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생각나는 노래, 스쳐가듯 홀연히 지나가는 봄기운을 못내 아쉬워하는 송가가 있다면 단연코 작사가 손로원(1911~1973)의 '봄날은 간다'를 떠올리게 된다. 곡이 만들어진 지 어느덧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수많은 가수들이 다양한 창법으로 대중의 심금을 울리며 한결같이 부르는 노래는 그다지 흔치 않을 것이다. '봄날은 간다'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의 애한과 마음 한구석에 밀쳐놓았던 인생살이의 미련을 노래를 통하여 떨쳐버리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래전 시인이 좋아하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에 대해 물어보는 흥미로운 조사가 있었다. 계간지 <시인세계>가 2004년 봄호에서 현역 시인 100명에게 선호하는 노래의 가사를 선택하게 했는데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가 월등한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부터 5위는 다음과 같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 '북한강에서'(정태춘 작사, 작곡, 노래)가 같은 표를 얻었고, 가수 양희은이 노래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작사, 이병우 작곡)와 '한계령'(정덕수 작사, 하덕규 작곡)이 순위에 올랐다.

이 조사는 발표된 뒤 여러 차례 인용됐는데, 정제된 문학 언어로 시를 쓰는 시인들이 과연 노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중가요에 일정한 심리적 선을 긋고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떨쳐내고, 문학적 격조와 자존심에 매여 있을 것 같았던 노래 취향을 다양하게 열린 모습으로 드러냈다고 평가를 했다. 근래 문인수 시인은 등단 30주년을 맞이하여 신작 시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작과 비평)를 출간했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나 오십이 넘은 2000년 이후부터 주목받아 '미당 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명성을 알리던 시인이었다. 그는 이 시집에서 가요 '봄날은 간다'의 4절 노랫말을 발표했다. 원래 3절로 이루어진 노래였지만 시인 자신을 포함한 '노인들을 위한 봄날'을 노래하고 싶어 가사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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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로원.

'밤 깊은 시간엔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기러기 앞서가는 만 리 꿈길에/너를 만나 기뻐 웃고/너를 잃고 슬피 울던/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대중들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봄날은 간다'는 작사가 손로원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이 구구절절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가사를 쓰던 당시의 상황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재미난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물레방아 도는데'를 만든 작사가 정두수 선생의 '노래따라 삼천리'에 의하면, 사시사철 검정 고무신에 검정 점퍼를 입고 다니던 작사가 손로원은 부산 피란시절, 작사료보다 술을 먼저 챙겼다 하여 '막걸리 대장'이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본래 화가였던 손로원이 어느 토요일 오후 부산 태종대 바닷가에서 바다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방인이 있었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손로원에게 다가선 이방인은 한눈에도 프랑스 장교임을 알 수 있었다. 손로원의 그림이 몹시 마음에 들었는지 장교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 한 잔을 따르며 그에게 건넸다. 다정한 술잔이 몇 차례 오고간 뒤, 장교는 지갑에서 어머니 사진을 한 장 꺼내며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려줄 수 있겠냐고 정중히 부탁을 했다. 손로원은 흔쾌히 승낙했고 초상화가 완성되자 프랑스 장교의 막사를 찾아갔다. 초상화를 본 장교는 너무나 좋아 어쩔 줄 몰라 했고, 지갑에 있는 돈을 몽땅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하지만 손로원은 그 돈을 거절하고 장교가 보관하고 있던 양주만을 갖고 집으로 왔다.

이날부터 가져온 양주를 장롱 깊숙이 보관하고는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무려 제조연대가 100년도 넘는 프랑스 최고의 명주 루이13세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루이13세만이 오직 그 권좌에서 이 술을 음미했을 뿐, 그 누구라도 이 술을 마시지 못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루이13세는 당시 페르시아 시장에서도 구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라고 하면서 동료들에게 침 튀기며 술 자랑을 했으며, 본인도 정작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애지중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어울려 한잔 하기 위해 자갈치시장에 도착할 즈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주변을 살피는데, 자신이 거처하고 있던 용두산 판자촌에 화염이 치솟고 있지 않은가. 손로원은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아이고 내 술! 아이고… 나는 술 향기마저 아까워서 사양했거늘, 저놈의 불길은 어찌 한입에 깡그리 마신다 말인가"라며 그토록 아끼던 루이13세 양주를 생각하며 탄식하였다고 한다. 이날의 충격으로 손로원은 '페르시아 왕자'와 '봄날은 간다'를 썼다고 한다. 그날 화재는 벽에 걸어 두었던 어머니의 사진마저 태워버렸다. 그 사진은 어머니가 처녀 시절 연분홍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 수줍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홀로된 어머니는 그가 장가드는 날, 당신이 열아홉 살 시집오면서 입었던 그 연분홍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겠다고 한 말을 지키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 후 9년간 간절한 사모의 정을 품어오다 한순간의 화마로 어머니의 사진마저 잃었으니 그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래서 작사가 정두수는 한 언론기고에서 이 노래는 불효자가 부르는 사모곡이라 하였다.

가수 백설희(본명은 김희숙, 1927~2010)의 실질적인 데뷔곡이라 할 수 있는 '봄날은 간다'는 한국전쟁 당시 함께 군 장병을 위해 위문공연을 다녔던 작곡가 박시춘(1913~1996)과의 인연으로 곡을 받았으며, 1954년 대구에 있었던 유니버샬레코드에서 첫 번째 작품으로 발표되었다. 원래 3절 가사로 만들어졌으나, 녹음시간이 맞지 않아 초판에는 1절과 3절만 수록되었다. 초판에 수록되지 않은 2절은 백설희가 재판에 녹음하였고, 이후 다른 가수들의 녹음에도 대부분 수록되었다.

내가 아는 어느 작곡가는 요즘 노래가 예전만 같지 않다고 말한다. 이는 그만큼 좋은 작사가의 노랫말이 부족한데서 기인하며, 결국 좋은 가사에서 훌륭한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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