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의 조선산업 1990년대 활황·산업 급성장…거제, 우리나라 최고 조선도시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있는 거제시 장평동 상가지역. 길 한편 조그마한 포장마차에서 김씨 할머니가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메뉴는 어묵이 전부다. 어묵국물이 '맵싹하니' 좋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더운 날씨지만 간간이 손님이 든다. 할머니는 부산에서 살다 서른이 되기 전 거제로 와서 거의 40년 가까이 장평동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거제조선소가 생기고 발전해 온 시간과 같다. 김씨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곳 장평동의 역사가 곧 거제 조선산업 역사의 축소판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조선소가 들어올 때는 지금 조선소 자리가 들판이고 아무것도 없었어. 지금 있는 (장평)초등학교하고 그 곁에 주택지 조금하고 그것밖에 없었어. 그러다가 조선소가 들어오고, 그러고는 주변에 아파트들도 막 들어서기 시작했지."

삼성이 조선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난 1977년 4월 삼성조선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이미 거제 지역에 조선 관련 산업단지를 조성한 박정희 정부는 대기업의 등을 떠밀어 조선소를 하도록 했다. 애초 삼성은 자체적으로 조선산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일어난 1차 석유파동으로 이를 잠정 연기했던 터다.

1994년 12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4422TEU급 컨테이너선 명명식에서 당시 경주현 삼성그룹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은 1차 석유파동 여파로 잠정 연기했던 조선산업을 1년 4개월 만에 우진조선 인수와 함께 재개했다. 우진조선은 정부의 조선공업 육성 계획에 따라 거제도 조선공업단지에 설립한 고려조선주식회사의 후신이었다. 우진조선은 애초 연간 10만t급 선박 4척 건조를 목표로 하는 중소 조선업체를 표방했으나, 석유파동 여파와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조선소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촌극을 연출했다. 정부는 조선소 건설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기업으로 삼성을 추천해 우진조선 인수를 적극적으로 권하였는데, 삼성은 이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의 끈질긴 설득에 1977년 삼성은 전체 공정의 50% 정도가 진척된 상태의 우진조선을 전격 인수하며 조선업에 진출하게 된다." (이경묵·박승엽 2013)

이후 1983년 삼성 중공업 3사(삼성중공업, 삼성조선, 대성중공업)가 삼성중공업으로 합병하면서 삼성조선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함께 거제지역 양대 조선소인 대우조선해양도 정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회사나 다름없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은 대한조선공사라는 국영 조선업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대한조선공사를 민영화하려고 했다. 당시 쟁쟁한 대기업을 제치고 극동해운이란 회사가 적극적으로 인수를 추진했는데, 1차 석유파동으로 조선소 건설 비용이 늘어나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대우조선해양 30년 역사를 간직한 화학제품 운반선 '바우헌터'가 옥포조선소에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부랴부랴 다시 다른 업체를 찾아야 했다. 김용환 당시 재무부장관은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매입 가능성을 삼성, LG 등 대기업에 타진했으나 모두 거대 조선소를 인수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김용환 장관은 결국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만나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회장조차 명백한 거절 의사를 보였다. 이후 옥포조선소 매각 주무부서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기업들은 모두 옥포조선소 인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용환 장관은 결국 다시 김우중 회장을 만나 거의 강요하다시피 옥포조선소 인수를 타진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1978년 정부는 경제장관회의에서 옥포조선소 사업 주체를 대한조선공사에서 대우그룹으로 변경하였다." (이경묵·박승엽 2013)

거제 지역 두 조선소는 이후에도 한참이나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0년대 삼성상용차 부실을 떠안으며 적자에 허덕이던 삼성중공업은 지난 1998년 기계사업부문을 볼보그룹코리아에 매각했다. 1980년 노동운동의 상징이던 대우조선해양도 1998년 모기업인 대우그룹 부도로 위기에 빠진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난 2008년, 두 조선소는 매출 10조 원을 넘어서는 세계 상위권 조선업체가 됐다.

두 조선소로서는 힘겨운 나날들이었겠지만, 거제시 자체로는 끊임없는 조선산업 발전의 시대였다. 한적한 어촌마을이던 거제는 1970년대 후반 대형조선소 두 곳이 생기고, 외주업체 등 관련 기업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조선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1990년대 들어 부산 경남을 포함한 영남권에서는) 거제시에 가장 많은 55개 조선업체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것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장평리와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옥포동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거제시에 조성하여 1994년부터 많은 조선업체가 자리 잡은 한내공단과 1995년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성내 공단의 완공으로 더욱더 많은 기업이 거제시에 분포하게 되었다." (유태윤 2008)

1990년대로 접어들어 조선산업 경기가 좋아지면서 거제는 불황을 모르는 도시가 됐다. 다시 김씨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때는 진짜 경기가 좋았어. 저녁만 되면 이 주변이 왁자했지. 우리는 IMF(외환위기)도 모르고 살았어. 부산에 놀러 가면 거기 사는 친구들이 IMF 어쩌고 하면서 느그는 IMF 없나, 하고 물어봐. 그러면 나는 'IMF? 그기 뭔데? 우리는 그런 거 없는데?'하고 대답했거든. 외지 사람들도 '거제가 그냥 섬인 줄 알았는데, 이런 데(경기 좋은데)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와서 살아볼 걸 이러는 사람도 많았어."

2001년 8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워크아웃 졸업기념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지금 거제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조선도시다. 애초 10만 명도 되지 않던 인구는 2015년 5월 현재 26만 5641명으로 늘었다. 이 중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사람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7만 4673명이다. 거제 인구의 약 30%가 조선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소득도 전국에서 울산 다음으로 높은 약 4만 달러(2012년 기준)다. 이는 한국 평균(2만 4000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최근 조선산업 경기 침체로 거제 지역 두 조선소는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경제도 주춤하고 있다.

"지금은 조선 경기가 힘들어가꼬 지역 경제도 조금 힘든 상태지. 요 근방도 옛날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요새는 일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가더라고. 거제가 장사 잘된다고 말만 듣고 딴 데서 오가지고 망한 사람도 많고. 그래도 딴 지역보다는 아직은 거제가 낫다 그러더라고. 뭐 우리는 다른 데 안 가봐서 모르지만."

말끝에 김씨 할머니는 텅 빈 상가 거리를 망연히 바라봤다.

2001년 9월 당시 대통령 부인이던 이희호(李姬鎬) 여사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일본 NYK선박 명명식에서 선박 이름을 명명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참고 문헌 <한국 조선산업의 성공요인>(이경묵·박승엽,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경남 조선산업의 공간분포와 입지 특성>(유태인, 경상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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