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끈질기게 작업 태도, 디자인을 가미한 한국화 작가

지난 10월 말 어느 날 저녁 여윤경 작가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혼자 슬쩍 찾았다. 전시 첫날이라 오프닝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온통 여자들만 가득했다. 괜히 무안해져서 지나가는 사람인 척 슬쩍 들여다보고 나가려는데 여윤경 작가가 아는 척을 하는 바람에 행사 자리에 앉게 되어 버렸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작가 참 좋은 언니 같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다시 갤러리를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가 여윤경은 차분하고 옹골찬 친구였다. 그의 작품도 그의 성격을 닮아 느리고 여유가 있었다. 

경북 구미에서 경남 창원으로

-왜 이렇게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요?

"주변에 여자뿐인 것 같아요. 하하. 창원대 미술학과를 나왔는데요, 후배들은 학교에서 같이 그림 그리다가 친해져서 계속 만나는 아이들이고, 언니들은 같이 작업실 쓰는 사람들. 작업실 이름이 '그리는 집'이라고 저랑 3명이 함께 써요. 그리고 부산에 사는 언니 한 명을 더해서 똑같이 '그리는 집'이라는 그룹으로 1년에 한 번씩 정기전을 해요. 이제 세 번 했네요. 다 한국화하는 작가들이고요."

01.jpg
▲ 화가 여윤경./강대중

-미술학과에 남자가 잘 없나요?

"한국화 파트에 남자 후배가 없어요. 남자들이 선택하기에는 좀 그런가 봐요. 디자인이나 조각 쪽이 남자 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배들이 예전에는 조금 많았다고 그러시던데 갈수록 줄어들어요. 아무래도 여자가 너무 많으면 남자들이 기가 눌리는 게 있으니까 들어와서도 적응 못 하고 군대 가버리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남자애들 들어오면 신경 써 주려고 교수님들도 노력하세요."

-대학교는 언제 입학해서 언제 졸업했어요?

"저는 2002년 들어가서 2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2년 휴학했어요. 언니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집에서 학비 대는 일이 조금 힘들어졌거든요. 그래서 휴학을 하고 경북 구미시에 가서 2년 동안 사진관에서 일했어요."

-사진관에서요? 사진을 찍었었나요?

"아뇨. 사진 찍고 하는 것은 학교 사진 수업에서 배우기는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는 기계만 배웠어요. 기계로 현상하고 인화하고 그런 일을 했어요. 빨리 취직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거기에 갔는데, 원래는 조금만 일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가 정직원이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2년을 다니다가 학교로 돌아와서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 진학했지요."

-어떻게 구미까지 간 거죠?

"제 고향이 구미예요. 본가도 구미에 있어요."

디자인을 공부하다 한국화로

-그림은 언제부터 했어요?

"초등학교 7살 8살쯤? 부모님이 처음에는 피아노 학원을 보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무섭게 해서 도망을 갔거든요. 그래서 다시 미술학원을 보냈는데, 거긴 아무 말 없이 가기에 계속 보내셨대요. 그림을 본격적으로 한 건 그때부터예요. 고등학교에 가면 입시전쟁이니까 이거 몇 시간 안에 끝내 이거 안 하면 너 학교 떨어져 그런 식으로 다그치는데, 그때 제가 다닌 초등학교 미술학원에서는 선생님이 좀 늦어도 괜찮아, 내일 또 하면 되지 그렇게 하셔서 저는 천천히 그림 그리고 할 수 있어 좋았어요."

02.jpg
▲ 화가 여윤경./강대중

-근데 어떻게 한국화를 하게 됐어요?

"처음 시작은 서양화였어요. 초등학교까지는 동네 미술학원 계속 다녔는데 그 학원에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거든요. 중학교에 입학하니까 그 학원 선생님이 중학생은 가르칠 수 없으니까 입시 학원으로 가라 그러셨어요. 입시학원에 갔더니 선배들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어떻게 하지 하고 있는데 미술 하는 친구가 자기가 화실에 다니는데 선생님이 아주 좋다고 그래서 거길 갔죠. 서양화 전공하신 선생님인데 거기서 유화도 배우고 수채화도 배우고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되니까 그 화실 선생님이 이제 입시를 해야 하니까 입시 전문학원으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디자인 전공으로 입시학원에 갔는데, 디자인 선생님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시간 안에 완성 못 하면 때리고 했는데, 저는 손이 느려서 정말 많이 맞았어요. 그래도 많이 배워서 상도 받고 그랬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 강압적으로 하셔서 어찌할까 하고 있었는데, 그 학원 원장 선생님 부인이 한국화를 하셨어요. 저한테 한국화 한번 안 해볼래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그려봤는데, 저보고 괜찮으면 한 번 해보자 시더라고요. 한국화를 하면 일단 서양화를 하는 것보다는 대학 가는 데 유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창원대에 입학했죠."

