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먼저 직원들을 존중해야

몇 번의 거절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지난 봄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는 신임 병원장으로 취임을 얼마 앞둔 시점이라 "벌써 인터뷰하는 것은 (당시 병원장에게)예의가 아닌 것 같다"라며 거절했다.

그리고 5월 취임식.

가을에 다시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취임한 지 몇 달 안 돼 아직 내세울 만한 실적을 쌓은 것이 없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답변이 왔다. "인터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언론 인터뷰도 모두 거절했다"는 홍보담당 직원의 설명과 함께.

하지만 이번 인터뷰 취지는 병원장으로서 병원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의로서 독자들에게 건강 상식을 전하는 의도라는 설명을 듣고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양산부산대병원 노환중(56) 병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노 병원장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코 질환을 주로 다룬다.

큰누나와 토론 끝에 법대에서 의대로

경남 남해 출신으로 부산대 의대를 졸업한 노 병원장은 양산부산대병원 기획실장과 진료처장을 거쳐 지난 5월 제4대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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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남해중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부친 때문에 남해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전근으로 3살 때 부산으로 옮겨왔다.

부친은 경남고, 부산고 교장 등을 거쳐 부산공업전문대에서 퇴직하셨다.

교육자 집안이라는 분위기는 노 병원장의 학창시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노 병원장이 처음부터 의사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성균관대 법대에 진학했으니 어쩌면 의사가 아닌 판사나 검사, 변호사로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의사가 된 것은 큰누나의 영향이었다.

"큰누나와 15살 차이 납니다. 어머니가 36세 때 저를 낳았습니다. 어릴 때 큰누나가 어머니 역할을 해주셨죠. 중학교 다닐 당시 이미 누나가 약사였는데, 학교 행사에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면 나이 든 부모님이 부끄러워 누나한테 보호자로 대신 가달라고 하곤 했습니다. 법대에 간 후 어느 날 누나와 크게 토론했습니다."

누나는 노 병원장에게 의사가 될 것을 권했다.

누나는 "나라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것은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이다. 나라의 부를 위해서는 공대를 가면 된다. 하지만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은 의료인의 일이다"며 노 병원장을 설득했다.

인문사회 계열에서 사회에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려면 의사가 되는 것이 낫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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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노 병원장은 한 학기 만에 법대를 휴학하고 부산대 의대로 진로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나가 제 적성에 맞게 잘 설득한 것 같습니다. 큰 뜻이 있어서 법대에 간 것은 아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단순히 법대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간 것이었습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죠. 의술을 배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이 들어서는 전문지식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이 길이 적성에도 맞고 영광스럽습니다."

누나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이비인후과를 선택한 것은 은사인 전경명 교수의 추천 때문이었다.

"이비인후과는 내과의 특성과 외과의 특성이 모두 있는 과입니다. 하면 할수록 깊이가 있습니다. 전문의가 된 후 이비인후과를 더 사랑하게 됐고, 더 많이 자부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비염과 감기 간단하게 구분

하루는 한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병원에 왔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1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아요.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어요. 계속 코감기에 재채기에…. 특히 환절기에는 꼭 감기 때문에 고생이네요."

감기를 달고 산다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은 물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나오는 통에 '1년 내내 감기'라고 주위의 핀잔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전부 감기가 맞을까. 다른 사람에 비해 유독 면역력이 약해 감기 바이러스에 잘 노출되는 것일까.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다. 비염은 바이러스와 상관없는 것으로, 알레르기성과 비 알레르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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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노 병원장에 따르면 감기와 비염은 맑은 콧물과 재채기라는 초기 증세가 비슷하다.

"감기도 비염이라고 부르기는 합니다. 의학적 용어로 급성 감염성(바이러스성) 비염이라고 하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비염은 만성 비염을 이릅니다. 감기와 비염은 증세가 비슷해 구분하기 어려운데 혈액 검사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만성 비염, 특히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병원에 가 본 사람 중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피부 반응 검사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원인 물질로 피부 반응을 알아보는 것인데, 바늘로 따끔따끔 찌르기 때문에 특히 아이들은 기겁하기도 한다.

