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주주의 아닌 관주주의 시대, 이대로면 나라 망한다"

사천, 정확하게는 '삼천포'가 고향인 김대호(53)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을 만났다. 삼천포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고등학교(52회)를 거쳐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했다. 학생운동, 야학, 노동현장 취업, 정치 현장을 오가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차장, 인천광역시장(송영길) 경제사회특보 등을 역임했다. 지금 김 소장은 사회디자이너, 사상이론가, 경세가(經世家) 등으로 불린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관료가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는 김 소장과 같은 정책 전문가들의 손길이 미치기 마련이다. 국가 전체의 시스템을 조망하지 않고 그 핵심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정책(법안)이라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국가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곧 '사회+디자인'이라는 말을 생성시켰을 법하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종합담론 생산기지" 

-사회디자인연구소에 대해 설명한다면요.

"우리의 고객은 여의도라 할 수 있는데, 정치컨설팅을 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컨설팅이 선거에서 이기는 전략을 도움 주는 것이라면, 제가 파는 건 경세방략입니다. '국가를, 지방자치단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가 제가 파는 상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연구소 같은 개념입니까?

"특화된 전공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서 수많은 전문가와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T자형이라 볼 수 있는데, 넓으면서도 깊이가 있어야 하는 분야입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고용, 노동, 산업 정책 쪽으로 특화돼 있고 지방자치단체 정책 역시 전공분야라 할 수 있어요. 교육, 보건, 의료 등도 포함하는 종합담론을 생산하는 셈입니다. 사상이나 이념으로 볼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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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임채민 기자

-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하며 군왕에게 유세를 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과거 같으면 군왕이 비즈니스 대상이고 저는 유세객이 되는 셈인데,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니 국민이 왕이고, 우리는 국민을 대상으로 유세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나 국회의원 후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은 왕 밑에 있는 신하쯤 된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술활동을 하면서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왕 바로 밑에 있는 1등 신하(대통령 후보), 2등 신하 등을 대상으로는 컨설팅도 하고 자문도 하고 있는 셈입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의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적은 2월쯤 가졌는데, 큰 재미는 못 봤습니다. 원래는 민주당 쪽에서 유세를 했는데, 문재인 전 대표와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하지만 사회역사적 통찰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공공일자리 늘리겠다는 문재인에게 한계 느꼈다"

김 소장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를 일컬어 "총체적 후진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왜 그런지, 그의 시각은 이러했다.

"종합적 통찰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예컨대 2012년 문재인 전 대표의 공약집을 보면 '경제민주화의 문', '일자리의 문' 등 5개의 '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자리의 문'이 가리키는 방향이 공공부문을 늘리겠다는 거였어요. 유럽에서는 일자리 확대를 위해 공공부문을 늘리긴 하지만 한국과 유럽의 공공부문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지방자치가 발전한 유럽에서는 주민들이 공공사무를 처리할 사람을 자기들 돈으로 고용하는 개념이라면, 우리 나라의 공무원은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자칭 군자이면서 백성을 계도하는 존재, 즉 특권적 존재들입니다.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식민지 때는 조선총독부 관리들이 그러했고, 해방 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공무원과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존재는 국민이 되어야 하는데, 정치인에게 그 공이 넘어가 있어요. 그런데 선출직 공직자는 그 집단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공공부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무원 평균 연 소득이 6000만 원 정도 될 것이고, 여타 부대비용인 연금이나 복지포인트 등을 다 합치면 공공부문 종사자 1명에게 연간 1억 원이 들어갑니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이거는 뭐, 가렴주구를 한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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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김대호 제공

문재인 전 대표나 더민주 주류들은 단순 GDP 비교를 통해 선진국에 비해 공공부문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직업군인이라든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월급 주는 사립학교 교원들은 빠진 수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민간부문의 중위 월급 수준이 200만 원 정도입니다. 공공부문은 1인당 연간 1억 원이죠. 이처럼 말이 안 되는 현실을 종합적으로 파악을 못하니까, 단순 수치만 보고 공공부문을 늘려야겠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면 공공부문을 늘리자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식이니까,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고 '관주주의'라는 말이 나옵니다. 관이 주인이고 공공이 양반이 돼 있다는 거죠."

"시장, 기업은 탐욕이고, 국가는 정의롭고 공공적인가?"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습니까.

