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도 다른 이에게 희망 줄 수 있어요"

'도레미파솔라'의 '미솔라'에서 따온 이름과 미소 띤 얼굴이 잘 어울린다. 이미소라(44) 사회복지사는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에 있는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공대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수학학원을 운영해 온 뼛속 깊은 공대생이었다. 그러다 덜컥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마치 원래부터 해야 했던 일처럼 사회복지사 일은 미소라 씨에게 아주 잘 맞았다. 새내기 사회복지사의 일과 꿈,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깡통라디오'라는 독특한 이름의 모임 등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미소라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사회복지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자연대라고 하는데 공대를 나왔어요. 결혼하고 나서 28세부터 수학학원을 15년 정도 운영했어요. 학원 수업은 오후에 시작하니까 오전에 시간이 많았어요. 성당에 다니니까 거기서 도시락배달 같은 것도 하고 관심은 약간 있었지만 그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랬던 미소라 씨는 사회복지 대학원에 입학한다. 시간과 거리적인 요건이 맞았던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야간과정으로 공부했는데 사회복지를 전공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어떤 건지 궁금했어요. 거제와 학교가 있는 진주를 왔다 갔다 했죠. 그러다 진주에서 선배가 하는 식물조직배양연구소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전공이 그쪽이니까 그 일이 너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학원을 오래 하기도 했으니까요. 남편도 '그래, 하고 싶은 거 해라'(웃음) 그래서 진주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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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소라 사회복지사./서정인 기자

연구소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학원을 운영할 때에는 일할 때는 일하고 시간이 나면 고민 없이 푹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연구소 일은 한시도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일 자체는 좋았는데 너무 얽매이게 되는 거예요.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작업들을 하니까요. 선배가 저를 믿고 맡겨줬으니 주말에도 신경이 쓰여서 그걸 버리고 놀러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만뒀죠. 어떡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중에 진해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 모집 공고가 뜬 걸 봤어요. 휴직한 분 대신 1년 동안 일 할 수 있는 자리였죠."

지역민들의 보배,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미소라 씨는 공부를 하면서도 사회복지 용어가 생소하고 간접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배운 것을 현장에서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기회가 온 것 같았다. 1년이라는 시간도 적당하게 느껴졌다. 덜컥 합격을 했다. 미소라 씨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 번 와본 적도 없는 진해에 왔다. 배치받은 곳은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 부설 노인복지센터. '1년 동안 좋은 경험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파이팅을 외쳤는데 상황은 생각지 못 하게 돌아갔다. 입사하고 정확히 2주 만에 정직원 자리가 났다.

"복지관 내에 있는 진해 시니어클럽이라고, 어르신들 일자리 사업하는 곳에 자리가 나서 그쪽으로 가게 됐어요. 계속 복지사로서 일하게 된 거죠. 그렇게 일하다가 작년 2015년 1월 1일에는 여기 통합 사무실에 배치받아 왔어요. 그때부터 사례관리 업무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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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소라 사회복지사./서정인 기자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의 허브역할과 함께 넓고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복지사 업무의 꽃이라 불리는 사례관리 외에도 다문화가정지원사업, 밑반찬배달사업 등 복지관 업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비스제공 활동,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사회조직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와 진해노인복지센터, 그리고 기부받은 식품을 나누는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복지타운'이라고 해도 넘치는 말이 아닐 듯했다.

"한부모자조모임, 노인한글교실 같은 프로그램도 여러 가지 진행하고 있고요. 청소년들 방과 후에 와서 프로그램 하고 집에 귀가까지 시키는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를 하고 청소년수련관도 따로 있어요. 노인을 위해서는 시니어클럽, 노인통합지원센터가 있고 저소득 주민들에게 자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자활센터가 있죠. 아,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 보배어린이집도 있고요."

미소라 씨와 함께 복지관을 둘러보았다. 경남에 있는 복지관 중에 유일하게 갖추고 있다는 체육시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수영, 헬스, 스쿼시, 사우나의 이용요금은 시세에 비해 아주 저렴했다. 요금만 내면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했다. 헬스장에서는 이미 많은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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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 내 생활체육시설./서정인 기자

대상자 개개인에 맞는 복지 행하는 일

미소라 씨는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례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사례대상자를 선정한 후 대상자의 환경과 욕구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을 시작으로 복지관에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사례 관리를 진행한다. 미소라 씨는 사례 관리가 대상자의 강점을 찾고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먹을 쌀이 없다고 쌀을 갖다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는 일이에요. 대상자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게 서비스 중심 복지와는 다른 점이죠. '이 사람이 왜 쌀을 살 돈이 없을까?' 의문을 가지고 대상자와 함께 환경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리고 어떤 교육을 받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지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하죠."

