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지리산]지리산에서 2박 3일

지리산은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남단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산입니다. 행정구역으로 삼도봉을 기준으로 경남에는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을 포함하고 전북은 남원시, 전남은 구례군에 걸쳐 있습니다.

지리산은 남쪽 지역 여러 강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북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엄천강에서 경호강으로, 다시 남강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집니다. 남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그대로 섬진강이 됩니다.

지리산은 지난 1967년 우리나라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산이 높고 넓은 만큼 자연·인문을 망라해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그 커다란 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지리산을 향한 여정은 산청에서 시작해 함양으로 다시 하동으로 이어집니다.

◇산청군 중산리에서 올라가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왕봉으로 높이가 1915.4m입니다. 천왕봉으로 가는 길 중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골짜기에서 시작해 법계사를 거치는 코스가 가장 짧습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줄기

중산리로 가는 길은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을 만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길목에 있는 덕산(德山)이란 마을 때문입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큰 마을입니다. 이곳에 남명 선생이 만년을 보냈다는 서재 산천재(山天齋)와 선생의 묘소, 선생을 모신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습니다. 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덕(德)이란 한자는 바로 남명 선생을 뜻합니다. 남명 선생은 퇴계 이황과 나이가 같으면서 학문으로도 쌍벽을 이루었던 분입니다. 남명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 산천재에서는 천왕봉이 아득하게 보이는군요. 선생은 그야말로 천왕봉 같은 기상으로 한세상을 살아가셨다 합니다.

중산리 계곡까지는 버스가 들어갑니다. 계곡 주변으로 식당과 숙박시설이 제법 들어서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계곡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면 성모상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성모(聖母)는 지리산 산신(山神)입니다. 마고 할매라고도 하죠. 제주도 설문대 할망처럼 여성성을 지닌 수호신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천왕봉 근처에 성모사란 절이 있었고, 그곳에 성모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스님들은 그 성모상을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라고 불렀다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천왕성모라고 부르며 지리산 산신으로 숭배했다고 합니다. 특히 무속인들이 많이들 찾았다고 하죠. 현대에 들어 절은 사라지고 성모상만 남았다가 이마저도 1970년대에 실종되고 맙니다. 그러던 것을 혜범이라는 스님이 1978년 다시 찾아내 지금은 중산리 계곡 근처에 있는 천왕사에 모시고 있습니다. 현재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중산리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성모상은 천왕사 성모상과 같은 것을 지난 2000년 산청군 시천면 주민들이 돈을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모양은 같지만 크기가 더 큽니다. 성모상 앞에는 제단이 마련돼 있습니다. 지금도 무속인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립니다. 잠깐 곁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들으니 전주, 대전, 강원도 등 전국에서 찾아온다는군요.

버스 정류장에서 매표소가 있는 중산리 탐방안내소까지는 다시 제법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입산시간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혹시 법계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얻어탈까 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안내소 직원이 다가와 입산 통제시간이 다 되어 가니 그냥 걸어서 올라가라고 합니다. 중산리에서는 오후 2시가 넘으면 산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피소에서 자기로 예약을 했다면 오후 4시까지가 통제 시간입니다. 직원은 가끔 통제시간을 조금 넘겨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언성을 높여 항의를 해도 절대로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천왕봉.

드디어 지리산 품으로 들어왔습니다.

칼바위를 지나면서 등산로가 험해집니다. 그런 만큼 위험 안내 표지도 많습니다. 산행 전 준비운동 방법과 심폐소생술도 알려주고요, 심장 돌연사를 예방하려면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는 표지도 있습니다. 등산로 길섶을 살리려고 스틱을 사용하지 말자는 캠페인 펼침막도 있네요.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반달곰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지 말고, 혹시 만나더라도 최대한 조용히 도망을 치라는군요. 특히 곰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랍니다. 이빨이 썩는답니다.

온몸이 땀에 젖고 나서야 첫날 숙소인 로터리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산속은 벌써 어스름 저녁이 내리고 있습니다.

