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높은 지평선, 해발 7~900m 대고원을 지나며
 

7월 3일 부르고스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까지 20㎞

새벽에 잠에서 깼어요. 귀마개를 하고 잤는데도 어디선가 계속 와글와글 소리가 납니다. 그래도 어제 너무 피곤했는지 몇 시간은 푹 잔 것 같아요. 시계를 보니 3시 30분.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를 않아 4시쯤 일어났어요. 귀마개를 빼니 와글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거예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가만히 듣고 있자니 알베르게 뒤편 지난밤 록밴드 공연이 열렸던 곳에서 나는 소리였어요. 아직도 스페인의 밤은 잠들지 않았던 거죠. '와~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제 짐을 다 거두어 1층 부엌으로 내려갔어요. 스페인 아저씨한테는 어제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는데 제가 없어져서 놀랄 것을 생각하니 또 미안한 맘이 들었어요.

오늘은 제가 일등이에요. 침낭 개고 옷 갈아입고 발에 바셀린 바르고 선크림 바르고 아침마다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오는 소리가 들려요. 어제 만나 라면 파는 식당을 찾아 준 한국 젊은이 두 명이네요. 저하고 같은 층 알베르게가 아니었는데 이 친구들도 잠이 오지 않았나 봐요. 서로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한국 팀하고 아침을 열게 되어 기분이 더욱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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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를 빠져 나오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박미희

출발하려고 알베르게 대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아직도 밖에는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정말 시장에서 나는 소리같이 시끄러웠어요. 이 새벽까지, 와~! 정열의 스페인 사람들, 대단합니다. 이래서 시에스타가 있는 건지, 더워서 시에스타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부르고스는 아직 어둠에 싸여 있고 도시를 한참이나 걸어 나와야 했어요. 도시에는 가로등 불이 켜져 있어 어둡진 않지만 자칫하면 길을 잃기가 쉬워요. 너무 길이 많아서지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개 모양 보도블록(카미노 표시)이나 화살표를 잘 찾아야 한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다 보니 정말 길을 잃은 거예요. 도시를 거의 빠져나와 도로로 접어들었는데 화살표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까 순례자 두 명이 분명히 우리 앞에 갔었는데 이상도 하지요. 젊은이들도, 저도 길 찾는 앱을 다 동원해봐도 감이 오지를 않아요. 그래도 찻길을 따라가면 나중에라도 합류할 것 같아 계속 앞으로 걸었습니다. 그래도 여러 명이 함께였기에 별로 겁이 나진 않았지요.

마침 작은 마을이 나왔어요. 누구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새벽이라서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 거예요.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시더라고요. 에고 반가워라. '카미노 데 산티아고?' 하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얼마를 걸어 알려주신 길을 찾아가니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제 길을 찾았네요. 얼마를 돌아왔는지 알 수도 없어요. 에궁~!

마침 마을이 보이고 바르(Bar, 카페 비슷한데 커피나 음료도 먹을 수 있고 간단한 요기도 하는 곳)가 눈에 보이네요. 한참을 헤맸던 우리는 바르에 들어가 토르티야(Tortilla, 멕시코식 전병)랑 보카디요(Bocadillo, 스페인식 샌드위치)도 먹고 그도 부족해 크루아상을 더 시켜서 먹었습니다. 먹고 있는데 어제 그 스페인 아저씨가 들어옵니다. '올라' 하고 슬쩍 인사하고는 옆 바르로 가더라고요. 말도 없이 혼자 와버렸으니 맘이 상했겠죠. 내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텐데 찾아가서 말하기도 뭣하고 해서 그냥 출발해서 왔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다시 한 번 지나쳤는데 또 '올라'만 하고 잰걸음으로 지나쳐 가버리더라고요. 큰 배낭을 지고 뒤뚱뒤뚱 가는 뒷모습을 보니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아저씨 미안해요. 아저씨의 순수한 맘은 다 안다고요, 너무 맘 상하지 마세요~.' 한 번 더 만났더라면 상황을 말해 주었을 텐데 걸음이 너무 빨라서 아저씨를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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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뜨거운 평원, 메세타 지역 초입 ./박미희

드디어 메세타 지역을 걷다

어제 너무 힘들어서일까요? 등의 짐이 오늘따라 너무 무겁습니다. 오늘따라 발도 더욱 피곤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쯤은 쉬고 걸어 줘야 하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2~30㎞ 이상을 매일 걸으며 강행군을 했고 급기야 어제는 40㎞ 정도를 걸었으니 몸살이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지요.

