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학교도 바꾸고 지역도 살린다"

전교생 36명의 기적, 양산원동중학교 야구부 신화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이 신화를 만든 교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 양산원동중학교에서

야구부를 만든 교사가 공모제 교장으로 지금 합천야로중학교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초리 들지 않고도 학생 흡연율 낮추는 법

합천군 야로면에 들어서자 '야로중학교 최윤현 교장선생님-2015 조아제약 아마·프로야구대상 모범상 수상'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보통 학교 교장이면 교육부나 공공기관 혹은 관변단체 같은 곳에서 상을 받는데 최 교장은 달랐다. 학교에 들어서자 마침 야구부 학생들이 타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온종일 야구 얘기만 하다가 끝나겠구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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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현 교장이 받은 공로패./임종금 기자

합천야로중학교 최윤현 교장은 1961년 거창 가조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거창고를 졸업하고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체육학과를 마치고 1987년 체육교사로 교단에 섰다. 그는 1990년 전국교육원노동조합(전교조) 산하 교과모임인 전국체육교사 모임에 가입했다.

-제가 전교조 선생님을 몇 분 아는데, 체육교사는 좀 드물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체육교사들은 흑백이 아주 뚜렷합니다. 열심히 전교조 활동을 하거나 아예 무관심한 분들로 나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국 교육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체육시간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하다 당시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제가 체육교사모임에 가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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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야로중학교 최윤현 교장./임종금 기자

-모임에서 개발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있나요?

"저희 체육교사모임에서 여러 나라 사례를 보고 개발하고 보급한 것이 '뉴스포츠'라는 겁니다. 일반 스포츠에서 학생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만든 겁니다. 예를 들면 야구는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여학생도 못하니 '티볼'로 다시 만들었고, 하키수업도 위험하지 않도록 플라스틱 채와 공을 개발했습니다. 테니스와 탁구를 접목한 '프리테니스', 농구를 변형한 '넷볼' 등을 보급했습니다. 이 덕분에 요즘 체육수업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뉴스포츠는 1995년 전후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 보급됐고, 2000년대 초반에 지방까지 확산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나라 스포츠교육이 마음에 들던가요?

"저는 스웨덴이나 핀란드 교육을 많이 배우고 따라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듣기로 양산에 꽤 오래 계셨고, 양산 전교조 지회장도 지내셨다는데. 양산에 연고가 있는가요?

"제가 부임 초반에는 울산에서 많이 지냈습니다. 그러다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그대로 울산에 있으면 울산에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온 곳이 울산 인근 양산입니다. 처음엔 양산삼성중학교에서 있다가 양산고등학교에서 5년 반을 지냈습니다. 그때 제가 남부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선택제 체육수업'이라고 도입했습니다. 양산고등학교는 학교 운동장이 굉장히 넓고 체육관도 있습니다. 한 번에 4~5개 종목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가 이번 시간에 할 종목을 미리 정해 놓고 여러 종목 중에 선택해서 수업하는 겁니다. 10~15분 정도 하고 나서 다른 종목으로 바꾸는 겁니다."

양산고등학교를 마친 후 그는 신설 학교인 양산남부고등학교로 옮기게 된다. 신설 학교라 틀도 안 잡혀 있고, 성적도 낮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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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야로중학교 최윤현 교장./임종금 기자

"학교에 처음 딱 부임하니까 학교 화장실 바닥이 담뱃재로 새까만 겁니다. 제가 인성부장을 3년 했는데 흡연 학생 지도하느라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일단 학생들과 함께 공청회도 열고 토론도 하면서 교칙을 만들었습니다. 흡연 5회 적발되면 무조건 퇴학이다. 그런데 5회를 넘기는 학생을 그대로 퇴학시킬 수는 없죠. 봉사활동을 강화하고 학생들에게 담배가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모형도 만들고, 흡연 예방 수업을 스스로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담배 피는 학생들 숫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청소년 흡연율은 얼마나 되나요?

"예상보다 심각합니다. 남자 고등학생은 40~50%, 여자 고등학생은 20~30%가량 될 겁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선 교육청 단위로는 해법이 안 나옵니다. 교육부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해야 흡연율이 낮아질 겁니다."

