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이 길이 맞나, 생각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였다. 대학시절 소설 쓰기를 가르쳐 준 교수님이 11년 만에 장편을 냈다는 기사를 읽은 참이었고 읽고 쓰는 것이 전부였던, 달뜬 그 시절이 금세 그리워졌다. 2011년 가을에 졸업했고 같은 해 11월 지금 적을 둔 이곳에 취업했다. 기자가 됐다. 입사하고 얼마 간은 주말마다 글을 읽고 쓰고 다듬었다. 그러나 나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일에 치여 사느라 주말엔 그저 쉬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내 글과 함께하는 시간도 줄었다. 점점 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조금은 핑계일 수도 있다. 잊은 적도 있었으니까, 나를, 내 꿈을. 그저 현재가 좋기도 했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한편으론 좋기도 했다. 그런데 때때로 소중한 뭔가를 잊은 채 사는 것 같았다. 가끔 무서울 정도로 불안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뭐,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원래 내 꿈은 소설가였는데. 내가 31살이니까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도전이 더 두렵고 힘들어질 거야. 그래, 그만두자. 일 그만두고 내 꿈을 위해 살아보자. 내 꿈에 한 번도 충실하지 못 했던 거 후회 안 할 자신이 없어. 인생 크게 보면 절대 손해 보는 경험은 아닐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 회사에 이야기했다. 그만두겠다고.

미국의 중산층 부부인 에이프릴과 프랭크도 같은 점을 느꼈다.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이야기다. 배우를 꿈꾸는 에이프릴. 그녀는 작은 역할을 맡아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집안일, 육아가 더 중요한 주부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를 것 같지 않은 나날들.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도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던 중 에이프릴은 프랭크가 어린 시절 다녀왔다는 프랑스 '파리'를 떠올린다.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던 프랭크의 말도. 그래, 그곳으로 떠나는 거야. 그곳에서 살면서 새 출발하는 거야! 그날 밤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말한다.

"프랭크, 지금 이 상황이 비현실적이야. 건강한 마음을 가진 남자가 맞지도 않는 일을 하고 견디기 힘든 집으로 오고 견디기 힘든 아내와 있는 게 비현실적이야. 진짜 최악인 건 뭔지 알아? 우리 모든 존재는 원래 특별하다는 거야. 그 무엇보다 우월하다고. 현실은 그렇지 못해. 그저 남들과 똑같아. 우릴 봐, 모두 바보 같은 착각에 빠져있어. 운명에 순응하고 애들이나 잘 키워야 한다는 착각. 그것 때문에 서로를 힘들게 해."

"지금 당신 숨 막히게 살고 있잖아. 당신 자신을 부정하고 부정하며 그렇게 살잖아.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워. 당신은 위대해. 이건 기회야, 프랭크."

그저 그런 세일즈맨으로 사는 것이 따분했던 프랭크도 에이프릴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들은 파리에서 새 출발을 하기로 한다. 얄궂게도, 어차피 곧 떠날 것이니 대충 처리한 일로 프랭크는 능력을 인정받고 거액의 연봉과 함께 더 좋은 일자리를 제의받는다. 그리고 에이프릴이 셋째를 임신한다. 프랭크는 떠나는 것을 망설이지만 에이프릴은 굳건하다. 프랭크는 말한다. "에이프릴,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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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보루셔너리 로드> 중 한 장면.

이 길이 맞나, 끊임없이 생각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이 불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 사실은 조금 나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내 안의 에이프릴과 프랭크.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극 중 이들 부부의 친구 존의 말처럼) 참 딱한 사람들. 특별한 존재를 꿈꾸며 제대로 살길 바라는 나와 내 의무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면서 이 절망과 허무함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 나. 이상과 현실 사이 방황, 이 고민을 끝내는 건 단지 용기의 문제인가.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이 고민의 실마리가 언젠가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그리고 안다. 이 실마리를 풀기 위해선 노력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아,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뒀냐고? 지금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끝내 '레볼루셔너리 로드(혁명적인 길)'를 함께 걷지 못한 에이프릴과 프랭크처럼 나 역시 이번에는 그 길을 걷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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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보루셔너리 로드>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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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보루셔너리 로드>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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