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적 진실을 찾고자 오늘도 현장을 향한다

영화·드라마 속에서 경찰 세계를 자주 접하게 된다. 강력계, 과학수사팀, 광역수사대 등 이러한 경찰 조직이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경찰 세계는 과장·허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세세한 그들 세계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피플파워에서는 이번 달부터 경찰관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경남지방경찰청 내 다양한 부서를 돌아가며 매달 한 사람씩 만나볼 예정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과학수사요원 강진기(51) 경위다.

소속 명칭이 아주 길다. 강진기 경위는 경남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이다. 압축해서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이라 하면 되겠다. 예전에는 일선 경찰서에 1~4명 되는 과학수사요원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청 지침에 따라 지난해 10월 통합되었다. 즉, 경남경찰청 소속 동부·중부·서부·남부권 광역과학수사팀으로 바뀌었다. 강진기 팀장이 이끄는 중부권은 모두 19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창원시·함안군·창녕군(7개 경찰서)을 담당한다.

거짓말탐지기 전문가

'과학수사'라는 말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15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강진기 팀장은 과학수사 1세대다. 경찰 생활 26년 중에서 과학수사 업무를 22년간이나 했다.

과학수사는 검시·지문·화재·거짓말탐지기·CCTV·DNA· 몽타주 등 세분화된 영역이 있다. 그 역시 두루 다루기는 했지만 전문 영역은 거짓말탐지기다. 대학원에서 '거짓말 탐지 검사결과에 있어 판단불능 반응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미국에서 관련 연수까지 받았다.

그는 거짓말탐지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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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기 경남경찰청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

"나이·약물 복용 여부·수면 등 여러 조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이태원 살인사건 경우 한국말이 서툴면 통역을 붙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죠. 그러한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거짓말탐지기는 100% 맞다고 저는 장담합니다. 아주 과학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심리·생리, 즉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탐지기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유괴사건 용의자가 검거됐는데 음성정보분석에서 진범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성정보분석은 틀릴 확률이 100만분의 7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제가 거짓말탐지기로 검사해보니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진짜 범인이 잡혔죠."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과학수사 업무를 접하게 됐지만, 요즘은 대부분 영역별로 특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학수사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과학수사요원 덕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끈기, 그리고 침착함과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잔잔하고 고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전투적으로 후딱 해치우겠다는 마음으로는 안됩니다.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지문 채취 기법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안 나왔다고 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에 맞는 여러 테크닉을 사용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과거 미국드라마 방영 이후 과학수사 요원하면 'CSI'라 하여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늘 시신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에 마음 편할 리 없다.

"'3D 업무'에 가깝죠. 변사사건 현장에 매일 나가야 합니다. 병든 시체, 부패한 시체 등을 마주하면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사건 현장의 일차적 책임은 저희한테 있는 거죠. 너무 더티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과거 처음 배울 때는 일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 오십을 넘긴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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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기 경남경찰청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

"제가 눈물이 없는 편인데, 한번은 아이 변사체를 보니 눈물이 나더군요. 제가 아는 과학수사요원은 꿈에 시신이 자꾸 보여서 결국 업무를 관뒀습니다. 트라우마가 생긴 거죠. 저희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죠. 그래도 범인을 잡아서 구천 떠도는 영혼을 마음 편히 극락으로 보내준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인부동 종생불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학수사. 강진기 팀장은 사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문 확보라고 했다.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이라고 하죠. 지문은 모든 사람이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죠. 대한민국에서 지문만 있으면 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5000만 국민 중 한 사람을 찾는 거죠."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지문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간혹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출했다면 그것을 찾는 게 과학수사요원들 몫이다.

"실수로 돈을 꺼내서 세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장갑을 끼고는 돈을 셀 수 없잖아요. 그런 실수를 간과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만약 장갑을 끼고 모든 범행이 이뤄졌다면 DNA를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족적을 통해 도주로를 찾고, 그 도주 과정에서 남긴 흔적에서 DNA를 확보하는 거죠."

