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조연이고 사람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도시를 이야기하는 데 굳이 제임스 조이스나 오르한 파묵 같은 프로 작가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기 도시를 입에 올릴 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갖는 힘이 몰라보게 커졌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균등하게 시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도시는 자주 다양한 주제로 입에 오르지만, 또 다른 도시는 가끔 뻔한 주제로만 언급되는듯하다.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다른 도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견문 없음을 합리화하려고 만든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부모가 세상 남자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해도 막상 아무 사내와 혼인시키지 않듯이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아 보여도 내가 사는 곳이 그렇지 않은 곳과 같을 수는 없다. 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겠는가?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과 도시의 애착, 그리고 스토리텔링

한 사람 개인을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한 것은 서양의 계몽주의가 득세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이나 서양의 영향을 덜 받은 곳은 여전히 개인은 공동체와 그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존재다. 아울러 공동체는 그것이 터 잡은 도시에 긴밀하게 밀착된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와 선택에 따라 도시 구조가 결정되고, 또 그 구조에 공동체와 구성원은 강하게 영향받는다. 도시와 공동체는 그래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고, 도시마다 그 내용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시민이 자기 도시에 애착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도시에 애착을 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단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 개인의 성향 탓으로 돌리는 것도 곤란하다. 시민이 자기 도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자기 도시와의 애착이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도시 경영의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에 자기를 돌보는 어른과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이때 애착 관계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형성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사회성과 인지 능력에 차이가 난다고 학계는 보고하고 있다. 갓난아기 때 형성된 애착 관계는 가정을 벗어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같은 곳에서 교사와 또래 집단과의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자존감과 문제 해결 능력, 갈등 대처 능력에도 반영된다고 한다. 연령별 사회에서의 적응 능력이 이후 연령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영유아기 애착 관계는 한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 중에 하나다.

그렇다면 시민이 자기 도시에 느끼는 애착은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애착이 가져올 가장 큰 선물은 도시 공동체 활동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engagement)일 것이다. 자기 도시에 대한 애착이 관심을 낳고 관심은 참여를 낳고 참여는 변화를 낳고 변화는 성장(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까지 포함)을 낳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애착 관계가 부실할 경우 무관심과 방관을 낳아 문제가 누적되거나 고착화되어 마침내 도시가 퇴행하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민과 도시와의 애착 관계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그 애착 관계가 높을수록 시민은 자기 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게 되고, 또 그 이야기가 풍성할수록 도시에 대한 시민의 애착 강도도 높아진다. 여기서 이야기란 '서술된 이야기'보다는 '회자되는 이야기'다. 관청에서 기획해 공급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민이 자기 입에 올리는 이야기를 가리킨다. 그런 이야기여야 시민과 도시와의 애착 관계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통합창원시의 노래 '우리는'과 NC응원가 '마산 스티리트'

2011년 6월 30일에 창원시는 통합 1주년 기념행사를 대규모로 열었다. 이때 당국은 1주년을 기념하는 노래로 시예산을 들여 '우리는'과 '알라뷰 창원'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보급했다. '우리는'은 장경수 작사 임강현 작곡에 트로트 가수 박현빈이 노래를 불렀고, '알라뷰, 창원'은 김호식 작사작곡에 역시 트로트 가수 현철이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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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통합 1주년 기념식.

