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대중가요 속 경남]도내 곳곳에 뿌려진 흔적들

고향 진주에 대한 남인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1955년 연예인 지방공연 때였다. 남인수는 동료들과 함께 진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10년 만에 찾는 고향이었다. 남인수는 열차에서 동료 음악인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번 진주 공연에서 고향 노래를 꼭 부르고 싶으니 한 곡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내 고향 진주'였다. 당시 공연장을 찾은 청중은 이 노래를 들으며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남인수는 사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이전까지 열리던 '남인수가요제'는 명칭이 바뀌었고, 진양호에 있는 동상도 환대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동상 옆에는 그가 부른 불멸의 히트곡 '애수의 소야곡' 악보 비석이 있다.

이 노래 악보 비석은 또 다른 지역에도 있다. 밀양 영남루 바로 옆에 있는 박시춘 생가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이가 박시춘이다. 그 또한 친일행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밀양 박시춘 생가.

마산 출신 반야월은 전국에 노래비 14개가 있다. 마산여객선터미널 앞 '내 고향 마산항' 노래비도 그중 하나다. 반야월은 세상을 뜨기 전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했다. 몇 년 전 창원시에서 '산장의 여인' 노래비를 추진했는데 지역사회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1981년 은방울자매가 부른 '삼천포 아가씨'는 당시 전국을 애잔한 물결로 만들었다. 삼천포 사는 어느 여인이 고시 공부를 핑계로 서울서 연락 끊은 남자를 잊지 못한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야월 친구 딸 사연이기도 했다. 반야월은 이를 노랫말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사천 노산공원에 있는 '삼천포 아가씨 상'은 여전히 하염없는 마음을 담고 있다.

삼천포아가씨 동상.

둘다섯이 부른 '밤배'는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바 있다. 이 노래 배경지는 남해 상주 바다이다. 노래를 만든 이두진은 지난 2007년 인터넷 카페에 '밤배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남해안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남해대교도 놓이기 전이었지요. 남해읍에서 다시 상주해수욕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남해의 명산 금산에 올랐습니다. 그곳 보리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니 캄캄한 밤바다에 작은 불빛이 외롭게 떠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인상을 그대로 메모했고, 즉석에서 곡을 흥얼거려 보았습니다. 이튿날 남해를 나와 삼천포를 경유하여 서울로 올라와 노래를 다듬었습니다. 마침내 밤배 노래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후 이 사연을 알게 된 남해군은 상주은모래비치에 '밤배' 노래비를 만들었다.

조영남은 '화개장터'를 부르면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 그리고 이 장터를 전국에 알렸다. 지금보다는 덜 알려졌을 때 조영남은 당시 소설가였던 김한길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김한길이 내민 화개장터 관련 신문기사를 읽고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라고 한다.

하동이 고향인 정두수 작사가는 "그 정서를 노랫말에 잘 담은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정 작사가 고향 땅에는 '하동포구 아가씨' '물레방아 도는데' '시오리 솔밭길' 노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는 은방울자매 아닌 하춘화가 부른 것을 담고 있다. 그가 하춘화 곡에 좀 더 마음 두기 때문이다.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

이 밖에 진해에는 '배따라기' 이혜민이 만든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이미자가 부른 '황포돛대' 노래비가 있다. 한때 노래 속 주인공을 놓고 논란이 많았던 '처녀뱃사공'은 함안에 노래비가 있으며, 김용임이 노래한 '항구의 연인' 노래비는 거제 옥포동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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