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독재자는 많았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터무니없는 독재자'로 알려진 이는 현대 아이티를 다스렸던 뒤발리에 부자(父子)다. 터무니없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걸까? 국가발전전략이나 외교력은 물론 이성이나 상식같은 기초 덕목조차 무시한 채 정권유지에 올인하며 사복(私腹)만 채웠다는 이야기다.

아버지 프랑수아 뒤발리에(1907~1971)는 1957년 정권을 잡은 뒤 악명높은 비밀경찰 '통통 마쿠트'를 만들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따르는 집단에게 경제과실을 몰아주며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정정불안과 경제파탄으로 온 국민이 신음하는 와중에 치른 60년대 선거에서는 반대표 하나 없는 132만 748표를 얻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그동안 많은 부정선거를 겪었지만, 뒤발리에보다 터무니없는 작자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1971년 심장마비로 죽었다. 후계자는 19살이었던 장 클로드 뒤발리에(1951~2014)다. 10대 아이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것 또한 터무니없다. 장 클로드는 15년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부전자전'을 증명했다. 반대파를 납치 처형 고문하면서 민생을 유린했다.

그는 1986년 민중봉기로 쫓겨날 때 대통령궁에서 재즈 연주를 즐기고 있었다. 콘트라베이스를 상당한 수준으로 연주했던 뒤발리에는 대통령궁 함락을 알리는 급보를 듣고서도, 밴드 멤버들과 막판까지 재즈 연주를 즐기다(?) 외국으로 도피했다. 현대사에서 터무니없는 걸로 치자면 이 상황을 능가할 만한 건 없으리라!

지진에다 빈곤으로 신음하는 약소국이지만 아이티는 남미 최초로 흑인노예들이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공화국을 수립한 저력 있는 나라다. 그러나 건국을 주도했던 영웅들이 사라지고 외세침탈이 계속되면서 정치와 경제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와중에 등장한 뒤발리에 부자는 내 편과 네 편을 교묘하게 가르는 '분열통치'로, 30년 독재체제를 즐긴다.

아버지 뒤발리에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서 아이티를 장악하고 있던 물라토(백인과 흑인혼혈) 대지주를 겨냥했다. 그리고는 '통통마쿠트'를 비롯한 친위세력을 구축한다. 이들은 물라토는 물론 일반 민중들까지 압살하면서 뒤발리에를 뒷받침했다.

아들 뒤발리에는 1986년 축출됐다가 지진피해로 다들 정신이 없던 2009년 슬그머니 귀국한다. 권좌에 있을 때 불법세탁한 자금으로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호화생활을 즐기던 그는 권력남용,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집권세력은 오히려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미래를 보고가자"며 그를 감쌌다. 결국 그는 2014년 자연사했다.

터무니없는 부자는 어떻게 천수를 누렸을까? 현 집권세력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30년 독재체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재시절 뒤발리에와 얽혔던 인사들은 그가 처벌받는 과정에서 '그늘에 묻힌 이야기'가 등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역사교육 부재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젊은이들은 계속되는 정정불안으로 독재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관광으로 흥성했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만 갖고 있을 뿐이다.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이 경구는 뒤발리에 부자가 호시절을 누렸던 아이티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아이티는 아직도 최빈국 신세를 못 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川邊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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