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키워드 '다양성 추구' '약자 보호'

지난해 '경남도민일보 제1회 독자와 기자의 만남'에 참석한 20여 명은 신문,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냈다. 그 속에서 조용히 앉아 사람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창원에서 살게 된 지 1년 채 안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유리(33·창원시 의창구) 씨다.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생활터전이 된 이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처럼 보였다. 지난 시간과 창원에서 살아가는 지금을 알아보기 위해 1년 만에 그를 찾았다.

김유리 씨를 다시 만난 곳은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카페 소통'이다. 유리 씨가 3개월 전 오픈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내부 분위기가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쪽에는 '신개념 감성 영어 카페'라는 안내 글이 붙어있다. 또 다른 편에는 '나는 공장식 축산을 반대합니다' '코끼리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진실'과 같은 내용의 팸플릿·잡지가 나열해 있다. 그리고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이라는 제목 아래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 자연을 해치지 말고 자연으로부터 배우자…'와 같은 글귀도 있다. 이 카페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유리 씨 '인생 키워드'를 먼저 알아야 했다. 유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제 인생에 두 가지 축이 있더군요. '다양성 추구'와 '사회 약자 보호와 대변'입니다. 어릴 때는 전자, 서른 넘어서는 후자에 집중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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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씨./남석형 기자

한국 밖 세상에 관심

이렇게만 들어서는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다양성 추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봐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어릴 적 이야기로 거슬러 가야 했다.

"2남 1녀 중 막내로 서울서 자랐는데요, 오빠들과 함께 있으면서 다양한 국적의 영화·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유럽·중국에서 만든 것도 많이 봤습니다. 그를 통해 한국 밖 세상에 관심 두게 됐어요. 단순한 흥미에 그치지 않았어요. '다양한 세상이 있는데 나는 여기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게 6살 때였다. 타고난 면도 있지만, 나이 차 있는 오빠들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꼬맹이 숙녀' 생각을 깊게 한 것이다. 유리 씨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영어를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오빠들 영어책을 혼자서 보기 시작했죠.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즐겁고 행복했어요. 외국어뿐만 아니라 그 문화에도 시선이 갔죠. '이 사회에서는 당연한 정답이 다른 세상에서는 아닐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더더욱 하게 됐고요."

스무 살 불문학 전공 대학생이 된 유리 씨는 품었던 마음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 1학년을 마쳤을 때 마침내 영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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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런던에서./김유리 제공

"지금까지 키워온 생각이 맞는 건지, 동경 같은 환상은 아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죠. 2002년 영국에서 1년 정도 지냈는데요, 착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복학한 이후에도 '외국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다국적 삶을 살았다. 이러한 방향에서 굴곡이 찾아온 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가면서다.

"해외사업부라는 이유만으로 지원했는데 합격했어요. 윗사람이 안 나가면 퇴근 못하는 분위기 등 전형적인 직장문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었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결국 5개월 만에 관두면서 많이 방황했어요. 정답만 요구하고 유연성 없는 한국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2008년 유리 씨는 다시 한 번 영국으로 갔다. 여전히 좋기는 했지만 마냥 마음 편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밥 먹고, 일하는 하루하루가 '영국에 사는 외국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스스로 '여기서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국계 회사에 들어갔다. 업무 영역이 전 세계에 걸쳐 있었고 사내 분위기도 이전과 달리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은 여전히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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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시절./김유리 제공

어릴 적 강아지들에 대한 기억

서른을 앞둔 즈음, 유리 씨의 주된 시선이 다른 것으로 옮겨갔다. '사회 약자 보호'다. 유리 씨가 말하는 약자에 대한 정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좀 다르다.

"인권유린을 당하는 사람들 삶이 덜 중요하거나 외면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최고 약자는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언어로 이야기 못하는 동물들을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어릴 때는 강아지를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동물에 대한 무서움이 컸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난 강아지 '복실이'가 변화 계기가 됐다. 개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려견 '염동이'를 입양하면서 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아 갔다.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상가에 묶여 있던 진돗개 '이쁜이'와도 우정을 쌓았습니다. 여름날 땡볕에 '헉헉'거리고 있으면 물을 받아서 주곤 했죠. 어느 날 보이지 않길래 주인인 듯한 아저씨에게 물었는데 아주 태연하게 '보신탕집에서 잡아먹었지'라고 했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학원도 안 가고 온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울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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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아미와 함께./김유리 제공

그때부터 버려진 개들이 유리 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20대 들어서도 그랬다. 개인감정 문제 정도로 인식했고,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며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러다 두 번째 영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동물을 불쌍히만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를 알아보고 정기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자원봉사와 재능기부도 하면서 동물 복지 개선에 힘쓰는 많은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동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안받는 느낌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채식을 시작했다. 지금은 우유·달걀·치즈, 그리고 어류는 먹고 있지만, 완전 채식을 목표로 바꿔가는 중이다.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불편하죠.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살까'라는 생각도 가끔 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당연히 감내해야죠."

창원에서 소통 위한 카페 마련

2012년, 먹고 사는 문제가 현실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유리 씨는 다시 직장을 알아봤다. 이전과 달리 고정관념을 버렸다. 서울에 한정하지 않고 전국으로 열어뒀다. 마침 통영에 숙소까지 제공하는 영어강사 자리가 있었다. 1년 정도 경험해 볼 생각으로 통영에 갔다. 그때 영어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창원이라는 곳을 처음 오게 됐다. 여기서 지금 남편을 만났다. 지난해 가을 결혼하면서 창원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용호동 가로수길 어느 카페 단골이 되었습니다. 이런 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마침 채식 재료로 베이킹을 하던 때라 카페 푸드팀장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내 카페라면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하다보니 빨리 현실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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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국제관광전에서./김유리 제공

'카페 소통'은 그렇게 마련됐다. 이름 그대로 소통 공간이다. 유리 씨는 언어적 소통, 문화적 소통, 그리고 자연과 소통에 방점을 두고 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코칭을 받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외국어 공부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접하고 다양한 생활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동물들 처지·현실을 알리고, 사람들 생각 변화를 도모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연·환경에 귀 기울이고 배려하는 '자연과 소통'을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문을 연지 이제 3개월.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혼자 이곳을 지킨다. 애초부터 상업적 부분에 초점을 두진 않았지만 마냥 마음 편할 리는 없다.

"준채식 메뉴도 곧 준비할 계획입니다. 제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 가야죠. 경영은 현상 유지 정도만 생각하고 있어요. 초기라 안정화 시기가 필요하죠. 그때까지는 심리적·경제적으로 힘든 걸 감내해야죠. 스스로와 매일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혹시 어렵더라도 오픈 때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난 시간 품었던 생각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유리 씨는 자신만의 정도를 걷고 있는 듯하다.

"10대 때 쓴 일기를 보면 지금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성을 추구하고 삶을 쿨하게 살면서, 동물 복지도 언젠가는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경험과 알게 된 것이 더해지면서 조금씩 진화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어떻게 진화할지 저 스스로도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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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씨./남석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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