"어려워도 반대로 가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쪽(문재인)은 제 문제의식을 수용하지 못하더군요. 70∼80년대 진보적 철학이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걸 단순화해버립니다. 사람이 먼저고 이윤추구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서 세상의 모든 악이 생겼어'라고 80년대 대학생 수준으로 접근해버립니다. 문재인이 좌파라고는 생각은 안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시장과 기업은 탐욕스러운 존재고 국가는 정의롭고 공공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시장을 향해서는 '사람이 먼저야'라고 하면서 재갈을 물리고, 공공부문은 비대하게 만들자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현 정치구도에서는 어느 쪽에서든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도 같습니다.

"양강 구도를 만들어온 선거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좌든 우든 잘 조직된 극단주의 세력의 규모가 커지고 있어요. 잘 조직된 편향된 세력일수록 양대 정당 구도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금의 선거제도로 인해 편향된 세력이 양당에서 큰 지분을 형성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친노가 그런 세력이라고 봅니다.

저는 '희망버스(한진중공업 사태)'를 '절망버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망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라면 망할 수가 있는 건데, 인력 구조조정을 못 하게 해요. 이러면 비정규직 투자 위축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력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용보험 강화 계기로 삼고, 임금 삭감을 포함한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년 연장법과 공공부문 확충 역시 반대하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대화와 타협 통해서 풀 수 있는 건데 이를 극단으로 몰아가서 직권상정하게 하고 필리버스터를 하는 행태는 사회적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운 투쟁처럼 포장을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대한민국에 위기가 오고 있는데 위기 타개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조선산업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밀쳐 놓고 소모적인 민주투쟁만 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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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김대호 제공

"진주의료원 폐업, 양 극단이 부딪힌 것…저열한 정치"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단행할 때도 공공부문 개혁 필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공서비스를 굳이 공무원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인 추세를 봐도 그렇죠. 공공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많습니다. 바우처 방식이든 보조금 방식이든 시장에 맡기고 규제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무원이 해야 그게 공공서비스고, 이른바 민간이 하면 저급한 서비스라는 희한한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언론도 민간 언론이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물론 진주의료원 폐업은 홍준표 지사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있는 건데, 극단이 극단을 부르듯 손뼉이 마주친 현상이라 봅니다. 저쪽(노조)에서도 국민 상식 수준의 운영을 하지 않았고, 그러니까 이쪽(홍준표)에서는 정치적 칼라를 내세우기 위해 폐업이라는 극한 카드를 내세운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에는 이런 극한 경우가 수없이 많습니다. 어느 한쪽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악당이라서 각종 사회 문제가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문제 해결을 한다는 방법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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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맨 오른쪽)./김대호 제공

오세훈도 그렇고 홍준표 역시 의도가 뻔한 거 아닙니까. 보수 진영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싶었던 거죠. (저쪽에 오세훈과 홍준표가 있다면) 이쪽에는 이재명(성남시장)이 있다. 이재명도 계속 정부와 대립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쪽 진영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홍준표와 이재명은 비슷하다고 봅니다. 둘 다 천박해요.

역사에는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히틀러가 이런 수법을 가지고 가장 성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등은 문제를 극단적으로 몰고 간 국가 사례입니다. 그렇게 나라가 결딴나기도 했어요."

"국민의당, 양당 독과점 체제 균열 효과는 있을 것"

-국민의당이 새로운 대안 정당이 될 수 있을까요.

"생산적 경쟁구도는 짜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채우느냐 여부는 다른 문제죠. 국민의당 역시 저열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낙관할 수 없지만 구도를 보면 국민의당으로 인해 이전보다는 생산적인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왜 그런가요?

