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도 여름에는 덥다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이 땅, 아파트 학교 가게 공장 버스정류장 도로가 보이는 이 땅 저 아래에 거대한 가마솥이 있고, 뭉게구름이 떠 있는 저 파란 하늘은 인간의 힘으로는 닿기 어려운 투명 천장 뚜껑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가마솥 아래 시뻘건 불길이 가마솥을 데우고 있다. 불을 지피는 이는 신이다. 철없는 상상을 한다. 아침부터 찜통더위로 열기가 후끈 느껴지는 여름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만사가 귀찮은 법이다. 사람들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집에서, 냉장고에서 얼리다시피 한 수박을 쪼개 먹으며 까다롭지 않은 영화나 책을 보는 '잉여의 삶'을 살고 싶어한다.

모터사이클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들도 예외는 아니다. 라이더들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름에 모터사이클을 타면 시원하지 않으냐고 묻지만 돌아가는 대답은 '그렇지 않습니다'이다. 자동차는 밖이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안이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지만 모터사이클에는 아쉽게도 에어컨도, 칸막이도 없다.

20150813010022.jpeg

그래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다 헬멧도 써야 하고, 매연 방지를 위해 버프나 마스크도 써야 하고, 햇볕에 그을리지 않게 긴 소매 옷을 입거나 얇은 토시라도 껴야 한다. 찜질방 한증막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한여름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서울이나 부산처럼 교통 지·정체가 심한 큰 도심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본다.

 

그럼에도 라이더들은 땡볕에도 모터사이클을 끌고 나선다. 왜? 재미있으니까.

기온이 30도가 넘고 햇볕에 20분만 노출되어 있어도 벌겋게 피부가 그을리는 날에는 너무 멀리 가고 싶지는 않다. 적당히 가까운 곳에 가서 쉬고, 오가는 동안에 달리는 맛을 느끼는 것이 '진리'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 통영으로 출발한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임곡삼거리에서 이번 여행을 함께할 지인을 만난다. 직진하면 14번 국도를 타고 고성을 지나 통영에 닿게 된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2번 국도를 타고 진주로 가게 된다.

20150813010018.jpeg

 

지인이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태울 때까지 잡담을 하면서 하루 계획을 대략 이야기 한다. 바람에 날려오는 담배 연기가 구수하다. 나도 12년 전까지는 이른바 '골초'였다.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웠었다. 담배를 끊고 한동안은 남의 담배연기가 구수하게 느껴졌다가 6~7년쯤 후에는 담배 연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담배연기를 피했다. 그러다가 10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어떤 때는 담배연기가 역겹고, 또 어떤 때는 구수하게 느껴졌다. 담배 종류에 따라 다른 것인지, 내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세금 때문에 담뱃값이 두배로 오르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도 줄어들어 끽연가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담배가 몸에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나름의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안 피운다고 해서 끽연가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식점 등 제한된 장소에서 금연하도록 하는 것은 맞지만 공원이나 특정구역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적어도 그렇게 금연구역을 많이 지정할 요량이라면 흡연구역을 별도로 지정해 끽연가들의 숨통도 틔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소한 볼거리 많은 명소

통영으로 향하는 14번 국도는 건설된 지 비교적 오래됐다. 옛날 빨간 버스가 다니던 그 길을 그대로 확·포장했으리라. 그래서 요즘 건설된 국도에 비해 굴곡이 많고 노면도 고르지 않은 편이다. 예전에는 이 도로에서 과속하는 차가 많아서 교통사고가 많은 도로로 악명 높았다. 그 뒤에 과속단속카메라가 많이 설치되고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과속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막무가내로 내달리는 차가 많은 모양이다. 얼마 전 경찰에서 14번 국도에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해 단속을 강화한다는 뉴스를 봤다. 생명은 하나다. 조심해야 할 뿐이다.