-낯선 데 와서 처음에는 고생을 했겠군요.

"좀 많이 힘들었어요. 친구들은 다 대구 아니면 서울에 있는데, 저 혼자 창원으로 왔어요. 처음부터 혼자 자취를 했어요. 기숙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왔던 거죠. 처음 창원에 왔을 때는 한 달 만에 장염 걸려서 쓰러지고 그랬어요. 밥을 못 챙겨 먹었어요. 맨날 학원에서 항상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대학 오면서 갑자기 혼자가 되어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학과 친구들은 다 창원·부산 애들이라 마치면 집으로 가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작업실 같이 쓰는 언니들하고 친해진 거죠. 그때 1학년실 바로 옆에 3학년실이었는데, 언니들이 1학년실에 항상 불 켜진 거 보고 들어와서 가르쳐 주고 챙겨주고 그랬죠."

04.jpg
▲ 화가 여윤경./강대중

종이컵을 모티브로 작업

-작업하는 거 보니까 패턴 식이 많은데요.

"제가 패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작업하고 보면 디자인적인 게 많아요."

-그런데 이게 완성된 스타일이에요? 아니면 계속 찾는 과정인가요?

"개인전 할 때마다 형태가 조금 다 달라요. 저는 실험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 재료도 써보고 저 재료도 써보고,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고 그래요. 다른 분들 작업 괜찮은 게 있으면 물어보고, 이런 느낌을 내고 싶은데 무슨 재료가 좋은지 조언도 구해보고. 그런데 제 작업에 한 가지 공통적인 주제는 있어요. 종이컵."

-종이컵에 어떻게 꽂힌 거예요?

"2007년인가, 대학 4학년 때 첫 개인전을 준비했거든요.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셨어요. 기존에 하는 것과 다른 작업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까 계속 고민을 했죠. 그때 친한 언니가 아르바이트하는 커피숍에 만날 가서 놀았는데, 언니 기다리면서 드로잉을 했어요. 드로잉을 제일 많이 한 게 컵이었어요. 그냥 커피잔보다는, 왜 커피 자판기 옆에 보면 다 먹은 컵 모아두는 거 있잖아요, 그게 눈에 들어와서 쌓인 컵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선이랑 차곡차곡 쌓인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컵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03.jpg
▲ 화가 여윤경./강대중

다양한 표현기법 연구

-한국화하면 보통 먹으로 작업하는 거 아닌가요? 작업이 좀 색다르네요.

"보통은 먹이라고 생각하는데, 옛날부터 채색화도 있었잖아요. 어진(왕의 초상화) 같은 거는 석채(돌가루)로 그리거든요. 요즘은 석채가 비싸서 분채로도 나와요. 거기에 아교 같은 것을 섞어서 그리거든요. 저는 목탄으로도 작업해요. 재료는 잘 안 가리는 편인데, 될 수 있으면 한국화 재료를 쓰려고 노력하고 옛날부터 목탄을 참 좋아해요. 첫 개인전부터 목탄을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07.jpg
▲ 화가 여윤경 작품./강대중

-한국화를 하면 동양고전 그런 거를 공부하지 않아요?

"사실 동양철학 같은 거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장자 도덕경은 논문 쓰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긴 했어요. 요즘은 재료 찾고 하는 공부를 많이 하죠. 자기가 생각하는 걸 제대로 표현하려고요."

-작업하는 거 말고 먹고사는 건 뭐로 먹고사나요?

"아이들 가르쳐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도 하고, 문화센터에서 유치원생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애들하고 하는 건 재밌어요?

"네, 어른들 하고 있다가, 애들 보면 좋아요. 순수하잖아요. 감정을 숨기지를 않아요. 말을 안 들어서 화낼 일도 많지만, 웃을 일이 더 많아요."

08.jpg
▲ 화가 여윤경 작품./강대중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