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덥고, 몸은 피곤하지만 선물 같은 저녁 시간으로 즐거워

6월 25일 빰쁠로나에서 뿌엔떼 라 레이나까지 24㎞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고 한동안은 잠을 잘 못 잤는데 오늘은 새벽에 언니(같이 길을 걷는 미국교포)가 깨워서야 잠에서 깼습니다.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었나 봅니다. 모처럼 몇 시간이라도 푹 잤네요. 오늘은 처음으로 배낭을 먼저 보내고 걷기로 했습니다. 까미노에서는 택배처럼 다음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까지 배낭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가 있어요. 물론 4~7유로 정도 비용은 들지만 간혹 너무 힘들거나 까다로운 길에서 한 번씩 이용할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도 이용해 보려고요. 그동안 피로가 쌓여 온몸이 매우 아픈 데다가 오늘은 오르막도 있고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에요. 주방에서 어제 남은 밥으로 싼 주먹밥 등으로 식사를 한 뒤 작은 배낭에 오늘 먹을 간식과 물 그리고 만들어놓은 빵을 넣었어요. 그래도 가방이 묵직하네요.

어쩌다 보니 출발이 좀 늦어졌어요. 그래도 빰쁠로나 시내는 아직 텅 비어 있었어요. 시내를 지나가는데 바가 보였어요. 카페콘레체(Cafe Con Leche·카페라떼)를 한잔 마시고 다시 가는데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막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우리가 다른 길로 가고 있었던 거죠. 그러고 보니 보도블록에 조개 모양이 없더라고요. 까미노에서는 표시를 잘 보고 걸어야 해요. 노란 화살표나 조개 모양을 잘 보고 따라가야 한답니다. 수많은 길을 지나야 하기에 이 표시를 찾지 못하면 산티아고를 찾아갈 수가 없어요. 이게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렵더라고요. 인생길에도 이런 화살표가 있을까요? 음~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이 사인을 잘 발견하지 못해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길에서는 순례자들이 길을 잘못 들면 서로 가르쳐 줘요. 그래서 다시 길을 찾게 되고 결국 산티아고까지 걷게 되는 거죠. '인생길에서도 이런 사인을 잘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혹시 길을 잃더라도 누군가 빨리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 길을 찾아가는데 그래도 자꾸 헷갈렸어요. 대학의 교정을 지나고 공원도 지나고 찻길을 따라 계속 걸었죠. 저 멀리 뻬르돈 고개(Alto del Perdon·790m)가 보이고 큰 풍력발전기가 보이는데 지루하고 힘든 언덕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주위로는 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밀밭은 끝이 없이 이어졌어요. 날씨도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덥다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스페인에 온 후로 가장 더운 날이었습니다. 다리는 너무 아프고 정말 한 발 한 발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오늘 배낭까지 멨더라면 어찌할 뻔했을까요. 그래도 다른 순례자들을 보면 다들 큰 배낭을 메고 힘겹게 걷는데 내 배낭은 너무 작았고 나 자신도 왠지 순례자 같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나는 누구를 용서해야 하나"

드디어 용서의 고개, 자비의 고개라고 부르는 뻬르돈 고개가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장관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는데, 돌아가는 소리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중세 순례자를 형상화한 철제 순례자상은 바람을 맞으며 순례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때 당시의 고단함이 느껴지면서 지금의 나는 편하게 순례를 하는 것 같아 힘든 마음이 좀 누그러들었습니다. 거기다 정상의 그늘에 신발 벗고 앉아 있으니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고 경치도 멋지고 간식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는 누구를 용서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며 앉아 있는데 용서할 사람은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용서를 빌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몸이 힘들어지니 겸손해지는 걸까요? 아마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출발하려고 하는데 언니는 좀 더 있고 싶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먼저 내려가기로 하고 혼자 길을 나섰죠. 이제 언니와 헤어져야 할 때가 되어 가는데 조금씩 홀로서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스틱에 온몸을 맡기고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가파른 데다가 돌멩이는 왜 그리 많은지 만만치가 않습니다. 내리막을 겨우 내려가서 쉬고 있는데 그새 언니가 따라 내려왔습니다. 빰쁠로나에서부터 걸어왔다는, 네덜란드에서 온 라디아라는 예쁜 아가씨와 함께 왔는데 스틱도 없이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선 살 곳도 없으니 난감한 노릇이죠. 그래서 내 스틱을 둘 다 빌려주고 우리는 언니 스틱을 하나씩 나눠 들고 다시 걸었습니다. 정말 스틱은 내 몸을 보호해준 아주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니 기꺼이 내 주게 되더라고요. 이 길에선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회만 되면 서로 도와주려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에요.