◇천왕봉에 오르다

새벽 3시입니다. 조용히 배낭을 챙겨 대피소를 나옵니다. 어제 매점에서 산 비스킷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산길을 나섭니다. 산길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있습니다. 손전등을 켜고 조심조심 산길을 오릅니다. 법계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험하기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어둠 속이라서 그런지 발길이 조심스러워서 그런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새벽 4시, 법계사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옵니다. 도량석입니다.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려는 의식입니다. 곧이어 범종이 울립니다. 새벽 범종은 미물을 깨우는 소리라고 합니다. 돌아보니 사위는 아직 어둡습니다. 하늘에는 아직 달이 희미하게 걸려 있습니다. 천왕봉에 가까워질수록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마지막 오르막은 거의 네 발로 기어서 올라갑니다. '깔딱고개'라 불리는 급경사입니다. 드디어 천왕봉입니다. 1시간 40분 정도 걸렸군요. 천왕봉에는 50여 명이 모여 일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왕봉 일출은 노고단 운해, 반야봉 낙조, 피아골 단풍, 벽소령 달, 불일암 폭포, 세석평원 철쭉, 섬진강 물줄기, 칠선계곡 절경, 연하봉 선경 등 지리산 십경 중 단연 최고로 꼽습니다.

산청 중산리 성모상.

장엄한 일출은 없었습니다. 다만 동쪽 하늘 갈라진 구름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길에 늘어지며 능선들을 비춥니다. 옅은 구름과 함께 첩첩 겹친 능선들을 바라보자니 지리산이 왜 천하명산인지 알겠더군요. 사람들이 모두 떠나기를 기다려 혼자 천왕봉에 섭니다. 천왕은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을 말합니다. 사찰 입구에 있는 사천왕의 천왕입니다. 불법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사천왕문이라면, 신의 경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천왕봉이겠지요. 선인들의 글을 보면 천왕봉에 오른 후 감상이 주로 인간 삶의 하찮음이더군요. 그만큼 천왕봉에서 보는 풍경은 압도적입니다.

천왕봉에서 내려와 세석대피소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오르내리는 길입니다. 세석까지는 제석봉(1808m), 연하봉(1730m), 촛대봉(1703.7m) 같은 봉우리를 계속 넘어야 합니다.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한 번은 산청 방향으로, 한 번은 함양 방향으로, 또 한 번은 전라도 방향으로 시야가 탁 트입니다. 전라도 방향으로 아득히 이어지는 산줄기는 전라도 쪽 중심 봉우리인 반야봉(1732m)과 노고단(1507m)으로 연결되겠지요.

가는 길에 장터목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먹습니다. 급히 갈 이유가 없으니 쉬엄쉬엄 걷습니다.

세석대피소 가는 길에는 드문드문 평원이 펼쳐집니다. 낮은 나무와 풀,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있자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곳곳에 나타나는 구상나무 군락은 독특한 풍광입니다. 씩씩하게 길을 걷는 초등학생 아이 둘을 만납니다. 친구 세 명이 함께 왔답니다. 왜 둘이냐고 물으니 한 아이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보호자로 온 자기 아버지와 천천히 오고 있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자고 이틀째 산행이라는군요. 힘든 기색은 없고 마냥 즐거워 보입니다. 그렇게 세석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지리산에 들어온 지 이틀이 지났군요.

◇하동군 청학동을 가다

비 오는 아침 세석대피소 한신계곡을 따라 산에서 내려갑니다. 바위가 비에 젖어 미끄럽습니다. 넘어질 게 무서워 속도가 아주 느립니다. 능선을 걷던 것과는 달리 하산길에서는 웅장한 지리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늠름한 나무와 무성한 수풀, 시원한 계곡 풍경이 이어집니다. 특히 길 곳곳에서 만나는 부러진 거목들은 자연의 힘이 때로 얼마나 무서운지 상상하게 합니다.

4시간을 걸어서야 겨우 백무동 매표소를 지납니다. 지리산 국립공원을 빠져나온 거지요. 이곳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계곡입니다. 오래전 천왕봉에 기도를 하려는 무당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랍니다. 백 명의 무당이 살았다고 해서 백무(百巫)라는 이름이 붙었다는군요. 백무동계곡에도 식당과 숙박시설이 많습니다. 계곡이 깊고 시원해 여름 피서객도 많은 편입니다. 이곳 버스정류장에는 백무동에서 바로 동서울, 남서울, 대전, 안양, 부천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습니다. 이곳을 거치는 시골버스도 많이 있지요. 시골버스를 타고 근처 마천면사무소까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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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백무동 계곡.

