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1박 2일, 조용하지만 알찬 체험

대학 시절 불교에 관심을 뒀던 때가 있었다. 머리를 깎아본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를 신앙으로 삼지는 않았다.

지금도 불교와 관련된 것들을 접하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래서 주말에 혼자 모터사이클을 타고 나가면 가끔은 절을 찾아간다. 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란 것이 무엇이라고 딱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들뜬 것도 아니고, 완전히 가라앉은 것도 아닌,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느끼는 그 분위기의 정도를 표현하자면, 열 개의 계단이 있다면 아래에서 세 번째 계단쯤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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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어쨌든 그렇게 불교를 낯설게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 절 안에서의 일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이번에 대략이라도 그것을 알 기회를 얻었다.

친구들과 고성 연화산에 등산하러 다녀온 아내가 옥천사를 보고 온 뒤에, 옥천사가 좋더라며 템플스테이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나쁠 것이 없었다.

아내가 곧 옥천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하는 1박2일 체험형이었다. 아직 어린 작은 아이는 아이의 이모에게 맡기기로 하고 큰아이만 데리고 가기로 해 세 식구 참여를 신청했다. 네 살인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은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이여서 통제가 되지 않아 행여 절을 소란스럽게 하거나 다른 참가자들에게 폐가 될까 싶어서였다. 나중에 보니 데리고 갔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듯했다.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보살님도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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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템플스테이 첫날인 토요일, 나는 점심 때 밀양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다. 옥천사 템플스테이는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이어서 아내와 큰아이는 제시간에 맞춰 차로 옥천사로 먼저 가기로 하고, 나는 뒤에 합류하기로 했다.

오전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밀양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모터사이클을 바꿨다. 2011년식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를 처분하고 2010년식 BMW R1200 RT를 들였다. 비교적 고가인 수입 모터사이클은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는 BMW 하면 독일의 자동차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메이커이기도 하다. BMW는 자동차보다 먼저 모터사이클을 만든 업체다. 할리데이비슨이 감성과 멋에 치중한다면, BMW는 성능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 모터사이클을 만든다. 앞으로 이 BMW 모터사이클을 얼마나 타게 될지 모르지만, 성능이 좋은 만큼 과하게 달리지 않고 안전하게 타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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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밀양에서 볼일을 마친 시간이 오후 3시쯤이었다. 밀양에서 출발해 14번 국도를 타고 수산대교를 건너 창원시 대산면으로 접어들었다. 진영읍에 가까워지면 거기서 동읍을 거쳐 경남도청 뒤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자동차전용도로 입구가 나타난다. 그 길로 계속 가면 마창대교로 이어지고, 고성 통영 방면 14번 국도로 연결된다. 신호동 하나 없이, 짧은 시간에 안전하게 고성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그 자동차전용도로로 들어갈 수 없었다. 불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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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모터사이클 사고의 상당수는 교차로에서 일어난다. 내가 아는 지인들의 사고도 거의 교차로에서 일어났다. 누구의 잘못이든 모터사이클은 자동차처럼 운전자를 보호해줄 보호벽이 없어서 부상 위험이 크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운전자들은 자동차전용도로 통행 허용을 간절히 원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국가 대부분이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통행을 허용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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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듣자하니, 최근 폴란드는 고속도로 통행요금 부과대상에서 모터사이클을 제외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또 독일도 아우토반의 통행료 징수를 논의하면서 모터사이클은 지금처럼 무료로 통행하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는 고사하고, 자동차 전용도로조차 통행을 할 수 없다. 개떡같은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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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창원시 대산면-김해시 진영읍-창원시 동읍-의창구-마산회원구-마산합포구-진동면-진전면-고성으로 수십 개의 교차로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갈 수밖에 없었다.

옥천사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저문 뒤였다. 산속에는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절 앞 주차장에 모터사이클을 주차했다.

절에서는 오후 5시면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던 큰아이가 모터사이클 소리를 듣고 내려와서 반긴다. 큰아이 뒤로 예사롭지 않게 생긴 개 두 마리가 따라와서 나를 경계한다. 챠오챠오라고 알려진 중국 개다. 사자처럼 생긴 개로 유명하다. 정말로 사자처럼 생겼다. 수놈은 목덜미의 갈기가 멋지다.