너무도 더운 저녁 산책

뜨거운 길을 걸어가다 보니 저기 큰 순례자기념상이 있는 게 보였어요. '뿌엔떼 라 레이나'에 다 왔나 봅니다. 뿌엔떼 라 레이나는 '왕비의 다리'라는 뜻이에요.

라디아는 입구에 있는 사립 알베르게에 묵는다고 해서 헤어졌고 우린 짐을 보낸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좀 더 가니 신학교건물 알베르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천히 왔는데도 일찍 도착한 편이네요. 내 배낭은 무사히 잘 도착해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혹시나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말이죠. 접수를 하고 방을 배정받아 올라가 늘 하던 대로 씻고 빨래하고 널고, 또 빨래 너는 곳이 많아 침낭도 널고 밖에 산책하러 나갔는데 오늘은 너무 더워서 다닐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안에만 있기는 아쉽잖아요. 게다가 사실은 알베르게도 무척 더웠거든요.

알베르게 근처의 성당에 들어갔는데 성당이 매우 독특했어요. 12세기에 지어졌다는 아주 오래된 성당이었어요. 이제까지 보았던 성당들은 대부분 화려한데 이 성당은 여태 내가 본 것 중 가장 소박했어요. 거기다 Y자형의 독특한 십자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독일 순례단이 기증한 십자가라더군요. 독일 순례단이 이 십자가를 들고 순례를 하는데 여기에 와서 십자가가 움직이지를 않아 기증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너무 더워서 왕비의 다리는 내일 새벽에 보기로 하고 슈퍼마켓을 찾아갔는데 제법 큰 슈퍼가 있더군요. 언니는 예전에 남편이 스페인 주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스페인에 살았었노라며 무척 즐거워하더라고요. 빰쁠로나에선 중국인이 하는 조그만 가게에서 부식을 샀었는데, 큰 슈퍼를 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났었나 봐요. 이것도 맛있었고 저것도 맛있었고 하며 추천을 해주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사야 하는 게 한정이 되어 있지요. 남으면 버려야 하거나 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들만 사서 돌아오는데 캐나다인 친구 시몬을 다시 만났습니다. 또 같은 알베르게네요. 난 시몬이 몸도 다쳤고 힘들어 보여 함께 저녁을 해먹고 싶은데 왠지 언니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에요. 하는 수 없이 우리끼리 저녁준비 해서 먹었고 아침준비, 점심준비까지 완료!

오늘은 밤이 되어도 날씨가 수그러들지를 않아요.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가려 해도 덥고, 자려고 해도 덥고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헉~! 그런데 우리가 침낭을 내 널은 사이에 어떤 스페인 아줌마가 언니 침대를 차지해 버렸어요. 아무도 없는 자리인 줄 알았나 봐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해 주어도 끝까지 비켜줄 기미가 없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언니는 침대 2층으로 올라가는 헤프닝이 벌어졌어요. 이곳에서 이런 일은 보기 어려운 상황이죠. 자신도 편치 않을 건데…. 그래도 오늘 워낙 힘이 들었는지 안 좋았던 상황치고는 조금 잔 것 같아요. 늦게 들어온 내 위층의 아저씨가 오르내리느라 덜컹거려 잠을 자꾸 깨웠는데도요.

6월 26일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까지 22㎞

까미노에서는 새벽 4시가 조금 넘으면 일어나게 되네요. 한국에선 새벽잠이 많아 힘이 드는데 여기선 새벽잠도 없어졌어요. 일찍 일어나서 어제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언니는 속이 안 좋다며 식사를 못 하겠다더군요. 내가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먼저 출발을 하시라고 했어요. 혼자 걸어본 적이 별로 없어 좀 두렵긴 했지만 앞으로 전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언니는 8월 4일까지 걸을 계획이었고 전 7월 22일까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인 거죠. 언제 헤어지느냐가 문제인데 서로 말을 못하는 거예요.