이제 메세타 지역을 걷게 됩니다. 스페인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인데 고도 7~900m의 고지대에 형성된 초원이에요.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극명하게 다른 두 종류의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한 부류는 '카미노 전체 길 중에서 풍경이 가장 단조롭고 엄청난 햇살이 내리쬐는 데다가 나무가 없어 햇볕을 피할 데도 없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 길을 걷지 않고 버스를 타고 레온까지 건너뛰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반면에 '사방이 뻥 뚫린 광활한 대지를 품은 메세타에 압도당했고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슴 벅찼다,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사색하기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만약 다음에 카미노에 와서 일정이 짧다면 꼭 메세타만을 걷겠다, 메세타야말로 진짜 카미노'라는 글을 읽은 후 메세타에 관해 기대가 컸어요. '메세타를 걷지 않고 메세타를 논하지 마라'는 글도 읽었고요. 그래서 일단 메세타를 걸어보려고요. 그래야, 논할 자격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정말 밀밭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태양은 너무나 뜨겁습니다. 배낭엔 누가 돌덩이를 넣어놨을까요? ㅜㅜ

그래도 아직 초입이라 밀밭 사이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미루나무가 있는 작은 숲이(?) 있더라고요. 마침 자리도 비어 있어요. 완전히 지쳐 있던 나는 양말도 벗고 배낭을 베고 누워버렸죠. 천국이 따로 없었어요. 정말 오아시스였지요. 스치는 바람과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 여기가 알베르게였으면 무조건 쉬어가는 건데 아쉬웠습니다. 계속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일어나야죠. 오는 길에 한국 학생 한 명, 아저씨 한 명도 만났습니다. 친구랑 같이 왔는데 컨디션 때문에 따로 걷고 있다더군요. 이젠 드문드문 한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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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타지역에 들어서는 순례자./박미희

원래 온타나스까지 걸으려고 계획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에서 짐을 풀게 되었어요. 여기 공립 알베르게는 안 좋다고 소문이 나서 사립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아침에 함께 출발했던 그 한국 젊은이들도 저와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어요. 오다가 서로 헤어졌었는데 말이죠. 시설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좋았어요.

씻고 산책하러 나갔는데 너무 조그만 동네라 갈 곳이 별로 없더군요. 내일 갈 방향이 어디인지 살펴보고 성당도 돌아보고 숙소로 오는데 켈리 모녀도 이 동네에 묵고 있었어요. 그런데 프랭크네는 아마 다른 곳으로 갔나 봅니다. 한국인 학생 하나가 길가 벤치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합니다. 매우 고마웠어요. 공립 알베르게에 묵고 있대요. 혼자 왔는데 한국인 누나 세 명을 만나 같이 다니며 맛있는 것도 많이 먹는다더군요. 다행이에요. 다니면서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죠.

오늘은 한국 음식을 해먹기로 했습니다. 마침 주방도 깨끗하네요. 저번처럼 밥을 하고 멸치 몇 마리 넣은 라면 수프 감자국에 달걀말이, 그리고 샐러드까지. 행복했습니다. 모처럼 먹는 밥,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들도 엄청나게 잘 먹더라고요. 자기들도 모처럼 먹는다면서. 남은 쌀은 서로 나누어 배낭에 넣어 두었습니다. 든든하네요. 식사 후 감기 걸린 한국 친구들에게 감기약을 나눠주고 저도 꿈나라로 가보려 했지만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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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타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왼쪽)과 박미희 씨./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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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타 지역의 아침./박미희

7월 4일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에서 카스트로 헤리스까지 19.7㎞

이상하게 새벽에 잠이 자꾸 깹니다. 4시, 벌써 누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서 나도 짐을 챙겨 들고 주방으로 내려왔죠. 에고, 부지런도 하지. 또 한국 젊은이들입니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같이 조금 걷다가 혼자 걷고 싶어서 일부러 일행과 헤어져 걷는데 컨디션이 좋습니다.

