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을 누비던 소녀가 찾은 두 번째 인생

우연히 자동차 딜러 김민진(31) 씨 이야기를 듣게 됐다. 여성 비율이 높지 않은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녀가 10년 가까이 공을 찼다는 점도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

민진 씨를 만나러 수입차 전시장이 줄지어 있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공단봉암로로 향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민진 씨는 170cm 늘씬한 체격에 서글서글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동네 아주머니가 알아본 운동신경

민진 씨는 세 살 때부터 창원에서 살았다. 동네에서 민진 씨는 눈에 띄게 활발한 아이였다. 남자아이들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매일 야구나 축구를 하며 놀았다. 그 에너지는 사실 타고난 운동신경 덕이었다.

"사실 동네에서 골목대장처럼 다녔어요. 남자애들이랑 운동도 하고 애들도 너무 많이 때리고요. 하하 그런 저를 좀 유심히 보던 아주머니가 있으셨나 봐요. 동네 아주머니가 학교 운동부 감독님들한테 동네에 이런 여자애가 있다고 전화를 하신 거예요. 감독님들이 저를 보러 울산에서 오시고, 마산에서도 오셨어요."

민진 씨가 그렇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일반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보다는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원래 운동을 좋아했던 민진 씨는 축구가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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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진 씨./서정인 기자

"시기가 약간 늦긴 했어도 키가 크고 힘이 세고 운동 센스가 있는 아이들을 뽑으셨던 것 같아요. 전 원래 운동을 진짜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했었고, 중학교에 가보니 사격팀이 있었지만 정적인 운동인 사격이랑 저는 안 맞았었어요. 그러다 동네 아주머니 덕분에 축구를 시작했죠."

처음에 가족들은 민진 씨가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1남 2녀 중 막내딸이었던 민진 씨가 어렸을 적, 지금 모습과 다르게 몸이 허약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했던 가족은 곧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한 민진 씨는 축구를 계속했다. 민진 씨는 한일전산여고 재학 시절 3년을 현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골키퍼 김정미 선수와 함께 보냈다. 둘은 동갑 친구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되새겨보면 운동장에서 치열하게 운동했던 기억과 함께 합숙생활의 고단함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엄청 재밌었어요.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됐잖아요. 부모님도 안 계시니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았고요. 근데 고등학교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합숙을 해보니 그런 지옥이 없더라고요. 그때는 스마트폰 같은 것도 없으니까 외부랑 소통하기 힘들었고 핸드폰 수신율도 안 좋았었어요. 선배 언니들한테도 맞기도 했죠. 당시에 대물림되는 악습이 저희들끼리 심했던 것 같아요."

민진 씨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고등학교 입학 후 대회에 나가면 3위, 또 3위였다. 우승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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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진 씨./서정인 기자

"나가서 계속 3위를 하니까 감독님이 우승을 하면 본인이 관두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저희가 꼭 우승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하도 막 때리고 하니까 어린 마음에요.(웃음) 고3 때 제대로 작정을 했어요. 울산여왕기대회가 있었는데 결승까지 올라갔어요."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경기였다. 한일전산여고 기세 못 지 않게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지금은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인 위례상고가 상대팀이었는데 그 팀이 거의 랭킹 1위였어요. 거기에 당시 1학년이었던 박은선 선수가 있었어요. 키가 180cm가 넘는 선수예요. 풀타임에서는 비겼고 연장전 들어가서 한 골 먼저 넣는 팀이 이기는 골든골 시스템으로 경기를 하는데 저희 주장이 박은선 선수랑 헤딩을 '떴'어요. 우리 골대에 공이 들어갔고 고등학교 마지막 경기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죠. 나중에 보니 우리 주장 머리에 맞아 공이 들어갔더라고요.(웃음)"

당연히 '볼밥'먹고 살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민진 씨는 울산과학대에 진학했다.

"전 계속 축구만 생각했었어요. 실업팀 가고 태극기 달고… 축구할 생각만 가득했죠. 그러다 경기 중에 십자인대를 다쳤어요. 그 소리가 본인에게만 들리거든요. '드드드득, 뚝' 하는 소리가 났는데 코치님이 일어나라고 막 그러시는 게 못 걷겠다고 하니까 '이년아 뛰라고!' 하시는데… 아, 코치님은 굉장히 좋은 분이셨어요.(웃음) 좀 심각한 것 같다고 하니까 달려오셔서 저를 업고 나가셨어요."

부상 후 겪어본 적 없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부상과 재활이 반복됐다. 더 큰 문제는 몸싸움에 겁을 먹게 됐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경기 중에 어떤 상황이 와도 겁을 먹지 않았는데 부상 이후에는 덜컥 두렵더라고요. 상대방이랑 부딪히는 거에 대해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어요. 재활하면서도 다치니까 2년 정도는 계속 아팠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 때까지요. 공차면 붓고 끊어지면 수술하고 그랬죠."