출발해서 조금 가니 11세기에 지어졌다는 다리가 나타났어요. 왕이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왕비의 다리'라는 이름이 그대로 도시 이름이 된 거죠.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과 새벽의 푸른빛이 다리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었지요. 환할 때 와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더라고요. 처음으로 혼자 출발하는 길, 두렵지만 혼자 해내야 하는 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새벽이었어요. 길을 제대로 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화살표도 보이지를 않네요. 새벽이라서 물어볼 사람도 안 보이고 얼른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얼마쯤 가니 길이 맞다는 사인이 보이더라고요. 혼자 걷는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조급하게 했었나 봐요. 웃음도 났어요. '이래가지고 800㎞ 혼자 걸을 수 있겠나? 이제 시작인데!' 언덕길을 오르는데 노부부가 천천히 오시고 있더라고요. '올라~!' 하고 인사를 하니 '코리안?' 하시는 거예요. 배낭에 꽂아 놓은 태극기 바람개비를 알아보신 거죠. 바람개비에 관심 있는 분은 많았어도 태극기를 알아보신 유일한 스페인분이셨어요. 오르막에 서로 지치고 말이 안 통해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어도 기분은 좋더라고요. "부엔 까미노" 인사를 뒤로하고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언덕 끝에서 잠시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쉰 다음 조금 더 가니 마을이 나타났는데 거기에 먼저 출발한 언니가 벤치에서 쉬고 있었어요. 저는 조금 전에 쉬었기 때문에 인사만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포도밭, 올리브밭, 밀밭을 지나서

그림엽서에 나올법한 예쁜 마을이 보입니다. 시라우끼(Cirauqui)래요. 너무나 맛있는 빵 냄새를 따라 바인줄 알고 들어갔더니 그냥 빵만 만드는 곳이었어요. 급실망. 빵 한 개 사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고 있는데 언니가 왔어요. 같이 앉아 이야기 나누다가 출발을 했는데 시몬이 그새 따라왔네요. 몸도 많이 불편할 텐데 쉬지 않고 온 듯해요. 로마시대 때 지어졌다는 로마 다리도 지나고 포도밭, 올리브밭, 밀밭이 이어진 길, 옛길과 새 길이 나란히 있어 두 길을 오가며 시몬과 언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다 보니 마을이 나타나더라고요. 로르까(Lorca)예요.

길가에 몇 번씩 본 사람들이 앉아 쉬며 우리도 쉬어가래요. 얼마나 다들 반가워해 주는지 쉬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다 우리도 너무 지쳐서 함께 앉아 물도 마시고 과일도 나눠 먹으니 또 독일 아줌마는 견과류를 내어 주시네요. 쉬고 일어나 조금 가니 바가 있네요. 이런~! 아내가 한국인인 호세라는 사람이 하는 데다가 라면도 팔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바로 좀 전에 쉬었으니…. 라면도 먹을 수 있었고 팔아 줄 수도 있었는데 ㅜㅜ. 갈 길이 머니 아쉬움만 뒤로 한 채 다시 출발했죠. 다음에 걷게 되면 여기서 꼭 먹으리라 다짐하면서요.

날씨가 어제보다는 덜 더웠고 이제 4~5㎞로 남았다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요. 전 미리 비행기 표를 끊어 놓는 바람에 32일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어요. 그리고 언니에게도 이젠 헤어지자 말을 해야 하는데 계속 기회를 보고 있어도 쉽게 말이 떨어지지가 않아요. 아마 저도 혼자 남는 게 두려워서였을 거예요. 햇볕은 뜨거워지고 어디선지 화학약품 냄새도 나고 지쳐가고 있을 때쯤 에스떼야(Estella)에 도착을 했답니다. 맛있는 빵, 훌륭한 포도주와 고기와 생선을 맛볼 수 있는 풍요로운 곳, 부드럽고 깨끗하고 수질이 뛰어난 에가의 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12세기 프랑스 사제가 순례길을 안내한 최초의 책 <성야고보의 서>에서 극찬한 곳이죠. 너무 멋진 미사여구가 붙은 동네라서인지 은근히 이 동네에 기대감이 커지네요.