희한하게도 잠을 그렇게 자지 못하는데도 걷기 시작하면 씩씩해져요. 내 이어폰에서는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이 흘러나오고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새벽에 정말 숱하게도 들은 곡이 있어요. 이문세, 아바(ABBA), 존 덴버(John Denve)의 노래는 혼자 걸을 때 동반자가 되어준 고마운 친구들이죠. 달도 밝고 메세타답게 길이 험하지 않고 길게 쭉 이어져 있어 혼자 걸어도 두렵지 않아요. 앞에 한 여자 순례자가 걷고 있는데 방해하지 않으려 일부러 간격을 두고 걷는데 좀 늦네요. 안 되겠다 싶어 '올라' 인사하고 내가 먼저 차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어둠 속에 세로로 길게 지그재그로 신비로운 불빛이 보이는 거예요. 이 광야에 아파트도 아니고 높은 곳에 양쪽으로 깜박거리는 것이 무슨 불빛인지 궁금해 하며 걷는데 드디어 동이 트고 시야도 트이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풍력발전기의 불빛이었어요. 수없이 많은 발전기가 깜박거리며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던 거죠. 이곳에서 많은 풍력발전기를 보았지만 어둠 속에 있는 것은 처음 보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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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헤리스를 내려다 보는 산 위의 고대 성./박미희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새벽의 밀밭은 그냥 평화입니다. 고요와 적막, 파란 하늘, 가벼운 바람, 맑은 공기 정말 이런 기분에 이 길을 걷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밑으로 온타나스가 보입니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네요. 원래는 어제 여기까지 걸으려 했던 곳인데 부르고스까지 걸은 충격이 너무 커서 전 마을에서 묵었던 건데 아마 어제 여기까지 땡볕에 걸었더라면 너무 힘들었을 것도 같았습니다. 온타나스에 들어오자마자 바르가 있어 들어갔는데 어찌나 친절한 분들인지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웃음 가득히 맞아줍니다.

새벽공기를 가르고 도착한 순례자도 더욱 기분이 좋아집니다.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는데 아쉬웠어요. 알베르게도 겸하고 있었는데 다음에 걷게 되면 이 친절한 알베르게에 묵어야지 하고 마음먹으며 나오는데 어제 만났던 한국 학생과 함께 다닌다던 누나 셋을 만났습니다. 그 학생은 늦잠을 자는지 보이지 않고 누나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순례하는 가족이 지나갑니다. 엄마와 아들, 딸 그리고 아빠는 막내를 뒤에 태우고 갑니다. 가족끼리 자전거로 순례하는 것을 자주 보아 왔는데 볼 때마다 부럽고 아이들을 건강하고 강인하게 키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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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나스에서 카스트로헤리스로 가는 길./박미희

메세타에는 별로 없다는 가로수 길을 따라 '순례자'를 쓴 파울로 코엘료가 좋아했다는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s)에 도착했어요. 겨우 오전 10시 반, 일단 초입 바르에서 잠깐 쉬고 추천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3시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ㅜㅜ. 하는 수 없이 공립 알베르게로 갔는데 상황은 최악입니다. 날씨도 더운 데 지저분하기도 하고 침대 2층인 데다 옆에 아저씨와는 딱 붙어 있고, '에공~! 다음 마을까지 갈 걸 그랬나? 그냥 3시까지 기다릴걸' 하는 후회도 되었지만 이것도 제가 넘어야 할 산,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한국인 젊은이들도 여기로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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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가 사랑했다는 카스트로헤리스 거리./박미희

