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맡겨두고 필요한 만큼만 캐는 '게으름뱅이 농법'

농장 위치를 알고자 전화를 했더니 안주인께서 길이 헷갈릴 수 있다며 장황하게 설명하신다.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내비게이션을 믿었다. 기계가 안내하는 대로 갔더니 안주인이 설명하던 곳과 많이 다르다. 그제야 '경고'를 한 의미를 깨달았다. 길을 헤매느라 약속한 시간은 벌써 30분을 훌쩍 지났다. 그렇게 전화로 묻고 또 물어 만난 사람은 산청군 금서면 쌍재로 377-38, 왕산 중턱 쌍재마을에서 산양삼, 당귀, 곰취 등 약초와 산채를 재배하는 석재규(56)·최윤미(53) 부부다.

해발 500m 야산에서 자연에 맡겨 기르는 약초·산채

농장이라고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해발 500m 정도 되는 야산이었다. 등산객이나 약초꾼이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 있고, 곳곳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간판이 있어서 약초를 재배하는 곳이라고 느낄 뿐 깊은 산속이었다.

"규모는 약 12∼13㏊입니다. 하지만 말이 관리하는 것이지 자연에 맡겨두고 있습니다. 땅이 좁다면 생산량을 높이려고 거름을 주고 하겠지만 워낙 넓은 야산이라 씨 뿌리고 나오는 것만 수확해도 제때 다 못 거둬들이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지금 이 방식이 일도 수월하고 약초 가격도 제대로 받고 좋습니다."

20150528010277.jpeg

우선 약초가 자라는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참 임도를 따라 오르더니 길도 없는 산으로 들어선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가던 석 사장이 걸음을 멈춘다. "여기가 당귀를 심은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씨를 뿌렸다뿐이지 산속에서 온갖 수목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좀 황당했다. 야산에서 기르는 약초라고 하지만 밭은 아니더라도 평평한 땅에 약초가 모여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석 사장이 가리킨 곳은 그냥 군데군데 나 있는 약초였다. 더구나 약초에 문외한인 나에겐 당귀라고 하니 당귀였을 뿐이었다. 이번엔 산양삼 심은 곳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진이나 TV화면 등으로 보던 산양삼 단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농사짓는 방법이라고 이름 붙이기 뭣하지만 저는 '게으름뱅이 농법'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에 맡겨 자라게 하고, 필요한 만큼 캐는 것이죠. 그래도 일이 많습니다. 이쪽 언덕, 저쪽 골짜기 다니면서 약초 생장에 장애가 되는 수목도 제거해야 하고 수확 철이면 캐고, 씻고, 가공처리에 여간 바쁜 게 아닙니다. 오미자 심은 곳이 5000평 정도로 가장 크고 당귀, 산양삼, 곰취, 더덕 등은 약 1000평 정도 됩니다."

진열장 가득 채운 말린 약초·효소

도대체 석 사장이 재배하는 약초와 산채는 몇 종류나 될까? 산양삼과 오미자, 당귀는 재배지를 둘러 봤지만 다른 것은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석 사장은 설명 대신 한쪽을 가리킨다. 그곳엔 갖가지 말린 약초와 산채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개똥쑥, 산뽕, 엄나무, 당귀, 헛깨나무, 꾸지뽕, 익모초, 화살나무, 오가피 등 내가 아는 이름 외에도 생소한 약초들도 많다. 모두 석 사장 부부가 캔 약초로 말리고 효소로 담은 것들이란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로 약초를 사 가는데 요즘은 워낙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많이 얻다 보니 개개인이 모두 약초 전문가입니다. 효능도 잘 알아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등산객이 인터넷 등으로 주문하면 직접 산에서 캐거나 말려 둔 것을 택배로 보내고 있습니다."

20150528010330.jpeg

약초 재배로 석 사장은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까?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가 주고받는 이야기로 연봉 1억은 되지 않겠나 합니다. 물론 순수하게 약초 판매로 올린 수익은 아닙니다. 여기엔 지리산 둘레길 수익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잊은 게 있었다. 부부가 자리 잡은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5구간이 통과하고 있다. 부부는 약초를 재배하기도 하지만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간식거리도 판다. 비닐하우스 쉼터를 지어 요깃거리는 물론 막걸리 등도 팔고 있다.

"약초를 기르지만 2∼3년 만에 수익을 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산양삼은 이제 씨 뿌린 지 10년에 불과합니다.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덕도 재배하지만 어느 정도 수확량이 돼야 상품으로 시장에 낼 텐데 그만큼 양이 안 됩니다. 결국 다른 약초를 팔면서 얹어주는 용도로 쓰이는 정도입니다."

