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마산에서 배웠다"

전해철(54·새정치민주연합·안산상록갑) 의원의 고향은 목포다. 목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목포에서 호남선을 타고 광주나 서울로 유학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섬진강을 건너고 지리산을 넘어 동쪽으로 향하는 유학생은 드물었다. 이후 그의 정치 화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던 '지역감정'의 존재 역시 모르던 때였다.

당시는 먹는 '입' 하나를 줄이는 게 가정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때였고, 전 의원의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전 의원은 마산 한일합섬에 근무했던 형님댁에서 마산중앙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산은 전 의원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됐다. 또한 마산중앙고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연소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전 의원은 '안산상록갑'을 지역구로 둔 초선 국회의원이다. 세월호 참사 후,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수없는 밤을 지새워야 했다. 법사위 간사로서 활동하며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을 풀어가야 했고, 참여정부 핵심 인물로서 정치적 중심을 잡아가야 했다. 그러는 중에서도 그의 '마산 사랑'은 이어지고 있었다. 최근 예산 정국에서 교육부 특별교부세를 확보해 마산중앙고등하교 기숙사 신축을 도왔던 것이 하나의 작은(?) 사례이기도 하다.

"제 억양 놀리는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했죠"

-목포에서 살다가 마산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셨죠.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데 적응은 잘하셨나요?

"입학하고 나니까 전라도 출신은 저 혼자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2학년 때 1명 발견했어요. 하하. 말투와 억양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죠. 시비를 거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고, 크고 작은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억양을 가지고 저를 놀리는 거였죠. 그렇게 한 학기 정도 보내고 나니까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고 함께 놀기도 하고 그랬던 거죠. 저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겠죠. 지역감정이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 지역감정의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영남과 호남 친구들이 다 많았어요. 어찌 보면 영남 친구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네요. 이 점이 제가 이후에 청와대에서 공직생활 할 때 큰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다 아우를 수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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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전해철 의원실 제공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제가 2학년이던 1979년에 부마민주항쟁이 있었어요. 10·26을 거치고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던 시기였죠. 당시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대학생 선배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정의나 인권 등에 대한 개념을 두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을 두고 하는 공부는 아니었지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게 3·15 때부터 이어져 온 마산의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싶어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고등학교 시절에 진지하게 고민을 한 거죠.

1979년 부마민주항쟁 때는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시위를 주도하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경남대학교 선배들이 나설 때 거리에서 함께 뛰어다녔습니다. 그때 어울렸던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 운동권 활동을 많이 했죠."

지역분권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

-당시 마산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죠?

"굉장히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합성동, 양덕동 이 일대는 장관이었죠. 여성 근로자들이 수천 명씩 길거리를 메웠던 시기입니다. 수출자유지역도 활성화돼 있었고 한일합섬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활기가 있었습니다. 인구가 많이 유입되어서 그런지 시민들의 의식도 상당히 진보적이었던 것 같아요. 도시가 왕성하게 커가는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그때 당시 마산의 이미지는 활력 그 자체였는데, 2007년쯤인가? 그때 방문을 했더니, 도시 침체기이더군요.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지역분권이라는 단어 자체를 들을 수 없는 정부인 듯합니다. 참여정부 때 다양하게 시행했던 분권정책들을 바탕으로 현시점 소회를 밝히신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영호남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참여정부의 국정목표가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였습니다. 그 중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는 지속된 불균형 발전으로 계층 간 지역 간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문제의식하에서 분배와 복지정책, 지역 간 균형발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연대와 공동발전의 기초를 다지려는 목표에 따라서 진행됐습니다.

지방분권을 위해 중앙과 지방의 권한 배분, 획기적 재정분권의 추진,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성 강화 등과 같은 정책 과제를 선정하고 연차별 로드맵에 따라 착실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 중 특기할 것은 제주특별자치도 제도 도입, 주민소송제,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등 지방자치의 핵심제도를 입법화 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지자체, 주민, 전문가 등과 협의를 통해 모두 47개의 분권 과제를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자치경찰제 도입,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정비 및 지방이전, 국세와 지방세의 합리적 조정 등 소수의 과제만 실행하지 못했고 나머지 과제는 모두 실행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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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전해철 의원실 제공

'지역분권'이라는 대목에서 전 의원의 목소리는 차분함 속에서도 묵직한 힘이 실리는 듯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방정부의 정책결정권을 침해하면서 지방자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의 복지정책을 가로막음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노력을 역행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지방교부세 감액 등의 수단을 통해 지방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 하고 있죠. 최근 보건복지부는 기초자치단체에 중복사업 일제정비 지침을 내려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에 대해 승인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지방정부가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를 통해 건의한 대정부 정책건의 과제의 수용률은 평균 41.6%에 불과했는데, 특히 지난해에는 15건 중 4건만 수용해 수용률이 극히 저조하기도 합니다. 지방분권 균형발전이야말로 최고의 국가발전 전략으로 지방분권형 국가를 위한 정책 전환이 절실합니다. 향후 총선과 대선을 통해 분권형 국가에 대한 의제를 국민들께 알리고 실천해나가야겠죠."

