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유일 재즈클럽, 다음은 경남 음악씬 만들 차례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부~부부~'처럼 연주하는…."

서태헌(45) 몽크 대표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지난 5월 12일 오후 4시 재즈클럽 몽크(창원시 성산구 상남동)를 찾았다. 오후 6시쯤 문을 여는 클럽이 일찍 셔터를 올렸다.

어두운 밤 은은한 조명 아래에만 앉았던 몽크에 오후 햇살이 비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텅 빈 무대 앞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할 찰나, 서 대표는 먼저 질문을 쏟아냈다.

왜 나를 인터뷰하려느냐, 재즈는 무엇이냐 등등.

나는 시원하게 답했다. "경남에서 꾸준히 재즈를 기획하는 사람이지 않으냐. 재즈를 잘 몰라 알고 싶어 왔다"라고.

뭐 하는 곳이냐고요? 재즈 전문 소극장이에요

몽크는 라이브 재즈클럽이다. 경남에 단 하나뿐이다. 단순히 술을 파는 재즈바, 재즈카페와는 성격이 다르다.

서 씨는 재즈 전문 연주자들이 공연을 하는 소극장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몽크를 열고 나서 한동안 문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어떤 곳인지, 음악학원인지, 재즈댄스를 추는 곳인지 묻는 사람이 많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재즈클럽이 한 번도 없었던 지역이고, 있었다 하더라도 잠시 생겼다 사라졌기 때문에 재즈클럽이 생소했을 겁니다. 재즈클럽은 바로 눈앞에서 라이브공연을 감상하고 즐기는 곳이에요. 간단한 음료와 술, 음식들을 곁들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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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헌 재즈클럽 '몽크' 대표./김구연 기자

몽크는 2010년 12월 창원 상남동에 문을 열었다.

매년 100회~200회 라이브공연을 선보인다. 재즈클럽이지만 정통 재즈만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 록, 팝, 인디, 블루스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뮤지션을 소개하고 있다.

재즈 음악의 후원자! 지원자!

서 씨는 인터뷰 내내 재즈에 대해 막힘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재즈 전공자도 음악을 한 순수 문화예술인도 아니다.

창원에서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기업인, 밤에는 몽크를 운영하는 문화기획자다.

이는 부산의 재즈클럽 몽크와 닮았다.

"부산 몽크는 30년이나 됐어요. 남부권 재즈클럽 중 '탑'이죠. 몽크라는 이름도 부산에서 따온 겁니다. 몽크 운영자도 문화예술인이 아니죠. 직장에 다니며 꾸려나가요. 아, 저 사람이 몽크예요."

그가 손가락으로 벽면을 가리켰다. 담배를 피우는 흑인 남성이다. 델로니어스 몽크(1917~1982)는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다.

몽크 옆에는 찰리 파커(1920~1955)가 그려져 있다. 찰리 파커는 색소폰 연주자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재즈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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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헌 재즈클럽 '몽크' 대표./김구연 기자

"저 두 사람을 애증하죠. 재즈를 '격상' 시켰거든요. 재즈는 춤추면서 놀 때 부르고 듣던 음악이에요. 그런데 이들이 재즈계 이론을 정비하면서 감상용 음악으로 만들었죠."

흥겨운 스윙에 맞춰 신나게 춤췄다는 1900년대 미국인을 떠올리니 재즈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동안 경남에 재즈클럽이 없었다는 것도 대중이 생각하는 재즈에 대한 선입견 탓이다.

"2007년인가요. 마산 창동에 갔더니 'WALKING'이라는 재즈클럽이 있더라고요. 아주 놀랐죠. 경남에 있다는 점에 놀랐고 국내에서 가장 큰 재즈클럽이라는 점에 입이 떡 벌어졌죠. 이후 몇 번 방문했는데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결국 1년을 버티지 못했죠."