선택지는 하나였다. 축구를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만 좇으며 산 민진 씨는 아쉽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허탈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주 당연히 제가 '볼밥'을 먹고 살 줄 알았거든요. 엄청 아쉬웠어요.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게 아직도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질려서 그만둔 게 아니니까요. 축구 그만둔 후에는 어떻게 먹고살지 그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스물하나의 나이였다. 주변 사람들은 진로를 고민하는 민진 씨에게 지도자를 권유했다. 운동을 그만둔 선수들이 가장 많이 택하는 길이기도 했다. 관련 자격증부터 열심히 땄다.

"초등학교 지도자에 맞춘 라이센스를 주로 땄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5년 정도 가르쳤죠. 포항에서 2년, 인천에서 2년, 또 마산에 와서 1년을 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민진 씨는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그때는 여전히 선수마인드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5년 내내 아이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라면 좀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됐어요. 선수 마인드였죠.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까지 여자아이들이었는데 여러 가지를 가르쳐도 한두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1~2년은 기다려야 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때 어렸고 지도자 교육을 주기적으로 받았어도 마인드가 부족했죠. 지금 그 아이들 중 대학에 가고 실업팀에 가있는 아이들이 다치거나 관뒀다는 소식이 들리면 괜히 저 때문인 것만 같고 그래요. 내가 기초를 잘 못 닦아줬다는 생각이 들었죠."

죄책감과 함께 찾아온 회의감도 민진 씨를 지치게 했다.

"축구를 하고 싶어서 오는 애들도 있지만 그냥 오는 애들도 있어요. 살을 빼려고 혹은 그냥 흥미가 있어서요. 어떤 부모님은 또 아이를 정말 선수로 키우고자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고요. 아이들이야 어떻든 학교 측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대회에 꼭 나가야 한다고 하고…, 선수가 부족해서 10명이 경기 뛴 적도 있었거든요. 시스템에 병폐가 있었죠. 아무튼 이런 게 안 좋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운동 그만둬도 날 필요로 하는 곳 있더라

괴로워하면서도 지도자 생활을 5년 동안 했다. 축구와 아예 관계없는 길을 간다는 선택을 내리기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민진 씨는 용기를 내 다시 짐을 쌌다.

"이제 정말 다른 쪽으로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골프장에 취직을 했어요. 골프장 운영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 재고 관리나 업체 관리, 결제 같은 업무를 많이 배웠어요. 그때 제가 27세 정도였는데 골프장이 안동, 제천 이런 데에 있었어요. 3~4년을 그렇게 또 타지에서 지냈죠."

문득 반겨주는 이 없는 기숙사가 썰렁하게만 느껴졌다.

"추운 겨울 일을 마치고 골프장에서 내어 준,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갔을 때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서글프고 행복하지 않았어요.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람이 그리웠어요. 집이 그리웠고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민진 씨는 돌고 돌아 창원으로 왔다.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자동차 딜러 모집 공고였다.

"모집 공고를 보게 됐죠. 차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늘 관심이 갔던 분야였기 때문에 망설여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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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진 씨./서정인 기자

푸조(Peugeot) 창원 전시장 영업부에서 근무한지 3년 차에 접어든 민진 씨는 이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자동차 딜러 여성 비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관련 업계 경험이 전혀 없던 민진 씨는 어떻게 딜러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수입차 업계에는 여성 딜러가 많이 없어요. 특히 지방 쪽에는 많이 없죠. 면접을 봤는데 지점장님께서 다행히 어여삐 여겨주셔서(웃음) 들어왔어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니까 3개월 동안은 차에 대해 공부만 했어요. 판매를 시작하고도 한동안 계속 공부를 했고 금융 쪽이라던지 관련 업무도 배웠죠."

민진 씨는 아직 영업일에 대해 배울 것이 많은 단계이지만 3년 동안 자동차와 고객을 연결하며 나름 깨친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이 영업을 하면 그 사람한테 대부분 사는 분위기였는데요.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소비자들도 이제 최대한 저렴하고 합리적으로 사시려고 하거든요. 특히 수입차 같은 경우는 공부를 하고 오시기 때문에 차 스펙에 대해 다 알고 오세요. 그래서 원하는 스펙과 생각한 금액이 맞으면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영업일도 그런 변화에 맞춰가고 있죠."

민진 씨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집에 가면 사람의 온기가 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다. 이런 평범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생애 처음으로 지내고 있기에 지금은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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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진 씨./서정인 기자

"전 원래 오늘 행복한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웃음) 지금은 이 일을 꾸준히 해서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서른하나, 민진 씨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다 펼쳐지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지만, 어릴 적 민진 씨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청춘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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