대상자를 찾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주로 경찰서나 구청, 주민센터 등 여러 기관에 공문을 발송한다고 한다. 기초수급을 받는 사람들은 대상에서 제외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찾는 거죠.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와요. 만약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가 좀 이상하다, 집에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조사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오면 팀장님하고 방문해서 알아보고 직원분들과 회의를 해요. 그걸 통해서 사례관리에 들어갈지 결정을 하죠. 집중 사례, 일반 사례, 단순 사례가 있는데 나눠서 관리하고 있어요. 집중 사례는 한 복지사당 다섯 케이스를 하고 있어요. 한 케이스 하는 데도 엄청난 힘을 들여야 해서요."

사회에서 가장 구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 미소라 씨는 가슴 아픈 기억이 많이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는 일과 마음을 분리해야 한다고 하는데요.(웃음)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그게 잘 안됐었어요. 구청에서 쌀이 없는 집이 있다고 전화가 왔어요. 혼자 봉고차를 몰고 나갔는데 쌀만 없는 게 아니었어요. 냉장고도 없고 그냥 집에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아이가 셋이나 있었는데요. 남편분은 일을 거의 안 하는 상태였고, 아이들 어머니를 만났는데 몸에는 뼈만 남아있었어요. 밥이 너무 먹고 싶은데 쌀이 없다고 그러셨어요. 눈물을 참느라 얘기를 더 이어가지도 못 할 정도였어요."

더운 여름, 시원한 물 한 잔 마시지 못 하는 가족의 참담한 환경은 충격적이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미소라 씨는 SNS를 통해 착잡한 마음을 글로 올렸다.

"다음 날 보니 댓글이 막 달리고, 도와주고 싶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니 감동적이었죠. 냉장고도 후원을 받았어요. 다른 것보다 이 더운 여름에 냉장고도 없는 게 충격적이어서 냉장고부터 일단 들이고 하나하나 진행을 했죠."

급한 상황을 해결하고 나서는 사례대상자와 대화를 시작한다. 사례 관리 일을 하면서 어떤 극한 상황보다 힘들 때는 사례대상자에게 변화할 의지가 없을 때라고 했다.

"우리도 주머니 사정 안 좋을 때는 밖에 안 나가려고 하잖아요.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은 보통 형편이 극도로 안 좋은 분들이 많으니까 집에 그냥 있으려고 해요. 우울증처럼 계속 파고드시는 분들, 개선 의지가 없으신 분들…. 그런 케이스가 힘들어요. 만나고 와서도 다음 날 연락이 안 되면 바로 찾아가서 봬야 마음이 놓이고요. 일단 그분들을 밖으로 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둘레 사람을 만들어 드리는 작업도요. 이웃들과 교류하지 않는 분들이 많거든요. 가족이 있어도 안 만나던 분이라면 가족과 만나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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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소라 사회복지사./서정인 기자

사례관리대상자 스스로 만든 자조모임 '깡통라디오'

미소라 씨는 주민공동체 '깡통라디오'를 자주 언급했다. 깡통라디오는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대상자들이 스스로 만든 자조모임의 이름이라고 했다. 집에만 갇혀있던 사례대상자들이 복지관을 만나 사회와 소통하게 되었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분들은 여전히 힘들어요. 중요한 건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긴 거죠. 모여서 삶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교류하면서 긍정적 영향을 받죠. 한 달에 두 번 모여요. 한 번은 모이는 분들께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지 여쭤보고 강사를 섭외해서 교육받으실 수 있게 하고, 또 한 번은 오셔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틈틈이 DIY 제품 같은 것도 만들어요."

'깡통라디오'는 1962년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이라는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라디오다. 문맹으로 잡지나 신문을 읽을 수 없고, 전력조차 구할 수 없는 개발도상국 빈민들은 외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빅터 파파넥은 사람들이 버린 깡통을 밑 재료로 하고 밀랍이나 배설물로 동력을 얻어 사용할 수 있는 라디오를 만들었다.