"양당 독과점 체제에서는 자신의 전망을 내세우면서 앞서서 뛸 필요 없이 앞서가는 사람 다리를 거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양당 독과점 체제에서는 빨간물 뿌리고 구정물 뿌리는 전략이 기본이죠. 친북좌파라는 빨간물, 친일독재 부패 세력이라는 구정물을 뿌리는 게 아주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어느 한쪽이 집권하면 다른 쪽은 '우린 다 죽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기는 게 정의가 되고, 이기는 게 선이 된다. 이기고 나서 모든 걸 생각하겠다는 자세죠. 그런데 이기고 나서 잘 되냐면, 절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진 쪽에서는 이긴 사람이 실패를 해줘야 정치적 기회가 온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의 모순과 부조리가 이만큼 심화돼 있습니다. 그래서 제3당이 국회에 들어가게 되면 (앞서가는 사람) 다리 거는 전략이 안 통하게 됐다고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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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김대호 제공

"단체장들과 공무원들만의 자치는 안 돼"

-지방자치에 대한 의견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권능과 예산을 더 달라고 합니다. 합당한 요구입니다. 그렇지만 지자체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렇게 받은 권능을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에게도 줄 게 있습니다.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도 있을 것이고, 시장에 보낼 게 있으면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권능과 예산을 달라고 아우성치면서도 지금 가지고 있는 권능과 예산을 합리적으로 분배를 못하고 있는 듯해요. 지금은 단체장의 자치, 공무원들의 자치입니다.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로 전달되는 권능은 단체장과 공무원들만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보직이 아마 지방자치 단체장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속 천착해갈 문제의식을 밝힌다면요.

일단은, 대한민국의 치명적인 문제는 양극화와 저성장 불평등 문제입니다. 새롭게 추가되는 문제는 주력산업 위기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기후변화와 북핵 위기 문제 역시 중요해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불평등과 양극화, 저성장 문제입니다.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대응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착취의 관점에서만 볼 뿐이죠. 재벌과 대기업이 많이 쳐먹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면적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도대체, 구조가 어떻게 돼 있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만 있습니다. 이렇게 헤매기만 하면 주력산업 위기 타개할 수 없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도 없어요.

위와 아래, 안과 밖, 산업, 노동, 금융, 정치, 이데올로기, 공공, 지방자치, 교육 등을 두루 살피며 전체를 봐야 하는데, 이런 건 대학 전공이 될 수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진단하는 게 우리 연구소의 사명입니다. 수많은 전문가와 활동가들, 그리고 정치인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연구·토론을 통해 저술활동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그 저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또 토론하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도출해나갈 생각입니다. 당장 한국 정당이 바른길을 가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국민의당이 우선협상대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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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맨 오른쪽)./김대호 제공

김대호 소장과 만나기 위해 서울 마포구에 있는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찾았을 때, 김 소장은 어딘가에 계속 전화를 하고 있었다. 팩스를 보내고, 확인하느라 분주해보였다.

인터뷰 후 그의 페이스북을 보니 '전화·팩스 작업'에 여념이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일상 속에서 사회 부조리를 캐치하고 분석하는 정치적 감수성이랄까? 끊임없이 민감하게 작동하는 촉이 느껴졌다. 당시 김 소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요약해서 여기에 소개해본다.

"사무실 1월 전기요금이 46만 6050원(897kw), 2월 49만 9050원(940kw), 3월 19만 3310원(561kw), 4월 5만 5840원(287kw) 나왔다. 전화 몇 통 돌려서 이를 사무실용(일반용) 전력(5kw)로 바꿔서 요금을 조정하니 2월이 13만 3650원, 3월이 8만 3750원, 4월이 6만 3100원이다. 2011년 말에 출간한 '2013년 이후'에서도 성토한 내용인데, 한국 전기요금 체계의 패악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한국의 징벌적 요금 체계로 인해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2012년 기준 1278kWh로 OECD 평균(2335kWh)의 55%, 미국(4374kWh)의 29%, 일본(2253kWh)의 57%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정용, 산업용, 공공·상업용까지 합친 1인당 전체 전력 소비량은 한국이 1인당 9628kWh로 OECD 평균(7407kWh)을 크게 웃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90.3원인데, 한국 요금을 100으로 치면, 일본은 244, 독일은 214, 영국은 174, 프랑스는 166이다. 2002년~2011년 기간 동안 발전연료비는 23.3원에서 61.6원으로 264% 인상 되었으나 산업용 전기요금은 22% 인상(kwh당 73.9원에서 90.3원)에 그쳤다.

아는 사람은 대충 다 아는 내용일 텐데, 신기한 것은 이 말도 안 되는 부조리가 왜 여태껏 고쳐지지 않는가다. 개발연대에 만든 제도, 정책(기업에게 자원 몰아주기 등)이 어디 전기요금뿐이랴? 멀리는 현재의 헌법체계부터 전기요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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