지친 심신 쉬고자 찾았던 고향 땅, 약초재배로 정착

석 사장은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에서 어떻게 약초재배 생각을 했을까? 귀촌 과정이 궁금했다. 잠깐 생각에 잠기던 석 사장이 지나온 삶을 끄집어낸다.

"참 식상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도 어릴 적 '신동' 소릴 듣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이 대처에 나가 성공하기를 바랐겠죠. 그래서 초등학교는 이곳 금서에서 졸업하고 중학교부터 부산에서 다녔습니다."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부산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석 사장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직장생활도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니던 직장도 접고 집에만 있기에 답답해 고향인 금서면을 왔다 갔다 했단다.

"그 당시 이곳에 눌러앉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주말이면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곤 했는데 점차 시골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150528010340.jpeg

그게 12∼13년 전인 2002∼2003년이었다. 부산 토박이였던 안주인 최 씨는 은행에 근무했는데 산골짜기에서 사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석 사장이 쌍재마을에 정착하고 1년쯤 지날 무렵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과감히 사표를 쓰고 산골로 들어왔다고 했다.

"사실 지금은 우리 집밖에 없으니 깊은 산골로 보이지만 내가 어릴 땐 15가구 정도가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이 한창 번성하던 때엔 30가구까지 살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둘레길로 이용하는 이 길이 옛날 신작로입니다. 과거 도보로 다니던 시절 진주·산청에서 전라도 인월·남원·전주로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지금에야 산 아래로 고속도로다 국도다 찻길이 나면서 산길이 돼 버렸지만…."

첫 재배 당귀·천궁 헐값에 넘겨…쓰라린 경험

석 사장이 귀농해 맨 처음 시작한 사업은 염소를 키우는 것이었다. 철망을 치고 인근 마을을 돌며 염소를 사모았다. 10∼20마리씩 모아 기르기 시작했는데 한 때 300마리가 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산속에서 염소를 기르면 될 줄 알았는데 판로를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염소는 한꺼번에 내다 팔아야 목돈을 쥘 수 있는데 한두 마리씩 파는 것으로는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끔 동네 개들이 물어 죽이는 일도 있고, 또 울타리를 쳐 놓았다고 해도 도망가는 놈도 있고 하다 보니 점차 마릿수가 줄어 어느 날 염소가 스무 마리 정도 남았더군요."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지만 쓰라린 실패였다. 염소를 사모을 때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남은 몇천만 원이 있었는데 염소를 들이면서 쓴 목돈은 푼돈이 돼 사라져 버렸다. 다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산청에서 약초재배 바람이 불었다. 석 사장은 약초 재배를 결심하고 산청약초연구회 총무를 맡아 약초재배법을 공부했다.

"2만 3000평에 천궁과 당귀를 심었습니다. 몇십 년 묵혀둔 땅이라 그런지 약초가 아주 잘 됐습니다. 대구 한 제약회사에서 트럭 몇 대를 몰고 와 전량 구매하겠다고 하더군요. 값도 다른 곳에서 재배한 것보다 많이 쳐 준다고 했지요. 그런데 막상 약초를 싣고 간 이후 말이 달라졌습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값을 후려치기에 다시 가져오라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웠겠습니까? 결국 헐값에 넘기고 말았죠."

20150528010339.jpeg

염소 사육의 쓰라린 실패에 이은 두 번째 뼈아픈 경험이었다.

어린 아이 도시에 둔 시골 생활 '가슴 아린 기억'

귀농·귀촌이란 말이 어떤 이에겐 가슴설레게 하지만 누구에게나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석 씨 부부에게도 그랬다. 귀농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녔던 때였다. 그나마 부산에서는 아이들 외할머니가 계셔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좀 더 가까이 두고자 진주로 전학시킨 이후 아이들끼리 생활하며 학교에 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단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가슴이 시려 온다.

"큰 애가 딸이어서 동생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매일 진주를 나갈 수 있는 처지도 못됐고요.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로 통화를 자주 하게 됐는데 당시엔 이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배터리를 아끼고 아껴 아이들과 전화를 하는 데 이런 날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참 난감했습니다. 특히 산속이라 배터리 소모도 빨라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지인들은 빨리 전화를 끊으려 하는 우리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어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했지요.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더욱 미안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젠 성년이 됐다. 딸은 대학을 졸업했고, 아들은 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물론 지금은 전기도 들어오고, 지리산 둘레길이 집 앞으로 연결돼 있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더욱이 아들은 대학에서 한약재와 관련 있는 공부를 하며 만족해 부모의 삶이 자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 것 같지 않아 다행스럽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고향으로 돌아온 선택을 잘했다고 봅니다. 남들은 게으름뱅이 농사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자연에 맡겨 약초를 재배하는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합니다."