이 절에 있는 녀석들은 암수 한 쌍인데 수컷은 이름이 '반야'이고, 암컷은 '지혜'다. 이 녀석들은 스님이나 보살님처럼 절에 있는 분들의 말은 잘 따르지만, 외부인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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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하동 쌍계사 말사인 옥천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 안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해서 옥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옥천사는 연화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옥천사를 품은 모습이 연꽃 같다고 해서 연화산이다. 옥천사 좌우로는 청련암과 백련암이 있고,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연대암이 있다. 암자의 이름도 모두 연과 관련이 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에 '원명 스님'에게 들은 얘기인데, 보통 사람들은 절에 가면 본 절에만 가보고 암자에는 가지 않지만, 정말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은 본 절이 아니라 암자라고 했다. 본 절은 암자를 뒷바라지해주고자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득도를 위해 공부하는 스님은 대부분 본 절이 아니라 암자에 있는 모양이다. 원명 스님도 청련암에서 공부하고 있다.

원명 스님은 옥천사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곳은 연대암이라고 했다. 연대는 연줄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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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체험형 템플스테이의 일정은 대략 주말을 기준으로 하면, 토요일 오후 2시에 도착해 접수하면 절에서 갈아입을 옷과 검정 고무신을 준다. 체험관에서 사찰예법에 대해 먼저 배우고 나면, 스님이 직접 참가자들을 데리고 절을 한 바퀴 돌면서 안내를 해준다. 오후 5시가 되면 저녁을 먹는다. 알려진 대로 고기는 없다. 대접 같은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을 받아서 먹는다. 오후 6시부터 스님들과 같이 예불을 하고 나서, 참가자들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스님과 대화한다. 대화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다. 9시부터는 자유시간인데 일찍 잠드는 것이 좋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방은 가족 단위로 배정된다. 우리가 묵은 방은 과거 고시생들이 공부하던 방이다. 구들장이 깔린 방이어서 따뜻하고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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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새벽 3시30분쯤 일어나 세수를 하고 4시에 법당에서 예불을 한다. 절의 새벽 기운은 굉장히 청명하다. 스님이 댕댕 울리는 종소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불을 마치고 나서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목탁소리와 염불 소리는 이어진다.

새벽 절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선명하게 빛난다. 마치 하나씩 대충 눌러 붙여놓은 것 같다. 금방 슈~욱하고 떨어질 것 같다. 찬 기운 때문에 코끝이 시큰하다.

5시부터 체험관에 모여서 108배를 한다. 원명 스님이 두드리는 죽비 소리에 맞춰 절 한번 하고 실에 염주 하나를 꿴다. 그렇게 108배를 하면 목에 걸 수 있는 염주 하나가 완성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거 언제 다 끼우나?" 싶다. 열심히 절을 하는데 염주 알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절을 하다 보니 어느새 끼워야 할 염주 알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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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사는 게 그런 모양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끝이 보이는 것이다 싶다. 7시30분에 아침을 먹는다. 물론 스님들도 다 같이 먹는다.

8시부터는 산책을 한다. 둘레길을 걷는 수준의 등산을 한다. 옥천사를 출발해 백련암에 올라갔다가 청련암을 둘러 다시 옥천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중간에 멋진 편백숲이 있다. 산책길에는 '반야'와 '지혜'도 따라나섰다가 백련암에서 되돌아갔다. 백련암은 응달진 곳에 있어서 별로 좋은 느낌이 없었다.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하지만, 청련암은 그렇지 않았다. 암자 앞에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노란 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옥천사 마당에서 보면 청련암은 보이지 않고 이 은행나무만 보인다. 이 산책길 안내도 스님이 직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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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나는 편백나무보다 연화산의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소나무에는 거북선 등껍질이 붙어 있었다. 그런 모습은 참 늠름해보였다.

청련암에서 원명 스님에게 차 한잔 얻어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함께였다. 2명의 젊은 여성이었는데 진주에서 온 분들이었다. 그녀들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실천하는 중이었다.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템플스테이였던 것이다. 그녀들도 내가 느낀 것처럼 옥천사 템플스테이가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천사로 내려오는 길에 붉은 단풍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너무도 붉었기 때문이다. 마치 잎 하나하나를 붉은색 유성 물감에 넣었다가 빼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듯했다. 그 모습은 주변 숲 색깔보다 너무 도드라져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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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오전 11시30분 점심을 먹고 나면 모든 일정이 끝이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참가자가 너무 많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조용하면서도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체험형 말고 휴식형을 선택하면 예불 참여와 식사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옥천사 템플스테이는 옥천사 인터넷홈페이지(http://www.okcheonsa.or.kr)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모터사이클에 큰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귀갓길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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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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