까미노에서의 첫 번째 선물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며칠 동안 오가며 보았던 정겨운 얼굴들이 맞아줍니다. 먹고 씻고 널고 동네에 나오니 조용합니다. 시에스타지요. 그래도 우리는 순례자니까 낮잠만 자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더위를 무릅쓰고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 시내 중심엔 에가강이 흐르고 있었고 아치형 조각이 아름다운 성당들이 여러 개나 되었어요. 풍요 속의 빈곤이라 했던가요? 미사를 드리려고 이곳저곳 성당을 돌아다녔는데 미사 하는 성당은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마 우리가 잘 몰라서일 거예요.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해서 일단 숙소로 오는 길에 아름다운 성당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를 만났어요.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된 사람이었지요. 이분도 몇 번 인사만 하고 지나갔었지만 아직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고 아들 같은 사람과 걷는 걸 몇 번 보았을 뿐인데 여기서 다시 만난 거지요. '화가'라는 동요 아세요? '맑게 갠 공원에서 턱수염 난 화가 아저씨~'. 보자마자 그 동요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얘서 더욱 예술가 같았어요. 우리가 그림에 관심을 두자 좋아했어요. 자그마한 화첩에 수채화로 그리고 있었는데 참 예쁘더라고요. 그래도 작업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자리를 나와 작은 가게에서 내일 먹을 것들을 간단히 사서 숙소로 돌아왔어요.

7시쯤에 저녁을 먹으려고 알베르게 앞 식당으로 갔어요. 주방이 있어서 해먹을 수도 있었지만 이곳 음식이 맛이 있나 싶기도 하고 포도주도 맛있다고 하니 식당에서 먹기로 한 거죠. 순례자 메뉴를 시키니 포도주도 따라 나오더군요. 배가 고파서인지 음식도 맛도 있고 포도주도 괜찮았어요.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아까 봤던 화가 아저씨(?) 부자도 여기로 식사를 하러 오네요. 이날 인연으로 이 부자와는 앞으로 저와 가장 우연히, 가장 많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식사 후 마요드거리를 언니와 산책하는데 낮엔 그렇게 조용하던 골목이 시끌벅적합니다. 순례자들이 저녁식사 후 잠을 청하러 가는 시간쯤이면 도시는 깨어나서 활기를 되찾는 거지요. 날이 무더운 스페인은 밤 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고 해요. 언니도 예전에 스페인에 살 때 새벽까지 이 문화를 즐겼었노라고, 그때가 좋았노라고 회상을 하시더라고요. 걷는데 어디서 음악 소리가 들려요. 둘러보니 낮에 닫혀 있던 집의 문이 열려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보고 있었고 음악 소리도 거기서 나는 거였어요. 그래서 문 앞에 있는 아저씨한테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니 들어가도 된대요.

야호~! 언니가 따라오는 줄 알고 들어갔는데 언니가 안 보이는 거예요. 얼른 숙소로 달려가서 함께 가자고 했더니 미사 하는 성당을 찾아본다고 혼자 보고 오라더군요. 공연을 보려고 또다시 얼른 달려갔어요.

네 명의 아저씨가 스페니쉬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데 하모니도 아름다웠고 노래도 아주 잘하시더라고요. 가끔 '라 팔로마' 같은 귀에 익은 곡들도 나오니 더욱 좋았어요. 노래 부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연배 사람들이 손뼉도 치고 따라 부르며 함께 하고 있어서 저도 같이 즐겼죠. 둘러보니 거의 현지인들이고 순례자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공연을 즐기는 낯선 동양 아줌마가 신기했는지 그곳 분들도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하며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도 만국 공용어인 웃음으로 화답을 하고 기분 좋게 그곳을 나왔어요. 스페인 전통 집에도 처음 가봤고 음악을 즐기는 그들을 보니 그런 분위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참 부러웠어요. 까미노 길을 걸으며 받은 첫 번째 선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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