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개봉했던 SF영화 엑스맨 시리즈인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메인급 캐릭터인 매그니토의 젊은 시절이 등장해서 엑스맨 영화 팬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초음속의 속도로 움직이거나 달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퀵실버는 관객의 재미를 더하는 캐릭터로 손꼽힌다.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하는 장면에서,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에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더불어 초고속으로 촬영된 퀵실버의 익살스러운 액션은 영화를 더욱 인상 깊게 만든다. 단순한 액션 장면을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예술성과 관객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걸맞는 음악에 대한 선택이 주요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영화로 거듭났을 것이다.

요즘 시간을 주제로 하는 스마트폰 광고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제품에 대한 인지보다 오히려 광고에서 나오는 노래에 대해 관심이 더 많으리라 여겨진다. 이와 같이 노래 한 곡이 대중에게 새롭게 인식되는 것은, 바로 기억 저편에 머물고 있는 추억의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내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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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언급된 노래는 지금처럼 음악에 관련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주선해 주신 지인의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다. 부부 동반으로 카페에 들릴 때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짐 크로스(Jim Croce)의 'Time In a Bottle(병 속의 시간)'을 따라 가볍게 흥얼거린다. 그러면서 프로포즈를 할 때 이 노래를 불러주었고, 감동받은 아내는 쾌히 결혼 승낙을 하였노라고 자랑스러운 일화를 들려 주신다.

두 대의 기타만으로 연주되는 'Time In a Bottle'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비견할 정도로 찬사를 받은 곡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기타를 좀 친다는 말을 들으려면 반드시 연주해봐야 하는 대표곡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 노래는 짐 크로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라 전해지고 있다. 결혼 후 5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던 아내 잉그리드(Ingrid)의 임신소식을 들은 그날 밤, 앞으로 태어날 그의 아들 에드리언(Adrian)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앉아서 바로 쓴 곡이 'Time In a Bottle'이었다.

포크 뮤지션이던 짐 크로스는 1943년 1월 10일 미국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악기연주에 소질이 있어 아코디언을 잘 다루었고 곧바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밀라노바 대학 시절 철학을 공부했지만, 가수가 되고 싶은 그는 밴드를 조직하여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쳐나간다. 그러한 무명시절에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망치에 오른손을 다쳐 손가락을 잃는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했다.

곱슬머리에 콧수염을 길러 터프가이처럼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감미로워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짐 크로스의 아내가 된 잉그리드는 열다섯 살의 소녀였을 때, 스무 살 대학생이던 그를 만났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함께 듀엣으로 활동하면서, 그가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했다. 짐 크로스의 대학 친구인 프로듀스 토미 웨스트(Tommy West)의 주선으로 뉴욕으로 옮겨간 두 사람은 캐피탈레코드와 음반계약을 맺고 'Jim&Ingrid'라는 그룹명으로 데뷔앨범 어프로칭(Appoaching)을 발표하였다. 뉴욕에서 듀엣으로 첫 앨범을 내고 활동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자 뉴욕 음악계의 현실에 실망을 안고 부부는 고향인 필라델피아로 간다.

고향으로 돌아온 짐 크로스는 생계를 위해 화물트럭을 몰거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많은 일들을 했다. 그때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소중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들이 나중에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계속해서 작곡을 하면서, 1971년 그동안 작업한 몇 곡의 데모테이프를 친구 토미 웨스트에게 보냈다. 당시 토미 웨스트는 뉴욕에서 테리 캐쉬맨(Terry Cashman)과 함께 캐쉬맨 앤드 웨스터라는 프로덕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 두 사람의 적극적인 지지로 짐 크로스는 ABC레코드사와 음반계약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프로 가수로 데뷔한 그는 1972년 'You Don't Mess Around With Jim'이라는 음반을 발표하면서 실질적인 포크 뮤지션으로 이름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 음반에 수록된 '오퍼레이트(Operator)'가 싱글차트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으며, 그 이듬해인 1973년 1월에 세 번째 음반인 'Life And Times'를 발표하는데, 특히 'Bad, Bad Leroy Brown'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리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또한 불후의 명곡이라 할 수 있는 'Time In a Bottle'과 'I Got a Name'이 싱글차트에서 히트를 치면서 짐 크로스는 순식간에 지성파 싱어송라이터로 부각되었다. 이 가운데 'I Got a Name'이란 곡은 1973년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영화 '라스트 어메리칸 히어로(Last American Hero)'의 주제곡으로 쓰였으며, 짐 크로스는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하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명성이 채 익기도 전 그에게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73년 9월 20일 루이지애너 주립대학에서 초청공연을 마치고 텍사스의 셔먼으로 이동하는 중, 비행기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30세였으며, 'Time In a Bottle'을 함께 연주했던 기타리스트 모리 뮬라이센도 이 사고로 절명했다. 그 날은 바로 그의 세 번째 음반이 출시되기 하루 전날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더했다.

하지만 그의 넋을 달래기나 하듯이 발표된 세 번째 앨범은 히트곡이 세 곡이나 나오는 대성공을 거둔다.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은 짐 크로스가 죽은 1970년 말 미국 ABC 방송이 제작한 텔레비전 영화 'She Lives(그녀는 산다네)'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2주간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음반 'You Don't Mess Around With Jim'은 다섯 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Time In a Bottle'은 1977년 제작한 짐 크로스의 사랑노래 컴필레이션 음반에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에 가면 'Croce's Restanrant& Jazz Bar'란 술집을 겸한 식당이 있다. 포크송 가수였던 짐 크로스의 미망인 잉그리드 크로스가 운영하는 곳이다.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남편 짐 크로스를 기리기 위해 1985년에 문을 연 식당에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찾아와 그를 추모하며 그의 음악과 함께 추억에 젖는다고 한다. 그리고 짐 크로스의 팬클럽은 2013년 9월에 그의 40주년 기념콘서트를 했다. 기억 속에 붙들어 놓은 짐 크로스를 다시 지금의 공간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그녀의 식당 벽면에 장식처럼 걸려있는 사진틀 안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흐르는 세월은 알게 모르게 나에게서 보물을 하나하나 빼앗아 갑니다. 세월을 얻기는 어렵지만, 세월을 잃기는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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