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보다 더 많이 알거나 비위 맞추거나"

<경남도민일보> 독자투고란에 월 1회 정도 투고를 하는 이가 있다. 주로 창원시정, 경찰행정에 대한 글을 많이 쓴다. 30여 년 '범한 총포사'라는 사업을 영위해왔고 12년 동안 한국총포협회장을 지낸 이력도 이채롭지만, 최근에는 경남수렵인참여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밀렵 단속이나 불법 엽구 수거 같은 공익활동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보게 된 계기는 투고한 글을 읽으면서였다. 총포사업이란게 엄격한 법령에 따라 규제도 많이 받는데도, 경찰 조직을 비판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자신의 업과 직접 관련있는 공권력을 대놓고 비판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그를 만나 보았다. 오수진 (사)경남수렵인참여연대 대표다.

12월 15일, 미국에서 또다시 총기 사고가 나서 한인 1명이 숨졌다. 걸핏하면 총기 사고가 나는지라 어쩌면 미국 사회는 총기 사고에 무감각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또 잊을만 하면 야생 멧돼지 공격을 받은 시민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총과 야생 멧돼지. 그 연결고리에 있는 오수진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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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수렵인 참여연대 회장./정성인 기자

오 대표를 만난 11일에도 총기 사고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지난 2월에 엽총 사고가 두 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경찰청 규제가 엄청나게 심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경찰청 입장도 충분히 이해 가는 것이 또 어디서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니 민간에 깔린 총기가 줄어들면 사고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총기 사고는 대부분 우발적이거나 실수로 일어나는 사고가 많습니다. 수렵도 어엿한 레포츠고, 실제로 유해조수 구제를 위해서는 총기가 필요한데도 엽총은 물론이고 공기총까지도 영치하게 하니 민수용 총기 산업까지도 위축됩니다. 규제만이 능사는 아닌데 답답한 부분이 있죠."

공무원 상대 안하려면 연쇄점 하면 수월

총포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고 물었다.

"1982년부터 총포판매업을 해왔습니다. 한국총포협회장 12년, 전국수렵단체협의회 회장, ㈔경남수렵협회장, ㈔경남수렵인참여연대 회장, 환경부 수렵면허 출제위원 등을 맡아왔으니 총포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조예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또 1994년에는 <총포문제에 대한 연구>를 발간해 불합리한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과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규정을 개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도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멧돼지 피해예방 대책과 총포 안전 관리대책을 국민에게 제시한 바도 있습니다."

한참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보안업체를 설립하고 가스분사기 소지 허가를 받으려 하는데, 해당 경찰서에서 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 대표는 얘기를 들어보더니 해당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법정 구비서류가 아닌 사업자등록증 제출을 요구하며 총포 소지 허가를 내주지 않는 문제점을 따졌다. 법령 조문을 얘기하고, 거기에 나열된 필요 서류를 얘기하면서 어디에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하게 돼 있느냐고 따졌다. 또 총포 소지 허가는 1주일 이내에 처리하게 돼 있는데도 신청 2주가 넘었는데도 처리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따졌다. 아마도 담당자가 뻗대는 모양이었다. 곧바로 해당 계장에게로 전화를 해서는 논리적으로 얘기하니 그 계장이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날 중으로 허가 처리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관공서가 갑이고 민원인은 을일 수밖에 없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이고 행정이고 법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잖습니까. 그들을 상대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어요. 술 사주고 밥 사주며 비위를 맞추거나 공무원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실력을 쌓아서 규정을 들이미는 것이죠. 제일 수월하려면 연쇄점 하면 됩니다. 공무원 상대 안해도 되고, 돈 되는 대로 팔면 되니까요. 공무원 상대하는 직업은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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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수렵인 참여연대 회장./정성인 기자

그가 1994년 출판한 <총포문제에 대한 연구> 머릿글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폭력으로 형사입건된 전과 기록이 있는 사람은 10년 동안 죄 한 번 짓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도 공기총 1정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없었고(1994년 경남 창녕경찰서), 총포 관련법에는 분명히 20세 이상이 되면 총포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30세 미만인 사람은 총포 소지 허가 신청서 접수조차 아니하는 경찰서도 있었고(1994년도 부산 북부경찰서), 방범 가스총의 소지를 일반인에게 전면 금지시키는 경찰서도 있는 등(1994년도 부산 남부경찰서) 관할 경찰서장과 총포 담당이 바뀔 때마다 총포 소지에 대한 허가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총포협회장을 지내면서 이런 문제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공무원하고 많이 싸우기도 했다고.