그는 2005년 서울에서 고향 마산으로 온 후 언젠가 재즈클럽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WALKING'을 본 후 안도감과 아쉬움이 교차했었다. 그런데 전국에서 가장 큰 재즈클럽은 사라졌다. 아주 안타까웠다. 그가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 정도 전수조사를 했어요. 무대에 올릴 연주자들이 있어야 하잖아요. 경남 재즈 뮤지션을 알려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더군요. 일일이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정말 만나기 어렵더라고요. 지역에 무대를 책임질 뮤지션이 없어요. 찾다 찾다 만나게 된 한 분, 지금 '김희영재즈밴드'로 경남에서 독보적인 재즈그룹을 이끄는 김희영 씨를 만나게 됐죠. 몽크 첫 무대를 책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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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헌 재즈클럽 '몽크' 대표./김구연 기자

이모 따라간 동네다방, 20살 때 마주친 재즈클럽

그가 재즈클럽을 고향에 만든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이다. 재즈는 자유로운 형식의 즉흥 연주가 중요하기 때문에 앨범을 듣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을 생생하게 듣고 싶었다.

그의 재즈 사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삼천포에 살던 막내 이모 영향이 컸어요. 외가에 가면 이모가 저를 동네 음악다방으로 데리고 갔죠. DJ를 하던 이모 손을 잡고 디제이 박스 안에서 음악을 들었어요. 주로 '비틀즈'나 '퀸'처럼 팝음악이었어요. 한 날은 이모가 저를 손님들 앞에 세우더니 노래를 시키기도 했어요. 지금 이모는 김해에서 무용을 가르쳐요. 무용가 김해숙 씨입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어깨너머로 통기타를 배워 노래를 부르고 다녔단다. 재즈라는 장르에 빠진 것은 고등학생 때다.

"고등학생 때쯤 장르에 대한 개념을 알았고 재즈라는 음악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잘 모르긴 하지만 화성학 등 이론을 접하고 공부하게 되면서 재즈가 다른 대중음악 장르와 다르게 다가왔죠. 대학생 때 서울에 있는 재즈클럽을 처음 가봤어요.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듣는 음악은 앨범과 비교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연주였어요."

1997년 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별을 내 가슴에>도 서 씨가 재즈에 더 깊게 빠지는 계기가 됐다. 주인공 역을 맡은 차인표가 재즈클럽에서 온 힘을 다해 색소폰을 부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단다.

서 씨는 당시 불었던 재즈 열풍이 여러 상업적인 이유가 개입된 거품이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무료공연 없습니다"

마산 'WALKING'이 사라진 3년 후 2010년 12월 26일 몽크를 문을 열었을 때, 서 씨는 자신의 예상이 100% 들어맞았다고 했다.

"지역민의 반응요? 예상이 적중했죠. 손님이 없었으니깐요. 초창기 몇 달 동안 공연입장료를 받지 않아 그나마 운영이 됐어요. 지금은 무료 공연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터라 정말 공연을 좋아하는 진성 고객 외에는 거의 손님이 없는 편이죠. 일반 술집인 줄 알고 찾아온 손님이 공연입장료 얘기를 듣고 돌아가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몽크가 상남동 유흥가 한가운데 있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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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헌 재즈클럽 '몽크' 대표./김구연 기자

그래도 그는 상남동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클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에 그나마 손님이 있다고. 또 대중이 많은 만큼 재즈 팬이 될 확률도 높다고.

그는 "솔직한 바람은 많은 분이 편하게 술 한잔하러 왔으면 합니다. 무대는 유지를 해야 하니까요.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죠. 아마 없었다면 몽크는 벌써 문 닫고 없습니다."

서 씨는 무대를 만들어 놓고 놀릴 수 없어 여러 가지 기획공연을 벌였다. 서울과 부산, 국외 등 유명 연주자를 섭외해 지역에 소개하고 지역 인디밴드를 발굴했다. 그는 고육지책이라고 했다.

몽크에 모이는 세계적인 뮤지션들

그동안 몽크를 다녀간 뮤지션을 나열하면 알 만한 사람들은 엄지를 치켜세운다.

