 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 알기도 쉽지 않고 해서 선풍류조선검(仙風流朝鮮劍)이라 이름을 바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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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류 조선검 현판./정성인 기자

-여전히 어려운 말이군요.

"원래 춤을 추고 창을 하고 이런 걸 예전에는 통칭해서 풍류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처럼 널리 알리지 않고 수련하는 것을 숨을 '은(隱)'자를 써서 '은류(隱流)'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은류 106검이었고요. 이쪽 계통으로 공부하다 보면 '우도방'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좌도방' 공부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우도방 공부하는 사람은 주로 정신적 부분들, 우리가 많이 아는 <백두산족에게 고함>을 쓴 권태훈 옹이라든지 이런 쪽이고, 좌도방 쪽은 주술적 부분을 공부하는 쪽이에요. 저희 같은 경우는 정신적이나 주술적인 부분은 아니고 정신적인 부분도 추구하지만 검을 통해서 수련하는, 흔히 진보니 보수니 하는 데 두 개의 지점만 있는 건 아니듯이 좌도방 우도방이 있고 그사이 여러 갈래가 있대요. 그중에서 우리 같이 수련하는 것을 은류라고 해요. 그 은류라는 것을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신선 '선(仙) 자'가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풍류 중에서도 은류, 신선 선 자 해서 선풍류라고 표현한 거죠. 또 검을 쓰는데 검이 일본검인지 어느 나라 검인지 구분이 안 되니까 풍류 중에서도 은류, 한자로 선, 그중에서도 우리의 검이라 해서 조선검. 조선이라 하면 고조선도 있으니까 그때부터 내려온다 해서 선풍류조선검이라고 명명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선풍류조선검 수련을 하셨나요?

"당시만 해도 학교에 있었거든요. 학교 마치고 나면 김제까지 1주일에 한 번씩도 가고 2주에 한 번도 가고 그랬어요. 당시는 고속도로가 지금 같지 않았으니까 6시간 정도 걸렸어요. 7시쯤 도착하면 해가 지고, 그때부터 해서 새벽 2시까지 수련을 하고 돌아오면 연마를 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2주에 한 번씩도 가고 하다 보니 정확하게 그 동작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더라고요. 부족하죠. 갔다 오면 1주일 동안 2주일 동안 수련장에 들어앉아서 계속해보는 거죠. 그래도 모르겠으면 가서 조심스럽게 이거는 어떤 거냐고 여쭤보고 그래서 12년 정도 했어요.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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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학 선풍류조선검 전인./정성인 기자

-교사직까지 던질 정도였던가요?

"그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일정 시점에서 온전하게 나를 던지지 않으면 무엇 하나를 이루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참 좋기는 좋은데, 또 현실적인 부분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어 미적대던 중이었지요. 그럼에도 한 생애에 어떤 부분을 할 수 있는 게 극히 제한적일 텐데…. 이게 내게 인연으로 다가온 거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니까요. 내가 마음을 내고 온전하게 나를 던지지 않으면 하나를 알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8년 전 학교를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꿈꾸던 바를 이루셨나요?

"처음 했을 때는 '이게 뭘까, 끝 지점에 가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을 하면 무엇이 변하고 또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 지금은 궁극의 수련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는 생각도 사실은 없어요. 다만 세상에 살면서 수련을 통해서 개인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고 같이 수련하는 인연과 더불어 수련을 통해서 마음이 밝아지고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스스로 밝고 기뻐하고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가 생기다 보면 내 주변에서도 같이 변화를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오로지 '한번 해보자'. 그 뒷부분은 내게 인연이 있거나 복이 있으면 뭔가가 올 것이고 안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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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학 선풍류조선검 전인./정성인 기자

고구려무예예술단

- 10여 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창원 중앙동에 있는 소극장에서 무예 공연하는 것을 보고 어떤 문화적 충격 같은 걸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무예와 공연,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은데 그걸 꾸준히 해오셨더라고요?

"나이 서른에 검을 만났는데, 사실 그 이전에는 태권도나 합기도 이런 것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막상 이것을 만나 해보니까 몸의 세계라는 것이 새로운 세계라는 것을 알았어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더라고요. 좋은 게 있으면 혼자 가지고 있기보다는 같이하면 좋겠더라고요. 같이 할 방법을 쭉 생각 해보니까 두 가지 정도 있더라고요. 하나는 무대에 공연으로 올려서 우리 전통무예가 저런 면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사람들이 같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단순히 무예가 강한 면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내적인 부분을 정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같이 수련하는 것입니다. 같이 수련하고 땀을 흘리면서 가지고 있는 세계가 참 정직하다는 것. 몸의 세계는 내가 한 만큼 표현되고 한 만큼 깨닫게 되니 참 정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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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학 선풍류조선검 전인./정성인 기자

-단체 이름이 고구려무예예술단인데, 고구려 시대의 기상과 검법을 이어받았다는 뜻입니까?

