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힐링창조포럼 개최…허정도 건축사 80년 전 발자취 복원 계획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시를 쓴 시인 백석(1912∼1996년). '모던 보이'지만 토속어 등을 구사하는 시를 썼던 그가 1936년 24살에 자신이 흠모했던 통영 여인 '란(蘭)'(당시 19살의 박경련을 지칭)을 만나러가고자 들렀던 마산 길을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백석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시인은 '통영'이라는 시 3편 등을 남겼다.

지난 2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SO극장 3층에서 도시힐링창조센터, ACC프로젝트협동조합이 주관해 2015년도 제1회 도시힐링창조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허정도 건축사가 '1936, 백석의 마산 길'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고, 배대화 경남대 교수가 '백석의 시와 삶'에 대해 설명했다.

허 건축사는 "백석이 쓴 시 '통영'을 읽다가 그가 마산에 왔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그가 보았던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다. 80년 전 그가 걸었던 길과 그가 남긴 발자취를 추적해보고 싶어 1년간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백석이 쓴 '통영' 시는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중략…)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중략…)"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건축사는 시에 나온 당시 '마산'의 길을 찾고자 했다. 백석은 '란'을 찾아 통영을 서너 차례 다녀간 기록이 있다. 1936년 통영 여인을 찾아 경부선 열차를 타고 구마산역에 내린 백석의 눈에 비쳤을 마산을 복원해보고자 했다.

당시 통영으로 가려면 경부선 열차를 타고 구마산역에 내려서 선창으로 가서 배를 타야만 했다. 허 건축사는 기차에서 내린 백석이 배를 타러 가는 길을 추정했다. 당시 선창으로 가려면 대로를 통해서 가야만 했기에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

그는 "지금 위치로 보면 상남동 육호광장(구마산역)에서 어시장 마산농협 남성동지점(선창)까지의 길이다. 이 길은 원래 마산포에 있었던 길이 아니다. 1905년부터 1927년까지 다섯 번에 걸쳐 이어 만든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 정도의 거리였고, 내리막의 비포장이었다. 구마산역에서 현 코아양과점까지는 7m 폭이었고 그다음부터는 10m 폭으로 꽤 넓은 길이었다. 당시의 지형 지세와 도시경관으로 미뤄 볼 때 백석이 구마산 역을 빠져나온 후 처음 보았던 것은 눈부시게 빛나는 마산 앞바다의 파란 물결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구마산역에서 선창까지 이어지는 길에 있었을 주요 건물도 20곳 꼽았다. 구마산역, 마산공립상업학교, 기업전습소(機業傳習所), 교방천과 동성교, 허당 명도석 생가, 부산형무소 마산지소, 이근태운송사와 삼포철공소, 창동입구 및 불종, 산업금융주식회사,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형선·김명시·김형윤 삼남매 생가, 김형철 삼성의원, 임화의 집, 전통 곰탕 건물,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 옛 동굴강, 부산철공소와 마산창고주식회사, 매립지 상업용 일식건물, 객주집, 주식회사 택산형제상회 마산점, 구마산 선창 등이다.

허 건축사는 "사라진 1936년 백석의 마산 길을 다시 살려내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베키오 다리에 얽힌 단테와 베아트리체 이야기,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오모 돔 이야기 등으로 그 장소는 관광 명소화됐다"고 강조했다.

18.jpg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