형편없는 숙소도 이제 기꺼이 받아들이다

날씨가 하도 더워 알베르게에 있기가 힘이 듭니다. 동네 바르에 가서 맥주도 한잔 마시고 요기도 했습니다. 바르 앞 그늘이 좀 시원해서 일기도 쓰고 음악도 듣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한국 학생이 옵니다. 일단 우리 알베르게는 이미 찼으니 (그 열악한 조건에도 알베르게는 가득 찼어요.) 다른 알베르게로 얼른 가서 배낭 갖다 놓고 오라고 했더니 그러고 왔더라고요. 서울에 살고 울산에서 의대에 다니는 아주 착하게 생긴 학생이에요. 어제 벌떡 일어나 인사할 때부터 알아봤죠! 하하.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프랭크 부자도 옵니다. 이 마을에 묵으려나 봐요. 또 알려줬죠, 얼른 알베르게로 가보라고. 잘못하면 그 알베르게도 다 차게 될지 모르잖아요. 고맙다며 갔고 우리는 그 뒤로도 3시가 다 될 때까지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졌어요. 낮잠을 자려 해도 너무 더워서 안 되겠고 산책하러 나가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나고 다시 바르 앞으로 갔어요.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앉아 일기도 쓰고 음악도 들었지만 정말 무료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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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가 사랑했다는 카스트로헤리스 거리의 담벼락./박미희

그래서 더위를 무릅쓰고 산책하러 나갔어요. 마을이 길쭉하게 이어져 있었고 제법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네요. 학생들도 보이고 노인들도 보이고 나름 작지만 활기있는 동네처럼 느껴졌답니다. 코엘료가 이곳을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하기는 한데, 그리고 이 마을을 제대로 보려면 저 산 위 성곽 부서져 있는 곳까지 가봐야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협조를 안 해 주네요. 그늘을 찾으며 그냥 동네만 한 바퀴 돌고 돌아왔습니다.

무엇을 먹어 볼까 하고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이 더위에 식욕조차도 멀리 달아나 버렸나 봐요. 슈퍼에 가서 둘러보는데 밥같이 생긴 것을 팔더라고요. 가지고 와서 뜯어보니 풀풀 날리는 밥이라서 그냥은 도저히 못 먹겠어요. 그래서 라면 수프에 감자 하나 넣고 밥을 넣고 푹 끓여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어요. 날씨는 더운데 뜨거운 국물이 부담스럽긴 해도 입맛이 살짝 돌아왔어요. 사람들이 좋은 냄새라고 관심을 두는데 먹어보라고 하니 선뜻 먹기가 그런가 봐요. 비주얼이 영 아니잖아요. 먹고 나니 이제 알베르게 앞도 그늘이 되기 시작했어요.

호스피탈레로(알베르게 관리자)가 간이침대를 하나 펴더니 마사지를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금액은 정해져 있지 않고 기부제라고 합니다.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그런 일은 익숙지 않아 구경만 했어요. 잠시 후 어떤 여자 순례자가 야단이 났습니다. 베드버그(빈대의 일종)에 물렸다는 거예요. 베드버그! 순례길에서 가장 공포를 주는 놈이에요. 이 벌레에 물리면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데 온몸이 가렵고 심지어는 걷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까지 생기기 때문에 늘 알베르게 갈 때마다 걱정이었어요. 결국 이 알베르게에서 처음 보게 된 거지요. 호스피탈레로에게 보여주니 모기에게 물렸다며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처음 보는 제가 봐도 이건 아녜요. 사람들도 눈짓으로 베드버그라고 말하고 있었죠. 베드버그가 있는 알베르게라고 소문이 나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린 사람은 나가서 스프레이 약을 사오더니 배낭이랑 소지품을 큰 비닐봉지에 넣고 스프레이를 한 통 다 뿌리고 있었어요.

저도 한국 친구들에게 약을 받아 침대 주변에도 뿌리고 배낭에도 뿌리고 했는데도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네요. 그런데 고맙게도 다행히 베드버그는 저를 물지 않았어요. 휴~! 날씨는 왜 이리 더운지 잠을 자려 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밤 9시인데도 아직 해가 있어요. 슈퍼에 가서 시원한 물을 한 병 사 와서 끌어안고 안대에, 귀마개를 하고 잠이 조금 들었는데 좀 잤다고 생각하고 눈을 떠보니 밤 11시 반, 에고! 아직도 밖이 다 어두워지지도 않았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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