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실없는 소리를 듣게 된다. 경상방언에 "여럽다"라고 하면 실다움이 없는 사람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여래는 참말을 하고 헛된 말 하지 않고 말 바꾸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이상한 말을 하지 않는다.(如來는 是眞語者며 實語者며 如語者며 不.語者며 不異語者시니라)'라는 구절에서, 뜻이 중첩된다 싶어 한동안 의아해 했다. 그런데 우리가 내뱉는 말 중에는 다 같은 말 같아도 툭하면 말로 장난질을 하거나 짐짓 말을 바꾸고 입만 열면 거짓으로 하는 말, 앞뒤도 없는 이상한 말… 진심(盡心)과 속알이 빠져버린 가지각색의 말이 난무한다는 데 미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석은 일찍 자고 이른 새벽 2~3시에 일어나 그이가 사모한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골방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였고 말은 때에 따라 할 뿐이었다. 다석이 말을 아낀 두 가지 예를 보도록 하자. 성천 류달영의 증언이다.

당시 다석 선생의 인상은 160센티미터를 넘지 못하는 작은 키에 숱이 많지 않은 검은 수염을 길렀으며 아주 소박한 한복 차림의 선비형 인물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한 함석헌, 김교신, 송두용 등 이른바 <성서조선> 동인들은 다석 앞에서 몸가짐과 말을 조심했다. 다석은 여러 강사들의 강의를 하루 종일 꿇어앉은 채로 진지하게 들었으며, 강의가 끝난 뒤 회원들 간에 세상 얘기를 주고받을 때도 다석 특유의 웃음만 지을 뿐, 조용히 듣기만 했다.

박영호가 전하는 또 다른 일화를 보자.

1928년 다석은 아버지가 차려준 경성제면소를 직접 경영하게 되었다. 목사 김우현이 류영모를 보고 "천하 류영모가 솜 공장을 하다니 말이 됩니까?"라고 하자, "아버지께서 하라니 안 할 수 없어 하지요"라 했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솜 공장에 불이 나 적지 않은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겼으나 류영모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태연했다.

YMCA 연경반에서 강의를 듣던 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위로하며 왜 불 난 것을 말하지 않았냐고 하자, "장사해서 이익이 남으면 남았다고 어디 말합니까? 그러니 불이 나서 손해 보았다고 말할 것도 없지요"라고 말했다.

참 묘한 언표가 아닌가? TV 오락프로그램의 직업 예능인들을 흉내 내며 수다 떨고 과장된 웃음과 몸짓으로 나붓대는 요즘에사 더군다나 생각해 볼 일이다.

과시하며 뽐내고 절도를 잃은 무엄(無嚴)한 마음씀씀이 자본주의가 내밀은 인간의 박탈된 자아상일 수 있다. 이럴수록 성현의 말씀을 책상머리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동광원 <맹자> 강의 하나를 더 볼까.

모든 진리를, 이치를 우리말로 하면 올(이·의·승(理·義·昇))입니다. 올 중에 무슨 올을 제일로 압니까? 실올입니다. 목화를 심어서 실을 뽑을 줄 알고 천을 짤 줄도 압니다. 그 올이라는 것은 사실 길쌈하고 바느질하는 아낙네가 제일 잘 알리라 생각됩니다. 남자로선 목수나 미장이 노릇 하는 이들일 겁니다. 그들은 먹줄로 수평을 띄워 아무 곳이든지 똑바로 아주 반듯하게 놓고, 집을 바로 세우는 데 올을 바로 씁니다. 이 세상은 올을 바르게 해야만 삽니다. 올바로 못하면 살 수가 없어요.…올바로 하려면 올을 잘 풀어나가고 올을 반듯하게 쓸 줄 알아야 해요. 그러기에 모든 진리가 굵직하게 말하면 줄입니다. 줄! 실올을 매서 홑실이 되고 홑실은 약해서 겹실을 해야 하니 이겹실이든 삼겹실을 하든지 해야 해요. 또 겹실을 굵게 동아줄이 되도록 만들면 줄이 되는 거예요.

다석이 경전을 풀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처럼 우리말을 풀어서 여태껏 누구도 보지 못한 뜻풀이를 해내고 있는데 말장난이나 말놀이가 아니다.

다석학회 회장인 정양모 신부의 다석의 신명표기(神名表記)는 이렇다.

한국 가톨릭은 성경의 신을 하느님(천주(天主))으로 표기하고 한국개신교는 하나님(유일신(唯一神))으로 표기한다. 다석은 한웋님이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한웋님의 '한'은 하나라는 뜻과 크다는 뜻이다. '우'는 하늘(상천(上天)·천상(天上)), 곧 절대 초월을 뜻한다. 다석은 '우'에다 'ㅎ' 받침을 붙였는데, '우'를 뒤집은 형태가 'ㅎ'이다. 다석은 한글 한 자 한 자에 하느님의 영기가 서렸다고 보았던 까닭에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웋'이라고 썼을 것이다.

불자가 다석의 '웋' 자를 대하면 자연스레 비로자나불의 지권인을 떠올릴 것이다. 비로자나불의 손모양새(지권인(智拳印))는 두 주먹을 위아래로 포개 놓은 모양인데, 아래 주먹(중생계(衆生界))은 집게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위 주먹(불계(佛界))은 그 집게손가락의 첫째 마디를 감싸는 모습이다. 그 뜻인즉 부처님과 중생은 한통속이라는 것이요, 부처님이 중생을 각별히 보살핀다는 것이다.

다석의 <맹자> 진심장 풀이는 갠지스강의 무량(無量)한 모래알처럼 반짝이지만 각설하도록 하자.

다석의 공부는 논어·중용·금강경·노자, 바이블 등등 미치지 않은 데가 없어 둘러볼 데가 하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스스로 발품을 들여 여정에 나서기를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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