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놓지 못한 조각가의 삶, 힘들 게 만드는 만큼 감동도 크지요

강동현 작가는 내가 아는 주변 작가들 중 존재감이 제법 묵직한 친구다. 그가 작가들과 함께 자리를 잡으면 그를 중심으로 왠지 모를 안정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강 작가는 지역 젊은 작가들에게 우뚝한 큰형님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있는 작업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전시장에서 유독 빛나는 그의 작품을 보고는, 저렇게 만들려면 작업실이 아마 쇳가루와 작업도구로 어수선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청소를 한 번 했단다. 그런 청소도 페인트가 온통 벗겨진 바닥이며 먼지 가득하고 낡은 공구 같은 치열한 작업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 듯했다. 그 흔적들 위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앉은 그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제 작품에 복제품이란 게 있을 수 없죠"

-무엇보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네요.

"요즘 쓰는 재료가 스테인리스스틸 봉인데요. 먼저 드로잉을 하고, 흙으로 모형을 만들어요. 이미지를 머리에 각인한 다음에 용접을 하기 시작하죠. 캐스팅이 아니고 용접을 한 다음 망치로 두드려서 면을 고르죠. 앞뒷면이 다 되고 나면 잘라낼 건 잘라내고 다시 용접하고 그라인더로 갈고, 표면을 시너로 다 닦아내고 색을 칠하죠. 공정이 되게 많아요."

-어이쿠, 보통 작업이 아니네요. 그렇게 하다가 '이기 아이다' 싶으면 우찌되는 건가요.

"작업이 중반 정도 들어가면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실험작 같으면 그런 게 더 많죠. 만들고 보면 느낌은 좋은데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 그런 것들은 잘라서 그냥 작업실에 보관해 두죠. 놔두고 가끔 쳐다보고 그러다가 '요게 여기 들어가면 되겠다' 하고 갑자기 떠올라요. 이번에 만든 총 같은 작업이 그런 경우인데요, 아버지가 쓰던 공기총을 폐기하려고 신고하니까 다 떼고 개머리판만 돌려주대요. 이것도 나중에 활용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챙겨놨었죠. 작가는 뭐를 함부로 버릴 수가 없어요. 강에서 주운 나무토막이나 대학 음악과에서 버린 바이올린도 주워서 보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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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강동현 씨./강대중 제공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건 언제부터?

"철 작업은 좀 오래 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돌 작업, 나무 작업, 철 작업, 설치미술도 하고 그랬죠. 근데 제 성격이 빨리 결과물이 보여야 하고 수정도 빨리 되어야 하거든요. 나무나 돌은 한 번 깎아내면 끝이잖아요. 제 작업 스타일이랄까 성향도 그래요.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딱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런 이미지를 이렇게 만들 것이라는 큰 형태만 염두에 두고 실제 만들면서 구체적인 부분을 생각해요. 내 머릿속에 있는 느낌을 옮겨야 하는데 하면서 느낌이 왔을 때 이거다 이건 아니다 싶잖아요. 그래서 보면 처음 의도하고는 조금씩 바뀌지요. 그래서 제 작품 중에 비슷한 것은 있어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어요."

-작업 방식이 참 남성적이에요.

"저는 무조건 뭔가 작품에서 노동력이 보이는 게 좋아요. 노동력을 들인 만큼 감동이 오니까요. 완성하고 나면 뿌듯한 느낌도 있고요. 거친 느낌을 좋아해서 쇠를 때려서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는데요, 지금 작업실이 주택가라 그런 작업은 엄두가 안 나요. 현재 환경에서는 스테인리스스틸 봉으로 용접하고 면을 만들고 하는 작업이 가장 제 색깔에 맞는 것 같아요. 주변 환경에 맞춰서 작업을 하는 셈이지요. 지금도 야외나 공장단지 쪽으로 작업실 구하려고는 하고 있어요. 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우리가 수입이 만날 있는 직업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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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강동현 씨./강대중 제공

-그럼 완전 전업작가인가요?

"그런 셈이죠. 강의 나가는 거 빼고는 다른 일을 하지 않아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가끔 막노동을 뛰기는 해요."