마천면은 지리산의 풍성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지리산을 두고 깊고 험하지만 화전민도 천석을 한다고 할 정도로 그 골이 넓고 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유민들이 많이 숨어 살던 곳입니다. 가락국 마지막 왕인 양왕이 신라에 쫓겨 마지막으로 거점을 삼은 곳도 마천면 추성마을입니다. 마천면은 근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곳입니다. 칠선계곡과 백무동은 남로당 빨치산들이 10여 년간 무장투쟁을 벌인 곳이지요.

마천면사무소를 지나 금대산을 잠시 오릅니다. 이곳에서는 천왕봉을 포함해 지리산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금대산에서는 지리산 자락에 펼쳐진 다랑이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다랑이논이야말로 지리산의 강한 생산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금대산 자락에서 밭일을 하는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묵묵히 땅만 바라보고 일하는 부부. 그 너머로 지리산 연봉들이 구름에 가린 채 서 있습니다.

◇함양군 백무동으로 내려가다

세석대피소에서 한신계곡 반대편 삼신봉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면 하동군입니다. 삼신봉에서 길은 두 갈래. 하나는 쌍계사로 가는 길입니다. 쌍계사로 가는 길은 그 유명한 불일폭포를 지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쌍계사 주변은 지리산 매화와 녹차가 자라는 곳입니다. 그리고 화개천을 따라 더 내려가면 섬진강 줄기와 만나게 되지요. 대표적인 하동의 풍경입니다.

다른 하나는 청학동으로 가는 길입니다. 청학동의 다른 이름은 도인촌(道人村)입니다. 강대성(1890~1954)이 창시한 종교인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正儒道敎)' 신봉자들이 한국전쟁 이후 이곳으로 모여들어 살면서부터 마을이 생겼다고 하네요. 역사가 60년이 되지 않는 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유교를 중심으로 불교, 도교를 포함해 동서양 학문을 모두 합쳐 현대문화의 부조리를 배제하고 인간 본성을 찾는다는 교리에 따라 머리를 땋거나 상투를 틀고, 흰 옷을 입는 등 전통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이후 청학동의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며 외부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훈장, 서당, 댕기 머리 꼬마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심어진 청학동 이미지가 이 시기에 형성된 거지요.

최근에는 청학동보다 근처에 있는 삼성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성궁은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부터 해발 850m 지역에 고조선 시대 소도(蘇塗)를 복원한 것입니다. 삼성은 환인, 환웅, 단군을 뜻합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돌탑들이 이제는 독특한 풍경으로 사람들을 그러모으고 있습니다. 이곳도 이전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하동 지역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는 곳이지요. 한때는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사들이 수십 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십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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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청암면 삼성궁.

현재 청학동은 마을공동체가 거의 사라진 듯합니다. 이제 청학동에는 식당과 숙박시설, 예절교육을 한다는 서당들이 가득합니다. 물론 지금도 도인촌에는 유불선갱정유도교를 믿는 이들이 몇몇 남아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마을 풍경도 나름 어느 정도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동차가 마을 안까지 밀고 들어옵니다.

마을 길 위에 서서 마실 나온 도인촌 할머니 두 분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오래 사셔서 그런지 얼굴들이 참 맑고 곱습니다. 할머니들은 텃밭에서 여물어가는 호박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 할머니들 곁으로 여름 피서객을 태운 승용차가 지나갑니다. 이어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마을 길에 들어섭니다. 그들을 피해 할머니들은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 할머니들의 뒷모습에서 지리산 마고할매를 봅니다. 지리산으로 시집와서 평생을 살아간 그들이 곧 지리산 성모가 아닐는지요.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읍(揖)한 후에 뒤돌아 산에서 내려갑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지리산은 지리산이라고요. 지리산은 크고 인간은 작고 하찮습니다.

- 참고문헌

<지리산, 인문학으로 유람하다>(강정화. 최석기, 보고사, 2010)

<지리산에 길을 묻다>(김성균·박경장·김찬수, 이담, 2014)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유홍준, 창작과비평사 1994)

<답사여행의 길잡이 6 지리산자락>(한국문화유산답사회, 돌베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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