그는 과거 있었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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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기 경남경찰청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

"강도살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수사관들은 남편을 범인으로 의심했습니다. 일기장에 '마누라를 죽이겠다'고 써놓았던 게 있었고, 여러 정황상 범인으로 봤던 거죠. 그런데 제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보니 아니었습니다. 수사 쪽 사람들로부터 욕 엄청나게 먹었는데요, 결국 지문 감식 등을 통해 진짜 범인을 잡았던 일이 있죠."

우연히 접한 과학수사 업무

강진기 팀장은 고성군 마암면이 고향이다. 2남 3녀 중 장남이다. 초등학교 때는 씨름부에서 정식으로 운동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어른들은 그를 제대로 공부시키기로 했다. 이른바 마산으로 유학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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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기 경남경찰청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

"시골에서 왔다고 옆에 놈들이 자꾸 싸움을 걸어와요. 한번 크게 혼내줬더니 그때부터는 내 옆에 친구들이 달라붙더군요. 그 무리에 이끌려서 매일 놀러 다니고 그랬죠. 고등학교 때 농사일 하라며 집에서 다시 불러서 고성으로 돌아갔죠."

어릴 적 경찰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에 '사장님'이 꿈이었다. 그러한 마음에 경남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휴학 후 군 생활을 의경으로 한 것이 인생 전환점이 됐다.

"의경으로 있으면서 경찰관이라는 직업도 참 매력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죄지은 사람 처벌하고, 국민 신뢰를 받으며 봉사하는 일이니까요.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바로 시험준비를 해서 무술경찰관으로 합격했습니다."

1989년 27살 나이에 경찰 제복을 입었다. 1년가량 경남경찰청 형사기동대 업무를 할 때였다. 과학수사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감식 업무 보조요원 충원이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가 지원하게 됐고 덜컥 뽑혔다. 이때 3년 가까이 감식 업무를 하게 된다.

"지금의 과학수사 개념과는 다를 때였죠. 말 그대로 지문 감식 정도였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감식 지원을 했죠. 울산경찰서가 경남청에 속했을 때였는데, 거기서 살인사건이 아주 많았죠.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배웠는데요, 이 일이 진짜 재미있는 겁니다. 현장에서 찾았던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해서 유족에게 시신을 돌려드리고, 범인을 검거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눈이 동글동글해지면서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팍팍 돌아갔죠. 순경이던 그때 '과학수사실무지침서'를 제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담당 부서 감원 지침에 따라 부서를 옮기게 된다. 물론 그는 언제든 기회가 오면 다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마산동부경찰서 수사1계, 3기동대, 마산동부경찰서 정보과를 1년씩 거쳤다. 검시관 교육 기회가 찾아와 3개월가량 받았다. 이를 통해 경남경찰청 광역계로 발령 났다. 학교폭력, 그리고 거짓말탐지기 업무를 맡은 것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과학수사 업무를 쭉 해오고 있다.

'과학수사 외길' 책 남기고 싶어

강진기 팀장은 경찰 시험 합격 후 1년 만에 결혼했다. 경찰관 일이 험하다는 이유로 장모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삼촌들을 공략(?)하면서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흔히 알고 있듯 경찰 일이라는 게 집안 가장 역할에서는 낙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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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기 경남경찰청 중부권 광역과학수사팀장.

"서울 출장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누라가 출산할 것 같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래도 어떡해요. 처형한테 부탁해서 같이 병원 가라고 하고 저는 서울로 향했죠. 그때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금강휴게소 갈 때까지는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서울 도착할 때는 건강하게만 낳으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출장지에 딱 도착하니 딸 낳았다는 연락이 왔더군요. 아내가 지금까지도 그때 서운함을 토로합니다. 지금 딸·아들 한 명씩 있는데요,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일 때문에 늘 밖에 있다 보니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우리 직원들한테 시간 나면 무조건 아이들과 함께하라고 강조합니다."

씁쓸한 눈빛을 하던 강진기 팀장은 일 이야기로 돌아오자 다시 눈동자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 계획을 이렇게 품고 있다.

"이제 경찰 생활 8년 정도 남았는데요, 과학수사에 대한 자서전 겸 회고록 겸 참고록 같은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과학수사 외길에 대한 책이라고나 할까요, 퇴직 즈음에 한 권 남기고 싶네요. 은퇴 후에는 고향 고성으로 돌아가 농사지으면서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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