돈벌이와 예술가의 갈림길에서

-창원대 미술학과에 입학한 게 언제죠?

"1996년이요. 처음에는 미술학과 가면 깔끔한 데서 우아하게 작업할 것 같은… 조금 로망이랄까 낭만 같은 게 있었어요. 들어와서 보니까 막 용접하고 돌, 나무 자르고 있고, 이게 대학이 맞나 싶더라고요. 그때는 강의실 건물 뒤편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전부 학교에서 일하는 근로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 학과 선배들이더라고요. 저는 고성에서 혼자 오니까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무작정 선배들 작업하는데 가서 뭐 도와드릴 거 없느냐고 물었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공간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삐대고 하다 보니 선배들이 가르쳐주고 챙겨주고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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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강동현 씨./강대중 제공

-고성이 고향이에요? 고성은 조금 시골이잖아요. 시골에서 미술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고향이 완전 시골이에요.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미술이나 음악은 그냥 '빌어먹는' 직업이에요. 심지어 '집이 가난하면 나가서 돈 벌 생각을 할낀데, 니는 어찌 그런 일을 하고 있노' 그러는 분들도 계세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어요. 근데 아무리 잘 그려도 미술학원 다니는 아이들이랑은 표현 기법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에서 뭘 배우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여건이 안 되니까 못 다녔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공고를 가려고 했었어요. 아버지께서 '거 가서 뭐 할낀데'라고 묻더라고요. '빨리 돈 벌라고 그런다'니까 '니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고마 인문계 가라' 그러셨어요. 고성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이때가 중요한 갈림길이었어요. 만약 제가 공고에 갔다면 조각가가 되지는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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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중 제공

고등학교 가서도 딱히 대학 가려는 생각은 없었고요, 그냥 미술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미술학원에 갔어요. 학원에 가서야 미술을 해서 대학 가는 길이 있다는 걸 알았죠. 이래저래 잘 맞아떨어져서 창원대 미술학과에 들어왔어요. 생각해보면 집은 가난해도 부모님께서 저를 자유롭게 키우셨어요. 그래서 미술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고성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제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시죠. 작품도 보시고 좋아해 주시고. 하지만, 제가 작업하는 거 보시면 마음 아파해요.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돈은 안 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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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강동현 씨./강대중 제공

"쉽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잘 해왔네요"

-작품을 언제부터 대외적으로 전시하기 시작했어요?

"대학교 다니면서부터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지금처럼 아트페어나 초대전, 기획전 이런 게 거의 없었어요. 오로지 공모전이에요. 1학년 때부터 공모전 위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때 서울신문사에서 한 서울문화조각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군대에 갔죠. 제대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공모전에 매달리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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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강동현 씨./강대중 제공

-공모전 입선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때는 공모전이 전부였어요. 다른 돌파구가 없었어요. 졸업하고 대학원 다니면서 생계 때문에 잠시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다른 일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대학을 졸업하면서 현실적인 부분에서 부딪치기 시작한 거죠. 그래도 조각에서 손을 놓고 있진 않았어요.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니 손을 못놓겠더라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그동안 재밌기도 했고 안 좋은 일도 있고 그랬는데 크게 보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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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중 제공

-앞으로 구상해둔 작품이 있나요?

"지금은 1m 내외 크기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요, 내년에는 크기를 키울까 해요. 실제 사람 크기 정도로요. 물론 작업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죠. 그래도 크면 느낌이 더 강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정지된, 그래서 관객이 관망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작품이 뭔가 부유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최근 작품 중에 '저고리'나 '고양이'에는 감정이 들어가 있거든요. 저고리 작품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전시를 하면서 고민하다가 나온 건데 이 작품부터 삶에서 묻어나는 그런 감정들을 넣기 시작했어요. 다음 작품은 사람이랑 동물을 다루려고 하는데.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잖아요. 그런 느낌을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뚜렷하게 형태가 나오지는 않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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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현 작가 초기작들./강대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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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작.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작품으로 태어나기도-한다./강대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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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2015) 이 작품을 시작으로 작품에 감정을 넣고 있다./강대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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