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예술인이 바라본 근대유산-진해

2010년까지만 해도 진해시라 불린 창원시 진해구는 벚꽃으로 제일 유명하지만 사실 도시 자체가 통째로 근대 유산이기도 하다. 일제가 조선인들을 쫓아내고 해군기지로 만든 계획도시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군항 건설과 시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10년 들어서였지만, 1909년에 이미 현동에는 군항 건설 준비가 시작됐다. 일본 해군은 일본회사에 토지를 대부했고, 대부를 받은 자들이 건물을 지으면서 진해 신도시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진해는 이렇게 식민지가 되기도 전에 일제의 손에 들어갔다." <일제시대 문화유산을 찾아서>(정태헌 외, 선인, 2012)

일제는 진해 제황산에 공원을 조성하고 그 옆에 중원로터리를 만들어 도시의 중심으로 삼았다. 남북에는 각각 북원·남원로터리를 두고 부챗살 모양으로 도시를 만들었다. 당시 도심 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경화동 한국인 부락'으로 쫓겨났다.

진해 중원로터리 근처에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

이렇게 진해는 전형적인 근대 도시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건물이 대부분 파괴된 한국전쟁 기간에도 별다른 피해 없이 살아남았다. 그래서일까, 역사적 의미가 별로 없는 듯한 진해 거리의 평범한 건물조차 잔뜩 근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진해에 전혀 연고가 없는 영화감독 이수지 씨가 이 도시에 반해 아예 정착해버린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 2011년이었다. 당시 서울에 살던 이 감독은 창원에 일을 보러왔다. 일을 마치고 드라이브 삼아 차를 몰고 근처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진해에 오게 됐다.

진해우체국 앞에 선 영화감독 이수지 씨.

"뭐 이런 데가 다 있지 그랬어요. 도시가 되게 작아 보이는데 바로 앞에 바다, 바로 뒤에 산인 거예요. 동화 같은 이미지였죠. 도심으로 들어왔는데 느낌이 그냥 도시 같지 않고 영화를 찍으려고 일부러 만든 세트장 같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도 아주 느리게, 여유 있게 움직이는 것 같았고요. 어찌 보면 마치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 같기도 했고요."

이 감독이 결정적으로 진지하게 진해를 바라보게 된 건 중원로터리 곁에 있는 진해우체국을 보면서다. 진해우체국은 1912년에 지어진 1층 목조건물이다. 러시아풍의 근대건축으로 당시 우편환저금, 전기통신 업무를 하던 곳이다. 일반적인 근대유산이 등록문화재로 돼 있는 것과 달리 진해우체국 건물은 국가지정 사적 291호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문화재 가치가 크다는 뜻이다.

"어쩌다가 중원로터리에 접어들었는데 건너편으로 진해우체국을 봤어요. 건물이 아주 정교하고 예뻤어요. 어쩌면 요즘 건물들이 더 대충 짓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사실 진해우체국 때문에 진해를 다시 봤어요. 그냥 뭐 시골이겠지 생각했는데 우체국을 본 순간 도시가 깊이가 있어 보였거든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2011년만 해도 중원로터리 주변으로 제법 많은 적산가옥이 있었다. 적산가옥은 해방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집을 말한다. 이 감독이 진해우체국 다음으로 보고 놀란 건 진해구 대죽동에 있는 어느 적산가옥이었다.

"진해우체국을 보고 나서 진해에 적산가옥들이 많이 있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이 적산가옥을 만났어요. 그리고는 아, 진해에 이런 집들이 더 있겠구나 하고 막 찾아다닌 거죠. 그러고 나서 여러 곳을 찾아냈었어요."

대죽동과 함께 이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지금의 편백로 주변이다. 지금도 길 주변으로 낡고 아담한 건물과 적산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이 길을 지나가는데 뭐가 엄청 낮은 거예요. 그리고 건물 뒤로 보이는 하늘 면적이 아주 넓다고 느꼈죠. 뭔가 되게 옛날인 것 같은데, 이런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고요! 적산가옥을 그대로 살려 만든 여기 카페에서 두 번째 장편영화를 찍었어요."

진해 중원로터리 근처에 있는 오래된 중국음식점 건물.

이 감독은 최근 진해에서 부쩍 '진해다운 모습'이 사라진 걸 안타깝다고 한다.

"대죽동은 엄청 많이 변했어요. 이젠 흔적도 없어요. 대죽동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적산가옥이 많이 없어졌어요. 대신 빌라 같은 건물이 들어섰어요. 창원시로 통합되고 나서 뭔가 대도시처럼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전에는 도시 형태가 자유롭게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획일화되어가요. 예를 들어 보도블록도 옛날 모양 그대로 있으면 좋은데 지금은 창원시내 보도블록처럼 현대식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건물 위로 보이던 하늘 면적도 줄어들고 있어요. 진해에 적산가옥이 많은 이유가 한국전쟁 때 다른 지역은 다 파괴됐는데 진해만 살아남아서 그렇대요. 전쟁도 파괴 못 한 적산가옥을, 지금은 그냥 사람이 파괴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감독은 요즘 어떻게 하면 '진해의 근대'를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살 것인가 고민 중이다. "역사는 역사인데 뭔가 흔적이 남아있으면 다르잖아요. 흔적을 보면서 상상하는 거랑 그냥 자료 보면서 상상하는 거랑은 차이가 나요. 처음 진해 왔을 때는 따뜻하고 동화 같고 뭔가 아늑하고 역사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고,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예뻐 보이는데, 요즘 누가 처음 진해에 오면 그때 나랑 같은 기분이 들까 싶어요. 근대건물은 근대와 현대 사이에 있는 일종의 정거장이에요. 적산가옥이 사라질 때마다 그런 정거장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주 안타까워요."

일제강점기 진해 시가지 전경. /김현철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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