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에서 구룡폭포까지

'지리산 초록걸음'은 2013년부터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진주에서 모여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진주환경운동연합 부설 시민모니'지리산 초록걸음'은 2013년부터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진주에서 모여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진주환경운동연합 부설 시민모니터링단이다. 지리산 둘레길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위안과 치유의 길이 되고, 둘레길 걷기가 공정하고 착한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둘레길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할 방안이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6년 3월 19일, 전날 내린 봄비에 온 숲이 샤워를 한 지리산을 40여 명의 길동무들과 함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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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 초록걸음단

"올해 첫 둘레길에 아이들과 함께 참가해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둘레길을 걸으면서 지리산의 소중함과 새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아이 둘과 함께 참가한 박보현 씨의 말이다.

이번 초록걸음은 남원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이 지나는 노치마을을 거쳐 지리산 계곡 물이 모여 만든 구룡폭포까지 대략 10Km 거리를 쉬엄쉬엄 걸었다. 시와 음악이 있는 초록걸음인지라 이번엔 곽재구 시인의 '봄비' 시낭송과 김윤아의 '봄이 오면'이란 노래를 남원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에서 들은 후 걸음을 시작했다.

익은 꽃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세상 주유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

아직 덜 핀 어린 꽃들이

꽃샘추위에 툭툭 떨어져

새 삶의 거름이 되는 것도

좋은 일

꽃이 아닌 인간들이

촛불 하나씩 들고

어둠 속 길 깜박깜박 걸어가다

두 손 두 무릎

고요히 모아

세상의 메마른 봄 흙 위에

작은 무지개 깃든

눈물 떨구는 일

좋은 일

-'봄비' 곽재구

첫걸음을 시작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마을 숲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는데, 땅이 완벽하지 못한 곳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어 마을을 보완한 비보림(裨補林)으로 조성된 숲이다. 100년 이상 된 70여 그루의 서어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2000년에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촬영지이기도 하다. 서어나무는 수피가 울퉁불퉁해 알통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7살 지우부터 60을 훌쩍 넘기신 노부부까지 봄의 기운 흠뻑 받으며 걷는 둘레길엔 어느새 봄꽃들이 앞다투며 피고 있었다.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 노란 꽃 귀걸이를 매달기 시작한 지리산 깃대종 히어리와 이름에 걸맞게 일찍 꽃을 피운 올괴불나무 그리고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 등등 다양한 꽃들로 눈요기하며 걷는 걸음은 쉬엄쉬엄 걸으며 생명, 평화 그리고 치유의 길인 지리산 둘레길의 참맛을 느끼는 걸음이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걷고 다다른 회덕마을에서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우리 일행을 맞아주셨다. 때마침 지리산종교연대 성직자들로 이루어진 마을 순례단의 기도회와 함께 마을 팻말을 다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함께 어울려 맛난 점심도 먹고 또 동네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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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덕마을 어른들과 함께. / 초록걸음단

그중에서도 열여덟에 시집오셔서 6남매 다 키우시고 구순을 넘기신 한쌍순(93) 할머니의 그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에 신산스러웠을 지난 세월들이 읽혀져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올해 초록걸음의 화두인 '둘레길, 그 길 위에서 사람과 마을을 만나다'라는 취지에 꼭 맞는 회덕마을 어르신들과의 시간이었음을 길동무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과의 점심때 우리 길동무들이 내놓은 도시락도 초록걸음의 큰 자랑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집밥의 정성을 담은 자연주의 도시락이기 때문이다. 일회용이 아닌 저마다의 각양각색 도시락에 정성을 다해 담아온 밥과 반찬을 펼쳐놓으면 색상도 그렇고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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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먹는 도시락. / 초록걸음단

그렇게 회덕마을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소나무 숲길의 운치를 느끼며 구룡치를 넘어 구룡폭포로 향했다. 지리산 정령치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구룡계곡과 길이 30m의 비스듬히 누운 구룡폭포는 남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아홉 마리 용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아직은 차가운 계곡 물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발을 담구기도 하며 봄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그 넉넉한 품에 안겨 걸었던 지리산 초록걸음을 마무리하면서 필자가 나름대로 정의한 지리산 둘레길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지리산 둘레길은

고개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만나는 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들녘을 따라 삶과 노동을 만나는 길,

강을 건너 머리칼 흩날리는 바람을 만나는 길,

숲을 따라 숲 속의 뭇 생명들을 만나는 길,

끝끝내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는 치유의 길,

생명과 평화를 가슴에 안고 걷는 순례의 길입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루 동안 걸어왔던 길들을 떠올려본다. 함께 한 길동무들은 다음 달에 걸을 구간인 주천면에서 남원과 구례의 경계가 되는 밤재를 넘어 산수유 시목지인 계척마을까지의 봄기운 완연할 4월의 초록걸음을 벌써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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