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계절이 주는 쓸쓸함에 감성적으로 깊이 빠져들고 싶은 10월이 저무는 날. 어김없이 한 곡의 신청이 수없이 밀려들어온다. 평상시 한 번 들려줬던 곡은 반복해서 틀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그날만큼은 신청받는 대로 거리낌없이 애청자들과 같이 즐긴다.

일찍이 서정주의 서문이 실린 시집 '영혼의 디딤돌'을 출간하고도 시인이라기보다는 작사가로 알려져 왔던 박건호 선생이 가사를 쓰고 이범희 작곡가가 만든 '잊혀진 계절'은 가수 이용이 불러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가을 노래다.

'잊혀진 계절'은 원래 가수 조영남의 앨범에 수록될 곡이었으나, 전속사와의 문제로 인해 녹음까지 끝냈지만 음반 제작은 할 수 없었다. 음반 제작사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까운 곡이라 그냥 묻혀 놓을 수 없었기에, 레코드 사장은 <국풍81-젊은이 가요제>에서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수상했던 이용에게 녹음 중인 곡에 끼워 넣으라는 지시를 한다. 무명 신인 가수였던 이용은 곡을 접하는 순간 녹음 중인 다른 곡보다 오히려 타이틀곡으로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음반 1면의 첫 수록곡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 느낌은 적중해 그를 정상의 가수로 이끄는 최고의 노래로 거듭나게 된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관계에서 인연도 중요하지만 예술인들에겐 작품과의 연 또한 대단히 중요한 연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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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용은 '잊혀진 계절'을 처음 녹음할 당시를 회상하면서, 첫 구절인 10월의 마지막 밤은 애초에 9월의 마지막 밤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음반 제작이 더뎌져 발매가 늦어지면서 가사를 9월에서 10월로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는 9월의 마지막 밤으로 연습했던 노래를 스튜디오에서 갑자기 10월로 바꾸려니 입이 꼬여 쉽게 녹음이 안됐다는 후문도 전한다. 그래도 이 곡이 대단한 인기를 누려 상복이 터지니 나중엔 각종 가요차트의 1위가 별로 반갑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행복한(?) 투정을 하기도 했다. '잊혀진 계절'은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매해 10월 31일이 되면 전국 방송망에서 100회 이상씩 방송돼 단일국가 내 단일 곡으로 최대 일일방송 횟수의 노래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후 신곡을 발표해도 10월이면 '잊혀진 계절'만 방송에 나와 다른 노래를 부르자고 하면, 제작진 측에서 이 곡 때문에 자신을 섭외했다고 전하니 그 아쉬움은 더하였다고 말한다.

이용은 이 곡에 대한 사연이 꼭 있을 것 같아 여러 차례 박건호 작사가에게 질문하였지만 끝내 그 사연을 직접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노래의 사연은 박건호 자신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노랫말이었다고 한다.

부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9월의 어느 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인 그가 두 홉짜리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채, 그동안 만났던 여성 가운데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지만 만날 때마다 항상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부담스러워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만취했다. 그녀는 취한 그를 버스에 태우며 흑석동 종점에 내려달라고 안내양에게 당부하였다. 그러나 다음 정거장에서 부탁받은 안내양의 제지를 뿌리치고 버스가 왔던 길로 내달렸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헤어진다면, 그녀에게 죄를 짓는 것마냥 자책감이 들 것 같았다.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녀 앞으로 다가가 "사랑해요" 그 한마디만 던지고 도망치듯이 오던 길로 다시 뛰어갔다. 그는 왠지 모르게 쑥스러움을 느꼈고 그녀의 다른 말이 오히려 두려웠다고 한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1982년 초가을, 박건호 작사가는 그 날의 느낌을 가사로 옮겨 이범희 작곡가에게 전했다. 이 가사를 쓸 무렵 그의 마음은 몹시 춥고 외로웠다고 한다. 아마 그에겐 차라리 잊고 싶은 계절이었을 것이다.

강원도 원주 출신의 박건호 시인은 1972년 가수 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의 가사를 쓰면서 작사가로 데뷔하였다.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나미의 '슬픈 인연', 민혜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정종숙의 '새끼손가락', 조용필의 '단발머리', '모나리자' 등 3000여 곡의 주옥같은 가사를 쓰면서 16권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저술하였다.

숱한 히트곡의 작사가였지만, "신이 만든 것은 모두 폐기처분됐고, 인간이 고쳐 만든 모자이크 인생"이라 말할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처절한 투병생활을 해온 박건호 시인은 작품 활동을 계속해오다 예순을 넘기지 못한 채 2007년 58세로 운명하였다.

가만히 노래를 들으면 서정적인 가사와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가 진한 여운을 남기며 스산한 가을 날씨와 어우러진다. 왠지 10월의 마지막 밤에 추억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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