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이가 아프면 가족들은 비상이 걸린다. 밤에 열이라도 오르면 병원 응급실에 데려가야 할지 집에서 지켜봐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특히 아이가 하나뿐인 가정이 많은 요즘, 초보 부모들은 아이가 조금만 토해도, 조금만 열이 나도 걱정이 앞선다.

경남의사회장인 박양동(62) CNA서울아동병원(창원시 상남동) 원장은 "아이에 대해서는 부모가 제일 잘 안다. 부모가 봤을 때 아이가 평소처럼 먹고 자면 열이 조금 나더라도 병원에 바로 오기보다는 집에서 조금 지켜봐도 된다"고 조언했다.

우리 아이 건강, 어떻게 지켜야 할까. 나비넥타이를 깔끔하게 맨 박 병원장을 만나 아이 건강 관리 방법과 의사로서의 보람에 대해 들었다. 박 병원장이 나비넥타이를 맨 이유에 대해서는 인터뷰 제일 마지막에 물었다.

건축가의 꿈 접고 의사로

박 병원장이 처음부터 의사의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건축 공부도 조금 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장남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조금 하다가 여러 사정상 꿈을 접고 의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창의적인 일에 흥미가 있었지만 의학은 달랐다. 개인의 창의성이나 판단보다는 정해진 틀 속에서 판단하고 기술을 익혀야 했다. 100명의 학생이 똑같이 병아리 해부를 하고 뼈 이름을 외우는 상황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박 병원장의 마음을 붙잡은 것은 의사로서의 '보람'이었다.

"의사는 전문성이 있어서 어디 가서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보람이 최고의 가치를 느끼게 했습니다. 또 아이들도 좋아했고요."

박 병원장은 해외에 자주 다녀오는 편이다.

경남의사회장 등 맡은 직책이 많은 데다 서울아동병원이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아 비행기를 자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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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동 CNA서울아동병원장./김구연 기자

그런데 비행기에서 위급한 환자를 자주 만났다고 한다.

"올해도 얼마 전 네팔 지진 피해 후 도움을 주기 위해 갔다가 귀국 길에 비행기에서 한 20대 젊은 남성이 쓰러졌습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대각선 앞에서 쓰러지더라고요. 문제가 있다 싶어 뛰어가서 살펴보니 식은땀을 흘리며 늘어져 있고, 혈압이 60에 30까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승무원 도움을 받아 뒷자리로 옮겨 다리를 올리고 수액을 연결해 짜서 밀어 넣는 등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응급환자를 살린 것이 벌써 4번째네요."

박 병원장 등 서울아동병원 네트워크에 함께하는 병원 의료진들은 아프리카 등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잠비아의 소아과 병원을 지난해부터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도 아픈 사람은 똑같더군요. 피부 색깔, 생긴 모습, 먹는 것, 문화는 다 달라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고통은 다 같았습니다. 의사는 종교나 문화, 인종 구분 없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람된 직업입니다."

과한 기대가 소아 우울증 만들어

소아과는 2007년 의료법 개정으로 소아청소년과로 변경됐다. 박 병원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알레르기 질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요즘 애들은 힘들어요. 아빠 엄마가 힘이 드니 애들도 힘들죠. 스트레스 유발 질환이 소아와 청소년에게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ADHD나 우울증 소견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도 볼 수 있죠."

특히 한국 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고 우려했다.

"난 이랬는데 우리 아이는 더 잘해야 한다고 과한 기대를 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아이마다 특성이 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거죠. 저는 아이가 2명인데, 아들이 군대 다녀온 후에야 아이 성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다양합니다. 과한 기대는 부모도 힘들고 아이의 정신도 병들게 합니다."

박 병원장은 요즘 애들은 흥미를 가지는 일이 많이 없다고 우려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답 못하는 아이가 많다는 것.

그래서 준비한 것이 두꺼운 수첩이다.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쓸 수 있는 수첩을 선물합니다. 거기에 꿈을 하나하나 적어 실천해보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병은 약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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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동 CNA서울아동병원장./김구연 기자

부모 주관적 판단이 중요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는 아이. 병원에 데려가야 할까?

특히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픈 기색을 보이면 부모는 당황한다.

박 병원장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말을 못하는 아이가 아프면 먼저 아이의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잘 웃고, 우유를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잘 놀면 굳이 병원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증상 없이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이고 집에서 상태를 좀 지켜봐도 됩니다."

단 아이 연령과 월령에 맞는 약을 정해진 용량대로 먹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떨 때 병원에 데려가야 할까.

