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청소년들에게 손 내밀다

영화·드라마에 그려진 경찰관 모습은 거칠고 우락부락하다. 강력계 형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관 이미지도 전반적으로 딱딱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 경남117센터 책임자로 있는 도창현(47·경위) 팀장은 그런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선한 인상, 웃음기 머금은 얼굴, 다정다감한 말투와 손짓…. 억지스럽지 않다. 학교폭력에 상처받은 아이들 마음을 진정으로 어루만지려는 그의 마음이 뚝뚝 묻어난다.

관련 업무 1년간 준비, 자격증만 4개

지난 2011년 대구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 문제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각 행정기관에 흩어져 있던 학교폭력 신고전화를 '117'로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경남117센터는 2012년 6월 18일 개소했다. 경찰관 4명, 교육청·여성가족부 전문상담사 9명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해 24시간 체제로 운영된다.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청소년 고민 해결 창구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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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호 기자

하루 평균 신고 건수는 개소 첫해 20건가량이었고, 올해는 10월 기준으로 14건 정도다. 상담 내용은 직접적인 폭행 관련이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 언어적 폭력이다. 인터넷·SNS·스마트폰 등에서 비방·욕설·따돌림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학생이 해마다 늘고 있다.

학교폭력 신고는 대부분 학부모가 한다. 그런데 가해자든 피해자든 학부모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부모들이 아이들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갈등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만 생각하고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아이들끼리 화해했는데, 부모 자존심 때문에 민사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작 내 아이가 더 힘들어지는데도 말입니다. 정말 아이들 마음에서만 바라봐 줄 것을 학부모들께 당부하고 싶습니다."

도창현 팀장은 2013년 7월부터 경남117센터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단순한 인사발령에 따라 일을 맡게 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오랫동안 준비했다.

"이 일을 하려면 전문상담사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법률 지식도 갖춰야 하고, 판례 연구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가짐 없이는 어렵죠. 저는 이 업무를 하기 위해 1년 가까이 준비했습니다. 학교폭력 전문자격증, 학교폭력 예방교육사, 청소년중독 전문자격증, 청소년중독 예방사, 이렇게 관련 자격증 4개를 땄습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함께 일하는 상담사들 기분이 어떤지부터 살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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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선생님들이 출근하면 얼굴부터 쳐다봅니다. 개인적인 근심이 있어 보이면 소통하면서 그것부터 풀어보려고 합니다. 상담사 스스로 무거운 마음이면 아이들 얘길 듣고 보호하기 어렵습니다. 억지 부리거나 극성스러운 학부모와 대화할 때면 답답할 때가 있죠.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끝까지 들어드립니다. 제가 욱해서 받아치면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제가 3초 이야기하고 10초 듣는다는 마음 없이는 이 일을 하기 어렵죠."

어렵게 상담 문을 두드린 어느 여학생은 극단적인 마음을 먹기도 했다. 마지막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상담사에게 보낸 것이다. 도 팀장은 새벽에 얘길 전해 듣고 현장 경찰관에 재빨리 연락해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역할을 끝내지 않았다. 위기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꾸준히 관심을 뒀다. 지금 일상생활로 돌아가 씩씩하게 지내는 그 학생을 떠올리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상담 선생님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우리를 찾는다. 그 마지막 끈을 놓지 않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하자'고 말입니다."

음악으로 청소년들과 소통

도창현 팀장이 학교폭력 상담 일을 자청한 데에는 계기가 있다. 그는 경찰 내에서도 잘 알려진 '음악인'이다. 경찰관들이 만든 밴드 '지-폴리스(G-Police)' 주축 멤버다. 또한 일반인 두 명과 함께 하는 직장인밴드 '논코드(Non Code)'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기타뿐만 아니라 노래도 직접 한다.

