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식당과 커피포트, 그리고 소소책방찾아가기

하루 1000km 달릴 수 있을까

2010년 이전에 250cc 스쿠터를 탈 때는 9박 10일 전국일주를 한 것을 빼놓고는 대부분 가까운 곳으로만 여행을 다녔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란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50km 이내 지역쯤 되겠다. 스쿠터를 타고도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많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동력의 한계라는 것이 있어서 하루 만에 아주 멀리까지 여행을 다니기는 어렵다.

반면, 할리데이비슨·BMW 모터사이클처럼 배기량이 1000cc에 가깝거나 그보다 훨씬 큰 모터사이클을 타게 된 이후로는 먼 곳으로만 여행을 다니게 됐다. 하루를 몽땅 모터사이클 여행에 쓴다면 기왕이면 멀리까지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기억에 남는 여행 중에 당일치기 해남 땅끝마을 다녀오기가 있다. 2013년 11월 말이었다.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배기량 1700cc)를 타던 때였다. 일상생활에서 11월 말은 한겨울로 접어들기 전이라서 별로 춥지 않지만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릴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20150514010018.jpeg

여름에 가까운 시기라도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체온을 빼앗겨 일상생활 보다는 훨씬 춥게 느껴진다. 그날 땅끝마을을 다녀올 때도 아침 일찍 출발했었는데 마치 한겨울처럼 느껴졌다. 오전 11시쯤 전남 순천을 지나 벌교를 지날 때쯤 되어서야 겨우 가슴을 펴고 달리 수 있었을 정도였다. 땅끝마을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하루에 달린 거리가 600km가 넘었다. 자동차로 달려도 600km는 거의 하루 종일 달려야 하는 거리다. 그런 거리를 모터사이클로 달렸으니 정말 원없이 모터사이클을 탄 날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본다면 코웃음을 칠 분이 한 분 있다. 블로그로 교류하면서 알게 된 분인데 경기도에 살고 계신다. 그분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로 시작해 지금은 BMW 모터사이클을 탄다. 그분의 하루 여행 거리는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휴일 모터사이클 여행을 나섰다 하면 주행거리가 600km를 넘는 것은 예사다. 어떤 날은 경기도에서 새벽 일찍 출발해 전남을 거쳐 남해군까지 내려갔다가 통영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경기도까지 복귀하기도 한 분이다. 그래서 이분은 1년에 두어 번씩 타이어를 교체할 정도다. 얼마 전에는 하루에 달린 거리가 1000km를 넘겼다. 대단한 분이다. 1년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모터사이클을 타고 만나는데, 내가 '형님'으로 모신다.

 

동네 산책하듯 가보고 싶은 곳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샜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까운 동네 산책하듯 다녀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진주의 몇몇 '명소'였다. 여기서 말하는 명소는 남들에게 잘 알려진 명소가 아니라 내 나름대로 갖다 붙인 곳이다. 평소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틈이 나지 않아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세 곳인데 그중 한 곳은 이미 가봤던 곳이다. 세 곳 모두 진주 시내에 있다.

창원으로 진주로 가려면 고속도로처럼 쭉 뻗어있는 2번 국도를 타고 내달려가면 금방 도착한다. 하지만 그렇게 가면 재미없다. 비교적 가까운 곳이 시간도 많으니 평소에 다니지 않는 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함안군 가야읍, 군북면을 지나 의령으로 향했다. 함안군 군북면에서 남강에 걸쳐진 정암교를 건너 의령군으로 진입하자마자 우회전해서 남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달린다.

20150514010026.jpeg

 

조금씩 푸름을 더해가는 남강을 왼쪽에 끼고 오른쪽에는 넓은 들과 산을 끼고 달려가는 길은 여유로움을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달리다 보면 의령군이 설치한 친환경 골프장을 만난다. 이용객들이 많다. 그리고 한쪽에는 주민들로 보이는 분들이 잡초를 뽑아내고 있다. 찬반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의령군 처지에서는 성공한 사업으로 보인다. 강 둔치에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대중골프장을 설치하고, 농약 대신 주민들을 고용해 골프장을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환경훼손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한 것이다.