당시 시청 홍보팀은 "통합창원시민가요 '우리는'과 '알라뷰, 창원'을 축구, 농구, 야구 등에 응원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창원시에 연고를 둔 스포츠 경기의 응원가로 널리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관청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대표곡으로 밀었던 '우리는'은 4년이 지난 2015년 6월 현재 유튜브 조회수 1600여 회에 불과하고 '알라뷰, 창원'은 조회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물론 각종 스포츠 현장에서 응원가로 불렸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노래는 인류가 오랫동안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전파하기 위해 사용한 매우 효과적인 매체다. 노랫말 속에 이야기를 담고 거기에 곡조를 붙여 쉽게 외우고 전달되게 했다. 글을 몰라도 배움이 부족해도 노래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대를 이어 스토리를 전파하는 데에도 노래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었다. 노래를 같이 부를 때 우리는 같이 연설 듣는 것보다 훨씬 큰 감정적인 연대를 느낀다. 당시 창원시의 노래 욕심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노래를 입에 올려 흥얼거리는 것은 시민이다. 옛말에 "이야기는 거짓일 수 있어도 노래는 항상 참"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취지가 좋다고 따라 부를 사람은 없다. 관청이 기획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이 따라 부른다면 독재 국가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군사 독재 정부가 모든 가요 앨범에 '건전가요'를 삽입하게 했지만, 그 노래들을 흥얼거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창원시의 시민가요 정책이 실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창원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가 2013년에 1군 리그에 오른 이후 노브레인의 'Come On Come On 마산스트리트여'가 응원가로 채택되어 크게 사랑받고 있다. 이 노래는 노브레인의 보컬이자 마산 출신인 이성우가 프로야구팀이 생기기 훨씬 전인 2007년에 만든 것으로 고향 마산에 대한 유쾌한 추억을 표현하고 있다. 야구팬들 중에 특히 옛날 마산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남다른 감상에 빠진다. 야구도 야구지만 이제는 지명에서 사라져버린 마산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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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야구장에서 NC다이노스 치어리더들 모습.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노래는 사실 불온한 구석이 있다. 공식적으로 야구단은 '창원'을 연고지로 하고 있지만, 그 팀의 대표 응원가는 '마산'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원시 당국은 되도록 '마산'이란 이름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1년 내가 관여한 '마산원도심 스토리텔링 사업'의 블로그 제목을 '마산이야기'로 지었다가 창원시의 요청으로 '창동오동동이야기'로 그 범위를 축소한 적이 있다. 지금도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국들에게 창원시는 마산야구장이라는 명칭 앞에 꼭 '창원'을 붙여 '창원 마산 야구장'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3개 도시가 통합된 창원시 공무원들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시민들의 진짜 속마음은 행정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도시 이야기? 사람 이야기!

도시 공간에 대한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마산 창동은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왜 창원 상남동은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는가?"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마산 지역 사람들은 창동 이야기를 입에 많이 올리는데 창원 지역 사람들은 상남 이야기를 입에 별로 올리지 않는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민들이 자기 도시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이유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뜻이다. 마산 야구장에서 '마산 스트리트'가 대표 응원가가 된 것도 이런 지역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점들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들었을까? 역사로 치면 창원이 더 유서가 깊고, 지역의 경제적인 여건도 훨씬 양호한데, 왜 사람들은 창원 지역보다 마산 지역을 입에 올리고 싶어 할까?

두 지역 간 차이점을 밝히기 전에 먼저 그 이야기의 내용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산 지역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마산 사람들은 주로 어떤 이야기를 입에 올릴까? 흔히들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지역을 이야기한다고 할 때 실제 그 지역 자체를 이야기한다고. 과연 그럴까? 그 지역의 역사를 줄줄 외고, 주요 사건 사고를 기억하며, 그 지역이 배출한 인물들을 평가하는 이야기들을 나눌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한 통계에 따르면 사람이 하루에 말하는 내용 중 70%는 '사람 이야기'다. 또 그중에 절반은 대화하는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다. 업무와 관련된 사무적인 이야기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사람이야기라는 뜻이다(폴 아담스, Grouped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우리가 특정 도시와 특정 지역을 이야기할 때도 예외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여다보면 대개 도시와 지역은 '배경'과 '설정'이 되고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과 '관계'가 된다.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도시가 조연이고 사람이 주연인 셈이다.