"처음에는 고구려민족무예예술단이라 이름했습니다. 고구려라 이름 지은 것은 우리가 무예를 하는 것이 고구려부터 내려온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고요, 고구려가 가지고 있는 기상적 의미를 단체 이름에다가 차용 한 거죠. 실제로 고구려 때부터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실증의 부분인데 심증이 있다고 해서 물증이 없는데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우리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민족이라는 이름을 넣어보기도 했는데 너무 이름이 길고 복잡하고 산만한 것 같아서 고구려무예예술단이라고 줄였습니다." 

-공연을 하되 자주 하는 건 아닌 것 같던데요?

"저희가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는 아닙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수련에 핵심이 있고, 나가서 이벤트라든가 이런 것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쪽은 저희가 지양하지요. 여기서 하는 것도 수련이고 공연을 하면서 무대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도 수련이죠. 이런 게 있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가끔 하는 정도이지 공연 자체가 목적은 아니죠. 정기적으로 공연하지 않는 것은,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그것도 약간의 문제는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일정한 수련이 됐거나 스스로 확인해볼 필요를 느끼면 성산아트홀이나 이런 데 가서 3~4년 주기로 공연도 하고 그럽니다. 밖에서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할 수는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무예 자체가 서예라든지 여러 민속처럼 하나의 문화예요. 문화의 격을 따져서라기보다는 무대에서 형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또다른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 번씩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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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학 선풍류조선검 전인./박청학 제공

-'무예'라는 말 속에 '예술'이라는 뜻이 들어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문화예술 장르로 본다는 것이 익숙지는 않네요.

"공연할 때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보려고는 하는데 아직은 무예 자체를 문화의 한 장르로 인식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 잘못이라기보다는 저희가 미숙한 부분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공연할 때 전통춤, 소리, 그림, 전통차 이런 것들과 결합해서 합니다. 그러는 것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이 형태의 다름이지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예'를 '수련'한다는 것

-무술이나 무도, 검법 등 다양한 말이 있는데, 굳이 '무예'라고 하는 까닭이 있나요?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유일한 무예서가 <무예도보통지>입니다. 정조 임금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그 서문에 '예술의 묘령을 살려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무예도보통지>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명인이라거나 장인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기술이 우월해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기술 연마 과정에서 정신적 세계, 자기 내면과의 여러 가지 성찰의 부분, 고뇌하는 부분이 병행되면서 기술적인 일정한 단계에 올랐을 때 명인이라 하고 장인이라 이름 짓는다는 겁니다. 저희가 무예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무술이나 무도라고 하지 않고 무예라고 하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하고 기술적인 부분, 그 두 가지를 품어주는 단어로서 무예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무술이라고 하는데 쉽게 얘기하면 기술적인 부분을 중시해서 무술이라고 한다고. 일본은 정신적인 부분을 중시해서 다도라든지 무도라든지 이런 식으로 하는데, 제가 볼 때는 궁극의 수준에 가면 '예'나 '도'나 '술'이나 '법'이나 같은 지점이라고 보지요. 단지 명명하기를 그리 한 것이지 굳이 그것을 차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국이라고 해서 단순히 술(術)만 가르치겠어요? 그런 건 아니고 단지 명명을 그리할 뿐이지 굳이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수련은 어떻게 하나요?

"처음 창원 시내에 수련원을 차렸습니다. 여기로 옮겨 온 것은 5년쯤 되고요. 산에서 수련한 사람하고 바닥이 고른 여기서 수련한 사람하고는 실력의 차이라기보다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시내 수련장이 있다가 좀 멀더라도 인연이 닿으면 안 오겠나 싶어서 여기로 옮겼습니다. 사실, 이렇게 사각으로 닫힌 공간보다는 울퉁불퉁한 땅도 밟아보고, 곳곳에 서 있는 나

무라는 장애물 속에서도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참된 수련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산도 닮고 자연도 닮아가는 거죠. 또, 넓은 마당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여기 깔린 매트 한 장 위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야외 수련장까지 갖춘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수련하는 태도는 어떠한가요?

"같이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위로할 수 있고 같이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항상 그냥 적당히가 아니라 늘 극강의 단계로 수련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열심히 했네, 죽도록 했네가 아니라, 정말 그 단계보다 한 단계 위의 수련을 하면 자유로워진다고 하시더라고요. 극강에 이르면, 극강을 넘어서면 자유로워진다고요. 그 자유라는 게 막연하잖습니까. 검이라는 게 태생 자체가 상대를 염두에 두고 생긴 무기류니까, 검을 가지고 상대하고 맞닥뜨렸을 때는 생사의 부분이 존재하겠죠. 사실은 생사의 구분이라는 건 두려움인데, 궁극의 지위에서는 그 생사의 구분을 초탈해버리겠죠.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게 했을 때는 일상생활에서는 평정심, 고요함. 이걸 해서 어디 뭐 하늘을 날아다니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재주를 부리고 이런 건 아니겠죠. 생사를 초월하면 그 상태에서는 편안해지고 고요해지겠죠. 제가 쭉 보니까 대개의 경우 몸하고 정신은 절대로 따로 놀 수 없어요. 수레바퀴하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가지 않으면 어렵고 멀리 가지도 못할뿐더러 주변에 많이 어지럽게 되고 본인 스스로 늘 괴로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끝나버린다는 거죠. 기술만 좇다 보면 늘 어지럽게 됩니다. 그래서 시비심이 생기고 우열심이 생기고 호승심이 생기고. 그래서 다툼이 커지죠. 그래서는 절대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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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학 선풍류조선검 전인./박청학 제공

