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근대유산에 시선 두는 창원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초등학교 뒷길. 우거진 숲 사이 작은 돌담길을 오르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가옥 3채를 만나게 된다. 마산지역에 전기를 처음 공급한 '일한와사'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1938년 지어진 사택이 바로 이곳이다.

3채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집이 있는데, 일한와사 사장이 살았던 곳이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모직회사 사장, 고등학교 교장, 대학교 학장이 살았고, 40년 전에는 병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지금은 폐허로 방치돼 있다.

마당에는 한때 병원이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건축에 지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일본식 가옥이라는 걸 느낄 만하다. 내부 여기저기는 사람 살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사를 준비하다 멈춘 것으로 보이는데, 짐에 붙어 있는 메모에는 '2006년'이라고 적혀 있다.

사람 손길 사라진 그 시간 속에서 집은 죽어가고 있다. 바닥 마루는 침식으로 푹 꺼져 있다. 통합 이전 옛 마산시는 근대문화유산적 의미에서 이 주택을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집 소유주가 관심 두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초등학교 인근 적산가옥 내부는 80여 년 전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어시장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빨간 벽돌로 된 2층짜리인데 얼핏 봐도 만만치 않은 세월을 짐작하게 된다. 인근에서 노점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옛날에 무슨 창고용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라고 했다.

아주머니 답은 사실과 비슷했다. 오늘날 수협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간상인들을 '객주'라고 불렀는데, 1943년 그들 창고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단순한 시간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일한 객주 창고이기 때문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에는 1909년 만들어진 삼광청주 주조장이 있었다. 100년 된 이 건물을 지역주민들이 나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난 2011년 11월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삼광청주 상징과 같았던 굴뚝은 단 몇 초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지역사회에서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2013년 1월 '창원시 근대 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근대 건조물이란 '개항기 이후부터 1960년대 사이 건립된 역사적·건축사적·산업적 가치가 있는 건축·시설물'을 말한다. 시가 지정해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등록문화재에 이름 올리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시에서는 지난해 91개 건축·시설물을 대상으로 용역작업을 진행했다. 우선순위에 따라 18개를 A등급으로 분류했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초소였던 수양회관, 1956년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원해루, 흑백다방, 월남동 이오정 식당, 덕산역, 3·15의거 기념비, 충혼탑, 진해 이순신 동상, 김구 친필 시비 등이 해당한다. 일부 남아 있는 삼광청주 흔적도 포함된다.

하지만 일한와사 사택이었던 적산가옥은 B등급으로 분류됐다. 창원시 문화예술과 문화담당 정문석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의미와 상징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원형이 남아 있느냐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역시 평가위원들이 조사했습니다. 외관은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는 일부 개조됐다는 평가였습니다."

삼광청주 보존운동을 자발적으로 했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주민들은 '중앙동 문화역사 작은 박물관'을 만들었다. 무너진 삼광청주에서 나온 주조장 발효술통, 철제 금고, 상량 표지목, 기와, 나무 전신주 등을 전시한 것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어시장에 있는 2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은 1943년 건립되었다. 당시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하는 객주 창고로 사용됐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이들 주민 등이 나서 '마산역사문화유산보존회'를 만들었다. 최춘파(71)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선 등록문화재인 옛 마산헌병분견대를 문화유산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산합포구 중앙동에 화교학교 건물이 남아 있는데, 이 또한 보존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광청주가 그렇게 없어진 것이 아쉽지만, 이제라도 시와 주민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여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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