대다수의 국내 도시 스토리텔링 사업들이 썩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도시를 배경 삼아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정작 도시 정부가 제공하는 이야기는 사람은 쏙 빼놓은 자기 도시 자랑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개 자기와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것에는 영향을 받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다. 관계를 만들어줄 사람이 빠진 도시 자랑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다른 지역보다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 지역에 '사람 이야기'가 많았다는 뜻이다. 사람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도시 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재생되고 전파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 이야기는 도시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하는 것이다. 시민의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도시가 시민들에게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산 창동 대 창원 상남동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마산 창동이 창원 상남동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첫 번째는 '문화의 축적'이다. 문화는 단번에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축적됐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고 위력을 발휘한다. 창동은 골목길 구조를 25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고려당, 복희집, 학문당서점, 황금당, 태양카메라, 해거름, 만초집 같은 수십 년 된 상호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이들 골목과 가게들이 차곡차곡 이야기를 축적하고 있다. 이처럼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확산될 수 있는 거점들이 도시 공간에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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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초집 골목./김주완 기자

반면 창원 상남동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예전 흔적이 깨끗이 지워졌다. 특히 새로 난 길을 중심으로 도시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대단지 아파트와 대규모 상가가 들어섰고, 21세기 들어서는 전국적인 유흥가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의 축적 대신에 단절이 일어나 이제 겨우 십수년 짜리 새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산 창동의 두 번째 강점은 다양성이었다. 현재 이 다양성은 제한적으로만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한창 잘 나갈 때 창동은 도시 다양성의 표본이라 할 만했다. 전국에서 인구 대비 영화관이 가장 많은 곳이었고 화랑과 소극장 같은 문화인프라가 풍성했다. 바로 옆에 대규모 도매시장인 부림시장과 마산어시장, 전국 최고 수준의 브랜드숍 거리와 길 건너의 오동동 유흥가도 연결되어 있었다.

다양한 공간이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그 안에서 다양한 관계와 다양한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생태계로 비유하자면 다양한 니치(niche, 틈새)들이 생기며 저마다의 이야기 거점들이 생겨났다. 청소년들에겐 영화 관람과 일탈의 공간으로, 노동자들에게는 소비와 오락의 공간으로, 선남선녀들에게는 혼수와 예물을 장만하는 공간으로, 사업가들과 정치인들에게는 단합과 유흥을 꾀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온갖 정보와 이야기가 모여들고 전파되는 공간이었다.

반면 상남동은 개발 이후 다양해지기보다는 거대한 유흥가로 통합되고 있다. 거기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활동은 차이가 나기보다는 유사하다. 다양한 이야기가 생산되기 어려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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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상남동 번화가 모습./김구연 기자

창동의 세 번째 강점은 '사람이 지키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과거 창동의 도시 구조는 요즘 상권에 비유하면 대형 몰(mall)에 가까웠다. 문화와 서비스, 각종 쇼핑을 한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라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그러나 창동이 현대식 몰과 다른 점은 '주인'이 직접 공간들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식 몰은 브랜드가 중심이 되고, 기업이 그 공간을 지킨다. 창동이 빼어났던 점은 손님과 주인 간의 상호작용을 추구하면서도 현대식 몰이 주는 편의성을 상당히 누릴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도시가 나(우리)의 확장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고 주장했다. 이 명제는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시민이 자기 도시를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려면 도시가 시민의 삶을 확장하는 효과적인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예전 마산 창동이 그러했다. 시민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맞은편 학문당서점에서 시집을 구입하고, 명곡사에 들러 새 음반을 사고, 복희집에서 허기를 채우고, 황금당에 들러 예물을 구입하고, 신화주단에서 혼수를 장만했다. 해거름에서 애창곡을 청해 듣고, 통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복요리집에 들러 해장을 했다. 창동은 감성을 충전하고 필요를 채우며,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었다. 나와 우리가 확장되고 연결되고 조직되고 커지고 공간이었다.

도시 스토리텔링은 어떤 면에서는 '결과물'이다. 도시가 시민의 삶을 유기적으로 조직하고 확장하는 데 만족스러우면 시민은 흔쾌히 도시를 입에 올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내 이야기'만큼 신나는 이야기가 없는데, 거기에 도시가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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