"내가 많이 안다는 게 소문나서 그런지 요즘은 별로 싸울 일은 없는데 그래도 담당자가 바뀌면 또 딴소리 합니다. 심지어는 서류 하나 가지고 시비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1년에 한두 번은 그런 친구 만나요. 아무것도 아닌 서류 그게 빠졌다, 글씨 하나 빠졌다며 시비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특히 경찰 중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어요. 자주 보직을 이동하다 보니 그렇거든요. 나처럼 공부를 좀 하고 아는 사람은 이리 항의하고 바로잡지만 공무원 상대하려면 참 갑갑하기 짝이없습니다. 어름하게 알았다가는 당하죠. 경찰공무원이 참 불량한 사람도 있어요. 사법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양반아' 하고 해대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언론은 큰 힘이 돼줬다고 했다. 실제 전국 지방지에서 '총포협회' 또는 '오수진'으로 검색해보면 숱하게 많은 투고나 칼럼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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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수렵인 참여연대 회장./정성인 기자

"한번은 경기지역 일간지에 '경찰에 충고합니다'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총포협회장 할 때인데, 경기지역에 민수용 공기총 제조업체들이 몰려있다 보니 경찰과 많이 부딪힐 때였어요. 그 글이 나가고 나서 그쪽에서 난리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전까지 아주 불량하게 굴던 경찰관에게서 전화가 왔더군요. '오수진 회장님 신문에서 얼굴을 보니 참 미남이더라. 언제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만 내게 전화만 주면 다 처리해주겠다' 뭐 이러는 겁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러지 왜 그랬느냐는 말입니다. 그때 신문의 위력을 크게 느꼈습니다. 사실 공무원 조직에 감찰 기능이 있지만 제대로 안합니다. 언론에 보도 안되면 별 효과가 없어요."

어두웠던 시절

총포업을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고 했다. "30여 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하루 매출이 1000만 원을 예사로 넘기던" 시절이었고, "총 사러 온 사람들이 몰려 줄을 똑바로 서지 않으면 총을 팔지 않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1982년이었어요. 총이 귀할 때였죠. 호기심이 가더라고요. 경찰청에 질의했더니 개인도 총포 판매상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했지요."

당시에도 총기 소지 허가를 받아야했고, 수렵 면허제도도 있었지만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고향 후배가 당시 검찰청 마산지청 검사로 와서는 한동안 당시 마산 토호 동생을 따라서 수렵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어디 갔더냐고 물었더니 밤에 다녀서 모르겠다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따라다니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아무래도 밀렵으로 경찰에 걸리면 검사 팔려고 같이 다니는 거니 따라다녀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고 했더니 알았다며, 그뒤로는 안 따라다녔다더라고요."

이런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했다.

"시골길에 차 세워두고 대놓고 밀렵을 하는데 순찰 돌던 경찰이 단속할 생각은 안하고, 차 뒤에 기다리고 있다가 한 마리 잡으면 '나도 좀 주소' 하면서 얻어가기 일쑤였죠. 참 어두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법령도, 법령 해석도 제멋대로, 주먹구구가 많았다고.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가스분사기라는 게 없을 때였으니 법에도 관련 규제 근거가 없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순간 통에 최루액과 압축공기를 넣은 분사기를 팔고 다니는데, 경찰청이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회의를 잇따라 하더니 결국 분사기를 팔던 사람을 총포도검화약류단속법 위반으로 덜컥 구속해버렸어요. 모의 총포를 소지했다는 건데, 법 규정상 그런 가스분사기는 모의 총포가 아니거든요. 재판을 받고 이 사람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관련 업계에는 굉장한 충격을 줬고, 산업이 위축됐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두고 법령을 개정해서 가스 분사기도 총단법 규제를 받도록 했습니다. 엄한 사람 구속시켜 고생시켰는데 그 보상을 어떻게 해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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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렵꾼 올무 수거./오수진 제공

그런 어두웠던 시절이 아직도 유효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얼마 전 경남도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예산관리에 관한 법률이나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규정과 달리 동일한 단체에 환경부와 경남도가 이중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도 공무원들 생각이 참 잘 안 바껴요. 전임자가 했으면 후임자는 별 생각없이 그대로 따라하는 거죠. 그래 행정심판 사례나 보조금 신청서 등을 분석해서 도의원에게 알리고 보도자료도 작성해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데 그제야 바로잡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중 지원을 막아 국민이 낸 세금을 아낄 수 있게 했습니다."

환경에 눈을 뜨다

"총포협회장 12년 하고 나서 경남 수렵인협회를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이제는 손에서 총 놓은지 오래됐지만, 수렵 다니다 보면 밀렵이 참 많아요.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환경도 보호하고 사회에 공헌도 해야겠다 싶어 수렵인참여연대를 만들어 활동한 게 벌써 5년쯤 됩니다."

밀렵 단속, 올무 수거, 야생 동물 구조 같은 일을 하면서 수렵인 간에 친목도 도모하고 회원 권익도 지키고자 만든 단체다. 수렵 자체가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일인데 뭔가 안 맞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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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제공

"환경에 대한 인식은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정도 올라갔을 때 생겨나는 것 같아요. 그전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도 그랬고, 지금 동남아 각국 보면 그렇죠. 그냥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그리하는데, 실제 우리나라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죠. 2000년대 이후로는 밀렵에 대해 엄청나게 단속도 많이 하면서 밀렵은 나쁜 짓이라는 인식은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골에 가보면 몰라서라거나, 유해조수 구제 신청 절차가 귀찮아서라거나, 하여튼 여러 이유는 있지만 밀렵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야생 동물, 특히 멧돼지는 농작물을 망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기도 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야생동물 피해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을까? 그는 이미 1994년에 출판한 책에서 공기총에 한하여 전국을 상설수렵장으로 하고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공사육·부화장 설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대책을 주목하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답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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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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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렵꾼 감시 활동./오수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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