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레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다른 취재로 경남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 방광주(49·경위) 3팀장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방 팀장은 취재 내용에 응하면서도 '이러이러한 이유로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당시에는 그 말뜻이 썩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위해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후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폭력특별수사대는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살얼음판 같은 성폭력 수사

경남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 13세 미만 아동, 성인을 포함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전담 수사한다. 관련 현황을 보면 2014년 208건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247건 발생했다. 19% 증가한 것으로, 매해 관련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방광주 팀장은 13세 미만 아동,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가해자의 95%는 친족입니다. 그중에서도 이혼 등 아내 없는 아버지가 대부분입니다.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약한 대상인 딸에게 나쁜 마음을 먹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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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 기자

최근 법 개정으로 이러한 아버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친권자 상실 청구도 함께할 수 있다. 또한 피해 아동이 보호받는 장소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범죄 대가를 치른 아버지가 또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각 지역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원스톱지원센터'가 있다. 도내에는 경남경찰청·경남도·마산의료원·여성가족부가 손을 잡은 경남해바라기센터가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성폭수사대와 원스톱지원센터가 함께 수사·상담·의료·법률 지원을 유기적으로 진행한다.

경찰은 피해 신고 없이 그냥 묻혀 버리는 것 또한 발생 건수와 비교해 40%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

"피해자 가족을 설득해서 3개월 만에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또 마음을 바꿔버렸어요. 가해자 주변 사람들의 설득이 들어간 거죠. 그래서 목격자에게 부탁했습니다. 4개월 동안 끈질기게 설득해 진술하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이제 됐구나 싶었는데, 피해자 쪽에서 합의서를 제출했어요. 참 쉽지 않죠…."

그래도 끈질긴 정성을 쏟아 좋은 결과를 만든 사례도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04년부터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인권 보장에 이바지한 사례를 선정하고 있다. 방 팀장이 이끄는 3팀은 지난해 디딤돌 사례에 뽑혔다.

"아버지가 6살 딸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건이었는데요, 그 오빠가 아버지 말에 길들여져 있었어요. 동생을 아버지 방에 들어가라고 강요까지 하는 상황이었죠. 피해 아동을 보호전문기관으로 신속히 분리했고, 성폭력상담소와 연계해 1대1 집중 상담, 정신 치료를 지원했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했고요. 아버지는 구속 기소 됐습니다."

관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피해자·가해자 분리, 그리고 2차 피해 방지다.

"피해자 위치가 노출되면 가해자가 결국 합의를 종용하게 됩니다. 다른 걸 아무리 잘하더라도 2차 피해가 일어나면 그건 실패한 겁니다. 그렇다고 피의자 인권도 등한시할 수는 없죠. 한 마디로 살얼음판입니다. 성폭력 수사는 어두운 데 있는 걸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일입니다.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접근할 수밖에 없죠."

방 팀장은 장애인에게 나쁜 마음을 품은 한 사례를 꺼냈다. 이 대목에서 방 팀장 목소리에 화가 담겼다.

"버스 타는 걸 좋아하는 지적장애인이 있었습니다. 한 버스 기사가 못된 짓을 한 정황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 메신저 대화를 분석해 보니 의심스러운 내용이 있었어요. 다른 버스 기사와 나눈 대화였는데요, '오늘 그 애를 봤느냐', '나는 오늘 어느 노선이니까 오늘은 네가 그 애를…' 같은 내용이 있었어요. 다른 버스 기사 두 명도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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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 기자

꿈 이루고 산 지 어느덧 26년

사천시 용현면이 고향인 방광주 팀장은 어릴 때부터 막연히 경찰관 혹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요즘 동창회 나가면 친구들이 '너는 학창시절 놀 것 다 놀면서 꿈도 이뤘네'라고 합니다. 공부보다는 취미생활 등 하고 싶은 건 다 했으니까요. 특히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갑자기 마음이 끌리면 녹음기 하나 들고 열차 타고 무작정 갑니다. 그러다 돈 떨어져서 걸어 걸어 돌아오기도 하고 그랬죠."

스무 살 이후에도 자유로운 생활은 이어졌다. 물론 변화 계기가 있었다.