"사례대상자 중 한 분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우리 모임이 세상과 소통하는 마음으로 하는 모임이니까 '깡통라디오'라고 하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정했어요.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요. 다들 친하게 잘 지내고 적극적이세요. 한부모가정인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도 다 데리고 와요."

'깡통라디오' 멤버들은 자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드라이플라워, 석고방향제 같은 것을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만든다.

"만드신 것들을 복지관 로비에서 팔아봤는데 너무 잘 팔리는 거예요. 거기서 또 희망을 얻었죠. '하니까 되더라' 이런 용기가 생기는 거예요. 저 없이도 자조모임 분들이 시장조사 삼아(웃음) 프리마켓 구경을 다녀오시고 그러더라고요. 너무 대견하고 좋았죠. '깡통라디오' 전에는 '기적질문프로젝트'라는 걸 했어요. 말 그대로 질문을 해요.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물으면 '기적이 일어나겠나?' 하시면서도 얘기를 해주세요. 대부분 말씀하시는 게 가족과 여행을 가고 싶다는 거예요. 여행을 가지 못한 가족, 놀이동산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럼 저희가 그 기적을 만들어드리는 거죠."

할머니 혼자 아이 넷을 키우는 집이 있었다. 아이들 아빠는 지적장애가 있고 엄마는 세상을 떠났지만,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아직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너무나 아이들을 사랑하셨어요. 아이들이 기차를 한 번도 못 타본 게 마음에 걸리셨나 봐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진주에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할머니 고향인 남해로 가서 여행을 했어요. 너무 뭉클했어요. 여행 전에는 가족회의를 통해서 여행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가족끼리 소통을 하는 거죠.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봤죠."

'깡통라디오' 멤버들은 활기차게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팟캐스트 출연 계획도 세웠다.

"팟캐스트 '우리가 남이가' 출연 계획이 있어요. 이분들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인데, 잘 나가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도 라디오 녹음 한번 해볼 수 있잖아요. 다른 분들이 할 수 없는 얘기를 이분들이 들려주실 수 있잖아요. 자존감도 높아지고 책임감도 더해지실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이라고 가라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라디오 녹음도 하는 자기들을 보고 다른 힘든 분들이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세요. 아마 7월 말쯤 할 것 같아요. 오후에 봉고차로 모셔가서 근처 번화가 구경하고 밥도 먹고 그렇게 하고 싶어요. 신나는 추억을 만드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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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라디오 멤버들이 직접 만든 드라이플라워 소품.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노인 문화 공간 만들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사회복지사를 더 빨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웃음) 이 일에 만족해요. 일을 할수록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 날 때마다 인문학이나 다른 공부도 하는데 다방면을 알아야 제대로 된 복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소라 씨는 다른 사회복지사들과 교류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경남에서 일하는 복지사들 중 마음 맞는 이들이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사가연(사회복지 가치실현을 위한 연구모임)', 밀양에서 복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복지요결이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책사넷(책을 사랑하는 네트워크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미소라 씨에게는 선명한 목표가 하나 있다.

"제가 복지관에 취업하기 전에 부모님이 두 분 다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고아가 된 거예요. 남편도, 가족도 있었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진해에 왔는데 종합복지관 소속이 되기 전에 일했던 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된 때라 어르신들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정이 너무 많이 갔어요. 진짜 엄마, 아빠 같고…. 근데 일 년 만에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어요. 어르신들도 우시고 저도 울고 그랬죠."

그곳에서 그려오던 계획이 있었다.

"제주도에 못 가본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젊은 사람들이야 요즘 제주도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수 있잖아요. 어르신 중에 누가 계 모임에서 다녀오시면 너무 부러워하시는 그 모습들을 잊을 수 없어서 내년에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웃음) 제주도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발령이 나서 약속을 지키지 못 했어요. 늘 마음의 짐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걸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놀 공간이 많잖아요. 근데 어르신들이 가실만한 곳은 복지관이나 경로당밖에 없어요. 그래서 공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컨테이너부터 시작하더라도 비 오면 부침개도 부쳐 먹고 소통할 수 있는 어르신 문화 공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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