-궁극에 도달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신비화된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기천문이라는 수련하는 분을 예전에 만났는데, 몸짓이 엄청나게 자유롭죠. 걸림이 없으니까. 대체로 검을 만나게 되면 검과 몸이 일체가 돼야 해요. 검에 휘둘리면 안 되니까요. 검과 몸이 하나로 가야, 남들이 볼 때 편안해야 부조화 느낌이 안 나죠. 나중에는 검심일체죠. 마음을 그대로 두는 거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 기운이 그대로 검 끝에 전달되는 거죠. 크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수련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이 그런 시대는 아니지만, 사람을 만났을 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어깨서 반대쪽 허리) 검이 지나가야 한다면 이 전체에 힘을 다 써버리면 아주 비효율적이죠. 선이 이렇게 지나가지만 그중에서 딱 던지고 가는 지점이 있어요. 다 전력을 다할 수는 없어요. 스치고 가야 하는 지점이 있는데 마음이 가는 만큼. 그야말로 물아일체죠. 내가 없는 거죠. 했다는 내가 없는 것. 강물이 배가 지나간 것과 같다고 보면 돼요. 저희 검은 처음에는 강검(强劍)입니다. 힘에 초점이 있는 거죠. 덩치가 크거나 이런 게 아니라 원심력, 회전력 이런 것을 말합니다. 다음 단계로는 연검(連劍)입니다. 부드럽다는 게 아니라 연속해서 쓴다는 거죠. 물론 연속해서 쓰려면 부드러움은 따라오겠지요. 연검에서는 검 동작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다음 단계로는 속검(速劍)으로 갑니다. 굉장히 빠른데, 간결해집니다. 모든 군더더기를 털어내는 거죠. 그다음 단계는 배우지 않아서 모르지만, 선생님 말씀으론 아주 느리다고 그러더라고요. 느리지만 부딪혔을 때는 그 강함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타난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예가 다른 문화 장르와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서 수련을 하다가 어느 때가 되면 대북이나 바라를 자연스럽게 같이 공부하기도 하죠. 대북이라는 게 사실 실제 두 손이 이렇게 같이 움직이지만, 가다 보면 미세하게 이렇게 움직임이 엇갈리거든요. 이렇게 움직이는 손들이 나중에 검을 들게 되기도 하고, 계속 분화가 되면 북채가 되는 겁니다. 형태의 다름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 장르들이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아요. 바라라는 것도, 단전에 쓰이는 거거든요. 춤이라든지 무예는 몸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흐름과 집중의 차이죠. 무예는 흐르다가 집중을 하게 되고 춤은 흐름을 다시 이어가는 거죠.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형태는 다르지만, 근본은 같아서 자연스레 이어질 뿐입니다. 똑같아요. 해보면 신기해요.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같은 탈춤 동작을 저희가 봤을 때는 무적인 부분이 그대로 인식이 되고 이해가 되죠. 저거는 무다. 집중만 시켜버리면 그리하죠. 탈춤하고 무예하고는 엄청나게 가까운 지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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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청학 선풍류조선검 전인./박청학 제공

고수

-무예에서 상당한 경지에 이르신 것으로 보이는데, 고수는 고수를 한눈에 딱 알아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고수를 만나면 숨겨진 느낌, 기세가 있죠. 단순히 우락부락하다거나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편안한 듯하나 어느 순간 눈빛이라든지 그런 느낌이 반드시 있죠. 왜 없겠습니까. 그 고수라는 것이 반드시 무예가 아니더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 있죠. 사업하시는 분도 있고, 언론사에 종사하시는 분 중에서도 정말 고수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하나의 기사를 통해서 전체를 통찰하시는 분이 계실 거라고요. 그렇다면 반드시 느끼게 되죠. 그래서 늘 하심(下心)할 수밖에 없죠. 단순히 몇 가지 재주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 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죠. 고수는 곳곳에 계시니까요."

-우리나라에 그런 고수가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나라 문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예전 선생님께서는 설악산을 중심으로 있는 '칠성검'을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스승님 주변에는 '용천검'도 있고요. 그처럼 문중으로 전해지는 법이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듣기로는 사천에 무예를 하시는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의 제자를 만났어요. 지역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런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경주에서 그런 분도 만나보고 잠시 얘기도 해봤었지요.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한 민족이에요. 다 드러내지 않지만, 인연이 되고 때가 되면 자연히 만나게 되는 것들이 곳곳에 있다는 겁니다. 아마 모르는 것은 인연이 안 닿았을 뿐이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분야는 다르지만 곳곳에 각자의 색깔로 공부하시는 분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어디 나가서 내가 뭘 한다는 얘기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큰일 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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