"진해 민원실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청소년들과 음악으로 소통한다면 학교폭력 예방 등에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문화페스티벌 형태로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경찰관이 연주도 하고 노래도 하니까 아이들 반응이 아주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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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뿐만 아니라 병원도 정기적으로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음악이 몸과 마음의 상처 치유에 큰 도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함양군 수동면에서 태어났다. 3남 4녀 중 막내다. 음악적 기질은 유전적 혹은 환경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군 장교 시절 악기를 배웠다고 한다. 이후 과수원을 운영하면서도 교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계속했다고 한다. 85세인 아버지는 지금도 노인대학에서 음악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 역시 자연스레 음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기타를 쳤습니다. 음악에 대한 꿈이 있었죠. 대학에 가서 관련 공부도 하고 싶었는데, 여건상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스무 살 이후에도 여전히 그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뜻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지금 아내와 연애할 때였는데요, '음악 하는 사람은 절대 만날 수 없다'며 극구 반대했죠. 그때만 하더라도 '딴따라'라고 해서 부정적 인식이 강했죠. 아내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던 거죠. 그 생각을 존중하고 따랐습니다."

그렇게 해서 달리 마음먹은 것이 경찰이었다. 군대에서 경찰관 시험을 준비해 한 번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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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호 기자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공무원으로 있는 형님들이 권유했고, 봉사 개념에 좀 더 가까운 경찰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군대 병장 시절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제대 3일 후 경찰학교에 바로 들어가게 됐고요."

1991년 그렇게 경찰 제복을 입었다. 첫 근무지는 함안이었다. 그 무렵 결혼을 하며 가정도 꾸렸다. 몸보다는 마음이 편치 않던 시간이었다.

"한번 근무 나가면 15일씩 집에 못 들어갔습니다. 파출소에서 숙식하면서 일하는 거죠. 보름 만에 집에 들어갔더니 그런 속상함 때문에 아내가 울고 있더군요. 장모님도 일 그만두라고 하시기도 했고요. 그래도 한창 경찰에 빠져 있을 때니까요, '나한테는 이 일밖에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함안경찰서·파출소에서 11년간 있다가 이후 경남경찰청에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지금 이미지와 달리 함안경찰서 수사과에 있을 때는 강력범죄 성과도 좋았다. 1년에 청장 표창을 8번이나 받기도 했다. 그는 매사 열정적인 사람이다. 한번 빠지면 몰두하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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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호 기자

"예전에 경찰서 경무과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컴퓨터를 못한다는 이유로 배치를 못 받았죠. 그때부터 컴퓨터에서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했죠. 그러다 보니 디지털 문화에 남들보다 좀 앞서가는 편이었죠.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이었습니다. 사진 하나 빼기 위해 전부 다 인화해야 하는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참 아까웠습니다. 제가 건의해서 막 나오기 시작한 디지털카메라를 전국 최초로 일선 현장에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종이 아닌 PPT 보고를 함안경찰서에서 제일 먼저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당시 청장님이 보시고 크게 칭찬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남경찰 역사관을 만들 때 TF 일원으로 지방청으로 오게 됐습니다."

"음악 반대했던 아내에게 오히려 감사"

도창현 팀장은 대학교 1학년 딸,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일터에서는 학교폭력에 상처받은 아이들 마음을 보듬어 준다. 정작 아버지로서는 어떨까?

"하루는 저희 아들 몸에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딱 보면 누구한테 맞아서 그런 건지 아닌지 알잖아요. 아들은 오히려 저보다 담담하더군요. '필요하면 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하겠다'면서 말입니다. 저도 선생님에게 믿고 맡겨두었습니다.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고요.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쓰죠. 눈높이 대화를 위해서는 또래들이 쓰는 언어들도 많이 알아야 하죠. 그래도 우리 아들 녀석은 제가 음악공연 있으면 매니저를 자처하며 함께 다니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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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호 기자

경남117센터 일을 한 지 이제 2년 가까이 됐다.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고 교육계 내에서도 좋은 반응이 나온다. 학교·도서관 등으로 찾아가는 상담센터는 경남경찰청에서만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그의 열정에서 비롯됐다. 상담자와 전담경찰관 연계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17센터에서는 학생들이 전화 받을 수 있는 시간대를 미리 파악해 전담경찰관에게 알려주는 '도움시간제'도 운영하고 있다.

도창현 팀장 스스로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 이 업무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117신고센터' 전문가가 되고픈 욕심이 있다.

평일에는 아이들 상처 치유에 온 마음을 다 바친다. 주말에는 음악이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를 위로한다. 스스로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때 아내가 음악을 반대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도움되는 경찰 일을 하고 있고, 음악 역시 의미 있게 하고 있으니까요. 주변에서는 다들 부러워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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