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못하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됩니다."

각종 강력 범죄와 대형 사고로 사회에 불안감이 높다. 이러한 사건·사고 후에는 피해자들의 심리 상담을 하기도 한다. 정신적 외상을 우려해서다. 여러 '큰일'을 겪으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신영민(62) 창원병원장은 큰 사고·사건으로 정신적 외상을 받은 사람이 있을 때, 주변에서 '지지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신의학(Psychiatry)은 정신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이나 행동 문제, 나아가서는 건강과 병적 상태에서의 개인행동을 연구하고 치료한다. 현대인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신체는 물론 정신이 혹사당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지만 병원 가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가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을 바꾼 것은 그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정신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정신건강'을 다룬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왜 도망가지 않았냐고요?

얼마 전 남해고속도로 창원1터널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양산교육지원청 사고대책본부는 사고를 당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신 병원장은 누구나 사건·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창원병원은 근로복지공단 소속의 산재병원이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가 종종 있다고 한다.

"PTSD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전쟁을 겪은 젊은 군인들이 한참 후 우울과 불안, 자신감 결여 등 고통을 겪는 것을 발견하면서 개념화됐습니다. 창원은 공장이 많아 사업장 폭발사고나 추락 등의 사고가 많습니다. 이때 본인이 죽을 뻔 했거나, 동료가 죽었는데 자신이 살았을 때 산업 현장에서 트라우마가 생겨 PTSD를 겪을 수 있습니다."

신 병원장은 일반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게 되지만 트라우마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대항하지 못 하고 정지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왜 도망가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심각한 위협을 느끼면 소리 지르지도 도망가지도 못 하고 꼼짝 못 합니다.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 상황에서 '어~어~' 말만 하며 피하지 못 하기도 하죠."

01.jpg
▲ 신영민 창원병원장./김구연 기자

자신이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거나 가까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목격할 때, 혹은 구급대원이나 소방관처럼 끔찍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PTSD에 시달릴 수 있다.

"큰 사고를 겪으면 누구나 놀랍니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 오죠. 사고가 자꾸 떠오르고 악몽을 꾸거나, 잘 놀라거나, 멍하게 있는 등의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서 진단 기준에 부합하면 PTSD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PTSD는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 1년 있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 이후 10~20년 후 증상을 경험한 사람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가 PTSD에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관련 학회에서도 대응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지적 환경 조성이 중요

극복하기 힘든 정신적 외상을 겪었을 때 제일 좋은 치료는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신 병원장은 설명했다.

"사고를 당한 후 그 장소나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심리입니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대인 접촉을 피하기도 하죠. 이때 가족과 친구들의 이해가 큰 도움이 됩니다. 혼자 있게 하지 말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신뢰를 줘야 합니다. 증상이 줄어들면 원래 상황, 즉 직장이나 학교에 빨리 복귀하는 게 좋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노출돼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서 심리적 외상이 오래 갈까.

"물론 개인차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 등 개인적인 부분이 영향을 주죠. 개인의 취약성이 관여됩니다. 또한 도와주고 이해해 주는 환경이면 비교적 빨리 치유됩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는 오래 가겠죠. PTSD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피하거나 자극하지 말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지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02.jpg
▲ 신영민 창원병원장./김구연 기자

어설픈 공감은 피해야

주위에 큰 사고나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위로'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로가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신 병원장은 말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것.

"잊어버리라거나 다른 사람은 죽었는데 너는 살아서 천만다행이라는 말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큰 사고는 뉴스를 통해 되풀이해서 나오는 데 이런 것도 사고 당사자는 피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당사자에게 다시 그 끔찍한 상황을 불러일으키므로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을 가지고 피해자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데 그건 피해야 합니다. 피해자는 놀란 마음과 더불어 죄책감도 가지고 있는데, 계속 사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것은 고통을 악화하는 겁니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신 병원장은 '공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공감하지 못 하는 말보단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죠.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 '어떤 심정인지 잘 안다' 등의 위로를 많이 하는데, 피해자와 가족들은 쉽게 공감하기 힘든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에 '그러니까 참아라'라고 하는 뜻이 내포돼 있다고 생각하죠. 그냥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묻는 게 낫습니다. 어설픈 말보다 어깨를 두드려 주는 등의 작은 신체 접촉이 도움 되기도 합니다."

평소 '건강한 정신'에 도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건강한 정신이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술이나 커피, 담배 등은 자극이 되니까 피해야 합니다.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 조금이라도 견딜만하면 평소 모습으로 복귀를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중요하죠. 스트레스는 에너지가 빠져나가 탈진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를 만회하는 데 잠이 도움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맛을 잃기도 쉬우므로 제때 음식을 챙겨먹으라고 조언합니다."

