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더슨 터치'

2014년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애드리언 브로디 등 화려한 캐스팅, 기상천외하면서 미스터리한 스토리 전개, 아름다운 색채의 미장센으로 입소문이 났다. 국내 누적 관객 77만 명, 상영관이 많지 않은 예술 영화인 데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는데 이례적인 흥행이었다.

이 영화감독은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 출신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문라이즈 킹덤>, <다즐링 주식회사> 같은 전작들도 인기를 얻었던 이 감독은 자신만의 미학적 요소를 화면에 완벽히 구현하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앤더슨 터치', 앤더슨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일컫는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앤더슨 터치'의 시작과 같은 작품이 이번 호에 소개하는 <로열 테넌바움>(The Royal Tenenbaums, 2001년 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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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열 테넌바움> 스틸컷.

변호사 아버지 로열 테넌바움과 고고학자인 어머니 에슬린 테넌바움. 두 사람에게는 마고, 채스, 리치 즉 세 명의 아이가 있다. 큰 딸 마고는 입양한 자식이다. 글솜씨가 좋아서 15살 나이에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둘째 채스는 10대 초에 이미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됐다. 셋째 리치는 주니어 챔피언 테니스 선수로 3년 연속 US 오픈 타이틀을 땄다. 그러니까 삼 남매는 하나같이 천재'였다'. 부모가 별거하기 전까지 말이다. 20여 년이 흐르고, 별거 이후 쭉 호텔에서 지내던 아버지 로열이 집으로 돌아온다. 암에 걸렸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며.

'가족'. 인생에서나 대중문화에서나 닳고 닳은 그 주제. 콩가루였던 가족이 서로 부대끼며 화해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어쩌면 좀 뻔한 이야기는 '앤더슨 터치'로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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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열 테넌바움> 스틸컷.

앤더슨은 우선 영화에 연극의 형식을 차용해 영화를 총 10장으로 나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8장을 8명의 등장인물이 각 장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며 관람객이 그저 독특하고 제멋대로인 듯 보이는 인물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앤더슨은 그 속에 (전매특허라고 할 만한) 블랙 유머를 섞는다. 동화책을 구현한 듯한 파스텔톤 미장센에 과감히 죽음의 그림자도 다져 넣는다. 필라, 라코스테, 아디다스부터 에르메스까지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패션 아이템을 착착 뿌리고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에 대한 애정을 살짝 올려 마무리.

별거 아닌 재료로 얼마나 멋들어진 요리을 내놓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이 영화는 한 편 영화가 '감독의 예술'임을 절절하게 말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는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감독의 연출이 특히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웨스 앤더슨과 스탠리 큐브릭이 다르고 오즈 야스지로와 장 뤽 고다르가 다르듯이 말이다. (나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영화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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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열 테넌바움> 스틸컷.

그래서일까. 한국 영화가 시작하기 전 감독, 주연 배우 혹은 영화 제목보다 투자 제작사, 영화사, 투자자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아쉬운 것은. 제작사나 투자자가 영화의 결말까지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탈함이 든 것은. 그러니 독특한 상상력과 스타일을 지닌 감독이 보기 드물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감독의 예술로서 영화가 귀해진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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