서로 영역을 인정한 부부와 멧돼지

석 사장이 주로 움직이는 동선이 산속이다 보니 종종 야생동물과 맞닥뜨리곤 한단다. 그나마 노루나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은 위협이 되지 않지만 가끔 멧돼지를 만날 때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두 마리가 집 주변에서 사는 것 같아요. 가끔 약초 밭을 둘러보려고 길을 걷다 보면 멧돼지를 만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멧돼지들도 내 영역을 인정한다는 것이죠. 물론 나도 멧돼지 영역을 존중합니다. 되도록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먼저 발견하면 얼른 옆으로 비켜가고, 또 멧돼지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며 비켜가곤 합니다. 참 영리한 짐승이지요. 내가 자신을 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아요. 그런데 꼭 그럴 때마다 나를 잘 따라다니던 개가 사라집니다. 개는 같은 동물로서 위협을 느끼고 도망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50528010297.jpeg

그래도 산속이라 멧돼지를 만나는 것은 무서울 법도 했다. 석 사장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루는 한밤중에 술 생각이 나 막걸리를 가지러 비닐하우스로 내려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집 뒤쪽에서 멧돼지 특유의 콧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집 가까이 내려와 있었던 모양인데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듯했죠. 하지만 이곳은 내 영역이고, 침범한 놈이 멧돼지라 나도 영역을 지켜야 했습니다.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도 가지 않고 위협을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집 옆에 세워 둔 굴착기를 끌고 와 땅을 두세 번 내리쳤더니 사라졌습니다."

효소·장아찌에 빠진 아내

"요즘 이곳에 살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약초를 재배하면서 조급증을 내서는 안 된다는 걸요. 뒤에 말리고 있는 것이 효소를 만들려고 얼마 전 밭에서 수확한 엉겅퀴입니다. 그런데 수확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뭣합니다. 왜냐면 씨 뿌리고 가꿔야 수확이란 단어가 맞는데 몇 포기 있던 엉겅퀴가 밭을 이뤄서 그저 얻은 것들이니까요. 지금도 캐 내고 남은 엉겅퀴가 몇 포기 있을 텐데 2∼3년만 두면 인근이 엉겅퀴 밭이 될 겁니다. 그때 또다시 수확하겠지요. 굳이 많이 채취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수확해야 할 약초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다 수확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로 석 사장은 올해 곰취 수확을 포기했다. 수확해야 할 시기에 다른 일이 겹쳐 엄두를 못 냈단다. 그렇다고 아쉬울 것도 없다. 내년에 수확하면 된다.

"아내는 요즘 효소 만들고 장아찌 담그는 데 푹 빠져 있습니다. 산속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다 효소와 장아찌 담그는 재료이니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기 좋고 물 깨끗한 산속이라 그런지 효소를 담그면 다 잘됩니다. 내친김에 아내는 전문적인 작업장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이야기 합니다."

석 사장의 산중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글쎄요. 내 건강이 유지된다면 계속 산에서 약초를 기르고 싶습니다. 다행히 아들이 약초에 관심이 많고 재미도 있다고 하니 나중엔 부자가 함께 약초를 재배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20∼30년이 지난 뒤 여전히 지리산 둘레길 5코스 쌍재마을에서 부부가 아들과 함께 약초를 키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풍경이, 그 마음이 참 여유로울 듯싶다.

20150528010272.jpeg

추천사유 -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약초전문가 이용호 박사

귀농 13년차인 석재규 대표는 산청 왕산 쌍재 기슭의 넓은 대자연 환경을 활용, 약초를 재배하며 산청 약초산업 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해 왔습니다. 산양삼과 참당귀, 오미자, 엄나무, 참죽나무, 엉겅퀴, 칡 등 기능성 약초와 참취, 곰취, 다래나무 순 등 산채를 친환경적으로 재배하는 억척의 강소농입니다. 특히 자연을 벗 삼아 참당귀, 천궁 등 3만 3000㎡을 재배하면서 도시소비자 중심으로 자연산 먹거리를 연중 생산 공급하는 친환경농업의 진정한 농군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