이후 양산남부고등학교 교무부장을 2년 동안 했다. 교무부장이 되자 그는 또 다른 실험을 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제가 느낀 건데, 학교 워크숍을 일종의 야유회 정도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워크숍 자리를 '반성과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4시간 짜리 세미나를 하면서 올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그 자리에서 내년엔 어떻게 해결할지 해법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처음엔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다가 나중에 차차 말이 나오면서 해법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그는 양산원동중학교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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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원동중학교 야구부 선수단 사진./최윤현 제공

분교 모면하려고 원동중 야구부 창설

그는 사실 쉬고 싶었다고 한다. 시내 큰 학교에서 거친 고등학생들과 부대끼다, 좀 작은 시골학교에서 어린 학생들과 재미있게 지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양산원동중학교는 운명이 정해져 있는 학교였다.

"2012년에 학생 수가 20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미 분교가 예고돼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과 학교 교장 선생님하고 참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분교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늘 이 걱정 뿐이었습니다. 이미 분교가 예정된 학교기 때문에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신경도 안 씁니다. 지원도 안 해주고. 그러다 2010년 양산 리틀야구단(초등학생 야구팀)이 2개 대회서 우승하고 1개 대회서 준우승하는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양산시 야구협회에서 양산 시내 중학교 10곳을 돌아다니면서 야구팀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안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사회인 야구를 하는데 협회 사람들과 안면이 있어서 결국 저에게 제안이 온 겁니다. 이걸 당시 김주만 교장(현재는 양산범어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교장 선생님이 묻는 겁니다. '이게 학생 수 불리는데 도움이 되겠제?'라고 하자 저는 '이거 하면 분교 안 됩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2010년 10월에 양산원동중학교에 야구부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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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원동중학교 야구부 창단식 모습./최윤현 제공

갓 출범한 양산원동중학교 야구부에 좋은 선수들이 올 리는 없었다. 중학교로 '스카웃' 되지 못한 양산·부산지역 선수 13명이 모여 팀을 꾸렸다. 이때 양산시 야구협회와 허구연 MBC 해설위원이 적극 나섰다. 양산시장을 설득해 매년 양산시에서 2500만 원씩 지원을 받았고, 다른 학교 야구부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온 학생도 받았다. 5월이 되자 야구부원은 22명으로 늘어났고, 어지간한 건 다 갖췄다. 문제는 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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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야로중학교 최윤현 교장./임종금 기자

"시합에 나가게 되면 무조건 콜드패입니다. 어찌하면 콜드패를 면할 수 있을까? 이 생각 뿐이었습니다.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학생들을 위해 프로선수를 데려와서 얘기도 해주고 지도도 해주면서 자신감을 갖도록 했습니다. 저는 상품권을 챙겨서 그날 시합에서 제일 잘한 학생과 제일 실수를 많이 한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상품권을 주면서 격려했습니다. 실수를 더 많이 했기 때문에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격려한 겁니다."

2011년 거의 모든 시합에서 콜드패를 면하지 못했던 양산원동중학교 야구부는 2012년에도 비등하게 경기를 펼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전패였다. 2년 연속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2013년 첫 경기는 1월에 열린 경주시협회장기 대회였다. 첫 경기에서 대구중학교에 7-4로 앞서다 10-7로 역전패 당했다. 아이들 눈에 불이 났다.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주장이 학생들을 데리고 경주 시내에 가서 모두 삭발을 하고 왔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 잠신중학교에게 드디어 첫 승을 거뒀다. 자신감을 가진 원동중학교 야구부는 거칠 것이 없었다. 경주중학교, 포항제철중학교 등 강팀을 연파하고 무려 11연승을 거둬 협회장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경남대표 선발전 2차 대회에서 우승하고 2013년 7월 27일 대통령기 대회에 나섰다. 첫 전국대회였다. 사실 경남지역에서 대통령기 우승은 1970년대 마산중학교에서 한 번 했을 뿐, 이후엔 준우승조차 없었다. 높은 성적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1회전에서 소년체전 우승팀인 포항제철중학교를 다시 격파하고 승승장구, 갈수록 점수차를 크게 벌리면서 결승에 올랐다.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부산개성중학교를 상대로 명승부 끝에 5-4로 끝내기 역전승을 거뒀다. 양산원동중학교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승하고 나서 엄청나게 바빴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온갖 프로그램에 다 출연했습니다. '런닝맨', 'KBS뉴스'에도 나오고 다큐 프로그램도 나오고. 우승하고 나서 다음해 3월까지 방송취재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훈련에 방해된다고 몇몇 방송프로그램은 커트를 해도 워낙 많은 곳에서 요청하니 감당이 안 됐습니다."