길은 강을 거슬러 계속 이어진다. 화정면에서 작은 내를 하나 건너고 고개를 하나 넘었더니 진주시 대곡면이었다. 이 길은 처음 달려보는 길이다. 이런 길을 달릴 때는 항상 설레인다. 가보지 않은 길을 달리면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갈래길이 나오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고 마음 내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달린다. 가보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면 되돌아오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대곡면, 금산면을 지나 진주 시내로 들어섰다.

20150514010025.jpeg

 

첫 번째로 찾아간 명소는 중앙시장 안에 있는 '송강식당'이었다. 생선 내장탕(알탕)을 잘하는 식당이다. 중앙시장으로 가서 적당한 곳에 모터사이클을 주차하고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찾아갔다. 식당은 예상했던 것보다 작고 아담했다. 찾아간 시간이 오후 2시가 지나서였기 때문에 식당 안은 한산했다. 내장탕을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이 가득한 내장탕이 나왔다. 내 입맛에는 약간 매웠지만 얼큰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만일 듯한 내장탕이었다. 알과 내장이 싱싱해서인지 씹히는 식감이 참 좋았다. 다만 이 순간 마주 앉아서 함께 먹을 친구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20150514010024.jpeg

 

늦은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차례다. 중앙시장을 나와서 진주 시내를 관통하고 흐르는 남강을 건넜다.

그들은 연결되어 있었다

촉석루에서 강 건너 보이는 곳, 망경동이다. 망경동 강변로에 가면 '커피포트'라는 카페가 있다. 이곳이 두 번째 명소다. 커피포트는 이미 두어 번 가봤던 곳이다. 주인장이 '예술'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팎의 색이나 소품들이 썩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고, 당연히 그렇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50514010019.jpeg

 

그런 카페에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는 참 맛있다. 날씨가 제법 덥게 느껴졌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마셨다. 그날 카페에는 학교에 다녀온 듯한 아이 두 명이 놀고 있었는데 실리콘으로 만든 쥐를 갖고 논다. 징그럽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징그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요즘 아이들의 취향이란 종잡을 수 없다.

커피를 마시고, 주인장에게 '소소책방'의 위치를 물었다. 주인장은 상세하게 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되물었다.

"소소책방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는 분이 많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서 물어볼 생각을 하셨나요?"

"그냥 여기서 물어보면 아실 것 같아서요."

헌책방 소소책방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커피포트와 무엇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 추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커피포트 주인장에게서 소소책방의 위치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소소책방으로 달려갔다.

20150514010022.jpeg

 

소소책방은 경남과학기술대 정문 건너편에서 남강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1층에 자전거카페가 있는 건물 2층에 있었다. 좁고 낡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올빼미 그림이 있는 문패가 손님을 맞는다. 올빼미 그림은 어디선가 본 듯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빼꼼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도 없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누군가 어디에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다. 제법 공간이 넓다. 대체로 헌책방들은 헌책을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있어 무질서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소소책방은 카페처럼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책을 볼 수 있도록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고 커피와 차를 주문해서 마실 수도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편안하게 느낌의 인테리어와 그런 인테리어 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방임'이었다. 책 구경을 한참 하다 입이 심심해서 차를 한 잔 마시려고 주인장을 찾았더니 구레나룻 수염이 가득한 주인장이 한쪽 구석에서 나온다. 얼마나 조용하게 있었던 것인지, 나는 그쪽에 사람이 있었는 줄 미처 몰랐다.

따듯한 레몬차 한 잔을 마시며 대학시절에 나왔던 소설책들을 봤다. 참 편안한 시간이었다. 모터사이클 여행 중에 그렇게 편안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금방 1시간 정도가 흘렀다. 여행에서 집으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었다. 헌책 세 권을 사고 찻값을 치렀다. 1만 5000원. 분위기 좋은 헌책방의 매력이었다.

20150514010020.jpeg

 

돌아올 때는 안전한 길을 택했다. 2번 국도로 탔다. 노을을 등지고 창원 쪽으로 달리면서 생각한 것은 '소소책방은 왜 이름이 소소책방일까?'였다.

이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 누구 없을까?

20150514010023.jpeg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