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오면서 일교차가 커진다. 옛날 방송 광고에 나왔던 '감기 조심하세요!'란 영상이 떠오르는 시기다. 이때쯤 바닷가에 나가 운이 좋으면 하늘과 바다, 갯벌이 온통 빨갛게 물드는 노을을 만날 수 있다. 갯가에 앉아 가만가만 소리 들으면 빨갛게 물든 노을 속에 도요물떼새 소리도 들려온다. "쫑쫑쫑", "피잇피잇"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듯 경쾌하고 맑은 소리다. 갯가 사람들은 도요물떼새를 '쫑찡이'라고도 부른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는 않는데 울음 소리는 제법 크게 들린다.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씩 들고 나기를 반복한다. 썰물 때는 갯벌이 드러났다가 밀물 때는 감추어진다. 드러나는 갯벌을 따라 물가에 떼 지어 다니며 먹이 활동하는 새가 바로 도요물떼새다. 부리가 긴 편이고 다리는 날렵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진화했다. 도요새는 주로 긴 부리로 먹이를 찾고, 물떼새는 물가에 떼 지어 다니며 시각으로 먹이를 찾는다.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중부리도요는 몸에 비해 부리가 무척 길다. 긴 부리로 조갯살을 파먹기도 하는데 놀란 조개가 입을 다무는 바람에 도요새도 놀라 지나가던 어부가 조개도 잡고 새도 잡아서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그 새가 바로 도요새다. 마도요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에도 등장한다. 젊음의 꿈을 찾는 나그네이면서 바다를 헤매는 철새 마도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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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의 비밀

내일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언제나 세상은 우리들의 것

저마다 옳다고 우겨대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어

아쉬워 하면서 떠나네

바다를 헤매이는 철새들처럼

마도요 우리는 서로 앞서가려 하지만

마도요 젊음의 꿈을 찾는 우린 나그네

머물수는 없어라

-마도요

물떼새는 꼬마물떼새, 왕눈물떼새, 흰목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댕기물떼새…. 도요새와 마찬가지로 종류가 다양하다. 같은 물떼새라도 새가 지닌 저마다의 특성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봄·가을에 볼 수 있는 종도 있고, 겨울에 볼 수 있는 종도 있다. 일 년 내내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사는 흰목물떼새는 강과 하천에서 벌이는 희한한 사업 때문에 번식할 곳을 잃어버려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모래나 자갈 위에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는데 집 주변이 늘 공사 중이니 살 곳이 마땅찮다. 4대강 사업의 영향이 흰목물떼새에게 미친 나쁜 영향은 또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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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물떼새의 보호색

도요물떼새는 주로 갯벌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다. 먹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새들이라 논, 저수지 주변, 강과 하천 어디에서도 도요물떼새를 볼 수 있다. 몸 색깔이 주변 자연환경과 거의 비슷해서 맨눈으로는 보기 힘들다. 얼핏 보면 새가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뚫어지게 보면 꽤 많이 보인다. 천적인 맹금류와 사람 눈을 피하기 위해 보호색을 띄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도요물떼새는 대부분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간다. 겨울에는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남반구에서 지내다 번식을 위해 북반구인 시베리아와 중국 북동부 지역으로 날아간다. 우리나라에는 봄·가을 이동 시기에 잠시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먹이로 배를 채운다. 총 이동 거리가 무려 1만 2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새들도 있다. 호주·뉴질랜드에서 우리나라까지 약 5~6천 킬로미터. 다시 시베리아까지 가는데 또 5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왜 이렇게 먼 거리를 힘들게 이동하며 살아갈까? 가수 정광태도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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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요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날으는지

저 푸른 소나무보다 높이 저 뜨거운 태양보다 높이

저 무궁한 창공보다 더 높이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오르는지

저 말없는 솔개 보다 높이 저 볏 사이 참새보다 높이

저 꿈꾸는 비둘기 보다 더 높이

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높이 꿈꾸는 새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날으는지

저 밑 없는 절벽을 건너서 저 목 타는 사막을 지나서

저 길 없는 광야를 날아서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빨리 날으는지

저 검푸른 바다를 건너서 저 춤추는 숲을 지나서

저 성난 비구름을 뚫고서

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멀리 나는 새

-도요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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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물떼새 무리

노래 가사를 가만 살펴보면 도요새의 생태와 맞는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다. 노래 가사와는 달리 가장 높이 나는 새는 쇠재두루미로 알려져 있다. 쇠재두루미는 8천 미터에 달하는 히말라야 준봉을 넘어서 이동하는 새다. 반면에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도요물떼새는 물 위를 낮게 날아가곤 한다. 번식지나 월동지로 이동할 때는 하늘 높이 올라가 떼를 지어 날기도 한다. 어느 정도 빨리 나는지도 궁금한데 대체로 시속 60킬로미터에서 70킬로미터 정도 속도로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에서 출발해 우리나라까지 약 일주일 정도 쉴 새 없이 비행한다. 우리나라 갯벌에서는 2주 정도 먹이를 섭취한 후 다시 번식지로 날아간다. 월동지인 호주 뉴질랜드에서 번식지인 중국 북동부나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데 약 한 달 정도 걸리는 셈이다. 텃새를 뺀 새들 대부분은 수백 또는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한다. 주된 이유는 먹이와 기후에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월동지로 떠나는 긴 여행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폭풍우나 비행기, 높은 빌딩, 맹금류의 공격 같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힘든 여정이다.

번식지나 월동지에 도착하면 기진맥진해서 거의 기절 상태에 이르게 된다. 새들이 이동하면서 어떻게 길을 찾는지도 궁금하다. 많은 연구 결과가 있지만 어떻게 길을 찾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경우는 많지 않다. 새를 연구하는 조류 학자들은 다음 몇 가지를 이용하지 않을까 추정해 보는 정도다. 첫째는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는다는 추정이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북극성이 제일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사막을 여행하던 옛날 사람들도 북극성 같은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았던 것과 비슷하다. 또 태양의 고도를 나침반 삼아 이동한다는 추측도 있다. 그리고 강이나 산, 해안선, 고층 건물이나 길을 이정표 삼아 이동한다는 설도 있다. 남북으로 흐르는 지구 자기장의 흐름을 감지해서 이동한다는 주장도 있고 부모와 함께 이동하면서 학습된 길을 따라 간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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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요

새들의 이동 연구 조사는 가락지 부착, 인공위성 또는 무선 추적 장치 사용, 레이더에 의한 관찰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락지 부착은 번식지 또는 월동지를 찾아가 새를 직접 잡거나 둥지 속 새끼들에게 유색 가락지나 알루미늄 가락지를 다는 방법이다. 오리나 기러기는 목에, 다리가 긴 백로나 저어새, 황새, 두루미류, 도요물떼새류는 다리에, 큰 날개가 있는 독수리는 날개에 단다. 일정한 지역을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철새 연구를 통해 번식지와 월동지, 이동 통로, 생활사, 생태 등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새끼를 낳고 키우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도요물떼새들. 알고 보면 인생살이나 새의 삶이나 둘 다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새나 자식들 앞에선 어떤 어려움과 위험도 감수해 나간다. 새끼들 데리고 죽을 힘 다해 힘겹게 소문난 한국 갯벌에 도착했는데 갯벌이 매립되어 버렸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얼마나 허탈할까? 새들 마음도 좀 헤아릴 줄 아는 사람 되려면 일단 갯벌에 나가 붉은 노을 보며 도요새 소리부터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평소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 눈에는 빨간 노을 위를 나는 도요물떼새들 군무가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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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활동 중인 좀도요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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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과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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