2013년을 그렇게 보내고 2014년이 됐다. 사실 최 교장 머릿속에는 '올해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었다. 그렇지만 다시금 대통령기에서 우승을 했다. 그저 분위기나 운이 따른 것이 아닌 정말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대통령기에서 우승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선수를 달라고 난리였습니다. 경남고, 마산고 등 명문고등학교에서 우리 학생들을 많이 데려갔습니다."

원동중 출신 학생 가운데 미래가 기대되는 재목을 꼽아 주십시오.

"지금 포항제철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성륜 선수는 키가 작지만 굉장히 빠르고 야구 센스가 뛰어납니다. 경남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왕재웅 학생은 굉장히 욕심 많고 재능이 있으며 찬스에 강합니다. 부경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채호 학생은 사이드암 투수인데 작년에 최우수 투수상을 받았습니다. 두뇌회전이 빠른 친굽니다."

합천야로중학교에서 또 다른 신화 준비 중

이렇게 양산원동중학교 '신화'의 주역으로 떠 오른 그가 지금은 합천에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공립학교는 아무리 해도 5년이 만기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전근을 가야 합니다. 지역주민들과 동창회에서 도교육청에다 저를 붙잡으려고 민원을 넣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2014년에 합천야로중학교 동문들이 학교에 야구부를 만든다고 해서 저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사정을 들은 합천야로중학교 동문들이 저에게 공모제 교장으로 와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공모 절차를 거쳐 2015년 3월 1일 자로 합천야로중학교 교장이 된 겁니다."

-사실 양산보다는 합천이 야구부로 성과를 내기 어렵지 않습니까? 원동중학교 있을 때는 양산시 지원금이라도 받았는데 합천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럴 수도 있죠. 대신 야로중학교 동문회가 정말 열심히 도와줍니다. 동문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대단하게 성공한 동문이 없지만 내 일처럼 도와줍니다. 동문회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3천만 원씩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 가운데 2천만 원은 야구부를 위해 쓰고, 1천만 원은 장학금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상 경기 들어가면 중학교 야구는 결과가 어찌 될 지 모릅니다. 심리적인 영향이 큽니다. 어차피 야구는 10번 중에 3번만 잘 치면 되는 시합입니다. 7번의 실수를 어떻게 관리해주고 의지를 심어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교장은 야구부만 운영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 학교 비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사실 따뜻한 학교를 원합니다. 그래서 경영계획서에 학생들 꿈을 좀 자극해 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현대자동차 인사부서에서 2인 1조로 전국을 돌면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입사시키는 제도가 있습니다. 힘든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을 보면 조건 불문하고 무조건 채용하는 겁니다. 구글에서는 광고를 하면서 수학 공식을 전광판에 슬쩍 띄웁니다. 사람들은 신경을 안 쓰죠. 그런데 누군가 그 수학공식을 풀어서 구글에 제출하면 역시 무조건 채용시킵니다. 이제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가 옵니다. 그리고 수업이 변해야 인성도 변합니다. 수업 잘 하는 선생님을 모셔서 컨설팅을 받고 인성교육, 예절교육, 생활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따뜻한 학교를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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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야로중학교 출범식 모습. 허구연 해설위원이 연설을 하고 있다./최윤현 제공

-이제 10개월 정도 근무하셨는데 바뀐 것이 있나요?

"교직원회의를 의결기구로 했습니다. 거기서 논의하고 결정하고 소통합니다. 거기서 결정된 건 교장인 저도 따라야 하는 겁니다. 이걸 하려면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학교 교실이나 모든 공간에 온통 불투명 유리로 돼 있습니다. 개인 사생활 보호도 있지만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호 안건으로 '창문 중 하나만 투명으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절대 제가 교사 감시하거나 수업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수업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재차 약속을 하고 교실이나 각 공간 유리창을 하나씩 투명 유리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2015년 5월 달력을 보면 아시겠지만 5월 중간고사 기간에 연휴가 있습니다. 연휴 이후에 중간고사를 치르면 우리 학생들이 연휴 기간에 마음 편히 못 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연휴 전에 중간고사를 치르고 마음 편히 학생들이 연휴를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윤현 교장은 그저 야구부를 키워서 성적을 내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동중학교 신화 속에 가려진 그는 학교를 민주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지역과 학교는 같이 가야 한다는 의식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체육교사에서 교장이 된 그가 합천에서 어떤 기적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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