"세계적인 재즈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 네덜란드의 보컬리스트 잉거마리, 윈터플레이, 말로 등 잘 알려진 국내외 최고 재즈음악가나 밴드들이 몽크에서 공연을 하고 갔습니다. 크게 대중적이지 못해 흥행에는 성공하지 않았죠. 하지만 지방에서 만나기 어려운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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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헌 재즈클럽 '몽크' 대표./김구연 기자

몽크는 예술성과 공연의 질을 따진다. 대중적이지 않아도 음악을 잘하는 뮤지션을 소개한다.

"지역민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음악씬의 음악적 역량을 쌓는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수준 높은 연주를 직접 듣고 보고 자극을 받는 일은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재즈클럽 몽크가 존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5월 내내 열리는 '몽크뮤직페스타(MONK MUSIC FESTA)'도 국내외 10개 팀이 참여해 매주 금·토요일 공연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 출신 하모니카 연주자 르홍과 프랑스 출신 월드뮤직 가수 플루티스트 에밀리 등 유럽재즈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화려한 라인업은 그만의 영업 비결이다. 그동안 쌓아온 친분이 도움되고 일일이 섭외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5년이라는 시간을 끈기있게 버티다 보니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소문도 났다.

6·7월에도 한국재즈의 거장 1세대 색소폰 연주자 김수열재즈밴드, 일본에서 내한하는 타임익스피리언스 트리오 등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 서 씨의 재즈 기획력을 알아보는 곳도 있다. 김해시가 주관하는 넌버벌페스티벌 부대행사 '그린내 재즈스테이지(가칭)'의 공연기획을 맡게 됐다. 7월 김해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에서 20일간 국내외 16개 재즈그룹의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몽크의 관객은 크게 늘지 않았다.

"몽크의 열악한 경영 탓에 홍보는 엄두도 못 냈죠. 시민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몽크는 일 년 내내 공연을 열고 있어요. 창원에 아주 소수의 리스너(listener)들이 있지만 몽크라는 재즈클럽 하나 유지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서울에서도 문을 닫는 재즈클럽이 많은 게 현실이죠."

그럼에도 몽크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예요.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재즈라는 음악을 즐기는 리스너들을 위해서지요. 그리고 지역에서 다양하고 질 높은 '현대대중음악씬'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그 기초를 다지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입니다. 누가 저보고 그러더군요. 사막에 물 뿌리고 있다고요. 최소한 씨를 뿌리는 정도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비틀즈처럼 위대한 아티스트 나올 수 있어요"

서 씨는 목표가 있다.

지역의 역량을 기반으로 만든 뮤직페스타를 열고 싶다. 뉴욕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나 가평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처럼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

그래서 그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지역에서 역량을 갖춘 현대음악 아티스트를 발굴, 그들이 음악적인 역량을 키워가게 하기 위한 작업을 오래전부터 진행하고 있는데요. 올해부터 이런 작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지역의 많은 연주자와 힘을 합쳐 경남재즈실용음악협회(가칭) 창립을 준비하고 있고요."

그는 공무원을 향한 쓴소리도 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창원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전문기관들이 문화적 토양을 두텁게 만들기 보다 오히려 이벤트 위주 행사만 한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서 씨 페이스북을 보면 도내 문화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다.

그는 음악과 아티스트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를 찾는 전화가 울렸다. 공연 기획을 상담하는 후배부터 재즈뮤지션을 물어보는 지인까지.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작년 여름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어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들과도 놀아주지 못하고요. 그래서 클럽 운영을 중단할 생각도 했었어요. 지금은 일요일만큼은 가족과 보낸다는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는 5년간 말할 수 없는 사연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무대를 꼭 지켜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단다.

"창원에 몽크 무대가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지역에서도 꾸준하게 무대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위대한 아티스트가 탄생할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몽크나 마일즈, 비틀즈 같은 위대한 아티스트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저는 경남 음악씬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몽크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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