03.jpg
▲ 신영민 창원병원장./김구연 기자

외가에서 산 소중한 4년

대전에서 태어난 신 병원장은 10살 때 서울로 갔다. 전기 기술자로 철도청 대전역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가 서울의 건설회사로 직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6살 때였다. 충남 부여군 시골에 있던 외가에 놀러 갔다. 친손자가 없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신 병원장에게 사랑을 듬뿍 쏟았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신 병원장은 그곳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곳에서 살다가 초등학교에 입학까지 했습니다. 4년가량 살았는데 시골에서 생활했던 당시 추억이 내가 평생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 하는 흙, 자연의 정서를 한껏 누렸죠. 부모님이 서울로 갈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신 병원장은 "꿈이 없는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와 이과를 나눕니다. 고1 때 생각해보니 문과에 가면 법대나 상대에 가는데, 인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문과가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이과를 갔는데 기술계통의 공대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대를 가게 됐죠.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한 이유요? 수학을 잘 못했어요. 국어에 더 관심이 있었죠. 의대를 다니면서 문과적 취향을 살릴 수 있는 과가 정신건강의학과라고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적성에 맞았습니다."

리더와 엄지손가락

신 병원장이 병원 경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무렵이다.

"의약분업 사태를 보면서 의사가 진료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의사가 하던 일이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경영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환자와 1대 1, 즉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러한 1대 1의 관점을 1대 여러 명으로 확장하게 된 거죠. 경영학과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의료 환경도 의사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변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리더'는 타고난다고 생각했다. 리더란 추진력이 있고 사교적이어야 하는데, 내성적인 자신은 리더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2000년 의약분업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경영 공부를 하면서 리더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제대로 된 경영 철학, 직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리더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리더는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엄지손가락? 신 병원장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중지·약지·새끼손가락과 하나하나 링을 만들어보세요. 엄지는 모든 손가락과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손가락들은 되긴 하지만, 엄지만큼 자연스럽게 되진 않아요. 조금씩은 불편하죠. 엄지가 모든 손가락과 맞출 수 있다는 말이 참 와 닿았습니다. 또 주먹을 쥐어보세요. 다른 손가락, 즉 직원들이 힘들 때 다 감싸주면서 외부와 싸울 수 있는 모습을 갖춘 것이 엄지손가락, 즉 리더입니다. 물론 리더가 힘들 때는 직원들이 감싸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평소 리더가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대충 편법을 쓰면 나중에 결국 오해를 불러일으켜 반발이 생깁니다."

2013년 창원병원장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온 신 병원장은 용인정신병원과 서울의료원 등에 있다 지난 2013년 창원병원장으로 부임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신 병원장은 2012년 10월 임기가 끝나면 독일에 사는 처형과 스페인 여행을 하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사정상 못 가게 됐는데, 갑자기 사천에 있던 선배에게서 급하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경남에 발을 딛게 됐다. 2개월 근무하기로 했는데, 결국 5개월 동안 사천에 있었다. 그러다 창원병원과 인연이 닿았다.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은 1979년 창원 주민과 공단 근로자 의료서비스 증대를 위해 건립, 운영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공단지역 노동자 건강진단, 보건관리대행, 작업환경측정 등 산업보건사업 기능을 갖추고 근로자의 직업병예방 및 치료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의 진료도 한다. 내과·외과·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치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 등의 진료과가 있으며, 281병상을 운영 중이다.

"4월 1일 취임했습니다. 3월 말 창원으로 이사했는데, 이삿짐을 싣고 오면서 본 벚꽃길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을 잘했구나 싶었죠. 지금도 서울 사는 친구들이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곤 하는데, 안 간다고 대답합니다. 이곳은 놀러 갈 곳도 많아요. 1~2시간 이내에 부산과 거제, 지리산, 여수, 순천 등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게 뭔지 아세요? 제철 음식을 현지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에 우리나라에서 좋은 것이 다 모인다고 하지만, 현지의 신선함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매일 걸어서 출근

신 병원장이 건강을 지키려고 선택한 것은 '운동'이다. 매일 운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즐겁게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고 밝혔다.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5시 30분 정도부터 한 시간 테니스를 하죠. 긍정적인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잘 안 받지만, 그래도 직원이 300명이 넘는 병원을 운영하려면 스트레스가 생기죠. 웃으면서 운동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없어집니다."

신 병원장은 창원에 올 때 부인과 함께 왔다. 부인도 창원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다른 운동은 하지 않을까.

"자동차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병원장이 되고 처음에는 버스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자주 없어요. 버스를 기다리다 어느 날부터 걸어 다녔는데, 그게 1년이 넘었네요. 집에서 병원까지 걸으면 30분쯤 걸립니다."

음식은 골고루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병원장이라 술자리가 많은데, 술 자체보다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고파

"오랫동안 활동하는 것이 꿈입니다. 나이가 들면 일하는 게 지겹다, 쉬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뭔가 활동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의사로서, 경영자라서 봉사든 뭐든 80세까지는 현역으로 활동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주고 같이 어울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방송인 송해 선생을 보세요. 90세가 돼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게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물론 그러려면 체력이 뒷받침되고 정신이 온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노력해야죠."

병원장으로서의 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창원병원은 일반 환자도 진료하지만 산재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긴 병원입니다. 일하다가 다친 사람이나 그 가족이 아플 때 찾을 수 있는 병원, 친절하게 적절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병원으로 제 역할을 다할 겁니다. 창원에는 큰 병원이 많습니다. 주변 큰 병원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재활이 특화된 병원으로 자리매김 해 나가면서 일반 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