"매형이 공무원 생활을 하다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자신이 공부하던 서울로 데리고 갔어요. 제 모습이 답답해서 뭔가 깨우쳐 주려 한 거죠. 매형이 반지하 쪽방촌에서 생활하며 공부하는 모습, 신림동 그 높은 언덕길을 손수레 끌고 가는 사람…. 이런 세상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경찰 시험 준비를 마음속 가까이 둔 채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묘한 인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중대장이 경찰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 팀장은 옆에서 시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고, 전역 3~4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제대 후 1년 가까이 더 준비해 한 번에 시험에 합격했다.

"경찰에 발 들일 수 있었던 건 제 인생의 멘토인 매형, 그리고 중대장님 덕이죠. 그런데 막상 중대장님은 경찰시험에 합격하지 못 했어요. 지금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습니다. 가끔 연락 주고받는데 '경찰 때려치우고 나랑 공인중개사를 같이하자'는 농담을 던지더군요."

1990년 23살 나이에 순경이 된 방 팀장은 옛 삼천포경찰서 관할 파출소를 시작으로 형사·수사·조사·경제팀 등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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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 기자

"굿을 강요하는 종교단체가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사건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 교리에 굿을 지낸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으니까요. 문제는 '굿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병을 얻는다'는 식으로 이용했다는 거죠. 여기에 초점을 맞춰 수사했는데요, 나중에 대법원에서 죄를 인정했습니다. 이전에 없던 판례가 하나 만들어진 셈이죠."

업무에는 저마다 일장·일단이 있다. 형사계는 몸을, 경제 관련 수사는 머리를 움직여야 한다.

"형사들은 사기·열기·끈기로 삽니다. 예전에는 수첩 들고 모두 적어가면서 지도 보며 물어물어 집 찾아다니고 했잖아요. 그렇게 발로 뛰다 범인 잡으면 기분 좋아서 소주 한잔 하고, 그 맛에 일하는 거죠. 수사할 때 청결하면 잠이 쏟아지기에 일부러 안 씻고, 수염도 안 깎고 그러죠. 경제팀은 사기범들과 싸워야 하기에 마인드콘트롤을 잘해야 합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할 때는 정말 화딱지가 안 날 수 없죠. 그럼에도 극복하고 범죄 사실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업무하는 사람들은 전부 원형탈모에 시달릴 겁니다."

1년 전부터 지금 일을 맡은 방 팀장은 이제 늘어나는 흰머리를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경찰관 사윗감 대찬성이죠"

방광주 팀장은 사천에서 파출소 근무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당시 사회복지시설에 실습을 나갔다. 버스도 저녁 일찍 끊기는 외진 곳이었다. 방 팀장은 이때 보호 순찰을 명목으로 아내에게 접근(?), 5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하루 3갑씩 피우던 담배도 "계속 피우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아내 한마디에 바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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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 기자

그런데 첫아이 출산 때는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애 나올 때 병원에 들렀다가 이후 3개월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파출소 총기 분실 사건으로 전국이 비상사태였거든요. 한날은 아내가 전화해서는 '내일모레 100일'이라는 겁니다. '뭐가 100일이냐'고 되물으니, 아이 '백일잔치'라는 겁니다. 가까스로 첫애 100일 때는 집에 들어갈 수 있었죠. 이후에도 이웃 주민들로부터 '이혼한 것 아니냐'는 오해도 종종 받았어요. 하도 집에 얼굴을 안 비추니 그럴 만도 하죠."

방 팀장은 현재 20살, 15살 딸을 두고 있다. 자녀도 경찰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켰다. 둘 다 태권도 단증이 있다.

"아이 때는 경찰관이 되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손사래 칩니다. 제가 다쳐서 두 달간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더더욱 그러네요. 나중에 경찰관 사윗감을 데려오면 대찬성이죠. 저는 경찰관이 좋습니다. 이 작은 권력을 남용하면 일탈이지만, 사회 약자들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쓸 수 있잖아요. 얼마나 멋집니까."

방 팀장은 15년 전 주경야독으로 진주산업대를 졸업했다. 전공이 지금 모습과는 좀 뜬금없어 보이는 임산공학이다.

"정년까지 10년 정도 남았는데요, 학교 전공인 집 짓고 나무 키우는 것에 대한 미련이 좀 있습니다. 전문으로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2 인생 목표를 그쪽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퇴직하고 나면 아내와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여행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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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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