"코가 막혀 숨을 못 쉬면서 토를 하거나, 아이 얼굴 색깔이 변해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축 늘어져 있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니까 진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즉 아이가 평소와 같으냐 다르냐 하는 것을 부모가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의 주관적 판단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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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동 CNA서울아동병원장./김구연 기자

발열성 질환의 70~80%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했다. 즉 발열 초기에 다른 증상이 없다면 1~2일 정도는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겨 체온을 내리는 등 대증요법을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 열이 떨어지지 않거나 아이가 힘들어하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특히 3개월 미만 아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 아이가 말을 한다고 해도 부모가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병 앓는 것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거든요."

아이가 열이 날 때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한둘이 아니다. 뇌수막염부터 감기, 맹장염도 열이 날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 등으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어 그 정도는 부모들도 알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아이가 열이 난다고 손가락을 따는 경우를 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은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 과잉과 부모들의 열성이 때론 과할 때도 많다고.

싱크대 문에 살짝 부딪혔는데 뇌 손상으로 장애가 없을까 걱정하며 병원에 달려오는 부모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건강한 아이는 건강한 사회가

병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환자는 감염성 질환자다. 감염성 질환은 감기나 폐렴, 장염 등이다. 메르스도 감염성 질환의 하나다.

"감기 같은 감염성 질환은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장염 환자도 많죠.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려면 사람 많은 곳을 피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메르스가 감염성 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데 역할을 했죠. 감염성 질환 예방 기본 수칙을 모든 국민이 알게 됐으니까요. 감기든 메르스든 기본은 똑같습니다. 기침 예절과 손 씻기. 다 아는 당연한 얘길 하려니 좀 그런데요. 하하."

근본적으로는 체력과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당연한 이야기인데요,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려면 음식과 운동, 수면이 기본입니다. 누구나 알면서도 사실 잘하기 어려운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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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동 CNA서울아동병원장./김구연 기자

박 병원장은 결국 애들을 잘 키우려면 사회적·경제학적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질병 예방부터 소독 방역 등이 모두 건강과 연결됩니다. 모유 수유도 다 연결되죠.(박 병원장은 대한모유수유의학회 회원이다) 요즘은 모유 수유가 많이 줄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건강관리가 모유 수유라 할 수 있죠. 요즘 부모들은 다들 너무 바빠요. 부모도 스트레스가 많고요. 사회가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도리어 아날로그 시대에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유아부터 성년기까지, 건강 유지와 관리는 하루아침에, 어느 특정한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박 병원장은 강조했다.

"기본적인 자세, 경제적인 능력, 수용 의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건강한 아이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가 만듭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면 아이가 덜 아픕니다."

긍정적인 삶 추구하는 영화광

인터뷰 중 '음식, 수면, 운동'이라는 기본적인 건강관리를 강조한 박 병원장. 과연 자신은 이 기본을 잘 챙기고 있을까.

그 질문에 박 병원장은 웃음부터 흘렸다.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 병원장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영화'다.

영화라면 장르 불문. 자타공인 영화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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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동 CNA서울아동병원장./김구연 기자

"만화영화부터 액션·공포 등 영화라면 다 좋아합니다. 혼자 보러 가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보기도 합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추천할 만한 작품요?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정말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네요.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감정들을 캐릭터로 탄생시켰는데 정신과 의사 등에게 자문해 영화를 만들었답니다. 특히 부부가 같이 보면 좋을 영화입니다."

영화로 이야기를 돌리던 박 병원장에게 다시 운동을 많이 하는지 물었다.

"하하하. 안 합니다. 아내에게 운동 안 한다고 자주 혼이 납니다. 가족들에게는 운동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잘 안 하네요. 그래도 정기검진을 주기적으로 받습니다. 내가 아파 힘들면 가족들도 다 힘들어집니다. 요즘은 특히 평균 수명도 길어졌잖아요. 가족을 위해서도 건강관리는 중요합니다."

나비넥타이 매는 까닭은?

박 병원장을 인터뷰하려고 마주 앉았을 때부터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비넥타이. 보통 일상에서 나비넥타이를 맨 사람을 쉽게 보기는 어렵다. 그만의 개성일까. 인터뷰 말미 조심스레 물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원내 감염을 줄이기 위해섭니다. 긴 넥타이는 균이 많이 묻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염된 손으로 넥타이를 만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의사들은 나비 넥타이를 매거나 아예 넥타이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 박 병원장은 슬쩍 말을 끊더니 잠시 후 덧붙였다.

"두 번째는 젊게 보이려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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