노 병원장은 이런 검사 없이 간단한 혈액 검사로 비염과 감기를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진 진드기나 먼지만 비염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찬바람도 비염 원인이 될 수 있다.

코 세척은 식염수로

비염이 있는 사람 중에서는 환절기 때는 으레 그러려니 하며 증세가 있어도 치료하지 않고 무심히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비염이 심해지면 누런 콧물이 나오고 안면통이 동반되기도 하는 등 부비동염, 즉 축농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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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꽃가루 때문에 비염이 생겼다고 해도 한 번 '알레르기 비염'이 세팅되면 다른 자극적인 환경에서도 반응을 하게 됩니다. 즉 애초 원인 물질뿐 아니라 다른 원인에서도 알레르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만성 비염 증상이 있으면 빨리 적절히 치료해야 천식이나 축농증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코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노 병원장은 '코 세척'을 꼽았다.

그런데 코 세척이라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생리식염수를 코로 들이마셔 입으로 내뱉는 것인데 처음 시도하는 사람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노 병원장은 "정확한 방법을 지도받아 하면 간단하다"라고 조언했다.

단 꼭 생리식염수를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생리식염수란 우리 몸의 체액을 0.9% NaCl(염화나트륨) 용액으로 생각해 이와 농도를 동일하게 조정해 만들었다. 일반 물과 달리 혈관 내에 직접 들어와도 삼투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링거 등을 통해 주입해도 쇼크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민간요법이나 주위 이야기를 듣고 죽염이나 기타 좋다는 것을 사용해 코 세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0.9% NaCl 농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이러한 것을 오래 사용하면 코에 더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백반이 좋다고 섞어 사용하다가 암이 생긴 사례도 봤습니다. 다른 것을 섞지 말고 생리식염수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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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비강 스프레이 사용 주의해야

비염이나 코감기로 오래 병원에 다닌 사람이라면 비강 스프레이를 처방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요즘은 TV에서 막힌 코를 쉽게 뚫어준다는 비강 스프레이 광고를 쉽게 볼 수도 있다.

비염 증세가 나타나면 번거롭게 병원에 가서 처방받지 않고 약국에서 자의적으로 비강 스프레이를 구입해서 계속 사용해도 될까.

노 병원장은 당장 손사래를 쳤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비강 스프레이 중에는 혈관 수축제가 포함된 것이 많습니다. 코는 혈관 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안 점막에는 혈관이 아주 풍부합니다. 혈관 수축제를 뿌리면 당장은 코가 뻥 뚫리니까 환자들도 좋아하고 사용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설명을 꼭 해줘야 합니다. 연달아 장기 사용하면 도리어 약물성 비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써야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비강 스프레이를 연달아 몇 번이나 처방받은 경험이 있다. 잘못 사용했던 것일까.

"그건 성분이 다른 겁니다. 스테로이드 성분으로, 이건 처음에는 효과가 잘 없다가 2주쯤 후부터 효과가 있습니다. 장기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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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치료 목표는 완치보다 관리

보통 병에 걸리면 빨리, 그리고 쉽게 낫기를 바란다.

한번은 노 병원장의 진료실에 한 아이 엄마가 와서는 아이가 알레르기 덩어리라며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진드기·먼지 등 알레르기 아닌 게 없다며 평생 이렇게 암울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절망감을 드러내며 레이저로 한 번에 고칠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비염을 치료하면 코막힘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완치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당뇨로 약을 먹고 운동하는 사람은 '당 조절 중'이라고 말합니다. 고혈압도 마찬가지로 '혈압 조절 중'이라고 하지 고혈압을 완치한다고는 안 하죠. 알레르기 비염 역시 마찬가집니다. 비염을 조절하고, 코를 관리하는 겁니다. 의사인 제 아내도 비염이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저보고 비염 하나 낫게 못 하느냐며 핀잔이었는데, 지금은 비강 스프레이 등으로 관리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절대 좌절하거나 불행하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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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아내는 나의 솔메이트

대학 동기와 연애 끝에 결혼한 노 병원장은 "아내가 나보다 더 바쁘고 더 유명하다"라고 살짝 귀띔했다.