-참여정부의 다양한 분권 정책을 인정합니다만, 그래도 미흡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분권 정책을 추진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으신다면.

"관료들의 관성을 꼽을 수도 있겠죠. 중앙집중화된 현 체제에 그대로 따라가는 거죠.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특단의 정책적 실천이 없이 그냥 현 상황대로 흘러간다면 중앙집중화는 강화되는 것이죠."

"봉하마을 구상이 완성되지 못한 건 무척 안타깝습니다"

-지역분권을 이야기할 때 봉하마을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봉하마을이 지역분권 철학을 담보하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가 컸습니다. 물론 봉하마을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역시 대통령의 빈자리가 큰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퇴임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대통령을 그만두고 은퇴하면 뭘 할까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인데 그중 하나로 읍·면 수준의 자치운동 같은 것을 시범적으로 해보고 싶다'고요. 또한 '우리 세대가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서 물려주는 것이다. 연구를 해서 마을의 숲과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운동,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발전 및 시민주권 실현, 정책연구소 설립을 통한 정치 현안 연구, 인터넷 토론 사이트를 통한 토론 문화 정착 등 퇴임 후에 하시고자 한 많은 구상이 있었습니다. 그 중 봉하마을 사업은 환경운동, 생태농업을 도입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오리농법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도 오리농법 봉하쌀이 생산되고 있는 등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큰 틀에서 대통령님이 구상했던 많은 것들이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대목에서 전 의원이 목이 메어 오는 걸 애써 참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정부 시행령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고 있습니다"

-안산에서 출마하시기 전에 마산 출마설이 지역정가에서 항상 돌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동문들께서 저에게 과분한 지지와 성원을 해주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배들과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은 우리 학교에 대한 열정과 애교심이 강한 것 같습니다. 또 그만큼 유능하신 분들도 많고요. 모교 동문들의 성원이 있으니까 마산에서도 제 이름이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안산이라는 도시와 인연을 맺은 건 언제부터인지요?

"1993년에 법무법인 해마루에 들어갔을 때였는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과 함께할 때였습니다. 당시 서울과 안산에 사무실을 설립했습니다. 안산은 도시는 크지만 법원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노동사건도 많은 곳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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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전해철 의원실 제공

-세월호 참사 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는 일에 매진하셨고, 당시 고생도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안산 전체가 고통과 슬픔에 잠겼습니다. 어디 안산뿐이겠습니까마는…. 그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첫 번째는 진상규명이고, 두 번째는 현실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했습니다. 제가 우리 당의 TF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여당과 한 공식적인 협상만 50여 차례가 넘었습니다. 협상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일이 허다했고 회의 진행 과정은 유가족에게 상세하게 설명드려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해와 왜곡도 많았고 사회적 갈등도 야기되었는데, 이에 대한 해명과 설명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소극적이었습니다.

특별사법경찰관이 도입되지 않는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 하에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관한 법률이 어렵게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법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여당 추천 위원들의 비협조, 그리고 정부 파견 공무원이 특조위 기획조정 업무를 하는 문제, 정부 예산안 편성 지연 등으로 지금 실질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특조위 활동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참사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밝히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에 대한 종합적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다시는 이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정치의 화두는 갈등 해소"

-앞으로 어떠한 정치를 해나가고 싶으신지?

"국가적 의제도 있을 것이고, 안산이나 마산 등이 안고 있는 지역적 의제도 있겠죠. 국가와 지역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정치라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답답한 게 갈등 해소입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적 의제와 지역의 특수한 의제를 풀고, 근원적인 갈등을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게 우리 정치 현실이죠. 이유야 다 있겠지만, 상대방을 이해하고 대화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결국 이게 가능할 때 우리도 한 단계 성숙하고, 지역과 나라도 성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갈등 구조는 엄존하고 있고 상존하고 있습니다. 갈등 구조를 해소하는 일에 대한 성찰과 실천을 지속해 나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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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전해철 의원실 제공

전해철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내 소위 비주류 그룹이나 일부 언론 등을 통해 '친노 비선 실세'로 일컬어진다. '비노 대표'가 당권을 잡았을 때는 '친노'라는 이유로, '친노 대표'가 당권을 잡았을 땐 친노 독식 논란 등으로 인해 주요 당직에서 배제되어왔다는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선과 논란과는 상관없이, 전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묵묵하게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매진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이었던 지역분권 의제를 심화시키기 위해 고민을 이어왔다. 그리고 안산의 눈물을 닦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마산의 친구'들과도 교류하며 영호남을 아우르는 시야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몇 가지의 키워드를 꼽아보니 이렇다. 안산. 세월호. 마산. 민주주의. 노무현. 지역분권. 그리고 이들 키워드 사이에는 '대한민국 갈등 구조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고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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