20150813010015.jpeg

 

목적지 남망산공원에 도착했다. 남망산공원은 도로 하나를 가운데 두고 동피랑과 마주한 곳에 있다. 동피랑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이 동피랑을 찾아가지만 동피랑에서 빤히 보이는 남망산공원을 찾지 않는 듯하다. 동피랑 아래 중앙시장 앞 공영주차장에서 내린 관광객 99%가 중앙시장이나 동피랑으로 향한다. 남망산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통영사람들만 아는 '보물' 같은 명소인 셈이다. 물론 인터넷에 검색하면 검색되지 않는 정보가 없으니 남망산공원도 마음먹고 찾아가려면 얼마든지 찾아가겠지만 일부러 남망산공원을 목표로 통영 관광에 나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해발 100m가 넘지 않는 남망산공원에는 여러 가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선 통영시민문화회관이 보이고 그 앞을 지나 산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그 모양이 펑퍼짐해서 언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모터사이클을 산책길 입구에 세워두고 산책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을 가려 산책길이 시원하다. 짧은 구간이지만 슬슬 걸으면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다. 그늘길을 즐기며 천천히 걷는다. 젊은 연인 한 쌍이 서로 허리를 껴안고 곁을 지난다. 아마 그들에게도 이 산책길은 남 눈치 보지 않고 껴안고 기대어도 좋을 분위기로 느껴졌나보다. 얼마쯤 들어가면 하늘이 뻥 뚫리고 길 위쪽으로 넓은 잔디밭이, 아래쪽으로는 배를 형상화한 철 구조물이 보인다. 작품이다. 배의 머리는 바다로 향해 있다.

20150813010012.jpeg

 

정상 쪽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바다의 넓이도 늘어난다. 정상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그런데 이 동상이 참 인상적이다. 서울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은 듬직하고 용맹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여기 남망산공원 탑 위에 서 있는 이순신은 장군처럼 보이지 않는다. 크기가 중학생 정도로 왜소한 탓이지 용맹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어깨도 좁아 보인다.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이다. 1953년 6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영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도 있다. 팔각정에 오르면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동피랑부터 중앙시장, 문화마당, 서호시장, 미륵산케이블카, 마리나리조트, 새로 지은 국제음악당, 그리고 다도해까지. 갖고 간 카메라에 광각렌즈를 끼워 그 시원한 풍경을 담아보려 하지만 한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 기능을 켜고 파노라마 효과를 사용해 동피랑부터 다도해까지 천천히 찍었다. 결과물을 확인해보니 원하는 만큼의 절경이 한 프레임에 담겼다. 새삼 기술의 편리함을 느낀다. 옛날에 쓰던 필름카메라로는 꿈도 못꾸고, 디지털카메라로도 최소한 두 컷 이상 찍어서 포토샵으로 정밀하게 이어붙이기 작업을 해야 할 것을 휴대폰으로는 화면에 터치 두 번 하는 것으로 끝이라니 어찌 놀랍지 않을까.

통영항 구경을 실컷 하고 공원 아래쪽으로 향한다. 조각공원이 있다. 국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진녹색 언덕을 배경으로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바다와 잘 어울린다. 강렬한 햇볕만 아니라면 좀 더 천천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20150813010017.jpeg

 

항구의 예쁜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다

공원 전체를 천천히 돌아보고 쉬는데 2시간이면 족할 듯하다. 시간이 남으면 걸어서 건너편 동피랑으로 옮겨가도 된다. 문득 배가 고프다. 건너편에 보이는 해물뚝배기집으로 달려갔다. 뚝배기 된장국물에 낙지와 조개 등을 넣어 끊인 해물뚝배기가 나왔다. 배가 고프니 먹을 만하기는 했지만 가격이나 맛이 맛집으로 추천으로 할 정도는 아니다. 점심 후에는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이름이 '모티에'라는 예쁜 카페를 찾아갔다. 길모퉁이 있다고 이름이 '모티에'인 모양이다. 1층과 2층, 옥상까지 카페로 꾸며져 있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카페 앞 2차로만 건너면 바다다. 그래서 2층 창가에 앉으면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 남망산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2층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진한 커피 향은 정말 맛있다. 바람이 선선한 가을에 찾아오면 더 좋을 듯한 카페다. 카페에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킨 뒤에 복귀를 시작한다. 카페 주인에게, 다음에는 한 무리의 모터사이클 부대를 이끌고 오겠다고 말했다. 조만간 클럽 회원들과 통영에 다시 가야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