바빠서 건강관리할 시간도 없다는 병원장보다 더 바쁘다고?

노 병원장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아내가 많이 나온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노 병원장의 부인은 동아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한진영 교수로, 국내 최초로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ISCN(염색체 관련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국제기구) 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 교수는 올 초 항노화산업지원센터가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지역 병원의 임상의사와 유전학 및 유전체학 연구에 종사하는 의생명과학 연구자를 중심으로 임상유전체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든 '부산·경남 유전체의학연구회'의 연구회장을 맡기도 했다.

바쁜 부부는 운동 겸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등산을 함께 간다.

"주말에 집 뒷산으로 갑니다. 아내와 함께 3시간 코스를 잡아서 가죠. 서로 바쁜 부부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아내는 저의 솔메이트입니다."

보통은 바쁜 아내가 불만일 수도 있을 텐데 '솔메이트'라고 당당히 밝히는 노 병원장의 얼굴에는 미소와 자부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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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김구연 기자

생활 속 운동 실천

"병원장님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막힘없이 인터뷰를 진행하던 노환중 양산부산대병원장이 멈칫했다.

뒤이어 주춤하며 "요즘은 바빠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예전에는 등산을 자주 갔지만, 병원장이 된 뒤로는 예전만큼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바쁜 중에도 나름 열심히 '생활 속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합니다. 교수 연구실에 가거나 회진 등을 할 때 7층까지 걸어서 오르내리죠. 일과 중에는 집무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합니다."

병원장 취임 전에는 점심을 대충 때우기도 했지만, 요즘은 점심 저녁 약속이 줄줄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먹는 양이 많아지는 것이 걱정이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그런데 병원장이 되니까 식사 약속이 많아져 식사량을 80%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먹을 기회와 먹는 양은 많아지는데 활동량이 줄어들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금연을 독려하려고 합니다. 직원 대상 금연 운동이 잘되면 지역사회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환자는 두 번째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양산시 물금읍 금오로 20에 있는 상급 종합병원이다. 지난 2008년 11월 진료를 시작했으며, 2009년 3월 개원식을 했다. 대학병원과 어린이병원, 재활병원, 뇌신경센터가 있으며, 모두 1235병상 규모다.

노 병원장은 양산부산대병원이 출발하기 전 추진위원회부터 함께 했다. 그만큼 병원에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애착이 많고 자긍심을 느끼지만, 그 순간 변화에 뒤처질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무엇을 할 때 '이게 아닌데. 옛날에 이런 의도로 시작한 게 아닌데'라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기득권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자긍심은 추억 속에 간직하면 됩니다. 현장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병원장으로 있으면 각종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병원은 사람, 특히 아파서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 예민한 상황을 많이 겪을 수 있다.

"인성이 안 된 직원도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이므로 모든 환자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습니다. 병원 직원들도 감정 노동자입니다. 이는 징계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결국 끊임없는 교육 투자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 비전과 개인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직원들은 힘들고 지치는데 병원장이 지적하고 야단만 치면 행복할 수가 없죠. 그건 고스란히 병원과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줍니다. 직원 행복을 위해서는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 그리고 적절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노 병원장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 집무실에서 <환자는 두 번째다(부제-진정한 병원 혁신의 개념과 실제! 고객 만족을 넘어 '환자의 경험'으로)>라는 책을 가져와 건넸다.

"이걸 가져가서 한번 읽어보세요. 환자는 두 번째고, 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환자 경험'을 '일련의 진료 과정을 통틀어 환자의 심리와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상호작용'이라고 밝혔다. 즉 병원에 다녀온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이 환자 경험이라고.

병원이 환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원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몰입도가 높아진 직원들은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의 건강을 더 잘 보살펴 주게 된다. 바로 이것 때문에 환자가 두 번째라는 것.

"살다 보면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작은 하나에 감동하게 됩니다. 환자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먼저 직원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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